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 가난한 사람을 어떻게 착취하는가
Summary
- 그라민뱅크의 성공, 그 이면에는 여성 가장들에 대한 겁박이 존재
- 생각 외로 좋은 수익원이 될 수 있는 가난한 사람들
- 최근 경기 악화에 충격을 받는 사람들은 저신용자
- 지금의 위기, 약자들에 대한 약탈적 금융이 배경일 수도
타워팰리스 © 위키피디아
2017년 한 경제 뉴스가 이목을 끌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돈 꽤나 있다’라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타워팰리스와 청년·1인 가구 비율이 높은 고시원 간 ‘면적 당 월세’ 비교였습니다. 이때 통계를 보면 타워팰리스 3.3㎡당 월세는 11만 6000원이고 고시원은 13만 6000원이었습니다.
물론 타워팰리스 입주민이 내는 월세액 규모와 관리비 등을 따져봤을 때 절대 액수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단위 면적당 비용을 기준으로 놓고 봤을 때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부담을 안고 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재미난 점은 고시원 혹은 쪽방촌 입주민들로부터 월세를 받는 이들이 바로 타워팰리스에 사는 류의 사람들이란 점입니다. 2019년 5월 기사에서 보면 쪽방의 주인들이 이른바 ‘큰손’들이라고 합니다. 월 소득 50만 원도 안 되는 사람들이 내는 월세가 큰손들에게 흘러들어가는 것이죠.
이 같은 차이는 부자는 더 부유하게, 빈자(貧者)는 더욱 가난하게 만듭니다. 국가와 사회는 이 격차를 줄여주기 위한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상속세와 같은 세금이 그 역할을 하겠죠.
하지만 아무리 국가가 나서서 격차를 줄여준다고 해도 구조는 바뀌지 않습니다. 특히 금융에 있어서는 더 두드러집니다. 가난하면서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은 비싼 이자를 내면서 돈을 빌려야 하고, 고소득 고신용자가 낮은 이자를 내고 대출을 받는 것을 보면 말이죠. 지금과 같은 금리 상승기에 이런 경향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빈자들을 위한 실험, 그라민뱅크 ‘가난한 자는 게으르다.’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보며 흔히 했던 생각입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팽배해진 신자유주의적 사조는 ‘무조건적인 현금성 복지’를 지양하게 만듭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도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집권했던 시기에는 지배적인 복지 이념이 됐고요.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쥐여줘서는 안되고, 그들이 스스로 일하고 자립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마이크로크레딧’은 특히 환영을 받았습니다. 마이크로크레딧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소액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출해 주는 금융상품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창업 자금을 대출해 주고, 이들에게 노동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입니다. 한국에서는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 출범한 ‘미소금융’이 이 같은 맥락과 취지에 부합하는 사회복지 서비스였습니다.
때마침 눈에 띄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무함마드 유누스의 ‘그라민뱅크’입니다. 마이크로 대출의 원조 격인 그라민뱅크는 방글라데시 빈민층에 소액대출을 해주면서 그들의 자활을 도왔습니다.
그라민뱅크의 골자는 이렇습니다. ‘살인적인 사금융 금리보다 훨씬 싼 돈을 담보 없이 신용대출 해준다.’ ‘가장은 이를 자본금 삼아 장사를 시작하고, 돈을 벌면서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된다.’ 그라민뱅크는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낚싯대를 빌려줘라’라는 의도에 맞게 신자유주의자들이 숭앙하는 ‘노동과 복지의 결합’ 형태가 됩니다.
특히 주목받았던 점은 연체율입니다. 그라민뱅크의 연체율은 2% 미만으로 우리나라 시중은행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신용대출이란 점을 고려하면 정말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상품이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줬습니다. 자칭 흙수저 출신으로 성공 신화를 이뤘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주변인들의 입맛에 딱 맞았습니다.
전형적인 ‘약강강약’ 금융 노벨상까지 받을 정도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그라민뱅크였지만, 이면은 실망스러웠습니다. 바로 그 사회에서 가장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주된 타깃이 돼 채무 독촉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저개발국가 내 상당수 가난한 가정의 가장이 ‘엄마’로 대변되는 여성이었다는 점을 보면 말이죠.
이는 2015년 11월 한국에도 출간된 바 있는 <가난을 팝니다(라미아 카림 저, 박소현·한형식 해제)>에서 잘 드러납니다. 저자인 라미아 카림은 그라민뱅크와 같은 마이크로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빈민 여성들의 현실을 차분히 전합니다. 이들 기관이 돈을 빌려준 여성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꽤 충격적입니다.
책에 따르면 이들 기관은 여성들이 돈을 못 갚게 될 때 ‘망신주기’와 ‘겁박’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전근대적 이념인 ‘정조’를 지키지 못했다고 해서 명예살인까지 자행되는 그 사회에서 ‘망신주기’는 여성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습니다. 가정과 마을 공동체의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빈곤여성들은 더 큰 금리를 물고 이들 기관의 돈부터 갚아야 합니다. 연체율 2% 미만은 어떻게 보면 ‘허상’인 셈입니다.
더욱이 이들 여성은 가장으로서 아이들을 부양합니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도망갈 염려가 거의 없는’ 이들입니다. 마이크로금융기관은 철저히 이를 이용했습니다.
비단 마이크로금융기관뿐일까요? 이들에게 월세를 받는 집주인들도 여성 가장들은 손쉬운 대상이었을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사회의 가장 약한 자들의 고혈이 ‘있는 자’들의 부를 불리는 요소가 된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다를까...‘아가씨 대출’ ‘선진국’ 한국이라고 해서 떳떳하지만은 않습니다. 이곳에서도 사회적 약자, 다시 말해 ‘망신주기’가 가능한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대출 상품이 횡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떼일 염려는 적으면서 이자는 높게 받을 수 있는 것이죠.
2012년 모 경제지에서는 <KB지주 ’아가씨 대출‘ 아깝네>라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부실대출로 말썽을 빚었던 J 저축은행을 인수한 KB저축은행이 ‘마이킹 대출’을 파산재단에 넘긴 것을 보고 쓴 기사입니다. 금리가 높고 부실률이 낮은 우량 대출 자산을 KB저축은행이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실제 기사 화면 캡처
아가씨 대출이 무엇일까요? 현실문화에서 출간한 <레이디크레딧(김주희 저)>에 따르면, 유흥업소 업주들에게 실행한 대출이 아가씨 대출이었습니다. 주된 채무자는 그곳에서 일하는 접대부 등 여성이었습니다.
마이킹이란 말 또한 일본어에서 유래됐는데, 성매매 업소에서 신용을 담보로 선불금을 빌려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부채가 여성을 옭아매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전까지는 업주와 전주, 그리고 종업원 간 암암리에 유통되던 대출이 한국 금융의 선진화와 함께 금융화됐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금융사들이 전주이자 물주가 돼 직접 돈을 빌려준 것이죠. J 저축은행뿐만 아니라 일부 대부 업체들까지 나서 대출 상품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이 대출 상품에서도 ‘망신주기’와 ‘겁박’ 등의 채무 독촉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여성들에게 ‘폭로’라는 겁박을 무기로 썼던 것입니다.
굳이 아가씨 대출까지 가지 않더라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대출은 채권 추심 면에서 한결 수월했다고 합니다. 2000년대 중후반 케이블 TV 채널을 보면 나왔던 ‘여성전용 대부 상품’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2000년대 초반 영화 <나쁜 남자(2001년, 김기덕 감독)>에서도 여주인공을 옭아매는 데 교묘한 대출 사기가 동원됐다는 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 영화 ‘나쁜남자’ 포스터
가난한 사람일수록 수익률은 높다 ‘신용도가 낮을수록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한다.’ 돈을 융통하는 금융의 기본 원리입니다. 신용도가 낮다는 것은 ‘떼일 수 있다’라는 리스크를 의미하고, 그에 대한 대책으로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것이죠.
실제 은행연합회 홈페이지 등을 들어가 보면 저신용자일수록 고금리 대출을 받습니다. 은행권에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카드론이나 캐피털 등 제2금융권 대출을 써야 하는 상황까지 밀리게 됩니다. 신용점수는 깎이고 높은 금리를 물면서 비용을 더 지출하는 구조로 밖에 갈 수 없습니다. 애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게 바로 금융시장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경기가 급속히 안 좋아지는 요즘과 같은 때입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3~2021년 평균 차주 신용도별 연체율’을 보면 중저신용이자 가계대출 연체율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가파르게 오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출 취급 1년 경과 후 연체율이 2.4%, 2년 경과 시 3.3%, 3년 경과 시 3.5%로 높아진 것입니다. 반면 고신용이자 가계대출은 0.1~0.3% 정도로 크게 늘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양극화는 소득과 자산의 차이로 벌어집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가구 평균 순자산은 2017년 대비 233만 원 감소했지만, 상위 20%인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7115만 원 증가했습니다. 경기 침체를 동일하게 겪었지만 각각이 받는 충격은 서로 달랐던 것입니다.
약자에 대한 금융착취, 부실로 이어진다 부채는 자본력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차별적으로 해악을 끼칩니다. 금융이라는 구조 속에서 채권자는 지속적인 수익을 누리고, 채무자는 빚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됩니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이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듭니다.
설령 자본주의가 아름다워진다고 해도 이런 구조는 바뀌기 힘듭니다. 다만 약자에게 불리한 이 게임에서 정부가 나서준다면 ‘어느 정도’ 개선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른바 ‘복지’로 말입니다. 부의 재분배를 통해 간극을 줄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자원의 분배와 조정이라는 측면에서 ‘정치’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특히 저성장 시대가 되면 정치에 기대하는 바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자본을 가진 강자는 더 많은 재화를 획득하기 위해 약자를 더 억압하고 이용하게 됩니다. 금융이란 탈을 쓰고 말이죠.
이런 이유로 금융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탐욕이 무한하게 뻗어나가지 못하도록 제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은 은행들이 무분별하게 남발한 파생상품에 있지만, 그 배경에는 은행 주택담보대출자산의 부실이 있습니다. 은행 대출이 부실화된 데에는 저신용자들의 파산이 한몫합니다.
은행들은 왜 중·저신용자들에게 무리한 주택 담보대출을 내줬을까요? 이들의 신용도를 근거로 더 많은 이자, 곧 수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피할 수 없는 금융 리스크보다 당장의 수익을 더 노렸던 것입니다. 이는 은행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어떨까요? 수많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금리 상승과 경기 불황에 신음하고 있지만, 은행들은 역대 최대 이익을 거두고 있다는 것. 이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요?
참조
- 왜 고시원은 타워팰리스보다 비싼가?
- 0.5평 쪽방촌 집주인은 대한민국 0.1% 타워팰리스 주민
- 쪽방촌 뒤엔… 큰손 건물주의 ‘빈곤 비즈니스’
- ‘레이디크레딧’ 현실문화, 김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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