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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이 ESG와 다를 게 없다고?

Summary

- CSR과 ESG는 비슷한 듯 다른 차이점을 가짐

- CSR은 기업의 이윤 추구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주체가 기업

- ESG의 주체는 투자자로, 블랙록이 기업에 넷제로를 요청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 "ESG가 10년 전 유행 같았던 CSR과 다른 게 뭔지 모르겠다."

어느 고위 공무원과의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2021년을 "ESG 확산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나선 마당에 사적인 자리에서나 할 수 있는 개인적인 평가일 것이다.

하지만 핵심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차이점이 없다면 결국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ESG 열풍 역시 기업의 마케팅 수단의 하나로만 끝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일컫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의 약자가 결합된 ESG(Environmental, Social and Corporate Governance)'. 과연 무슨 차이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어가 다르다. CSR은 기업, ESG는 투자자다.

 

| CSR의 주어는 '기업'

기업의 책임 vs 주주의 이익 먼저 CSR을 보자. 기업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용어의 뉘앙스 때문에 2000년 이후 나타난 경영학적 개념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1950년부터 법적 판결 등에서 등장했다.

1952년 미국 재봉틀 회사였던 A.P 스미스사는 프린스턴 대학에 1500달러를 기부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회사의 주주였던 바로우(Barlow)는 무효 소송을 제기한다. 기업을 보유한 주주의 이익에 반하고 기업 헌장에 명시되지 않은 활동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뉴저지 법원은 기업의 기부행위가 기업의 직접적인 이익과는 무관하지만 사회적 책임의 범주로 인정된다고 판결한다. 이전까지는 기업이 자사의 이익과 어긋나는 사회공헌 활동을 할 경우 법으로까지 금지됐다. 미국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기업의 사회적 기부 행위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인식의 시대가 도래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53년 하워드 R. 보웬(Howard R. Bowen)은 '비즈니스맨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ies of the Businessman)'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보웬은 "우리 사회의 목표나 가치 측면에서 정책 수립이나 의사 결정 및 행동시 고려해야 하는 기업인의 의무"라고 사회적 책임을 정의했다.

보웬은 기업으로 하여금 의사 결정 시 사회와 시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기업의 결정으로 인해 사회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 분석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기업에게 사회 참여의 역할이 인식되기 시작하는데, 업계에서는 이때를 '인식의 시대(Age of awareness'라고도 부른다.

 

기업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사회공헌의 측면에서 받아들여졌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지금 형태의 CSR로 정립된 시기는 1990년대다. 1991년 아치 캐롤(Archie B. Carroll) 교수는 '기업의 사회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를 통해 그 이론적 기반을 다진다.

캐롤 교수는 기업의 사회 책임 활동을 경제적 · 법적 · 윤리적 · 자선적 책임의 4가지로 분류하고,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위 4가지가 통합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존재 이유이자 최종 목표인 경제적 성과 향상을 통한 이윤 추구에서 한 단계 나아가, 앞으로도 존재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책임 수행 외에 법을 준수하고, 윤리 경영을 실천하며, 사회 공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캐롤의 CSR 피라이드, 출처: https://courses.lumenlearning.com/

 

이는 지난 50년간 기업의 이윤 추구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기업의 지상과제였던 경제적 성과 달성을 위해 행해진 인권 침해, 환경 오염, 빈부격차 심화 등 그동안 용인됐던 경영 방식에 대한 경고였다. 그리고 2001년에 이르러 엔론의 분식회계 사태로 인해 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해 사회적 재논의가 이뤄진다. 주주 이익 극대화가 최우선 가치였던 기업의 메커니즘이 무조건 옳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이후 CSR은 사회적 성과가 높은 기업은 이미지나 평판 제고를 통해 경제적 성과가 상승한다는 사회효과론, 재무적 성과가 좋은 기업은 자금이나 인력 등에 여유가 있어서 더 많은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여유자원론, 윤리적 책임 생산을 통한 소비자 구매 태도 변화에 영향을 주는 합리적 행동 이론 등으로 확산되어 부흥기에 이른다.

이렇듯 CSR의 핵심 주체는 기업이라는 것을 할 수 있다. CSR은 기업이 주체가 되어 영업 활동에 있어 이행해야 할 책임에 방점이 찍힌다. 앞서 보웬과 캐롤의 정의에서 기업이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위해 행해야 할 의무라고 명시했던 바 역시 '기업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가 중심이다. 그 방향성이 재무적 성과와 함께 비재무적 성과도 고려해야 한다는 데 있다.

 

| ESG의 주체는 '투자자'

주인공이 달라졌다 하지만 ESG의 주체는 투자자가 된다. ESG 관련 뉴스가 기관투자자로부터 발생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이 이끄는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움직임은 투자자가 ESG의 주체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래리 핑크 회장은 2017년부터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언급하더니, 지난해에는 투자 기업들에 공개서한을 통해 “앞으로 투자 결정 시 지속 가능성을 기준으로 삼겠다”며 ESG 강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블랙록이 굴리는 투자 자산액은 9조 달러(약 1경 원)에 가깝다. 애플, 구글, 엔디비아, 아마존 등 주요 글로벌 기업의 핵심 주주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연금 다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블랙록은 KB금융뿐,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 국내 3대 금융지주의 2대 주주이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LG화학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의 3대 주주이기도 하다.

이런 블랙록이 올 초 투자기업의 CEO들에게 보내는 연례서한(Larry Fink’s 2021 letter to CEOs)을 통해 “2050년 넷제로(탄소중립) 달성 목표에 부합하는 사업계획을 기업들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자사의 비즈니스모델이 넷제로 경제와 어떻게 호환될 지에 관한 계획을 공개하고, 2050 넷제로 달성 목표를 기업의 장기전략에 어떻게 통합할지, 이사회에서 검토하는지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했다.

 

출처: Blackrock fb

 

| ESG 투자 패러다임을 상징하는 '블랙록'

객체로 전락한 기업들 ESG가 옳고 그름을 떠나 기업은 투자자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하고, 블랙록의 입김은 강했다. 국내외 글로벌 기업은 속속 탄소 배출 감소 로드맵을 발표했다.

우선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Carbon Negative)를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MS는 2050년까지 1975년 설립 이후 회사가 배출한 탄소의 양만큼 제거하겠다고 밝혔다.

애플, 구글도 오는 2030년까지 넷제로(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애플은 아이폰, 아이패드, 맥 등 애플 기기를 탄소 배출 없이 생산 · 공급해 약 75%의 탄소 배출량을 줄일 것이며, 구글은 탄소 배출 추적 디지털 툴을 개발하고 대규모 환경 프로젝트 투자를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MS가 탄소 절감 활동에 가장 선도적인 이유는 블랙록이 MS의 최대주주이기 때문이라면 무리한 분석일까?

국내 역시 다르지 않다. 최근 네이버는 오는 204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오는 2030년까지 탄소 중립, 대기 오염물질 추가 배출 제로, 폐기물 매립 제로(ZWTL2)' 골드 등급 등을 로드맵으로 세웠다.

지난해까지 경쟁기업에 비해 ESG 활동이 부족하다고 비판 받던 카카오 역시 올 초 블랙록이 카카오 지분 5.18%를 신규 취득한 이후 부쩍 활동이 늘었다. 지난 5월에는 카카오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목표·성과를 담은 ESG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CSR의 여부와 관계 없이 큰손 투자자가 ESG를 강조하자, 기업이 움직인 셈이다. CSR과 ESG는 무엇이 다를까? CSR에서 능동적 주체를 차지했던 기업은 ESG 패러다임에 수동적 객체로 변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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