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구리가격과 세계 경기동향 이야기
|국제 구리 가격
비철금속은 글자 그대로 철이 아닌 금속류입니다. 구리, 납, 아연, 알루미늄 등을 말하지요. 이들 비철금속은 자동차, 가전을 비롯해 대규모 건설과 플랜트, 전력 등 각 산업 분야에서 기초 소재로 많이 쓰입니다.
비철금속의 국제 시세는 주로 런던금속거래소(London Metal Exchange, LME)가 정합니다. LME에서 비철금속 시세를 좌우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투기 거래입니다. 다른 국제거래소와 마찬가지로 투기 거래가 시세를 움직이지요. 다음은 세계 경기 동향입니다. 호황일 때는 수요가 늘어 시세가 오르고 불황일 때는 수요가 줄어 시세가 내리지요.
셋째, 생산국의 정치나 사회 정세가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비철금속은 주로 개발도상국에서 많이 생산됩니다. 예를 들면, 주요 구리 산지인 페루, 잠비아, 콩고에서 파업이 일어나거나 정치 정세가 불안해져 생산이 줄면 시세가 오르지요.
넷째, 전쟁이나 각국의 비축 상태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비철금속은 중요한 전략물자입니다. 따라서 전쟁에 대비해서 미리 사들여 쌓아두는 나라가 늘어나면 수요가 커지며 값이 오르겠지요.
다섯 번째 요인은 인플레이션입니다. 인플레이션이 예상되면 기업이나 상인, 투자가 사이에 현금을 실물 자산으로 바꿔두려는 환물심리가 커지지요. 환물심리가 커지면 비철금속도 매입 수요가 늘어 시세가 오릅니다. 중동 산유국이 원유 값을 올리면 비철금속 시세가 급등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여섯 번째는 중국의 경기 동향입니다. 이는 앞에서 말한 '세계 경기 동향'과 따로 다뤄도 좋을 만큼 비중 있는 요인입니다. 중국은 글로벌 비철금속 소비와 생산량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비철금속 시장의 '큰손'이기 때문이죠.
중국에서는 해외 경기가 나빠지면 정부가 주택 투자와 인프라 건설 등 경기 부양책을 써서 국내 비철금속 수요와 시세를 끌어올리곤 합니다. 내수 부양책으로 해외 경기 영향마저 상쇄시킬 정도로 내수 규모가 크기 때문이죠.
|닥터 코퍼
구리는 산업 전반에 걸쳐 전 세계가 광범위하게 쓰는 비철금속입니다. 전기동 생산량의 약 65%가 전선으로 쓰이고, 나머지가 건설자재 등으로 쓰일 만큼 전기·전자 산업과 건설업에 특히 활용도가 높습니다.
그래서 각국이 경기가 확대되면서 도로나 공장, 항만 등 인프라 구축을 늘리면 글로벌 구리 수요도 늘어납니다. 반대로 경기가 침체해 인프라 구축을 줄이면 수요도 줄어들지요. 글로벌 경기 흐름이 구리 수요에 민감하게 반영되는 셈입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구리 수요가 늘면 글로벌 경기가 확대되고 구리 수요가 줄면 경기가 침체된다고 볼 수 있지요. 이처럼 구리 수요를 보면 글로벌 경기 방향을 알 수 있다는 뜻에서 구리에는 닥터 코퍼(Dr. Copper)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구리 수요로 세계 경기 흐름을 파악하려면 중국 수요부터 봐야 합니다. 중국이 글로벌 구리 수요 중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세계 구리 가격을 좌지우지할 만큼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죠.
실제로 중국 경제가 급성장한 2000년대에 LME에서 거래된 전기동 가격은 2000년대 초 톤당 2000달러에서 2011년 2월 1만 달러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일시 침체한 시점인 2016년 1월에는 4300달러까지 내려왔지요.
2020년에도 중국 수요가 글로벌 구리 가격을 움직였습니다. 2020년 1월 전기동 가격은 톤당 평균 6000달러 선이었는데, 코로나 사태가 확산하면서 중국 수요가 침체하자 3월 중순 4700달러 안팎까지 급락했습니다.
하지만 5월 들어 중국이 경기 부양책을 펴자 반등해서 11월 중순에는 7000달러 선으로 올라섰습니다. 11월 하순 미국에서 바이든이 대선에 이긴 뒤 인프라와 저소득층 주택에 투자하겠다며 경기 부양을 공약하자 12월 초에는 7500달러를 넘었지요.
|구리 가격 급등과 경기 회복 기대
이처럼 구리 가격은 세계 경기와 밀접한 관계를 보이고 있는데, 최근 중국의 리오프닝 기대감이 커지면서 비철금속 수요 확대 전망이 강해지자 구리 가격이 오르고 있습니다. 중국이 경제 성장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일 경우 공급 부족까지 예상된다는 판단 때문이지요.
전문가들은 지난해 하반기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로 하락했던 구리 가격이 올해는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실제로 최근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 부진에도 불구하고 구리 가격은 급등하며 톤당 9000달러를 돌파하는 등 강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중국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 세계은행은 올해 글로벌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7%로 하향했고, 내년에는 2.7%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이를 억제하기 위한 금리 인상, 코로나 팬데믹 재확산, 지정학적 긴장 고조 등이 경기 침체를 부채질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도 최근 구리 가격이 상승하는 이유는 역시 중국의 경기회복 기대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발 모멘텀이 구리 가격을 끊임없이 밀어 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있습니다. 비철금속 가격 상승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중국 외에도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의 경기 상황이 개선돼야 하기 때문이죠.
지난 수십 년간 구리 가격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역사적 추이를 살펴보면, 닥터 코퍼의 명성을 입증하며 활약상이 돋보인 경우도 있었지만, 박사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닥터 코퍼의 체면이 구겨지는 일도 때때로 발생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 구리 가격 추이는 여전히 세계 경기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 중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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