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포비아, ‘전세사기’ 시작은 이것 때문 ‘ㅈㄱㅎㄹ’
SUMMARY
- 속칭 '빌라왕', '건축왕' 등 전세사기 사태로 '전세포비아' 현상 만연화
- 부동산 상승기에 이득 보려던 건축업자들과 '무자본 갭투자' 임대인들 多
- '집값 하락'하며 건축비·막대한 보증금 등 반환이 불가능, 연쇄 피해 발생
- 부동산 시장 가격 안정화되기 전까진 추가 전세사기 우려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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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보다 무서운 임대인? 오래 남는 영화의 대사들이 있다. “누구냐 넌?” 영화 ‘올드보이’의 대사 가운데 하나다. 자신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한 그 누군가에게 ‘복수’를 위해 ‘먹임’을 당해왔던 만두 ‘맛’으로 실마리를 찾아가는 영화로 기억된다. 영화 결말에 대한 시각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개인의 자유’를 빼앗은 것에 대한 일종의 ‘분노’를 모두 비슷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더 그 한마디 대사가 기억에 꽂혔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냐 넌”
임차인들이 못 믿을 사람으로 꼽는다. ‘임대인’들 말이다. 자신이 세 들어 사는 임대인(집주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조차 모르는 무서운 세상이 됐다. 앞선 대부분의 경우라면 임대인보다는 임차인들 문제가 불거지는 게 일반적인데 반해 최근에는 임대인 기피 현상, ‘전세 포비아’라 일컬어지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 모든 게 최근의 ‘전세사기’가 만든 사회적 현상이다. “임대인, 누구냐 넌”
© 국토교통부(2021.08.14.). '[보도자료] 「12020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발표, p.3.
임대인이 다 나쁜 게 아니다. 사기꾼 임대인이 나쁜 것이다. 대개의 선량한 임대인은 공공임대로 감당 못하는 임대차 시장에서 민간임대시장을 통해 임차인에게 거주할 거처를 제공하는 시장 참여자 가운데 한 축(軸, axis)이다.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2020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자가보유율은 전국 평균 60.6%다(수도권 53.0%, 광역시 62.2%, 도지역 71.4%). 이 수치를 바꿔 말하면 10명 가운데 39.4명은 자기 집이 아닌 다른 사람 소유의 다른 집에서 산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 우리나라 임대시장의 약 30~40%를 감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민간임대시장이다. 그러니 ‘임대인’은 우리 주변 아저씨·아줌마 또는 할빠·할미*들이고, ‘임차인’은 ‘조카’, ‘삼촌’뻘인 셈이다.
*손주를 돌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일컫는 단어
결국 문제는 ‘사기꾼 임대인’으로 귀결된다. 이런 이유로 ‘건축왕’, ‘빌라왕’, ‘빌라의 신’이 아니라 ‘건축 사기꾼’, ‘빌라 사기꾼’인 것이다(언론에서도 처음에는 이들을 속칭 건축왕, 빌라왕, 빌라의 신으로 언급했으나 ‘사기꾼’을 ‘왕’이라 호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해서 언론에서도 왕을 빼고 사기꾼을 붙여 부른다). 이들의 전세사기 행각이 만천하에 공개되지 않았다면 이들은 하늘이 내린 ‘부자 갑부’로 각종 언론과 SNS를 도배했을 수도 있다. 이들도 맨 처음 시작은 ‘사기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사기꾼이 되고 싶어 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사기꾼으로 몰렸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쩠든 이들이 사기꾼인 것은 맞다.
© 더중앙(2023.04.28). '빌라왕 관상일까' 스캔한다…죄다 의심스러운 전세 포비아 [같toon마음]
분명 윈윈 게임이었는데… 어느 방송, 시청자 인터뷰에서처럼 임대인도 ‘시민’, 임차인도 ‘시민’이다. 같은 ‘시민’인데 지금의 전세사기에서는 ‘가해자(임대인)’와 ‘피해자(임차인)’처럼 됐다. 세입자로서의 임차인이 피해를 보듯 임대인도 전세사기를 쳤다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게 시민 인터뷰어의 요지였다. 그런데 ‘임대인 시민’이 ‘파산’했다고 하면 ‘벌’을 받지 않는다. ‘벌’을 묻는데 벌받을 사람이 손해를 갚아줄 능력이 없다면 또한 갚지 않아도 되는 게 ‘현행법’이란다. 떼인 전세보증금을 되돌려 주어야 할 사람이 ‘바지 임대인’이고 그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전세보증금을 갚아줄 사람이 없으므로 떼인 전세보증금은 ‘하늘로 사라진 셈’이 됐다. 전세사기당한 것도 억울한데 평생 모아온 ‘생떼’같은 전세보증금을 날린 것이다. 더 열심히 살아서 전세보증금에 돈 좀 보태서 내 집 살 거라고 얘기해 왔는데 이번 참에 다 날린 셈이 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세’제도는 임대인이나 임차인 모두에게 득이 되는 임대차 시스템이다. 누군가에게 좋다면 누군가에게는 나쁠 수 있는데 둘 다에게 ‘윈-윈’인 ‘게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 ‘제로섬 게임(zero-sum game)’도 아니고 ‘논 제로섬 게임(non zero-sum game)’도 아니고 이건 뭐라는 거지? 그러나 사실이다. ‘전세’는 임대인-임차인 양쪽에게 모두 좋은 게임인 것이 맞다.
임대인은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 이외에 임차할 집이 있는 사람이다. 물론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 내 일부 공간을 임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2주택 이상의 ‘다주택자’인 ‘임대인’을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이외의 주택을 빈 상태로 갖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 왜냐하면 그 주택을 임차해 별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수익이 바로 ‘임대 소득(income gain)’이다. 임차하고 있는 사이 2년에서 최소 몇 년을 소유하다가 임차를 그만두고 그 집을 팔 수도 있다. 물론 현재 임차인에게 팔 수도 있다. 집을 팔아 얻을 수 있는 소득이 ‘자본이득(capital gain)’이다. 그렇다. 임대인으로서의 다주택자들은 거주하고 있는 집 이외의 주택을 통해 임대 소득과 자본이득의 두 가지를 경제활동을 통한 소득으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임차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임차하고 있는 ‘집’이 ‘내 것’은 아니지만 내 집 마련에 대한 꿈을 항상 갖고 있다. 따라서 임차한 기간만큼은 내 집처럼 편하게 거주할 수 있다. 최근에는 ‘임대차 3법’에 따라 전세 기간을 같은 임대보증금 또는 상한 5% 범위 내에서 인상이 가능한 계약갱신청구권이 있어 ‘2+2년’ 동안 거주하기도 용이하다. ‘임차권’을 법으로 보장받는 것이다. 임차한 기간 동안 임차인인 ‘나’는 더 열심히 일해 아낀 돈으로 올려달라는 전세보증금을 충당하거나 향후 내 집 살 때 들어갈 ‘쌈짓돈’을 알차게 모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전세’가 아닌 ‘월세’로 지불했다면 전세보증금과 같이 ‘목돈’을 유지한다는 게 용이하지 않다. 그렇기에 임차인에게도 전세는 ‘내 집 마련’이라는 주거사다리를 타기 위해 필요한 ‘징검다리’와도 같다고들 말해왔던 것이다.
임대인, 임차인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었던 ‘전세제도’가 최근 발생하고 있는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역전세난 등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다. 최근 ‘전세’와 관련해 부동산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란 무엇일까?
집값 상승의 나비효과 전세의 ‘영어’ 표기는 ‘한글’ 그대로 ‘Jeose(전세)’다. 유사한 주거 임대 시스템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말 그대로의 영어 표현이 가능한 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 거의 유일한 형태로 우리나라의 ‘전세’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고 인정받아 온 셈이다.
최근 임대차 시장에서는 전세사기*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임대차 형태가 기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월세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임차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떼일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월세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새로운 신조어가 바로 ‘전세(보증금)포비아*’다. 전세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전세사기: 깡통전세와 같은 임대차 ‘사고’ 형태로 보이나 ‘고의성’이 있고 고소·고발되어 경찰의 수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건
전세포비아: 최근 증가하고 있는 ‘전세사기’ 등으로 인해 ‘전세’를 기피하는 사회적 현상을 일컫는 말. 사회 문제화 되고 있는 ‘전세’에 ‘공포증’을 의미하는 ‘포비아(phobia)’가 조합된 신조어.
© 헤럴드경제(2023.04.19). 전세 무서워 월세로...서울 빌라, 전세비중 54% 역대최저
그렇다면 ‘전세사기’는 왜 발생한 것일까? 전세사기의 배경이 있었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모든 ‘사기’ 사건이라는 게 그렇지만 ‘사기’를 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게 왜 사기를 쳤냐고 따져봐야 답이 없다. 그러나 그 사기를 치기로 마음먹게 된 여건으로서의 개연성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듯하다.
© 이데일리(2023.04.25). '강남·송파'도 역전세 안전지대 아니다…'전세 포비아' 확산
© 출처: 연합뉴스(2022.09.14.). 전국 전세가율 현황
그것은 바로 ‘가격 급등’이다. ‘집값 상승’이다. 그것도 급격하게 오른 집값 때문이다. 시점은 2020~2021년경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던 시기다. 그 시점에 내 집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신조어가 만들어졌으니 그 단어가 바로 ‘영끌’과 ‘패닉바잉’이다. 부모 찬스, 할아버지 찬스 등 모든 찬스를 끌어모아 내 돈까지 보태 ‘내돈내산’으로 영끌에 패닉바잉 한 사람들은 그나마 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집값이 오르다 보니 전셋값도 올랐다. 서울에서 살려고 했는데 오른 집값과 전셋값 등을 감안하면 도저히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서울의 외곽, 인천으로 MZ세대를 포함한 많은 임차인들이 소위 ‘탈(엑소더스) 서울’ 한 것이다.
그곳이 최근 ‘전세사기’의 공간적 범위가 된 ‘서울 화곡동’과 ‘인천 미추홀구’ 등이다. 이곳에는 신축 빌라, 연립(다세대) 등이 건축됐거나 진행 중인 곳이 많았다. 그러니 어려운 여건의 임차인들이 이곳에 많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직주근접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행히 보금자리를 마련해 그렇게 겨우 옮겼다고 생각했는데 미 연준의 고금리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내외 경제여건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집값이 물 빠진 고무대야처럼 순식간에 내려가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급변하자 가장 놀란 사람은 빌라, 다세대, 연립을 지어서 전셋값 상승 시점에 한몫 챙기고자 했던 건축업자였다. 한몫 보겠다고 땅 사서 집 지었는데 막상 지어놓고 보니 전셋값 하락으로 건축비도 못 건지게 된 것이다. 이 사람이 바로 신축 빌라를 지어 한몫 챙기겠다고 생각했던 그 건축업자, 지금 언론을 통해서는 ‘건축왕(사기꾼)’이라 불리는 사례의 주인공이다. 여기에 ‘빌라왕(사기꾼)’, ‘빌라의 신(사기꾼)’ 등 모두 이런 유사한 경우의 나쁜 임대인인 셈이다.
결국 작금의 전세사기는 바로 ‘ㅈㄱㅎㄹ’이 만든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대외변수로부터 부동산시장의 '집값 하락'이 촉발되고,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은 심각하다. 한참 집값이 상승했던 2020년, 2021년의 임차인들이 전세에서 월세로 또는 가격이 낮은 다른 임차할 곳을 찾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당시 ‘무자본 갭투자’했던 임대인은 전세보증금을 내줄 수 없을지 모른다. ‘ㅈㄱㅎㄹ(집값 하락)’, ‘ㄱㄱㅎㄹ(가격하락)’국면이 만들어낼 상황이 무섭다. ‘역전세난’이 앞으로 문제가 되는 이유다. ‘전세 사고’가 아닌 ‘전세사기’가 오늘도 진행 중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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