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 속 카나리아 | 통화긴축의 약한 고리
Summary
- 준기축통화 파운드를 보유한 영국의 금융 혼란
- 한미 기준금리 역전 중에 채권시장 유동성 경색을 맞은 한국
- 미 연준의 기준금리 변곡점 임박
- 금리고점과 인하기를 대비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점검할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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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 속 카나리아 처지가 된 영국 2022년 10월 20일(현지시간)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취임 44일 만에 사임하며 역대 최단명 영국 총리가 됐다. 총리가 사임하게 된 이유는 새 내각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성급히 내놓은 감세안이 금융시장의 혼란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낮은 세금, 고성장'의 비전을 내세우며 지난 9월 23일에 450억 파운드(약 72조 원) 규모의 감세안이 포함된 미니 예산을 깜짝 발표하자 금융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파운드화가 달러 대비 역대 최저로 추락하고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이 긴급 개입을 해야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례적으로 영국의 감세 정책을 비판한 가운데, 결국 영국 정부는 부자 감세, 법인세율 동결 등을 철회했다. 금융시장이 안정화된 것처럼 보였지만 트러스 총리는 결국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때문에 경제 위기에 직면한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이 확산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제로에 가깝게 유지되던 지난 시절에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사용하면 됐다. 하지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킨다며 기준금리를 매우 빠르게 인상하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재정정책이 통화정책과 엇박자가 나며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어려움에 빠져있다. 다른 나라들의 연금 펀드도 영국과 비슷한 고난을 겪고 있다.
우선 급한 불을 끄고 시장이 진정된 모습이지만 영국 국채 금리는 계속 오르고 있고 안정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그래서 영국이 ‘탄광 속 카나리아’ 처지가 됐다는 말이 나온다.
물가가 두 자릿수로 오르고 기준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하는 지금, 국채를 발행하여 정부 지출을 늘리는 대규모 감세 재정 정책은 시장에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탄광 속 카나리아
위기를 사전에 경고해 주는 신호를 뜻하는 말. 19세기 유럽의 광부들은 탄광 안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어 데려 갔다고 한다. 호흡기가 약한 카나리아가 일산화탄소 같은 유해가스에 민감해서 카나리아가 움직임이 둔해지면 즉각 갱도에서 대피하는 등 위험 징후를 감지하는 역할로 사용했다.
'레고랜드'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금융은 신뢰다. ‘돈을 맡기면 언제든 찾을 수 있어야 하고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한다’라는 당사자 간 신뢰를 기반으로 금융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믿음이 흔들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레고랜드 사업 주체인 ‘강원도중도개발공사’가 자금조달을 위해 2050억 원 규모의 ABCP(유동화기업어음)를 발행했고, 강원도가 보증을 섰다. 신뢰도 높은 지방자치단체가 보증을 서면서 높은 신용등급(A1)을 받았지만 만기에 강원도가 보증 의무를 불이행하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지방자치단체도 못 갚는 상황'이라는 심리적 불안이 커지자 상환되지 않은 단기금융시장은 물론 회사채, 전체 채권 시장까지 불안이 번졌다. 단기금융시장에 자금 공급이 급격히 줄었고, 우량 회사채도 팔리지 않기 시작했다. 채권 수요가 급격히 줄면서 채권 금리는 더 빠르게 올랐다. 한국은행의 연이은 기준금리 상승 결정으로 가파르게 올랐던 채권 금리는 레고랜드 사태로 더 크게 도약하게 되어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높은 예금금리로 인해 시중의 자금은 은행 예금에 몰리기 시작했다. 높아진 기준금리 때문에 예전부터 단기금융과 회사채 시장은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는데 '레고랜드 사태'는 불에 기름을 부어버린 꼴이 되었다. 일부 건설사와 증권사가 자금경색으로 부도가 날 수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일요일인 23일에 긴급하게 ‘비상 거시경제금융 회의’를 열고 ‘50조 원+α’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 조치를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1) 총 20조 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조성해 투입하고, 2)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의 회사채와 증권사 등 금융회사가 발행한 CP 매입 규모를 16조 원으로 2배로 늘린다. 3) 한국증권금융 재원을 통해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증권사에 3조 원 규모의 유동성을 지원한다. 4) 부동산 PF에 대한 주택도시보증공사·주택금융공사의 사업자 보증 지원은 10조 원 규모로 확대한다.
추가로 강원도의 지급보증 거부 사태 같은 채무불이행에 대한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ABCP에 대해서는 모든 지자체가 지급보증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매크로적인 글로벌 긴축기조에 강원도의 지급보증 불이행이 더해져 일파만파로 커지니 정부가 나서서 지급을 약속하고 50조 원 이상의 안정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정부 개입으로 일시적인 시장 안정 효과는 있겠지만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하면 국내 채권금리 또한 다시 급등할 수 있어 장기적인 효과는 미지수다. 오히려 영국의 경우처럼 긴축적 통화정책에 반하는 정부 정책이 원화가치 하락(환율 상승)이라는 역효과를 더 크게 가져올 우려가 크다.
10월 21일 기준으로 3년물 기준 국채와 회사채(AA-)의 금리 차(스프레드)가 1.3%포인트까지 벌어졌는데, 이는 세계 금융위기였던 2009년 9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국가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같은 날 0.62%포인트(62bp)로 연초 대비 2배가 되었다.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며 한국전력이 발행하는 한전채(AAA)도 매각을 완료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 이상으로 단기자금 시장에서는 자금경색이 심해지고 있다. 건설사의 경우 PF와 관련된 기업어음 차환이 어려워지면 ‘흑자도산’ 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수 있다. 부동산 PF 대출이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경제 위기 트리거로서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이번 정부의 유동성 공급 대책은 영국의 상황과 닮아 있으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기조와 상충한다.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유동성이 경색되는 일이 현실화되자 1년 넘게 기준금리를 계속 올려온 한국은행이 고민에 빠졌다.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준의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을 낮추려면 기준금리 인상과 시중 유동성 축소 기조를 이어가야 하지만, 자금 경색이 더 심각해지면 한국은행도 금융시장 안정성 등을 고려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까워진 미 연준의 기준금리 고점 한국과 영국의 예시를 들었지만 전 세계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미국도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미국채의 매수 수요가 크게 떨어져 미 재무부가 미국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이다. 미 연준의 마이웨이식 기준금리 인상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최근 연준 인사들로부터 기준금리 인상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일부 제기되고 있다.
연준의 기준금리가 고점에 가까워지면 고점 근처에서 당분간 유지하다가 경제 위기가 오거나 예방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게 된다. 기준금리의 변곡점이 임박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기 침체는 1950년 이후 모두 미국채의 장단기 금리 역전 이후에 일어났는데 이미 지난 4월에 장단기 금리 역전이 일어났다. 장단기 금리 역전과 2분기 연속 미국의 GDP 성장률 마이너스를 종합해 보면 미국 연준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경기 침체에 이미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4월에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후로 과거의 역사적 사례로 예측해 볼 때 2023년에 경제 위기가 온다는 예측이 많았다. 미국채를 포함하여 전 세계 채권 시장이 불안해지고 있는 가운데 FOMC에서는 앞으로 물가상승률만 보면서 기준금리를 올리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머지않아 기준금리는 고점에 다다를 것이고 예상보다 더 빠르게 경제 위기와 경제 침체가 다가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으로는 경기 침체를 대비한 통화 정책이 준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을 자제하고 어느 시점에서는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금리고점(A)이 멀지 않았다.
2022년 4월에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후로 과거의 역사적 사례로 예측해 볼 때 2023년에 경제 위기가 올 가능성이 높았다. peak out 된 줄 알았던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와 연준은 2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0.75%)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그러나 11월부터는 시장의 불안요인과 경기 침체 우려를 대비한 통화 정책이 준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준금리 인상 속도와 폭이 완화되고 어느 시점에서는 기준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금리고점(A)가 멀지 않았다.
여전히 높은 물가상승률과 이어지는 경기 침체 우려 모두 저성장 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에 진입했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
금리 변곡점을 대비한 자산배분 포트폴리오 기준금리 사이클로 보면 2022년 10월 24일은 ‘금리고점(A)’ 단계에 더욱 다가가고 있는 시점이다. 금리가 고점에 이르기 전까지는 성장주보다 가치주, 그리고 미국의 달러화 강세에 초점을 둔 전략이 유효했다. 지금부터는 금리가 고점에 이른 후에 경제 위기와 기준금리 인하까지 고려한 투자를 선제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구체적으로 어떤 자산에 관심을 두는 것이 좋을까?
자산배분 투자자는 다양한 상관관계가 있는 여러 가지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편성 혼합해 운용한다. 대표적인 위험자산인 주식 그리고 안전자산인 채권, 현금, 대체자산인 금, 비트코인 등을 혼합하는 식이다.
금리인상기에 미국 주식시장의 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작년 11월 첫 번째 테이퍼링을 진행하면서 미국 주식시장은 약세장으로 돌아섰고 제대로 된 반등 한번 하지 못했다. 40년간 이어진 디플레이션(기준 금리의 고점이 점점 낮아지는 것)의 사이클이 종지부를 찍으며 기존 금리인상 사이클과 반대로 인플레이션 사이클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금리인상과 양적긴축 속도가 너무 빨랐던 것이 가치주 위주의 미국 주식시장에도 악영향을 주었다.
위험자산 위주의 자산으로 이번 하락장을 맞았다면 큰 손해가 났겠지만 자산배분 투자자의 포트폴리오에는 안전자산과 현금 그리고 대체자산도 동시에 편입돼 있기 때문에 위험자산 위주로만 구성한 포트폴리오보다는 손실이 적었을 것이다.
지난 1년간 미국 장기 채권 ETF인 ‘TLT’(파란색)와 미국 나스닥100(노란색), 미국 S&P500 (하늘색)의 성적 비교. 지난 12월 이후로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장기 채권 금리가 상승해 TLT의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채권 가격과 채권의 금리는 반비례한다). 성장주 중심의 나스닥100 지수도 가치주 비중이 높은 S&P500 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앞으로 금리가 고점을 형성하면 미국 장기채와 성장주가 다시 바닥에서 턴 오버할 확률이 높다.
앞으로 다가올 ‘금리고점’과 이어지는 ‘금리인하기’를 대비해 포트폴리오를 선제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최근 7개월간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기에서는 미국채의 가격이 하락하고 가치주보다 성장주가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 기준금리가 더 이상 상승하지 못하고 고점을 형성하면 그때부터 성장주와 미국채가 다시 저점에서 반등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순서가 있다. 기준금리가 고점이 되면 그 후에 경제 위기, 그리고 경제침체의 순서로 이어진다. 경제위기 순간에는 모든 위험자산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달러와 미국채, 금 같은 안전자산만 하락을 면하거나 상승할 수 있다. 특히 미국 장기채는 가장 위기의 순간에 극적으로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
금리인상 사이클을 감안해 현재와 앞으로 유망한 자산의 순서를 간단히 나열하면
- 현재부터 금리고점까지 - 달러 강세, 미국 가치주
- 경제 위기 - TLT, 달러
- 경제침체로 인해 다시 완화적 통화정책 시작 - 미국 성장주, 금, 비트코인
의 순서로 강세가 올 것이다. 자산배분 투자자는 특정 자산이 오르고 나서 매수하는 것이 아니라 강세가 오기 전, 가격이 하락해 있을 때 매집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자산이 상승하는 시기가 오면 분할로 익절하고 다시 다음에 오를 자산을 미리 싸게 매집해야 한다.
지금은 가치가 하락한 미국채와 성장주, 비트코인을 매수할 수 있지만, 순서상 경제 위기가 오는 순간에 성장주와 비트코인은 다시 한번 크게 하락할 수 있다. 지금 가장 단기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위기로부터 헤징하고 추가로 수익까지 낼 수 있는 상품은 미국채다.
앞으로 미국채에 투자하는 ETF들에 대해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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