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의 금리 인상 용인키로 한 일본은행…"적은 내부에?"
Summary
- 일본은행이 국채금리 방어선을 0.25%에서 0.5% 선으로 물러서자 출렁이는 금융시장
- 정책 변경을 이끌어낸 엔화 약세의 주요 원인은 외국인 자본 이탈에만 국한되지 않음
- 자국민이 해외로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도 엔화 약세에 일조
- 미국 금리 정책만 바라보는 일본 경제의 씁쓸한 현실
© iStock
전 세계 선진국 중앙은행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 수준'의 제로금리를 유지했던 일본은행의 기조가 바뀌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보자면 '방침'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의 '통화 도매원가'와 같은 기준금리는 그대로 놓아둔 채 국채 금리 수준을 기존 0.25%에서 0.5% 수준까지 '용인한다'라고 방침이 변경된 것입니다.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일본 내부 자본의 유출이 심화되니 선택한 '어쩔 수 없는 수(手)'라고 합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부단히 노력했던 시장 개입에 한계를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그전까지 일본 외환당국은 떨어지는 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 시장에 적극 개입했고, 일본은행은 올라가는 금리를 막기 위해 무제한 국채 매입을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패배했다’와 같은 일본은행의 선언적 결정으로 전 세계 증시는 출렁거렸습니다. 안전자산으로 소문난 일본 엔화의 강세가 예상되는 한편 '일본 내 만연된 디플레이션'과 '과중한 정부 채무 부담'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제3위 경제대국 일본 경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0.25%를 유지하려고 했던 일본 정부 그동안 일본은행(BOJ)은 일본 정부가 정한 국채(10년물) 금리 상한선 0.25%를 지키기 위한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실제로 지난 10월 국채 금리 상한선 0.25%가 위협받자, 일본은행은 예정에 없던 시장 개입에 나섰습니다. 당시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행은 5년물 이상 국채 2500억 엔(약 2조 3887억)어치를 매입하고, 이와 별도로 10년물 국채를 금리 0.25%에 무제한 매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중앙은행이 나서 국채를 사들인다는 것은 '국채에 대한 수요를 보전해 준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너네가 안 사면 내가 산다’라면서 왕창 사들이는 것이죠.
여기서 잠깐, 중앙은행의 채권 매입은 왜 중요할까요?
채권은 '가격과 금리가 반대로 움직인다(가격이 떨어지면 금리가 오른다)'라는 원리에 따라 가격이 하락하게 되면 수익률 격인 금리가 오르게 됩니다. 이에 따라 사는 사람이 없어서 일본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 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일본은행은 ‘사는 사람’을 자처하며 국채 가격이 떨어지지 않게 억지로 떠받혀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엔화야 중앙은행에서 찍어내면 되는 것이니, 유동성(통화량)도 풀 겸, 국채 금리도 관리할 겸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다른 나라 중앙은행과의 역학관계입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긴축 정책이 나타나면서 엔화 자산을 버리고 떠나는 외국인들의 규모가 늘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이 잠정 집계한, 지난 9월 외국인이 순매도한 일본 채권 규모는 6조 3900억 엔으로 역대 최대에 달했습니다. 9~10월에 걸쳐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149엔에 다다랐습니다. 심리적 저항선 150엔 선을 눈앞에 뒀던 것입니다.
0.5% 선까지 물러난 의미 국채 금리 상한선을 0.5% 선까지 물렸다는 의미는 중앙은행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의미가 1차적으로 있습니다. 일본은행은 외국인이 파는 국채를 계속 넘겨받으면서 가격대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0.25%에서 0.5%로 한발 후퇴했으니, 어느 정도 부담은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장기채를 중심으로 한 시장 금리의 상승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10년물 국채의 금리가 상승하면 금융사 등의 투자자들은 기존 제로 수준의 일본 채권을 매각해 차익을 보려고 할 겁니다. 기존 10년물 채권을 내다 팔면서 비슷한 수준의 채권이 다시 시장에 많아지는 것입니다.
시장에 나온 채권 물량이 많아지면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채권의 가격이 하락하게 됩니다. 이는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금리는 올라간다는 원리'에 따라 곧장 수익률(금리) 상승으로 이어지죠. 그렇게 되면 금세 0.5% 금리 선에 다다르게 됩니다.(기존 10년물 국채 기준)
최근 일주일 기준 일본 국채 10년물 수익률 © 인베스팅닷컴
결과적으로 일본은행은 다시금 0.5% 선에서 한계점을 만나게 됩니다. 전선만 뒤로 물러났을 뿐 '금리 차에 따른' 외국인들의 매도 공격이 멈춘 게 아니니까요.
더불어 전체적으로 다른 채권의 금리도 올라가게 됩니다. 일본 정부의 채무 부담도 높아질 수밖에 없게 되겠죠. 새롭게 발행하는 국채에 지급 해야 하는 이자, 시장에서 새로 사온 국채에서 부담해야 하는 금리가 상승하고 이자 부담이 커집니다.
일례로 일본 정부의 빚 부담은 심각할 정도입니다. 지난 6월 기준 일본 재무성이 집계한 국채와 차입금, 정부단기증권을 합한 국가부채는 1255조 1932억 엔(약 1경 2270조 원)을 기록했습니다. 올해 3월 말부터 계산하더라도 13조 9000억 엔이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대치입니다. 국민 1인당 부채는 사상 처음으로 1000만 엔을 넘어섰습니다. 우리 돈으로 1인당 1억 원에 가까운 돈을 국민 한 사람 당 국가 빚으로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재무성은 2022년 말에는 전체 국가부채가 1411조 엔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금리를 낮게 유지한 채 엔화 가치와 국채금리 방어를 하면서 빚 부담이 커졌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적은 과연 외부에만 있을까 사실 금융위기 등 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 오면 엔화 가치가 오르곤 했습니다. 일본 경제가 그래도 탄탄한 축에 들어가고, 금리가 낮다고 해도 인플레이션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니다.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진 일본 경제의 역설일 수 있는데, '물가가 하락한다'라는 의미는 통화의 가치가 가만히 있어도 올라간다는 뜻이 됩니다. 게다가 엔화 수요가 몰리니 엔화 가치까지 올라갑니다. '엔화 자산 투자'는 여러모로 이점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전 위기와 2022년은 너무 다르다는 점입니다. (물론 2023년 이후 불황이 전개되고 경제 위기가 오면 달라질 수 있긴 합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가파르게 금리를 올리는 통에 달러가 절대 강세를 보이고 있고, 유럽은행(ECB)와 영란은행 등 마저도 금리를 올리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일본 엔화라고 해도 마냥 쥐고 있기에 불리합니다. 투자자들에겐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게 나은 선택이 될 테죠. 달러 가치가 오르고 있는 데다 금리 수준도 높아져 있기에 그렇습니다. 다른 통화와 비교해도 엔화 가치는 너무 크게 떨어졌습니다.
달러 대비 엔화(파란색)와 유로화(노란색) 환율. 엔화 가치가 배 이상 더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구글 파이낸스
일본은행과 일본 정부는 이런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본 이탈을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해왔던 '완화적 통화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던 원인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게 있으니 바로 '와타나베 부인'입니다. 와타나베 부인은 '남편이 벌어온 봉급 중 일부를 덜어 해외 자산에 투자하면서 수익을 올리는 주부'를 뜻합니다. 2007년께 글로벌 금융위기를 앞두고 국제 투자업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실제 투자 업계에 따르면 이같이 투자를 하는 주부는 소수라고 합니다. 다수는 일본 내 트레이더일 것이라는 추정입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0%대 엔화를 빌려다가 고금리 국가 통화 자산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엔 캐리 트레이드'입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되려면 엔화가 대체로 약세를 나타내야 합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면서 일본과 해외 각 국가 간 금리차가 확대되어야 하죠. 딱 2022년 이맘때와 비슷합니다. 일본 엔화는 9~10월까지 연초 대비 하락했습니다. 반면 미국 기준금리는 0.25%~ 4%대까지 상승했습니다.
실제 투자업계에서도 '엔 캐리 트레이드가 다시 나타나는 것 아니냐'라는 예상이 올해 내내 나왔습니다. 엔화 가치 하락도 외국인과 함께 일본 자국민의 해외 투자가 늘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해외 투자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게 된 지금 시점에서 굳이 ‘캐리 트레이드’를 구분 지을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적은 검은머리 일본인일 수도 일본이 1990년대 이후 제로금리 수준으로 정책을 가져가면서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나라가 됐습니다. 일본 내 저금리에 만족하지 못한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때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대체로 3차례 정도 일본 엔화가 중심이 돼 캐리 트레이드가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 위기가 진정되던 2000년 1월부터 2001년 7월까지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때 금리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습니다. 미국 연준도 닷컴 기업들을 중심으로 주식과 자산 시장 거품을 우려해 금리를 인상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2005년 2월부터 2007년 10월까지입니다. 미국 연준이 지속적으로 금리 인상을 하면서 미국과 일본 간 단기 금리 차이가 확대되던 때였습니다. 엔화 시세가 떨어지면서 엔화 선물 매도가 급증했습니다.
세 번째가 아베 신조 2기 내각 출범 직후였던 2013년이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디플레이션 타파를 외치며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정책을 펼칩니다. 시중의 국채를 매입하면서 엔화를 풀고 시장금리를 떨어뜨렸던 것입니다. 엔화 가치 하락을 통해 수출 기업들의 실적 개선도 도모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봤을 때, 2022년 3월부터 11월까지도 충분히 엔 캐리 트레이드가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150엔대까지 떨어졌고, 미국과의 금리 격차는 3~4%포인트 이상 난 이유가 큽니다.
일본은행과 일본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본 유출을 우려했지만, 어쩌면 '자국민의 해외 투자'가 더 컸을 지도 모릅니다. 특히 미국 달러화 자산을 사려고 하는 수요 중 상당 부분이 일본 내 자본일 수 있습니다. '엔화 가치'의 적은 외부에 있었겠지만 내부에도 '검은머리 일본인'의 형태로 있었을 수도 있단 얘기입니다. 일본 국채를 착실히 사주는 일본 내 투자자들마저 엔화 자산을 버리는 형국이 되다 보니, 일본은행과 일본 정부도 방침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요. 믿었던 언덕마저 무너졌다는 뜻이죠.
|
파생상품 엔캐리 트레이드 |
기초자산 엔캐리 트레이드 |
투자 대상 |
*통화선물 등 파생상품 : |
*증권 등 현물 : 투자 대상국 증권 매입 |
운용 형태 |
*해외투자자의 통화선물거래 : |
*해외 투자자의 차입 거래:일본은행의 엔화 해외대출, 본지점간 대출 |
엔캐리 트레이드의 재개 가능성 점검. [BOK] 해외경제 포커스, 2014(26) © 김정규. (2014).
미국 금리정책만 바라보는 일본 경제 작금의 현실은 디플레이션에 시달리는 일본 경제의 처연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도, 일본은행도 다른 나라처럼 금리를 올리고 자국 자산의 가치를 방어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질적이고 만연화된 디플레이션 상황이 문제였죠. 게다가 우리 돈으로 '경'을 칠 만한 정부 부채도 고민이 됐을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달리 쓸 방도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금리 인상을 추가로 하기 힘들고, 마냥 엔화를 풀면서 부채를 늘릴 수도 없습니다. 하루속히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멈춰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1980년대 세계 최강 경제대국의 자리를 노리다가, 이제는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천수답' 일본 경제가 된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참조
투자자 유의사항: 이 콘텐츠에 게재된 내용들은 작성자의 의견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으며,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 없이 작성되었음을 확인합니다. 해당 글은 필자가 습득한 사실에 기초하여 작성하였으나, 그 정확성이나 완전성을 보장할 수 없으므로 참고자료로만 활용하시기 바라며, 투자 시 투자자 자신의 판단과 책임 하에 최종 결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해당 글은 어떠한 경우에도 투자자의 투자 결과에 대한 법적 책임소재의 증빙자료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