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빅히트 : K-스타트업 졸업생
스타트업마다 비전과 비즈니스는 다르지만 최종 목적지는 같다. 그 지점은 바로 '엑시트(EXIT)'이다. 엑시트란 창업자와 투자자 등 스타트업의 지분을 가진 이해관계자들이 비상장 주식을 팔아 자산을 현금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엑시트까지 성공한 유니콘을 '엑시콘'이라고 부른다. 엑시트 방법은 대표적으로 주식 시장에 상장하는 IPO(기업공개)와 다른 기업에 매각하는 M&A(인수합병)이 있다. 무엇이 유리한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기업가라면 자신이 창업한 기업을 시장에 공개하는 게 가장 큰 영광일 것이다. 오늘은 코스피 IPO에 성공하며 스타트업을 졸업한 '크래프톤'과 '빅히트(하이브로 사명 변경)'를 소개한다.
|[History] 혜성처럼 나타나 폭풍처럼 흔들다.
출처: 빅히트
2000년대 국내 게임 업계는 넥슨이 압도적인 선두였고 NC소프트와 네오위즈가 뒤를 이었고 NHN와 넷마블이 새로 떠오르면서 5N이라고 불리다가, 2010년대 이후 네오위즈와 NHN이 하향세를 맞이하고 넥슨, NC소프트, 넷마블로 3N 체제가 굳어졌다. 한편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원더걸스와 트와이스 신화를 창조한 JYP엔터테인먼트, '동방신기-슈퍼주니어-샤이니-엑소-NCT'로 세계관을 확장한 SM엔터테인먼트, 빅뱅과 블랭핑크라는 메가IP를 보유한 YG엔터테인먼트가 빅3를 형성했다. 그런데 2010년대 후반 갑자기 나타난 크래프톤과 빅히트라는 스타트업이 3N과 빅3를 누르고 업계를 리드하는 대기업이 되었다.
크래프톤은 2007년 블루홀스튜디오에서 시작된 게임 개발사 스타트업이다. '테라'를 출시했지만 메이플스토리, 리니지 같은 국민게임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2015년 전후로 여러 게임 개발사를 블루홀 연합에 합류시키면서 덩치를 키웠고, 2017년 블루홀지노게임즈에서 '배틀그라운드'라는 초대박을 터뜨렸다. 당시 PC방에서 리그오브레전드와 오버워치를 하던 모든 사람들이 배틀그라운드로 몰려들었다. 게다가 배틀그라운드는 유튜브, 트위치, 아프리카TV의 게임 방송 크리에이터를 타고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2021년 8월 10일 코스피에 상장한 크래프톤은 약 22조 원의 시가총액으로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을 밀어내고 게임 대장주에 올랐다.
빅히트는 2005년 설립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스타트업이다. 창업자인 방시혁 대표와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대표의 인연으로 '8eight'라는 혼성그룹을 런칭했지만 오래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2013년 '방탄소년단'이라는 첫 보이그룹을 런칭했는데, 이는 'BTS'라는 전설의 시작이 되었다. 데뷔 초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DNA', 'FAKE LOVE', 'IDOL'이 차례로 히트하며 BTS에 이목이 쏠렸다. 그리고 BTS는 디지털싱글 'Dynamite'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다. 2020년 10월 15일 코스피에 상장한 빅히트는 약 9조 원의 시가총액으로 JYP Ent., 에스엠, 와이지엔터테인먼트를 합친 것보다 규모가 큰 엔터테인먼트 대장주가 되었다.
스타트업을 졸업하고 상장기업의 신분으로 시장에서 평가받는 크래프톤과 빅히트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워낙 시장 분위기가 흉흉한 탓도 있겠지만 게임과 엔터테인먼트라는 흥행 산업의 특징이 두 기업에게는 최대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흥행 산업은 한번에 성공할 수도 있지만 다음에 또 성공할지는 알 수 없다는 본질적인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다시 말해 제 2의 배틀그라운드, 제 2의 BTS는 언제 어디서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혜성처럼 나타나 폭풍처럼 흔들었던 크래프톤과 빅히트처럼 지금 이 순간 다음 신화가 조용히 만들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크래프톤에게 배틀그라운드, 빅히트에게 BTS는 이제 영광인 동시에 부담이 된 셈이다.
|[Business] 과거의 영광은 잊어라.
출처: 크래프톤
크래프톤의 비즈니스모델은 게임을 제작해서 판매하는 것에서 여러 개발사의 게임을 유통하는 것으로 확장됐다. 게임 산업의 특성상 어느 개발사에서 히트작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일종의 연합군을 만든 셈이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배틀그라운드가 세상에 나왔고, 지금은 배틀그라운드 덕분에 크래프톤 연합군에 소속된 개발사는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크래프톤의 최대 숙제는 배틀그라운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인데 2020년부터 출시한 '엘리온', '뉴스테이트', '문브레이커'가 모두 기대치에 못 미쳤다. 올해 연말 출시될 트리플 A급 신작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꺼져가는 배틀그라운드라는 엔진을 대체할 수 있을까.
당장 배틀그라운드를 대체할 수 있는 신작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크래프톤은 플랫폼을 연결하고 있다. 게임 산업의 대표적인 플랫폼으로는 PC, 콘솔, 모바일이 있는데 앞으로 세 개의 플랫폼이 서로 연결될 것이다. 콘솔계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Xbox'를 보유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 최대 게임사 중 하나인 '블리자드 액티비전'을 인수하면서 PC와 콘솔의 경계가 사라지는 게 확실해졌다. 게다가 클라우드 게이밍과 VR 디바이스가 상용화되면 플랫폼 간 경계는 더욱 희미해질 것이다. PC로만 즐길 수 있던 배틀그라운드를 콘솔과 모바일 버전으로 출시했고,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처음부터 PC와 콘솔 버전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빅히트의 비즈니스모델도 아티스트를 발굴해서 운영하는 것에서 여러 소속사의 아티스트를 관리하는 것으로 확장됐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자체가 정답이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뭉친 격이다. BTS가 빌보드 정상으로 올라갈 때 시장에서는 환호했지만, 빅히트는 BTS가 벌어들인 돈을 그대로 쏟아부어 K-POP을 이끌어 갈 아티스트를 육성했다. 빅히트의 최대 숙제 역시 BTS 의존도를 낮추는 것인데 'TXT'를 비롯한 동생 그룹들은 여전히 형들의 위상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보이그룹에서 걸그룹으로 대세가 움직이는 흐름에서 데뷔 초부터 밀리언셀러가 점쳐지는 '르쎄라핌'과 '뉴진스'는 과연 BTS라는 벽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애초에 BTS를 계승할 수 있는 신예가 영영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빅히트는 파이프라인을 확장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대표적인 파이프라인으로는 앨범, 콘서트, 굿즈가 있는데 앞으로 세 개의 파이프라인이 점점 확장될 것이다. 자체 메타버스 플랫폼인 '위버스'를 보유하고 있는 빅히트는 저스틴 비버와 아리아나 그란데가 소속된 '이타카 홀딩스'까지 인수하면서 전세계 팬들을 한 곳으로 통합시켰다. 여기서 콜라보 앨범, 온라인 콘서트, 한정판 굿즈가 출시되면 팬심을 자극해 프리미엄이 어마어마하게 붙는다. 단체활동 잠정중단에 돌입한 BTS 뿐만 아니라 블랙핑크를 포함한 타 소속사 아티스트도 이제 위버스에서 만날 수 있다.
|[Performance] 꿈이 아닌 돈으로 증명하라.
출처: 빅히트
크래프톤의 스타트업 시절의 실적과 투자 내역을 살펴보자. 크래프톤은 2011년 '테라'를 출시했지만 적자와 흑자를 반복했다. 2016년 매출액 372억 원, 영업손실 73억 원을 기록한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가 PC방을 점령한 2017년 매출액 3104억 원, 영업이익 266억 원을 기록하며 완벽하게 일어섰다. 2018년 매출액 1조1200억 원을 기록하며 '1조 클럽'에 가입한 크래프톤은 2021년 매출액 1조 8863억 원을 기록하며 '2조 클럽'까지 넘보고 있다. 2018년 크래프톤은 중국의 빅테크 텐센트의 벤처투자 자회사로부터 5600억 원에 11.46%의 지분 투자를 받아 중국 게임 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했고, 2021년 IPO 작업까지 마무리했다.
빅히트의 스타트업 시절의 실적과 투자 내역도 살펴보자. 빅히트는 2013년 '방탄소년단'을 런칭했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2016년 매출액 352억 원, 영업이익 104억 원을 기록한 빅히트는 'BTS'가 빌보드에 진입한 2017년 매출액 924억 원, 영업이익 325억 원을 기록하며 수직으로 성장했다. 2018년 매출액 3014억 원을 기록하고 그 이후로도 두 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한 빅히트는 2021년 매출액 1조2559억 원을 기록하며 '1조 클럽'에 가입했다. 2018년 빅히트는 방시혁 대표와 친척 관계에 있는 방준혁 의장이 이끄는 넷마블로부터 2014억 원에 19.28%의 지분 투자를 받아 콘텐츠 IP를 강화했고, 2020년 IPO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크래프톤과 빅히트는 코스피에 상장되었기 때문에 실적이 주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예전에는 꿈, 비전, 스토리로 기업가치를 정당화했다면 앞으로는 돈, 실적, 수익성으로 스스로를 증명해내야 한다. 가장 화려한 순간에 IPO를 했다가 어두운 실체가 드러나면서 추락하는 스타트업 사례가 종종 있으므로 공모주 투자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현재 실적 전망치를 보면 크래프톤은 올해는 주춤하고 내년부터 반등하고, 빅히트는 올해부터 내년까지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기업에 투자를 고려한다면 성장성의 지속성과 성장률의 변화율을 체크하며 시장에서 기대하는 실적 전망치가 합리적인지 스스로 따져볼 줄 알아야 한다.
|[Competition] 다시 똑같은 출발선에 서다.
출처: 크래프톤
국내 게임 산업은 3N의 시대를 지나 '춘추전국'의 시대로 가고 있다. 여전히 튼튼한 캐시카우를 보유한 크래프톤은 배틀그리운드의 후속작까지 출시했으나 흥행에 실패하고 두 번째 도전을 앞두고 있는 한편 딥러닝, 웹3.0, VR, 버추얼휴먼 등 신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전통 강자였던 3N은 핵심 IP(넥슨의 카트라이더,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넷마블의 모두의마블)를 바탕으로 모바일, 메타버스, NFT 신사업에 나서고 있다. 또한 카카오게임즈, 펄어비스는 각각 '오딘: 발할라 라이징'과 '검은사막'으로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고 위메이드, 네오위즈, 컴투스는 블록체인 기반의 P2E(Play to Earn) 게임으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빅3의 시대를 지나 '일강다중'의 시대로 가고 있다. 하이브로 사명을 바꾼 빅히트(BTS, TXT)는 빌리프랩(엔하이픈), 플레디스(세븐틴), 쏘스뮤직(르세라핌), 어도어(뉴진스) 등 여러 레이블을 이끌며 슈퍼스타와 라이징스타, 보이그룹과 걸그룹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기존의 엔터테인먼트 빅3도 주력 아티스트(JYP엔터테인먼트의 트와이스&스트레이키즈, SM엔터테인먼트의 에스파&NCT, YG엔터테인먼트의 블랙핑크&트레저)를 기반으로 신예 아티스트 발굴에 전념하고 있다. 한편 아이브를 데뷔시킨 스타쉽엔터테인먼트와 에이티즈를 데뷔시킨 케이큐엔터테인먼트가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공통적으로 성공 방정식이 없다. 물론 총알이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하다. 확실한 캐시카우가 있으면 과감하게 투자를 할 수 있고 대대적으로 홍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엔지니어와 매력적인 아이돌이 있어도 실제로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한다. 모든 플레이어가 다시 똑같은 출발선에 선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두 산업의 콘텐츠는 경합성이 약한 편이다. 쉽게 말해 배틀그라운드를 즐기면서도 리니지를 즐길 수 있고, BTS의 팬이 블랙핑크의 팬도 될 수 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기업끼리 경쟁을 하면서 시장 전체가 커지는 선순환 사이클이 만들어질 수 있다.
출처: 빅히트
게임 산업은 배터리, 바이오, 인터넷과 함께 팬데믹의 최대 수혜를 입었다. 그 중에서도 크래프톤은 국내에선 낯설었던 장르를 개척하며 전세계를 열광시켰다. 이제 시장은 칼리스토 프로토콜이 배틀그라운드와 원투펀치를 맞춰줄 수 있는지를 두고볼 것이다. 한편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팬데믹의 위협에 언택트로 카운터를 날렸다. 특히 빅히트는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새로운 팬덤 문화를 창조했다. 앞으로 시장은 세븐틴과 뉴진스가 BTS의 공백을 얼만큼 채울 수 있는지를 지켜볼 것이다. 가장 정석에 가깝게 스타트업을 졸업한 크래프톤과 빅히트가 험난한 시장에서 살아남는 과정은 유니콘을 꿈꾸는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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