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 좀 쉽게 설명해볼게요
ABS 발행 목적과 과정을 알면 이해하기 쉬워요
대출 이자를 결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시간'입니다. 얼마만큼 빌려주냐, 혹은 빌려가냐에 따라 붙게되는 이자의 규모가 달라집니다. 만기가 길다는 얘기는 돈을 빌려준 사람 입장에서는 '떼일 리스크'가 높다는 뜻으로 통칭할 수 있습니다. 또다른 의미로는 그만큼 그 돈이 '대출자산'으로 묶여 쓸 수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시간에 대한 비용이 대출 이자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 레고랜드
만약 대주(돈을 빌려준 사람)가 급전이 필요하다면 어떨까요? 당장 차주(돈을 빌려간 사람)를 독촉해 돈을 되돌려 받거나 대출채권을 매각할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얻을 이자를 포기하는 대신 '바로 쓸'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죠.
이런 대주의 상황과 심리를 활용한 금융상품도 여럿 있습니다. 이중 하나가 기업어음(CP)의 유통입니다. 기업이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본인들의 매출채권 등을 기초로 어음을 발행하면, 금융사에서는 이를 할인해(원가 이하로) 매입하는 것이죠. 기업 입장에서는 다소 손해를 보는 것이겠지만, 써야할 현금을 당장 확보할 수 있습니다. 금융사는 조금 싸게 사서 이문을 붙여 파니 이득입니다. 비슷하게는 ABS를 발행하는 것도 있습니다.
|ABS란?
이처럼 대출자산 혹은 당장 현금으로 쓸 수 없는 자산을 현금화하는 과정을 '유동화'라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시간 리스크에 따른 이득'을 포기하고 현금을 빠른 시간내 회수하기 위해 사용합니다.
이런 현금 유동화는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에도 적용됩니다. PF는 일종의 장기 부동산 개발사업입니다. 금융사들은 완공 이후의 수익을 기대하고 대출을 내줍니다. 다만 수익을 내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리고 경기 변화에 따라 원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차주에게 당장 돈을 갚으라고 독촉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완공을 해야 뭐라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오는 게 또 '유동화'입니다. 빨리 현금을 마련하고 싶은 대주의 수요를 부응하는 것입니다.
이때 대주는 '돈을 빌려주고 원리금을 상환받을 수 있는 권리'를 증권화할 수 있습니다. 아직 덜 완공됐다고 해도 부동산 등의 담보물을 기반으로 만들고 판매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증권을 '자산담보부증권(ABS, Asset Backed Securities)라고 합니다.
ABS의 기반이 되는 담보물은 앞서 언급한 PF의 부동산 자산이 될 수 있고, 유가증권이 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받을 수 있는 약속된 수익이 담보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발행된 ABS를 누가 살까요? 수익만 두둑히 주면 그깟 몇년 정도는 기다리고 참을 수 있는 투자자들입니다.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기대하는 연기금,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입니다.
이들 기관 투자자들은 장기간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고, 대주는 바로 현금화할 수 있어 좋습니다. 만기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죠. 서로의 수요와 필요에 부합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게 바로 ABS입니다.
게다가 ABS는 회사채와 달리 차주가 채무 불이행 상태가 되어도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담보가 되는 자산이 남아 있어서입니다. 절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차주의 부도에도) 원금 회수가 될 수 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도 ABS로 설명할 수 있어요
앞선 ABS의 설명은 레고랜드 사태를 설명하기 위한 장황한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입 뻥긋'으로 시작한 이 사태를 이해하려면, ABS가 어떻게 발행되는지, 부동산PF의 사업화와 대금 회수가 어떻게 되는지, 채권 시장은 악재에 날뛰듯 민감한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첫 출발점은 강원도가 춘천에 있는 중도라는 섬에 레고랜드라는 테마파크를 만들기로 한 데에 있습니다. (레고랜드 본사와의 계약 등은 생략할게요.) 강원도는 중도 개발을 강원중도개발공사에 맡깁니다. 중도 개발을 전문적으로 하기 위한 회사이자 레고랜드 시공을 위한 시행사입니다. 아래부터는 강원중도개발공사를 시행사라고 할게요.
레고랜드 자금 흐름도. ©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한국 전력으로 튀는 '김진태 사태'의 불똥, 시사IN 2022년 12월 6일자 칼럼
(1)시행사가 중도 개발을 하려면 시공사를 선정하고 공사비를 줘야 합니다. 이 공사비는 강원도의 예산을 별도로 빼서 마련하는 게 아니라 'KIS춘천개발유동화'라는 특수목적법인(SPC)이자 PF대출자에게 빌립니다. 자금 규모가 2050억원에 달합니다. 동부건설과 현대건설은 시공사가 레고랜드 건설에 쓸 건축비입니다.
여기서 강원도는 무슨 역할을 하냐, 바로 채무 보증입니다. 2050억원 자금이 채무 불이행 상태가 되면 강원도가 나서 돈을 갚아줄 것이라고 보증한 것입니다. 지방세를 걷을 수 있고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다고 밝혔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높은 신용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2~3)PF대출자는 또다른 SPC인 '아이원제일차'(아이원)에 대출채권을 양도합니다. 아이원제일차는 '강원도가 보증하고 강원중도개발공사가 갚겠다고 한 약속'인 PF대출권을 담보로 기업어음을 발행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CP입니다.
이 CP는 그냥 발행한 게 아니라 앞서 언급한 PF대출권을 담보로 잡았기에 '자산담보부기업어음' 혹은 '자산담보부CP'가 됩니다. Asset Backed CP가 되겠네요.
이 ABCP는 부동산PF 대출채권을 담보로 하고 있어 PF-ABCP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CP를 채권시장에 있는 투자자들한테 팔면 당장 현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레고랜드가 완공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4~7)실제 신한투자증권, 미래에셋, 한국투자 등 10개 증권사와 1개 운용사가 이 CP를 사들입니다. 이 증권의 담보인 PF대출(강원도가 보증하고 강원중도개발공사가 갚겠다고 한 대출 자산)이 강원도의 지급보증을 받았기에 사실상 '지방채'와 같다고 여긴 것입니다. 투자자들은 혹여 레고랜드 사업이 잘못돼 시행사가 부도를 낸다고 해도 강원도가 나서서 갚아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덕분에 아이원이 발행한 ABCP의 신용등급은 A1인 우량채로 매각될 수 있었습니다.
|바뀐 시장 상황, 발 뺀 강원도
2022년 4월 레고랜드가 개장했습니다. 연 200만명이 몰리며 춘천의 명물이라고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저조했습니다. 값비싼 입장료에 비해 아직 볼거리가 적다라는 평가가 많았고, 중도 개발 도중에 고대 유물이 발견되면서 공사 비용마저 크게 늘었습니다.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제대로 빚을 갚기 힘든 지경이 됩니다.
지난 6월 새 강원도지사로 당선된 김진태 지사는 지난 9월말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신청을 법원에 제출합니다.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진 빚을 강원도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입니다. 지급보증 약속을 번복한 것이죠.
아이원이 발행한 ABCP는 신용등급이 A1에서 C등급으로 추락합니다. 최종 부도 처리가 되면서 투자자들은 원금마저 '바이든'(날리면)하게 됐습니다. 강원도의 지급보증이 없었다면 애초에 돈을 넣지 않았을 투자자들입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
레고랜드 조성을 위해 발행한 채권이 부도가 나자 채권시장은 난리가 납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채권 발행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사실상의 부도'를 내자 채권 시장 내 불확실성이 더 커졌습니다. 눈 뜨고 돈 떼이는 상황을 지켜보게 된 다른 채권 투자자들이 채권 매입에 소극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울고 싶을 때 뺨 때린 격이라고 할까요,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은 더 어렵게 됐습니다. 채권 발행 규모가 줄거나 취소되면서 기업들은 비명을 지르게 됩니다. 돈 구하기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기업들이 돈을 구하기 힘들어졌다고 아우성치자 금융당국도 움직입니다.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을 사주는 플레이어 역할(채권 수요 창출)을 하면서 채권 시장 안정 시도에 나선 것입니다. 그 규모가 50조원 이상입니다.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결단인지 알 수 없지만, 섣부른 강원도의 결정으로 50조원 이상의 돈이 채권 시장에 투입되게 됐습니다.
(후에 2050억원을 갚겠다고 강원도는 또 번복합니다. 어차피 갚을 돈이었는데 괜한 헤프닝이었죠.)
|왜 채권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정치인 출신 지자체장의 결정에 채권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채권 시장의 특성에 있습니다. 차주의 신용도에 따라 원금이 제로로 곤두박질 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정적으로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전제는 차주의 신용도가 안심할 만큼 높을 때만 통합니다.
따라서 차주의 신용도를 의심할 만한 작은 악재에도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부도를 알리는 조짐'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때 받을 수 있는가'라는 신뢰의 문제가 깔린 것이죠.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아마도 '자치단체와 관련된 기업이라도 부실화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는 과단성 있는 리더의 모습을 보이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혹은 전임 지사의 실책을 크게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 '채무보증 약속'을 뒤집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태는 예기치 못하게 흘렀습니다. 때마침 우리나라 회사채 시장이 살얼음판처럼 불안할 때였습니다. 김 지사의 결정은 시작은 잔잔했을지 몰라도 그 파장은 엄청나게 컸습니다. 본인 위신은 물론 지방자치단체에 갖는 신용에 적지 않은 손상을 가하게 됐습니다.
참고
-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한국전력으로 튀는 '김진태 사태'의 불똥. 시사IN 2022년 12월 6일자
- 자산유동화를 통한 자금조달, 은행연합회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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