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원 통화와 통화승수의 이해 - 유동성 함정,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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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원 통화, 지급준비금, 법정지급준비금, 신용창조란?
'본원 통화'란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발행한 원화입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발행한 달러입니다.
중앙은행의 본원 통화는 현금과 예금으로 구성됩니다.
그러나 설명의 편의를 위해 중앙은행으로부터 발행된 달러가 시중은행에 모두 전달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시중은행이 보유한 자금을 '지급준비금'이라고 합니다. 시중은행은 이 지급준비금을 대출이나 투자에 활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급준비금 중 일정 비율을 반드시 중앙은행에 예치해야 합니다. 가령, 1000만원의 지급준비금의 10%인 100만원은 중앙은행에 반드시 예치해야 합니다. 따라서, 시중은행은 1000만원 중 900만원을 대출이나 투자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 10%를 '법정지급준비율'이라고 합니다(10%는 예시입니다). 법적으로 반드시 예치해야 하는 자금을 의미합니다. 중앙은행에 예치한 돈은 '법정지급준비금'입니다.
시중은행 A가 100만원을 중앙은행에 예치하고, 나머지 900만원을 사람 a에게 모두 대출했다고 가정합니다.
a는 대출 받은 900만원을 시중은행 B에 전부 예금합니다. 시중은행 B는 900만원 중 10%인 90만원을 중앙은행에 예치하고, 나머지 810만원을 사람 b에게 대출해줍니다.
사람 b는 대출 받은 810만원을 시중은행 C에 전부 예금합니다. 시중은행 C는 810만원 중 10%인 81만원을 중앙은행에 예치하고 나머지 729만원을 사람 c에게 대출해줍니다. 이 과정을 사람이 더 이상 예금할 금액이 없을 때까지 지속합니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위의 예시에서 법정지급준비율이 10%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앙은행의 본원 통화는 1000만원이었습니다.
결국, 시중에 돌아다니는 통화(신용)는 다음과 같습니다.
1000만원 × 10 = 1억
[총통화량(신용) = 본원통화 × 법정지급준비율의 역수]
위의 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정지급준비율이 낮을수록 총통화량은 늘어나게 됩니다. 가령, 법정지급준비율이 10%에서 5%로 변경되었다면, [1000만원 × 20 = 2억] 이 됩니다.
| 2. 통화승수란?
사실, 경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위의 설명을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여기서 논의를 더 이어 나가겠습니다.
위의 예시에서 사람 a, b, c는 보유한 돈을 모두 시중은행에 예금했습니다. 즉, 사람들이 보유한 현금을 모두 예금한다는 '가정'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이 보유한 돈을 모두 예금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는 이번 포스팅의 주제인 '통화승수'의 핵심 내용이기도 합니다.
우선, 시중 통화량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확인해봅시다.
첫째, 본원통화량입니다.
둘째, 법정지급준비율입니다. 이는 중앙은행이 결정하는 요소입니다.
셋째, 시중은행의 대출과 초과지급준비금입니다.
넷째, 일반 가계의 현금과 예금 보유량입니다. 이는 민간이 결정하는 요소입니다.
초과지급준비금이란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법정지급준비금을 초과하는 자금을 의미합니다.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의 현금통장에 현금을 계속 넣는다면 법정지급준비금을 초과하는 현금이 쌓이게 됩니다.
참고로, 연준은 2008년 10월에 중앙은행에 예치한 시중은행의 초과지급준비금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초과지급준비금리 도입). 시중에 통화량이 급격하게 풀려나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챕터에서 다루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설명드렸던 개념을 간단하게 요약하겠습니다.
· 본원 통화 :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
· 지급준비금 : 시중은행이 보유한 자금
· 법정지급준비율 : 시중은행이 예금 중 중앙은행에 반드시 예치해야 해야 자금 비율
· 법정지금준비금 : 시중은행이 법적으로 중앙은행에 반드시 예치해야 하는 금액
· 초과지급준비금 : 시중은행의 중앙은행 현금 계좌에서 법정지급준비금을 초과하는 금액
실제지급준비율(rr)은 [지급준비금 / 예금] 으로 도출됩니다. 시중은행의 전체 예금 중 지급준비금이 얼마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지급준비금은 법정지급준비금과 초과지급준비금으로 구성됩니다. rr은 전체 예금을 초과할 수 없으므로 1보다 작은 값입니다.
현금통화비율(cr)은 [현금 / 예금] 으로 도출됩니다. 일반 가계의 전체 예금 중 현금 보유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총통화공급량은 다음과 같이 도출됩니다.
즉, 통화승수와 본원통화를 곱한 값이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는 총통화량입니다. 통화승수가 높을수록 시중에서 총통화량이 증가한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상황별로 통화승수를 살펴보면,
[통화승수 1]에서 현금통화비율은 0.6입니다. 이는 사람이 예금 1000만원 중 현금 600만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지급준비율은 10%입니다. 결국, 통화승수는 2.29가 됩니다. 총통화량은 1000만원 × 2.29 = 2290만원이 됩니다.
[통화승수 2]에서 현금통화비율은 그대로이고, 실제지급준비율이 5%로 인하되었습니다. 이때, 통화승수는 2.46이 됩니다(통화승수 1보다 높습니다). 총통화량은 1000만원 × 2.46 = 2460만원이 됩니다.
[통화승수 3]에서 현금통화비율은 0.2입니다. 이는 사람이 예금 1000만원 중 현금을 200만원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지급준비율은 0.1%입니다. 결국, 통화승수는 4가 됩니다. 총통화량은 1000만원 × 4 = 4000만원이 됩니다.
[통화승수 4]에서 현금통화비율은 그대로이고, 실제지급준비율이 5%로 인하되었습니다. 이때, 통화승수는 4.8이 됩니다. 총통화량은 1000만원 × 4.8 = 4800만원이 됩니다.
| 3. 통화승수와 유동성함정
위의 다소 복잡한(?) 식을 통해 통화승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는 현금이라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주요국의 통화승수는 얼마나 될까요? 국회 예산정책처의 자료를 인용하겠습니다.
모든 주요국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통화승수가 감소해 왔습니다. 왜 통화승수가 감소했을까요? 다양한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주요 이유는 장기적인 '저금리' 기조 때문입니다. 미국의 기준금리는 폴 볼커가 지난 1980년대에 대폭 인상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왔습니다.
미국 기준금리 추이
경제학에 유동성 함정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유동성 함정이란 기준금리가 제로에 가까워질수록 민간의 화폐보유 성향이 무한대 가까이로 상승할 수 있다는 케인즈의 이론입니다. 즉, 저금리 기조에서 소비나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막대한 자금이 현금의 형태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0~0.25%이고, 한국의 기준금리는 0.5%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한은 “5만원 환수율 급락, 불안으로 현금보관 늘어난 탓” (관련링크)
| 4. 통화승수와 인플레이션
위의 논의를 인플레이션에 대한 논의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시행하면서 돈을 그렇게 많이 풀었는데 인플레이션은 왜 나타나지 않을까요?
① 통화승수의 하락
통화승수가 낮다면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많이 풀어도 시중에서 돈이 충분히 돌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더 많은 돈을 풀어야 과거와 같은 효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가령, 과거에 통화승수가 9, 올해 통화승수가 3이라면, 중앙은행이 과거와 똑같은 효과를 보기 위해선 돈을 3배 이상 더 풀어야 합니다.
올해 연준은 1~2개월 동안 약 3조 달러를 살포했습니다. 이는 과거 금융위기 이후 6년간 진행했던 양적완화 규모와 맞먹는 수치입니다.
다만, 현재 통화승수는 과거보다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같은 규모의 화폐를 발행했더라도 실제적인 통화완화 효과는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자산시장이 아닌 실물경제에 대한 효과입니다).
더구나, 장기적인 저금리와 저성장 구조에서 민간은 현금을 보유하고 소비나 투자를 하지 않게 됩니다(유동성 함정). 이는 총수요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총수요가 부진하면 실물경제는 디플레이션 압력에 빠지게 됩니다.
② 초과지급준비금리(Interest On Excess Reserve)의 존재
연준은 양적완화를 시행함과 동시에 '초과지급준비금리'를 도입했습니다. 이는 시중에 급격하게 돈이 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의 장기국채를 매입해 현금을 주입해주는 정책입니다.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로 엄청난 현금을 보유하게 된 시중은행이 민간에 방만하게 대출을 해주거나 자산에 투자를 한다면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자산버블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막고자,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법정지급준비금 이상으로 돈을 보관한다면 이자를 주는 방식을 채택한 것입니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양적완화를 시행하여 시중은행에 막대한 자금을 공급했지만 이 돈 중 절반 이상은 다시 연준으로 돌아오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2020년에도 똑같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결국, 시중에 돈이 돌지 않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빨간색 실선 : 연준 자산 / 파란색 실선 : 초과지급준비금
이밖에, 연준은 초과지급준비금리를 활용하여 시장이 방종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왔습니다. 2019년 9월에 레포시장에서 발작이 일어난 이후, 연준은 2020년 초까지 레포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산가격이 상승하자, 올해 2월에 IOER을 인상함으로써 초과지급준비금이 과도하게 풀리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를 현재의 상황에도 응용해볼 수 있습니다. 정부의 재정정책이 원활하게 진행된다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질 것입니다. 막대한 부채를 감안한다면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도저히 생각해볼 수 없습니다. 다만, 초과지급준비금리를 인상해 시중에 통화량이 급격하게 풀리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습니다.
③ 빈부격차
빈부격차도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은 주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경제학 개념이 '한계소비성향'입니다.
한계소비성향이란, 소득 한 당위 당 소비되는 금액의 비율을 의미합니다. 만약 사람 A의 한계소비성향이 0.8이고 소득이 100만원이라면 사람 A는 소비를 80만원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자와 빈자 중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주체는 누구일까요? 당연히 빈자일 것입니다. 부자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비할 수 있는 금액은 한계가 있습니다. 부자도 하루에 3끼를 먹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자의 경우 소득의 많은 부분을 저축하게 되기 때문에 한계소비성향이 낮습니다.
반면, 빈자의 경우 하루에 먹고 살기도 바쁘기 때문에 소득 중 대부분을 소비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한계소비성향이 높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해질수록, 경제 전체의 한계소비성향이 감소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해당 경제의 소비는 점점 감소할 것이며, 이는 총수요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다르게 말하면, 경제에 돈이 돌지 않게 됩니다. 이는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현재 미국의 빈부격차 정도는 지난 대공황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상위 0.1%와 하위 90% 가계의 부가 전체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
참고로, 올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빈부격차 문제와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인플레이션/디플레이션에 대한 논의는 매우 방대합니다. 향후 포스팅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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