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과 미중 반도체 전쟁 이야기
|미·중 무역전쟁
글로벌 이슈가 된 미·중 무역 분쟁은 트럼프 시절부터 본격화했습니다.
2018년 7월, 트럼프 정부가 먼저 중국산 수입품 340억 달러어치 818개 품목에 25%라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도 같은 액수의 미국산 수입품 545개 품목에 25% 관세로 맞대응했습니다. 양국의 관세 보복전은 다음 해에도 이어졌고, 이후에도 무역전쟁이라 부를 만한 공방이 계속 이어졌지요.
미국은 중국 기업 화웨이(Huawei)를 제재하고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했습니다. 이에 중국은 자국 관광객의 미국 여행을 제한할 수 있다며 미국을 압박했고, 희토류의 대미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중국이 자국 기업에 과도한 국가보조금을 지원해서 공정한 무역을 해친다고 비판합니다. 또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에 기술이전을 강요하며 지식 재산권을 보호해 주지 않고 미국 기업과 정부의 첨단 기술을 훔치면서 불공정 무역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중국은 미국이 패권을 휘둘러 중국 주권을 부당하게 침해한다고 맞섭니다. 중국 경제가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자 중국을 누르려 한다는 것이지요.
미·중 간 무역 분쟁이 한때의 공방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이유는 분쟁의 성격이 사실상 패권경쟁이기 때문입니다. 국가 간 패권 경쟁을 궁극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군사력이고, 군사력의 핵심 기반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기술력입니다.
미·중 무역 분쟁도 겉으로는 무역과 경제 분야 이슈를 논하지만, 사실은 중국의 기술력이 미국을 위협할 만큼 높아지자 미국의 경계심이 발동하면서 본격화했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양국 간 패권 경쟁도 군사력과 직결된 기술 분야에서 가장 치열합니다.
중국은 지난 2015년 '중국 제조 2025'라는 국가 전략을 공표했습니다. 2025년까지 첨단 의료기기, 바이오, 로봇, 통신 장비, 전기차, 반도체 등 10개 분야에서 대표 기업을 육성해 기술을 자급자족하는 제조업 강대국을 이루겠다는 계획입니다. 특히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고 4차 산업혁명을 이끌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지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은 대부분 민간용과 군사용 양쪽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의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중국은 경제와 군사 분야에서 미국의 글로벌 패권을 위협하게 됩니다.
한편, 기술 경쟁 이면에는 글로벌 공급 사슬 주도권을 놓고도 미·중 간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자본주의 경제권에 편입된 뒤,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해 값싼 상품을 대량 공급하는 '세계의 공장'이 됐습니다.
세계는 중국 덕분에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안정된 경제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을 반겼습니다. 주요 공업국은 생필품을 포함한 중저가 공산품 생산과 유통을 중국에 넘겨주고 고품질 고가 제품 생산에 집중하는 구조로 산업을 전환했습니다.
그사이 중국은 세계적 규모로 원료 산지와 상품 공급업체, 제조 공장, 유통센터, 소매점, 고객 등을 촘촘하게 연결한 글로벌 공급 사슬을 구축했습니다.
이렇게 세계가 20여 년간 합작해서 중국을 글로벌 공장으로 만든 결과는 2020년 초 코로나 사태가 닥쳤을 때 극적으로 취약성을 드러냈지요. 미국,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 경제권에서는 마스크를 구하지 못해 쩔쩔매야 했기 때문이죠.
결국 코로나 사태는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이 더 이상 글로벌 공급 사슬을 주도하게 둬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게 만든 주요 계기가 됐습니다. 2021년 바이든 정부는 그동안 중국이 주도한 글로벌 공급 사슬을 앞으로는 미국 주도로 재편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미국의 공급 사슬 관리 방침 전환으로 중국은 글로벌 공급 사슬 확보 야망에 큰 도전을 받게 됐습니다. 특히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에도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일대일로란 중국이 '중국 제조 2025'와 함께 2014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국가 계획입니다. 2049년까지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3개 육상 노선과 2개 해상 노선을 건설해 고대 동서양의 교통로였던 실크로드를 재현하고, 재현된 신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적 규모의 기반 시설과 경제 벨트를 건설한다는 거창한 계획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중 분쟁은 우리 경제와 무역, 외교, 안보 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중 모두와 잘 지내며 교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양국 분쟁이 고조되면 두 나라 모두로부터 양자택일하라는 요구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미·중 반도체 분쟁
미·중 반도체 분쟁은 중국이 2015년부터 이른바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10년간 170조 원을 투입해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올리겠다고 선언할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미국은 CPU 최강자인 인텔, 세계 3위의 메모리 회사인 마이크론, 세계적인 팹리스(fabless) 기업인 애플, 퀄컴, 브로드컴, AMD 등을 보유하고 있는 반도체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네 가지 이유로 중국을 견제합니다.
첫째 중국 반도체 기술의 급속한 성장, 둘째 한국과 대만 반도체 기술의 중국 유출 우려, 셋째 자국 내에서 생산하는 반도체가 12%에 불과하다는 점, 넷째 대부분의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이 지정학적으로 위험성이 큰 대만과 한국에 있다는 점 때문이지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1단계 조치는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 금지인데, 이 조치로 중국은 10nm 이하의 공정을 할 수 있는 장비를 확보할 수 없게 됐습니다.
2단계의 조치는 인텔, 삼성전자, TSMC로 하여금 미국 내에 반도체 시설을 건설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반도체 지원법 제정입니다.
3단계 조치는 칩4 동맹의 결성입니다. 칩4 동맹은 시스템반도체 미국, 소부장 일본, 파운드리 대만, 메모리의 한국이 동맹을 맺어 반도체 공급망 강화와 중국 반도체 고립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견제는 중국 기업의 반도체 기술혁신에 상당한 타격을 입힌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 반도체 패권의 지속을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미국 의회에 계류 중인 혁신경쟁법안은 미국 첨단 제조부문 쇠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고, 미국의 대중 수출 제재 역시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미국 기업들의 피로감과 손실 누적으로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또 미국 반도체 동맹의 두 축인 한국과 대만의 미국 내 최첨단 반도체 공정시설 건설은 초과비용, 생산성 저하, 인력 공급 등의 요인이 미국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중국은 반도체 산업 관련 기술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고 반도체 관련 인력풀이 국내외에 두텁게 형성되어 있으며, 정부의 강력한 기술혁신 의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지는 있어 중국 반도체 기술혁신은 지속적으로 미국에 도전이 될 것입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어 미국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또 중국은 한국 반도체의 주요 수출시장이기 때문에 미국의 제재를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국 기업과의 협력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는 미·중 패권경쟁의 '서막'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의 새로운 패권경쟁은 전면전쟁으로 공멸의 위험을 무릅쓰기보다는 규범과 질서의 지배권을 둘러싼 대결이란 특징을 가집니다.
관세 부과로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은 이미 정보통신기술을 두고 벌이는 기술전쟁으로 비화되었으며, 조만간 국방 및 안보 부문으로 급속히 확대될 것입니다.
미·중 패권경쟁이 가시화할수록 한국의 고민도 깊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미·중 무역 분쟁이 단기간에 끝날 문제가 아니고 장기적인 패권전쟁의 서막이라는 분명한 인식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서 국익에 대한 개념 규정과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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