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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산업을 쉽게 이해하자 (4편): 스마트폰 배터리는 왜 교체가 안될까? 파우치형 배터리의 비밀

|주머니에 담긴 배터리, 어떻게 가능했을까?

안녕하세요 밀렸던 글을 뒤늦게 완성하고 있는 호돌이입니다.

 

이번 글은 추후 시리즈에서 다룰 내용을 위해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국내 2차전지 산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우치형 배터리를 이해하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할텐데요. 특히,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배터리 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파우치형 배터리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과거 삼성SDI가 갤럭시노트7의 폭발로 곤혹을 치룬 데에도 파우치형 배터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번 글을 이해하는 것은 추후 서술할 전고체 배터리를 이해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전고체배터리는 기존 배터리와 대단히 다른 배터리라 보기 어렵습니다. 전고체배터리 연구는 리튬폴리머배터리 연구와 거의 비슷한 길을 걸어 왔고, 논문 또한 비슷한 연구 그룹에서 나오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번 글을 꼼꼼히 읽어주신다면 향후 서술할 전고체배터리, 나트륨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시리즈도 쉽게 이해하 가능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산업 시리즈 살펴보기

지금까지 작성했던 여타 산업 글들도 함께 링크를 걸어두니 함께 살펴보시면 산업 공부에 도움이 되어드리리라 생각합니다.

  • 지난 포스팅: 반도체 산업을 쉽게 이해하자! (11편): 칩렛과 2.5D 패키징, 왜 기판 업체들이 먼저 수혜를 볼까? (관련링크)
  • 디스플레이 산업을 쉽게 이해하자! (4편): LG디스플레이(034220)는 왜 바닥까지 내려오게 되었나? (관련링크)
  • 2차전지 산업을 쉽게 이해하자 (3편): 노칭 공정에 레이저가 도입되면 수혜보는 기업들 (관련링크)
  • 모바일산업을 쉽게 이해하자 (1편): 스마트폰 부품주는 왜 투자 매력이 떨어지게 되었을까? (관련링크)
  • 음식료산업을 쉽게 이해하자 (1편) : 아셉틱에 대한 모든 것 (삼양패키징) (관련링크)
  • 폐기물산업 (1편): 인선이엔티(060150)는 아무 쓰레기만 처리하는 업체가 아니랍니다 (관련링크)

 

|리튬폴리머 배터리, 유튜브 영상으로 살펴보기

영상 자료를 함께 살펴보시면 더욱 쉽게 이해가 가능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영상은 그림을 아주 빵빵하게 넣었습니다.

  • 왜 스마트폰 배터리는 교체가 안될까? (관련링크)

 

|왜 스마트폰의 배터리는 교체가 안될까?

2014년에 삼성전자는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했습니다. 갤럭시S5였죠. 그런데 이 제품은 출시 직후 보기 좋게 폭망했습니다. 그 이유는 누가 봐도 촌스러운 디자인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의 디자인', '반창고같은 디자인', '환공포를 일으키는 디자인'이라 표현했습니다. 결국 갤럭시S5는 판매 부진에 빠졌고, 삼성전자 임원 117명이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 부사장이었던 디자인 총괄팀장은 자리를 떠나야 했고, 빈 자리는 삼성전자 상무가 대신하며 파격적인 인사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1년이 지난 뒤, 삼성전자는 갤럭시S6을 출시했습니다. 갤럭시S5 판매 부진이라는 충격을 받은 뒤, 삼성전자는 디자인 쇄신에 몰두하였습니다. 그 결과 갤럭시S6은 충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갤럭시S6은 세계 최초로 양면 엣지디스플레이를 채용하여 전면 디자인 혁신을 일으켰고, 메탈 및 글래스 케이스를 채용하여 어디에서 보나 반짝반짝하며 색상이 변하는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갤럭시S6은 디자인이 너무나 파격적이었던 탓에 수요가 몰리며 부진에 빠졌습니다. 소비자들은 파격적인 디자인을 가진 엣지디스플레이 제품을 선호했지만, 삼성디스플레이의 엣지 패널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을 사고싶어도 사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 모바일사업부는 증권가에서 어닝쇼크를 일으켰습니다. 부품을 충분히 공급할 수 없으면 너무 파격적이어도 안된다는 사례를 보여주었죠.

그런데 이러한 디자인 외에도 갤럭시S5와 갤럭시S6은 커다란 차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디자인만큼은 갤럭시S6이 월등히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갤럭시S5를 여전히 부러워 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배터리였습니다.

갤럭시S5는 충격적으로 촌티나는 디자인을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직접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는 탈착식 제품이었습니다. 야외에서 배터리가 방전되면 가방에 들고 다니는 또 하나의 배터리로 바꿔 끼우면 그만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갤럭시S6은 배터리 탈착식 스마트폰이 아니었습니다. 배터리와 스마트폰이 일체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배터리가 방전될 경우를 대비하여 보조배터리를 들고 다녀야 했고, 혹여나 보조배터리가 없다면 스마트폰을 켤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갤럭시S6은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대신 배터리 교체를 포기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갤럭시S6은 배터리 일체형으로 출시되었을까요? 정말로 디자인만 믿고 배터리 교체를 포기한 것일까요?

이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배터리 기술에 있습니다.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탑재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리튬폴리머 배터리는 파우치형 배터리라 불리기도 하는데요, 이 배터리를 상세히 살펴봅니다.

|액체 전해액의 단점

2차전지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만, 사실상 리튬이온배터리가 지배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리튬이온배터리의 내부를 살펴보면 양극과 음극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리튬 이온이 음극과 양극을 오가며 배터리가 충전되기도 하고 방전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리튬 이온이 어떻게 양극과 음극을 오갈 수 있는가? 바로 전해액을 통해서 오갈 수 있습니다. 전해액은 리튬이온이 오가는 통로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전해액이 액체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즉, 위 그림의 양극과 음극은 전해액이란 액체에 통째로 담겨 있는 구조를 갖고, 리튬은 액체를 타고 흘러다니며 양극과 음극을 오가는 것이지요. 마치 수영하듯 오가는 것입니다. 리튬 이온에게 전해액은 수영장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전해액은 꾸준히 액체가 주로 쓰여왔습니다. 하지만 액체 전해액은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액체 전해액은 배터리에서 새어 나올 우려가 늘 상존합니다. 물침대가 편안하고 좋다고 합니다만 혹시나 침대에서 물이 새어나오지 않을까? 침대가 터지지는 않을까? 이러한 우려가 있으신 분들은 물침대 사용이 불편할겁니다. 배터리의 전해액도 껍데기 내부에 안전하게 담겨있다고는 하지만, 만에 하나 외부 충격이라도 가해져 배터리가 조금이라도 손상되면 전해액은 모두 새어나올 것입니다. 게다가 전해액은 불이 붙기 쉽기 때문에 화재로 이어질 여지도 큽니다. 안전 우려가 먼저 떠오르는 것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전해액이 절대로 새어나오지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배터리 껍데기를 단단하게, 두껍게 만들어야 합니다. 외부 충격에도 강해야 하고 빈 틈도 없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금속 껍데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배터리의 무게 증가와 부피 증가로 이어집니다. 

 

또한 액체 전해액은 기본적으로 차지하는 공간이 큽니다. 우리가 비타민C를 먹을 때 약국에서 비타500을 사 마실 수도 있지만, 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알약 하나로도 비타민을 공급받을 수 있지요.​ 개인적으로 알약보다는 비타500이 더 맛있기는 합니다만 며칠 분량의 비타민을 들고 여행을 떠나야 한다면 현실적으로 비타500을 챙겨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무겁고 공간을 너무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액체를 사용하지 않는 배터리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배터리가 리튬폴리머배터리입니다.

|고분자 전해질의 발견

겨울만 되면 피부가 건조해지는 분들이 많이 계실겁니다. 피부가 건조해지면 손에도 얼굴에도 수분크림을 발라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지요. 그런데 우리가 몸에 바르는 그 흔한 수분크림에 대해 잠시 고민해보겠습니다. 수분크림은 과연 액체일까요? 아니면 고체일까요? 아마 한번도 고민해본적이 없으셨던 분들이 태반이실겁니다.

 

수분크림은 고체라고 하기엔 단단하지 않으며, 액체라고 하기엔 마구마구 흘러내리지 않습니다. 무언가 고체와 액체의 중간즈음 되는 것 처럼 보이는데요, 이처럼 고체와 액체가 섞여 액체와 고체의 중간인 듯한 물질을 젤(Gel)이라 부릅니다. 어릴적 문방구에서 100원을 주고 사먹었던 불량식품 젤리도 젤의 일종이죠. 바로 이러한 젤을 배터리에 쓰기 시작하며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탄생한 것입니다.

 

때는 1973년으로 돌아갑니다. Fenton이란 과학자는 화학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흔하디 흔한 나트륨과 칼륨을 PEO(polyethylene oxide)라고 불리는 폴리머 소재와 섞어봤습니다. PEO는 아래 사진과 비슷하게 생긴 투명한 젤 타입의 폴리머 소재입니다. 많은 분들께는 생소할지 모르나, 사실 화학이나 재료를 공부하시는 분들께는 익숙한 소재이기도 합니다. 배터리 뿐만 아니라 여러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바다 속에는 많은 나트륨이 녹아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바닷물을 잘못 먹으면 엄청나게 짜지요. 그런데 나트륨이란 녀석이 물 속에 그냥 둥둥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물 속에 이온화되어 녹아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학창시절에 배운셨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실겁니다. 그런데 Fenton이란 과학자는 나트륨과 칼륨을 PEO라는 폴리머에 섞고 나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트륨이나 칼륨이 PEO 폴리머 속에 녹아 들어가면 마치 물에 녹아들어갔을 때와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죠. 즉, 나트륨과 칼륨이 PEO 속에서 이온화되고, 이들 이온이 PEO 폴리머 속에서 왔다갔다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물 뿐만 아니라 젤 타입의 폴리머에도 녹아들어갈 수 있고, 이온화될 수 있으며,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논문으로 발표된지 불과 6년만에 배터리 산업은 새로운 중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1979년, 또 다른 과학자인 Michel Armand은 앞선 Fenton의 연구를 배터리에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기존에는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액체 전해액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 과학자는 PEO와 같은 젤 타입의 폴리머 물질을 전해질로 사용해 배터리를 개발한 것입니다.

비록 첫 연구였다보니 배터리의 성능이 그리 뛰어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후속 연구들이 폭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2차전지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역시 이들 연구를 바탕으로 젤을 이용한 뛰어난 배터리를 개발해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설명드리길 '젤 타입의 폴리머 물질을 전해질로 사용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보다 구체적으로는 이러한 젤 타입의 폴리머 물질은 고분자 구조를 갖습니다. 그래서 고분자 전해질이라고도 부릅니다. 고분자 전해질은 우리나라 배터리 산업의 근간일 뿐만 아니라, 전해액을 공급하는 수많은 기업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소재입니다. 국내 배터리 분야 학계에서도 고분자 전해질 연구는 매우 전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왜 리튬폴리머 배터리인가?

이처럼 배터리에 젤 형태의 폴리머 소재가 도입되기 시작한 이후, 비슷한 연구가 정말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지구상에는 젤의 형태를 갖는 폴리머 소재가 수도 없이 다양한데요, 과학자들은 여러 종류의 폴리머 소재를 번갈아 사용해가며 더욱 성능이 좋은 배터리를 개발해왔습니다. 당연하게도 연구가 거듭될수록 배터리의 성능은 꾸준히 개선되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젤 폴리머를 이용한 배터리는 1990년대 들어 상용화의 길에 접어들었고, 2000년대를 전후하여 본격적으로 시장에 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젤 형태의 폴리머 소재를 이용한 리튬이온배터리를 '리튬 폴리머 배터리'라 부릅니다. 리튬폴리머 배터리는 2차전지 시장의 큰 축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현재에도 2차전지 시장은 두개의 큰 축으로 나뉩니다. 액체 전해액을 사용하는 리튬이온배터리와 젤 폴리머를 사용하는 리튬이온배터리이지요. 국내 배터리 기업 중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액체 전해액을 이용한 리튬이온배터리와 젤 폴리머를 이용한 리튬이온배터리를 모두 생산하고 있으며, 배터리 산업 후발 기업인 SK온은 젤 폴리머를 이용한 배터리에 집중해왔습니다.

 

그렇다면 리튬 폴리머 배터리는 어떤 장점이 있는가? 젤 타입의 전해질은 액체처럼 마구마구 흐르지 않습니다. 따따라서 배터리에서 새어 나올 우려가 훨씬 적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배터리를 밀봉하는 껍데기도 아주 단단하고 견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겁고 두꺼운 금속 껍데기를 이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러한 장점으로 인해 리튬폴리머 배터리는 단단한 금속 껍데기를 이용하는 대신, 파우치라 불리는 얇은 주머니처럼 생긴 껍데기를 이용합니다. 이로 인해 리튬폴리머배터리는 파우치형 배터리라 불리기도 합니다. 마치 주머니처럼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얇은 껍데기를 이용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배터리의 두께도 대폭 줄어들 수 있었습니다. 배터리의 무게도 줄어들 수 있었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주로 사용하는 노트북을 가만히 살펴보면 노트북이 하나같이 아주 뚱뚱하고 무거운 특징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아주 얇고 가벼운 노트북이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LG전자가 출시한 그램이란 노트북도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노트북이 어떻게 이처럼 혁신적으로 가벼워지고 얇아질 수 있었는가? 모두 리튬폴리머 배터리 덕분입니다. 배터리가 대폭 얇아지고 가벼워지니 노트북도 더욱 얇게, 가볍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장점에도 불구하고 왜 한계를 보여왔을까?

그렇다면 리튬폴리머 배터리는 이처럼 장점만 있는가?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앞서 갤럭시 이야기를 잠시 풀었습니다. 갤럭시S5는 배터리 분리가 가능하여 폰 사용 중에 배터리가 다 떨어지면 배터리 교체가 가능했습니다만, 갤럭시S6부터는 일체형 배터리가 탑재됐다고 했습니다. 스마트폰과 배터리가 아예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보조배터리를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갤럭시S6는 왜 배터리 분리가 불가했을까요? 바로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탑재됐기 때문입니다. 리튬폴리머배터리는 액체 전해액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훨씬 얇게 만들 수 있고, 이 과정에서 파우치라는 얇은 껍데기가 쓰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장점이 곧 단점이 됩니다. 왜냐? 파우치를 이용한 매우 얇은 배터리이다보니 배터리가 단단하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힘을 조금만 주어도 배터리가 구부러질 수 있으며, 다소 과한 힘을 주게 되면 배터리가 아예 손상되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리튬폴리머배터리는 약합니다. 만약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이처럼 약한 배터리를 마음껏 들고다닌다면 배터리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파손이 일어날 수도 있고, 가방에 챙겨둔 여분의 배터리들이 가방 안에서 눌리며 파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리튬폴리머 배터리를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배터리 교체가 불가하도록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배터리 일체형 스마트폰은 스마트폰 내 공간을 절약할 수 있고, 디스플레이 패널의 파손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배터리 자체의 특징으로 인해 근래 스마트폰은 배터리 일체형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 가지 재미있는 이슈가 나오긴 했습니다. 환경상의 이유로 스마트폰 배터리를 사용자가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최근 EU는 배터리 일체형 스마트폰이 환경 오염을 심화시킨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배터리의 수명이 다 되면 배터리만 교체하면 될 것을,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통째로 교체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EU는 모든 스마트폰을 탈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리튬폴리머배터리는 얇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을 포기하고 안정성이 향상된 두툼하고 단단한 모양을 띄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해 스마트폰의 두께가 두꺼워지거나 배터리의 용량이 줄어들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과거에도 리튬폴리머 배터리임에도 불구하고 껍데기를 단단하고 두껍게 만들어 소비자가 직접 들고 다니고 교체 가능한 형태로 출시된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튬폴리머 배터리 고유의 매력이 많이 줄어든다고 볼 수 있겠죠.

▼ 2022.12.21 <EU 탈착형 배터리 의무화 추진… 삼성·애플 ‘긴장’> (관련링크)

 

그런데 리튬폴리머 배터리는 이보다도 중대한 단점을 안고 있습니다. 쉬운 예시를 들어보죠. 우리가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데 수영장의 물이 갑자기 진흙으로 바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또는 물이 갑자기 수분크림과 같은 젤로 바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 몸은 물 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수월하지만, 젤 안에서는 몸을 가누기 어려울 것입니다. 점성도가 훨씬 높다보니 젤 안에서는 팔을 움직이기도, 발차기를 하기도 훨씬 버거워질 것입니다. 이는 마치 늪 속에 빠진 모습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리튬 폴리머 배터리도 정확히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앞서서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을 움직이며 배터리가 방전되기도 하고 충전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리튬폴리머 배터리 내에서는 리튬이 액체가 아닌, 젤을 통해 양극과 음극을 오가게 됩니다. 리튬 이온도 우리처럼 액체 안에서는 매우 빠르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젤 소재 안에서는 허우적거리며 이동이 더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해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을 오가는데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되고, 이는 배터리의 전반적인 성능 저하를 일으킵니다. 즉, 리튬폴리머배터리는 전해액이 외부로 빠져 나올 우려가 현저히 줄어들어 안정성이 향상되는 장점이 있지만, 리튬이온의 이동 속도가 느려져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리튬이온의 이동 속도를 증가시키기 위해 젤 폴리머의 점성도를 낮추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젤이 액체와 비슷한 점성도를 갖게 될수록 리튬 이온은 양극과 음극을 쉽게 오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액체와 비슷한 젤은 당연히 배터리 외부로 유출되기 더욱 수월해질 것이고, 리튬 폴리머 배티러의 안정성은 떨어질 것입니다. 반대로 안정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더욱 점성도가 높은 전해질을 사용하면 리튬이온이 이동하는 속도는 더욱 느려질 것이고 배터리의 성능은 더욱 하락할 것입니다. 즉, 리튬폴리머 배터리는 안정성과 성능이 트레이드 오프 관계에 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 매우 어려운 것이죠. 이로 인해 리튬폴리머 배터리는 시장의 개화도 늦었을 뿐만 아니라, 발전 속도도 더욱 느렸던 것입니다.

이외에도 리튬 폴리머 배터리는 제조공정상 공정이 더 많이 필요하여 설비투자가 더욱 많이 필요하고, 제조 시간과 비용이 늘어나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에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리튬폴리머 배터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배터리를 사가는 전기차 업체들은 전해액으로 액체를 쓰는 것이 유리할지, 아니면 젤 타입의 폴리머를 쓰는 것이 유리할지 가늠해 왔습니다. 일부 전기차 업체는 가격경쟁력이 높은 액체 전해액을 선호하기도 하고, 일부 전기차 업체는 공간효율성과 무게, 용량을 중시하며 리튬 폴리머 배터리를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어떤 배터리가 꼭 좋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우며, 다만 전방 시장의 니즈에 따라 각기 다른 리튬이온배터리가 채택되고 있습니다.

|이온 이동의 중요성

리튬폴리머배터리는 이처럼 리튬 이온의 이동속도가 낮다는 점이 늘 발목을 잡아 왔습니다. 이에 따라 리튬폴리머배터리는 어떻게 하면 리튬 이온의 이동속도를 높일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어 왔습니다. 새로운 폴리머를 찾아나서기도 하고, 특수한 코팅 기법을 도입하기도 하고, 첨가제를 넣어가며 젤의 성분을 변형시키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근래의 리튬폴리머배터리는 실제로 다소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부 관리를 꾸준히 하시는 분들은 집에서 종종 마스크팩을 하시는 경우가 있을겁니다. 화장품 가게에서 파는 마스크 팩을 떠올려보세요. 아마 내 얼굴 모양의 흰색 천에 온갖 종류의 화장품이 듬뿍 묻어있는 모습이 떠오르실겁니다. 그런데 리튬폴리머배터리 일부는 이와 비슷합니다.

 

실제로 리튬 폴리머 배터리의 전해질을 상세히 살펴보면 젤 형태의 전해질로만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신 젤 전해질 내부는 마스크팩의 숭숭 뚫린  미세한 구멍과 흡사한 통로가 잔뜩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통로에 액체 전해액이 듬뿍 묻어 있거나 액체가 고체와 자연스럽게 버무려진듯한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화학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개념이지만, 마치 액체가 젖어 있는 젤과 흡사하다고 표현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 결과 리튬 이온은 젤들 사이에 사이에 스며든 액체 소재를 타고 이동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젤만 있을 때보다 액체가 섞였을 때 이동성이 더 빨라지므로 리튬이온은 꽤나 빠르게 양극과 음극을 왔다갔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리튬 폴리머 배터리는 이름만 들으면 무언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배터리 같기만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플라스틱 덩어리로만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종종 받아 왔던 질문 중 하나는 "리튬폴리머 배터리는 플라스틱을 전해질로 쓴다는데, 대체 무슨 플라스틱을 쓰는건가요? 어떻게 리튬이 플라스틱 안을 돌아다닐 수 있나요?"와 흡사한 질문들이었습니다. 이 글은 그간 "젤리같은 전해질이 쓰입니다"라는 저의 기존 답변에 더해 조금 더 구체적인 답변이 되길 바랍니다.

아무튼 액체 성분이 추가된 젤 형태의 전해질이 많이 쓰입니다. 젤 속에 액체를 스며들게 하여 액체가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해액이 배터리 외부로 줄줄 새어나오지 않습니다. 분명히 리튬폴리머배터리를 만들 때에는 액체 전해액과 액체 가소제 등 여러 액체 소재들이 사용되는데도 안정성이 높은 이유입니다. 그리고 리튬 이온이 순수한 젤이 아닌, 액체가 버무려진 젤을 통해 이동하므로 이동 속도도 빠릅니다. 

물론 배터리 업체마다, 또 배터리 제품군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전해질이 쓰이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국내 배터리 3사가 판매하는 배터리 스펙을 살펴보면 전해액 부분은 어떤 전해액이 쓰였는지, 어떤 소재가 쓰였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대량 구매가 확정적인 고객사에 한하여 스펙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배터리 업체에 전해액을 공급하는 기업들 또한 액체 전해액, 젖은 형태의 전해액, 젤 타입의 전해질을 모두 공급하며, 배터리 업체의 양산제품 및 연구개발용 제품의 니즈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갤럭시노트7은 왜 폭발했을까?

리튬폴리머배터리는 얇고 가벼운 구조라는 장점으로 기존 액체 전해액을 사용하는 배터리와 함께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하나 둘 출시된 이래, 2000년대 중반 들어 리튬폴리머 배터리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하나 둘 늘어났습니다. 배터리 사업의 후발주자인 SK그룹이 SK모바일에너지를 중심으로 리튬폴리머배터리 사업을 본격 확대하던 시기도 이 즈음이었습니다. 

비록 갤럭시S6에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주력으로 채용되었다고는 하나, 사실 그 이전에도 스마트폰 또는 피처폰에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채용된 사례는 많았습니다. 2010년을 전후로 노트북에도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채용되며 얇은 노트북이 출시되기 시작했고, 리튬폴리머 배터리를 채용한 보조배터리도 2010년 즈음부터 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갤럭시S6은 리튬폴리머 배터리를 탑재했고, 배터리 교체가 불가한 일체형으로 출시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삼성전자는 갤럭시 S7을 출시하며 배터리 용량을 공격적으로 늘렸습니다. 역시나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탑재됐고, 스마트폰의 크기와 두께를 모두 늘리며 배터리 용량을 비약적으로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6개월즈음 뒤, 삼성전자는 문제의 갤럭시노트7을 출시하게 됩니다.

 

갤럭시노트7은 화려한 디자인과 성능으로 무장하며 시장에 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제품은 출시하자마자 연이어 지속적으로 화재와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제품 출시 이후 한달도 안되어 세계 곳곳에서 갤럭시노트7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삼성전자는 제품의 사용을 중단할 것을 권고하였고, 이후 화재가 지속 확대되자 결국 제품 회수와 조기 단종이라는 초유의 결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삼성전자의 시그니처 제품이 판매 중단되자 삼성전자도 큰 타격을 입었지만, 갤럭시노트7에 부품과 배터리를 공급하는 기업들이 모두 연쇄적으로 실적 급감을 경험해야 했고 주가 폭락도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출처: digitalspy.com

갤럭시노트7이 출시된 직후, 화재 사건이 본격적으로 보고되기 시작하자 삼성SDI가 공급한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특히, 중국 업체들은 리튬 폴리머 배터리 기술을 꾸준히 발전시키며 시장을 확대해왔던 반면, 리튬폴리머 배터리 사업에 다소 소극적이었던 삼성SDI가 기술이 부족해 발화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도 잠시, 중국 ATL이 공급한 리튬폴리머배터리에서도 연이어 화재가 터졌고 삼성전자는 대안이 없다고 판단, 제품의 생산을 영구 중단하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갤럭시노트7에 사용된 배터리가 왜 연이어 화재를 일으켰는지에 대해서는 비교적 명확하게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주로 배터리 내부의 기술적인 부분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리튬폴리머 배터리의의미비한 기술 대비 무리하게 용량을 늘린 점이 원인으로 널리 언급됩니다. 특히, 리튬 폴리머 배터리는 얇은 구조를 가졌고, 얇은 껍데기가 배터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터리의 용량을 무리하게 늘리는 과정에서 배터리의 모서리부가 과도하게 세게 눌렸고, 이를 보완해줄 기술이 부재하여 화재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앞서 출시된 갤럭시S7은 크기와 두께를 모두 키운 덕에 배터리가 들어갈 공간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갤럭시노트7은 S펜을 비롯해 각종 기술들로 무장하는 과정에서 공간 확보가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전작 대비 용량을 15% 이상 무리하게 늘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리튬폴리머 배터리가 과도한 압력을 받으며 완성되고 또 탑재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삼성SDI가 공급한 배터리와 중국 ATL이 공급한 배터리의 모서리부 외형이 서로 다른 모양으로 완성되었을 정도로 배터리가 무리하게 만들어졌고 품질관리가 미비했다는 평이 있습니다.

물론 폭발 이유가 리튬폴리머 배터리라는 요인 한 가지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리튬폴리머 배터리는 갤럭시노트7 화재사건 전후에도 크고 작은 화재 사건을 여러 차례 일으킨 바 있는데요, 아무래도 리튬 폴리머 배터리가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고사양 배터리를 중심으로 출시되고, 이를 위해 배터리의 사양을 더욱 높이는 과정에서 더욱 공격적인 소재가 사용됩니다. 그 덕에 전기차 시장 등 여타 시장에서도 여러 차례 화재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고체배터리와는 무엇이 다를까?

리튬폴리머 배터리는 젤 타입의 폴리머 소재가 쓰이는 배터리입니다. 따라서 전해질이 액체도 고체도 아닌 것이 어중간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리튬 이온의 이동 속도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꾸준히 발전되어 왔습니다. 여기에 쓰이는 폴리머 소재를 고분자 전해질이라 부른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분자 전해질을 사용하는 또 다른 배터리가 있습니다. 바로 전고체배터리지요. 전고체배터리는 전해질로 젤이 아닌 완전한 고체 고분자 소재를 이용하는 배터리입니다. 그런데 전해질로 고체를 이용하다보니 리튬 이온이 이동하기 더욱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리튬 이온이 젤 내부보다 고체 내부를 이동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관계로 전고체배터리는 리튬 이온의 이동 속도를 더욱 비약적으로 끌어 올려야 합니다. 이러한 연구는 기존 리튬 폴리머 배터리에서 활발히 이루어졌던 연구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을 짧게 끝내기 위해 나름 노력했습니다. 추후 몇 가지 배터리 이야기를 더 풀어보고, 이번 글에서 다루지 못한 전고체배터리는 물론, 황 배터리, 나트륨배터리와 같은 여러 배터리 기술들에 대해서 여러 시리즈에 걸쳐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저의 인기 강의인 2차전지 산업 강의에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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