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하락하는 환율, 환헤지가 필요할 때
|환율과 우리 경제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 조절 기대감이 확산되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것이 원화 강세의 요인으로 보입니다. 물론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원달러 환율은 이제 하락하는 추세로 보입니다.
언제나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글로벌 경제에 위기가 상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위기가 발생하면 그 충격이 글로벌 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며칠 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팬데믹 전·후, 한국 수출 주력품목 경쟁력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5위였던 우리나라의 13대 주력품목의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2021년 다시 4위로 올랐습니다.
당연히 좋아해야 할 일이지만, 이처럼 우리나라 경제의 높은 대외 의존도와 환율 변동성의 확대는 우리 경제를 외부 위기에 더욱 민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평상시 매우 건실한 경제구조지만, 해외경제에서 충격이 발생하면 다른 나라보다 더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대외 의존도가 높고 자본시장 개방도가 높아 경제 펀더멘털과 무관하게 해외경제 충격으로 국내 경제가 함께 불안해지기 때문이죠.
많은 경험에서 알 수 있듯, 해외경제의 충격은 주로 환율이란 경로를 타고 국내 경제에 충격을 줍니다. 특히 수익성이 낮거나 기업 규모가 작아 환율 변동 위험을 흡수하기 어려운 중소 수출기업이 환율 변동에 더욱 취약합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환율 변동으로 인한 기업 가치의 변동성을 기업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 스스로 효율적인 환헤지를 하기 힘든 시장 구조라면 정부가 시장의 자생력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환헤지와 환노출
환-헤지(hedge)는 이름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는 것을 뜻합니다.
기업에서는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현재의 환율로 수출이나 수입, 투자에 따른 거래액을 고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출 기업이 현재 원달러 환율로 환헤지 계약을 맺는다면, 향후 달러 대비 원화 가격이 변하더라도 원화 기준의 수출 계약 금액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지요.
이러한 환헤지는 주로 선물환과 옵션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선물환 거래는 대금 결제 시 적용되는 환율을 미리 고정해 두고 결제 시점의 환율에 상관없이 거래하여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옵션은 결제 시점에 적용되는 환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이지요.
한편, '서학 개미'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개인들의 해외투자가 늘면서 이제 환율 변동의 위험은 수출 기업뿐만 아니라 해외통화로 운용되는 주식, 펀드 등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환율에 따른 펀드 수익률에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환율 변화에 연동한 해외펀드는 수익률이 높았지만, 환율을 고정한 해외펀드는 달러 강세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해 수익률에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것이지요.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는 환율 변동 위험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환헤지형과 환노출형으로 구분됩니다. 환헤지형은 환율을 고정해 놓고 투자자산의 가격 변동에만 수익률이 연동되지요. 글자 그대로 환율 변동의 위험에서 벗어난 것이지요. 반면 환노출형은 투자자산의 가격 변화와 함께 환율 변화도 펀드 수익률에 반영되는 방식입니다.
펀드 이름에 'H'가 있으면 환헤지형, 'UH'가 있으면 환노출형입니다. ETF의 경우에도 환헤지형에는 '(H)'가 붙어있습니다.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ETF에 아무런 표시가 없으면 환노출형입니다.
그렇다면 환헤지형과 환노출형 중 어떤 것이 유리할까요?
달러가 강세일 때는 당연히 환노출형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상품 수익에 환차익까지 함께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반면 환율이 하락할 때는 환헤지 상품에 투자해야 환율 변동으로 인한 위험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달러 강세로 최근까지는 환노출형 상품의 수익률이 좋았습니다. 같은 펀드인데도 환헤지냐 환노출이냐에 따라 수익률은 10%포인트 이상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ETF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초지수가 같아도 환헤지 여부에 따라 수익률이 크게 달랐습니다.
다만 환헤지형 상품을 이용하려면 추가 비용이 듭니다. 자산운용사들은 보통 파생상품을 활용해 환율을 헤지하기 때문이지요.
달러 선물 등 파생상품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증거금과 수수료가 필요합니다. 또 거래 상대방에게 수수료도 지급해야 합니다. 환헤지형 상품에는 총보수 외에도 이런 헤지 비용이 추가됩니다. 금액이 크지 않아도 장기간 누적되면 수익에 영향을 줄 수 있지요.
금융 투자업계에서는 환율 변동 위험을 피하기 위한 단기 투자는 환헤지형이 유리하고, 환차익을 노리거나 장기 투자가 목적일 때는 환노출형 상품이 유리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미래의 환율을 예상하는 것은 주가 예측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혹시 2008년의 키코 사태를 기억하는지요?
키코는 2007년부터 국내 은행들이 중소 수출기업들에게 집중적으로 판매한 환헤지용 옵션 상품입니다. 당시 이 상품에 가입한 900여 개 중소 수출 기업들은 3조 원대 피해를 입었고, 그 후 은행과 책임·보상 둘러싼 길고 긴 분쟁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제 많은 중소기업이 환헤지는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환율의 변동은 수출입 가격에 여전히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개인 투자자들의 투자 수익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해외 수출입기업은 물론 개인들도 해외자산 투자 시 환헤지에 대한 신중한 고려가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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