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앤피코스메틱&지피클럽 : K-뷰티의 흥망성쇠
브랜드 로열티가 어마어마한 로레알, 유니레버, 에스티로더, P&G, 시세이도가 버티고 있는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단숨에 막강한 브랜드 인지도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각각 '설화수'와 '후'라는 프리미엄 화장품을 성공적으로 런칭하며 K-뷰티의 존재감을 알렸다. 게다가 코스맥스와 한국콜마는 OEM/ODM 시장에서 월드클래스를 입증하며 K-뷰티의 밸류체인을 확장했다. 그리고 아직 상장되지 않은 스타트업도 마스크팩 신드롬을 일으키며 K-뷰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오늘 이야기할 두 유니콘은 각각 메디힐과 제이엠솔루션으로 잘 알려져 있는 '엘앤피코스메틱'과 '지피클럽'이다.
|[History] 1일 1팩 신드롬
© 메디힐
대한민국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K-드라마, K-POP 같은 K-컬처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 K-컬처의 시초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2014년 전지현의 '별에서 온 그대'와 2016년 송혜교의 '태양의 후예', 그리고 2020년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K-컬처에 기여한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K-컬처가 유행하면서 자연스럽게 K-푸드, K-뷰티도 주목받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늙지 않는 한류스타의 비결이 화장품에 있다고 생각한 중국인들은 대한민국에 여행을 와서 수백억 원 어치 화장품을 쓸어갔다. 그리고 피부관리도 습관이라는 인식과 함께 '1일 1팩 신드롬'이 불었고, 마스크팩을 파는 화장품 기업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엘앤피코스메틱은 2009년 권오섭 회장이 어머니의 '왕생화학'을 계승하여 설립했다. 권오섭 회장은 사은품으로만 증정되던 마스크팩이 엄연한 상품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확신했고 마스크팩의 고급과와 대중화에 앞장섰다. 2012년 엘앤피코스메틱은 '메디힐'을 런칭했고 방탄소년단을 전속모델로 계약하면서 국민 마스크팩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2021년 메디힐은 에스파를 브랜드 뮤즈로 발탁하며 글로벌 뷰티 시장 진출을 예고했다. 엘앤피코스메틱은 2017년에는 사드 사태로 실적 타격을 입고, 2019년에는 신중하게 준비하다가 이듬해 팬데믹이 터지고, 2021년에는 증시 부진으로 투자 심리가 꺾이면서 IPO 시장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고 있다.
지피클럽은 2003년 김정웅 대표가 설립한 게임 및 IT제품 유통사로 시작했다. 김정웅 대표는 네이처리퍼블릭, 토니모리 등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중국 유통을 대행하다가 중국에서 마스크팩이 유행하는 것을 보고 직접 진출했다. 2016년 지피클럽은 '제이엠솔루션'을 런칭했고 이병헌, 한효주 등 한류스타를 전속모델로 발탁하며 꿀광, 청광 등 광 시리즈 마스크팩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2022년 제이엠솔루션은 배우 김소현을 새로운 광고모델로 계약하며 MZ세대까지 아우르는 이미지 쇄신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피클럽은 2019년과 2021년 IPO 시장에 조 단위 대어 등장이라는 기대감을 모았지만 시장 상황과 가치 논란 때문에 결국 무산되었다.
엘앤피코스메틱과 지피클럽은 뷰티라는 카테고리를 공유하지만 완전히 다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예를 들어 엘앤피코스메틱은 국내 시장을 석권한 후 해외 시장으로 나간 반면 지피클럽은 해외(중국) 시장을 점령한 뒤 국내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또한 엘앤피코스메틱은 뷰티에만 힘을 주고 핵심역량을 강화하는 반면 지피클럽은 뷰티에서 힘을 빼고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정석을 고수하는 엘앤피코스메틱과 변칙을 활용하는 지피클럽의 대결을 보면 라이벌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 기업은 K-뷰티라는 한 배를 탔다. 이들의 향후 성과에 따라 K-뷰티가 글로벌 뷰티 어깨를 나란히 할지, 아니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결정될 것이다.
|[Business] 잃어버린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 메디힐
엘앤피코스메틱의 비즈니스모델은 지금까지 소개한 유니콘 중에서 가장 단순하다. 제품을 저렴하게 만들어서 비싸게 많이 팔면 되는 제조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즈니스모델보다는 전략에 초점을 맞춰 엘앤피코스메틱을 설명해보겠다. 먼저 일반화장품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마스크팩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느낀 엘앤피코스메틱은 토너, 로션, 크림 등 스킨케어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노화방지와 미백을 목적으로 하는 코슈메슈티컬(Cosmeceutical)과 피부치료와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더마코스메틱(Dermacosmetic)이라는 개념이 상용화되면서 엔앤피코스메틱은 기능성 마스크팩의 노하우를 일반화장품으로 이전하고 있다.
엘앤피코스메틱은 제품군을 다각화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판매채널과 해외시장을 다각화하고 있다. 먼저 2009년 올리브영에 이어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롯데면세점, 신라면세점, 신세계면세점에 입점했다. 또한 2014년 중국 및 일본 면세점, 2018년 영국 셀프리지, 2019년 미국 월그린에 입점했다. 그리고 2018년 메디힐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색조화장품에 특화된 '메이크힐'을 런칭하고, 자연주의를 표방한 '마녀공장'을 인수했다. 현재 마녀공장은 엘앤피코스메틱의 자회사 중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하며 실적을 견인하고 있고, 메이크힐은 사회적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색조화장품 판매량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지피클럽의 비즈니스모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피클럽만의 독특한 전략으로는 제품의 기능부터 디자인까지 중국인의 취향을 반영한 현지화, 타오바오와 티몰 등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 개척, 왕홍 등 SNS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을 꼽을 수 있다. 사드 사태로 국내 뷰티 브랜드가 중국 시장에서 고전했던 것과 달리 지피클럽이 제이엠솔루션을 과감하게 런칭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도 덕분이었다.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자 국내 유통업계의 러브콜을 받은 지피클럽은 면세점 빅3와 올리브영에 입점하는 데 성공했고, 중국 및 일본 법인에 이어 미국 법인까지 설립했다. 그야말로 돌아온 유학파라고 할 수 있다.
지피클럽도 마스크팩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지만 안주하지 않았다. 먼저 2018년 '강블리라이프'라는 생활용품 브랜드를 런칭하여 가전 및 가구, 반려동물 용품까지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다. 또한 2020년 '제이코나'부터 2021년 '제이플리'와 '제이멜라'까지 신규 브랜드를 런칭하며 뷰티 라인업도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지피클럽은 작년부터 과거에 닌텐도를 유통하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애플코리아의 공식 리셀러로 활동하고 있다. 지피클럽의 확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인데 올해 하반기 헬스케어를 사업 포트폴리오에 추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처럼 지피클럽은 기업의 정체성에서 마스크팩 이미지를 천천히 지워나가고 있다.
|[Performance] 중국 덕에 흥하고 중국 탓에 망한다
© 제이엠솔루션
엘앤피코스메틱은 중국 덕분에 함박웃음을 짓기도 했지만 중국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016년 중국에 한류 열풍이 불면서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4015억 원과 1287억 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17년 사드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뒤 실적은 수렁에 빠졌고 급기야 2019년에는 영업적자 135억 원을 기록했다. 2020년 겨우 흑자 재전환에 성공했고, 올해 메디힐 브랜드를 전면 리뉴얼하며 재기의 의지를 내비췄다. 2017년 대만계 사모펀드 CDIB캐피탈로부터 291억 원, 2018년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로부터 약 400억 원 투자금을 유치한 엘앤피코스메틱은 마녀공장을 먼저 IPO로 내보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피클럽은 중국 정치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중국 경제의 영향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공격적인 사업다각화에도 여전히 중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마스크팩의 매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제이엠솔루션 런칭 3년 만에 매출액 5444억 원, 영업이익 2067억 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2019년부터 역성장에 돌입하며 2021년 영업이익은 527억 원으로 3년 전 대비 4분의 1 토막이 났다. 2018년 골드만삭스로부터 750억 원, 2021년 와이지인베스트먼트로부터 400억 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하며 Pre-IPO를 마무리한 지피클럽은 다시 한 번 조 단위 대어의 등장을 예고했지만 여전히 고평가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모든 산업과 기업에는 흥망성쇠가 있는데 K-뷰티는 현재 흥함과 망함, 융성함과 쇠락함, 그 사이에서 방향성을 잡고 있는 단계이다. 엘앤피코스메틱과 지피클럽이 부활의 신호탄을 쏘기 위해서는 중국에 집중된 시장을 분산하고 마스크팩에 집중된 제품을 분산해야 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모두가 정답을 알지만 아무도 풀이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엘앤피코스메틱과 지피클럽의 전략 중 어느 쪽이 성공하느냐를 흥미롭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마스크팩을 중심으로 뷰티에 올인하려는 정통파의 승리할까, 아니면 마스크팩을 기반으로 뷰티를 넘어서려는 이단아가 승리할가? 어쩌면 둘 모두 성공하거나 실패할 수도 있다.
|[Competition] 기능성이라 쓰고 감성이라 읽는다
© 제이엠솔루션
앞서 소개한 유니콘들은 규모가 크거나 작거나 특정한 경쟁사가 있었다. 그런데 엘앤피코스메틱과 지피클럽에게는 이렇다 할 만한 경쟁사가 없다. 심지어 마스크팩으로 유니콘의 반열에 오른 엘앤피코스메틱과 지피클럽도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뷰티 시장은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같은 대기업부터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중소기업까지 참여해서 피터지게 싸우는 춘추전국시대와도 같다. 그런데 사드 사태나 코로나19 사태를 보면 K-뷰티는 결국 중국의 정치와 경제에 따라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엘앤피코스메틱과 지피클럽으로 한정짓지 않고 K-뷰티의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진단해볼 것이다.
K-뷰티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전망하는 사람들은 K-뷰티가 J-뷰티와 C-뷰티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었다고 본다. J-뷰티 뿐만 아니라 고객 충성도가 높은 에스티로더(미국)과 로레알(프랑스) 등 전통적인 글로벌 뷰티 강자들은 위기 속에서 다른 기업들이 구조조정되는 와중에도 가격 프리미엄을 얹으면서 더욱 강해졌다. 한편 K-뷰티의 본거지였던 중국 시장에서는 자국산 제품을 소비하는 '궈차오'가 트렌드로 자리잡으면서 C-뷰티가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K-뷰티가 위기에 가격을 올리기는 커녕 가격을 내리면서 브랜드 로열티를 훼손하고 있고, 원가경쟁에서도 중국 업체에게 밀리면서 암흑기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K-뷰티의 앞날에는 먹구름만 가득한 것일까? 그동안 K-뷰티가 중국에서의 한류 열풍으로 떠올랐다가 사드 사태로 가라앉으면서, K-뷰티는 '중국 소비자가 인식하는 대한민국 화장품'으로 오해받고 있다. 하지만 K-뷰티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확장하고 있다. K-드라마와 K-POP이 중국을 넘어 전세계로 뻗어나가면서 K-컬쳐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런데 K-드라마나 K-POP 같은 무형의 문화가 발달할수록 K-푸드나 K-뷰티 같은 유형의 문화는 자연스럽게 수혜를 입는다. 어떤 콘텐츠가 흥행할지는 모르지만, K-컬처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K-뷰티 산업은 성장하고 그중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이 더 큰 파이를 차지할 것이다.
© 제이엠솔루션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제품에서 서비스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신생 스타트업이 IT 플랫폼을 활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며 꿈의 밸류에이션을 받고, 전통 대기업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합창하며 온라인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오프라인 세상에서 유형의 제품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특히 화장품 제조업은 불로장생이라는 인류의 꿈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앞으로 성장할 일만 남아있다.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제조 기반 유니콘인 엘앤피코스메틱과 지피클럽이 위기를 타개하여 K-뷰티의 부활을 이끌고 멋지게 도약하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 단, 그때까지 살아남는 게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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