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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금값은 오른다

SUMMARY

- 금리인상기임에도 불구하고 불안심리가 반영되어 금값 상승

- 러시아와 중국은 달러 중심 금융 체계에 도전하며 금 확보 중

- 달러의 위상이 떨어질수록 재조명 받는 금의 가치

 

© Pixabay

 

금값이 요새 많이 올랐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는 변한 게 없는데, 금값은 이달 역대 최고점(온스 당 2,000달러 돌파)에 근접했습니다. 최근 10년 사이를 비교해도 요즘 금값은 ‘미쳤다’ 싶은 정도로 강세를 띠는 중입니다. 보통 연준이 금리를 높이면 금값은 떨어지는데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이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커진 불안심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기준금리는 여전히 높지만, 위기가 올 것 같은 불안심리가 금값 상승을 부추겼다는 얘기입니다. 인플레이션 헤지(위험회피) 수단으로서의 ‘금’보다 안전자산으로서의 ‘금’의 역할이 더 강조된 듯합니다.

조금 더 깊게 말하자면, 달러 중심의 금융 시스템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때만큼이나 불안하다는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달러에 대한 신뢰 하락과 더불어 금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아질 수 있죠. 여기에 힘입어 탈(脫)달러 현상도 여기저기 목격되고 있습니다. 달러 대신 결제하기 위한 대안 수단이 여럿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훌쩍 오른 금값 국제 금 가격 추이를 가장 손쉽게 알아볼 수 있는 지표가 뉴욕상업거래소(CME)와 같은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 선물’ 가격입니다. 금에는 ‘트로이온스(약 31g)’ 단위를 붙이는데, 일반적으로 ‘온스’로 통칭하기도 합니다.

 

국제 금 선물 가격 온스당 가격 추이 © goldprice.org>

 

4월 중순 금 선물 가격이 온스당 2,050달러를 뚫었습니다.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4월 말 들어 1990~2000달러를 오가고 있지만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1800달러 밑선이었던 연초 대비 11%가량 올랐습니다. 올 초 금에 투자했다면 코인과 주식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국제 금값이 오르면서 실물 금 거래도 활발해졌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3월 10일 ~ 4월 10일까지 거래된 실적이 있는 계좌 수는 1만 9,958개로 직전 한 달(2월 7일 ~ 3월 9일)보다 53.3%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거래량과 거래 대금도 각각 59.7%, 71.2% 증가했습니다.

최근 금값은 왜 이렇게 올랐을까요? 일단 금리와는 무관해 보입니다. 연준의 기준금리가 2023년 4월 기준 5%로 2001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금값은 계속 올랐습니다. 금리가 제로 수준이었던 2020년 때 금값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달러 가격도 상대적으로 강세인데 금값은 더 강세를 띱니다. 보통 달러 환율이 올라가면 금값이 떨어지던 예전과 사뭇 다릅니다.

 

계속된 불안심리가 금값 자극 이때 대입할 수 있는 요소가 바로 ‘안전자산’으로서의 금입니다. 2022년 말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있어 ‘베이비스텝(0.25%포인트 금리인상)을 하겠다’고 시사한 후 조금씩 떨어지던 금값은 2023년 3월 급반등했습니다. 이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전반적인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과 관계 깊습니다.

 

|금과 금리의 관계

보통 금은 금리가 상승하는 시기, 다시 말하면 통화량이 감소하는 시기에 가격이 내려갑니다.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많이 쓰이다 보니 통화 가치가 상승하면 금 가격은 (추세적으로) 떨어집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한창 올리던 2022년 동안에는 금 가격은 약세를 나타냈습니다. 2022년 11월에는 온스당 금 선물 가격이 1,650달러까지 하락했습니다.

 

2년 선도 연준 기준금리와 금값 추이 © CME그룹 홈페이지

 

실리콘밸리은행에 이어 미국 내 중소은행들에 대한 불안도 커지고 있습니다. 불안감은 예금 잔액의 감소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도 불안한 예금자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예금 인출 요청을 감당하지 못했던 부분이 컸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직후 위기설에 휩싸였던 찰스 슈와브의 수신 잔액은 감소했습니다. 이 은행의 1분기 말 기준 예금 잔액은 3,260억 달러로 전분기 대비 11%, 전년 동기 대비 30% 줄었습니다. 자이언스 뱅코프도 예금이 전분기 대비 3%, 전년 동기 대비 16% 감소했습니다. 은행에서 쓸만한 유동성이 꽤 빠른 속도로 빠져나간다는 의미입니다. 또 다른 중소은행 퍼스트리퍼블릭에 대한 걱정도 커지고 있습니다. WSJ에서는 ‘패닉’이라는 제목까지 써가며 퍼스트리퍼블릭에 대한 우려를 더했습니다.

 

미국 내 중소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의 예금 잔고에서 1000억 달러가 빠져나가 ‘패닉’에 빠졌다는 내용의 WSJ 기사 캡처 화면

 

이들 중소은행들이 불안해진 배경으로 2020~20223월까지 이어진 저금리, 그 이후부터 급격하게 진행된 금리인상이 꼽힙니다. 이젠 상식이 됐죠. 그래도 요약하자면, 2022년 3월 이후 금리인상이 진행되면서 장기채 가격이 급락했고(장기채 수익률 상승) 장기 대출 포트폴리오에서 손실을 보게 됐습니다. 장부상의 손실이라고 해도 은행들에는 뼈아픕니다.

게다가 금리인상은 예금자에게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을 만듭니다. 대출에 쓸 자금을 도입하기 위해 더 큰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는 얘기죠. 자금 풀(pool)이 넓지 않은 중소은행에는 부담이 큽니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거나 현 상태를 유지해 주는 게 필요합니다. 시장에 달러도 더 풀어야 할 것이고요.

 

시험대에 오를 달러 통화시스템 문제는 미국 내 경기 과열 상황이 여전하다는 점입니다. 물가는 6%로 연준의 목표치를 훌쩍 뛰어넘었고 고용시장은 뜨겁습니다. 금리인상 외에는 이를 식힐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중소은행들이 겪을 불확실성은 클 수밖에요. 결과적으로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수요는 더 높아집니다.

금융 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금리인상 기조를 바꾼다면 인플레이션을 다시금 자극할 수 있습니다. 경기를 죽여가며 애써 금리를 높인 보람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물가는 높아지고, 금과 같은 현물의 가격은 계속해서 올라갑니다. 금값 추이 하나만 놓고 봐도, 연준이 얼마나 곤경에 빠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금값은 오를 가능성이 더 크다는 뜻입니다.

만약 금융위기가 온다면 현 달러 중심의 금융 체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달러가 아닌 새로운 대안을 찾게 되는 것이죠. 많은 경제전문가는 부정하고 있지만 ‘금본위제’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금에 대한 평가 가치가 높아질 수 있게 됩니다.

불안할수록 금에 대한 선호는 왜 커질까요? 본디 금은 국제 무역에 있어 결제 수단으로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각 나라에서야 자국 정부가 보증한 화폐를 쓰면 됐지만, 국가 간 무역은 금 혹은 금과 태환할 수 있는 국제 화폐가 통용됐습니다. 지금도 금은 화폐처럼 쓰일 수 있습니다.

다만 금은 채굴량 증가분이 한정적이라는 한계를 갖습니다. 인터넷 등으로 돈이 오가는 지금 시대와도 맞지 않습니다. 경제 성장을 하면 그만큼의 화폐가 필요로 한데, 금은 그 수급이 어렵습니다. 19세기 말에 전 세계적인 디플레이션이 왔던 것도, 급성장하는 세계 경제 규모를 금의 수급이 따라가지 못한 이유가 컸습니다. 그리고 2차세계대전 이후 대안처럼 등장했던 게 달러였던 것이죠(브레턴우즈 체제).

이 달러 중심의 국제 결제 체제는 ‘1971년 금 태환 선언 중지’로 1차적으로 타격을 입었고,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등으로 또 타격을 받았습니다. 미국 정부의 천문학적 규모의 부채도 달러 중심 체계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금융위기가 다시 온다면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못지 않게 달러 금융 체계는 타격을 받을 것입니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 규모. 단위 : 100만 달러.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 부채 규모가 30조 달러를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의 도전, 그 중심에 바뀐 세계정세도 달러의 위상을 흔들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가 러시아와 중국 등의 도전을 받으면서 덩달아 달러도 위협받고 있는 것이죠. 러시아와 중국은 달러를 대신할 새로운 금융 결제 시스템을 조성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부지런히 금을 사들이고 있습니다. 최근 서방 국가들의 대(對)러시아 제재와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이를 부추기는 상황입니다.

 

러시아 금 보유량 추이(톤). © 트레이딩 이코노믹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경제 및 금융 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독자적이면서 안정적인 국제 결제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러시아에서 생산한 원유를 팔고 그 대금을 달러가 아닌 다른 통화로 받고, 대금 치를 일이 있으면 달러 대신 루블화를 지급하는 것이죠.

루블화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는 2022년 3월 28일부터 그해 6월 30일까지 금 1g에 5000루블 가격으로 금을 무제한 매입했습니다. 루블화 가치를 금에 고정하는 동시에 시중 금까지 확보하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2022년 12월 들어서는 금본위제를 도입해 독자적인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미국과 양강구도를 형성한 중국은 2015년 이후 금의 매수 규모를 늘렸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세계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과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미국과의 본격적인 대결을 앞두고 금부터 확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하면서 ‘포스트 달러’를 준비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중국 인민은행 금 보유량 추이(톤) © 트레이딩이코노믹스

 

러시아와 중국의 금 매입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입니다. 러시아는 2010년대 중반부터 미 국채를 매각하고 금을 매입했고, 중국은 매해 막대한 양의 금을 매집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총 금 보유량은 민간 보유량까지 합해 2만 톤이 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참고로 중국 인민은행의 공식적인 금 보유량은 2023년 4월 기준 2,068톤으로 미국 보유량(약 8,000톤)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머지않아 2위 독일(3,359톤)도 따라잡을 것으로 보입니다.

 

포스트달러에도 금은 귀하신 몸 러시아 정부는 금에 기반한 디지털 자산과 코인 활용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행보에 나섰습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 디지털금융자산(DFA)을 발행키로 했고, 4개 기업을 지정했습니다.

이어 러시아는 미국과 적국이라고 할 수 있는 이란과 공동으로 암호화폐 개발을 추진 중입니다. 코인의 가치를 금에 고정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중국, 인도) 회원국이 준비하는 ‘브릭스 통화’가 금을 기반으로 발행되는 것도 최근 들어 논의되고 있습니다. 브릭스 국가들을 위한 통화 창설은 이미 2018년 공식화됐습니다. 이 통화도 그 중심은 금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암호화폐 기술이 금과 결합해 또 다른 형태의 금본위제가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죠. 금을 스테이블코인 삼아 새로운 코인을 발행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이들 프로젝트가 달러를 대체할 가능성은 극히 낮습니다. 미국 경제가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한 달러는 전 세계 경제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래도 예전보다 달러의 위상이 떨어지고 그럴수록 금의 가치가 재조명 받는 것은 현실인 것 같습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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