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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러운 서재에서 답을 찾다 – 사진책방 이라선

비밀스러운 서재에서 답을 찾다 – 사
비밀스러운 서재에서 답을 찾다 – 사

“사랑이 부족해서 그럴 거야.”

 

D의 말을 곱씹으며 서촌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이번에야말로 해답을 찾을지 몰라. 낯익은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간 곳에는, ‘사진책방 이라선’이 있다.

비밀스러운 서재에서 답을 찾다 – 사

렌즈 앞에 피사체로 서는 것도, 무엇을 찍기 위해 렌즈를 들이대는 것도 내겐 늘 어려운 일이다. 잘 찍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막상 카메라를 손에 쥘 때면 어쩔 줄을 모른다. 언젠가 열의에 차 등록했던 사진 수업도 두어 번인가 가고는 그만뒀는데, 어리석은 미련만이 계속 남았다.

 

여행길에서 넋을 놓고 바라보는 수밖엔 어찌할 방법이 없는 풍경도 좋고, 보는 즉시 군침을 돌게 하는 음식 사진도 좋다. 하지만 나는 그 무엇보다도 ‘사람’을 제대로 찍고 싶다. 일부러 보태거나 빼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그래도 이왕이면 따뜻하게.

 

하지만 실전에서는 의지와 열정만이 공허하게 나부꼈다. 몰래 찍고자 했던 상대에게 나를 들킨 순간부터 공연히 위축되는 것에도 이유가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완벽한 것만 같은 장면에서도 좀처럼 맘에 드는 컷은 나오지 않았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자 풀이 죽었고 사람이 등장하는 사진의 수는 점점 줄었다. 아예 카메라를 숙소에 두고 나가는 날이 많아졌고, 그즈음 D를 만났다. 영화와 사진 관련 일을 했다는 D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인물 사진을 잘 찍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문제가 뭘까요?”

 

“정말 잘 찍는 사람들은 우선 다가가서 말부터 건네. 카메라 가방은 꺼내지도 않아. 그리고 한 달을 그들과 살다시피 하지. 떠날 때가 돼서야 카메라를 들어. 내가 그들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그들 역시 날 너무도 사랑스럽게 바라봐 줄 때, 사진은 그때 나오는 거야.”

 

그의 말을 되새길수록 인물 사진이란 더욱 어렵게 다가왔다. 해설을 꼼꼼히 읽고도 다시 마주하면 아리송한 수학 문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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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인의 SNS에서 우연히 본 이라선에 끌린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다부진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사진과 더불어, 'About Forty Years' 라는 제목을 지닌 사진집에 대한 설명은 이러했다.

‘니콜라스 닉슨이 주변 인물들을 40년 동안 담아낸 사진집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한 달도 아니고 무려 40년이라니, 이 사진집에는 구하던 답이 있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비밀스러운 서재에서 답을 찾다 – 사

Easy Like Sunday. 그래서 ‘이라선’.

일요일처럼 편안한 맘으로 사진집을 볼 수 있는 서재를 그리며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사진집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는 배(船)’라는 의미도 담겼다고.

비밀스러운 서재에서 답을 찾다 – 사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과연 고풍스러운 서재가 연상된다. 다소 톤이 어두운 조명에 팥처럼 붉은빛이 도는 카펫과 난로는 훈기를 자아낸다. 안락해 보이는 녹색 벨벳 의자 너머로는 눈에 돋보기를 걸쳐 쓰고 뜨개질에 열중하는 어느 북유럽 할머니가 있을 것만 같다.

 

열 평 남짓한 공간의 모든 면이 서가로 둘러싸여 있는데, 선반의 모양이 제각기 다르다. 선반 위 사진집들의 배열도 일률적이지 않다. 누워있거나, 앉아있거나, 혹은 서 있거나. 그 모습이 빽빽하지 않아 보통의 서재가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답답한 인상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비밀스러운 서재에서 답을 찾다 –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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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된 사진집은 포토그래퍼인 주인장이 직접 고른다. 도쿄, 뉴욕 등 해외 도시를 직접 방문하여 모셔온 귀하신 몸들도 많다. 그런 귀하신 몸이지만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본래의 비닐 포장을 모두 뜯고 표지 정도만 손수 래핑을 한다는 주인장의 배려가 섬세하다.

비밀스러운 서재에서 답을 찾다 –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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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게 둘러보다가 눈에 띄는 몇 권을 집어 들었다. 처음 펼쳐 든 것은 역시 'About Forty Years', 알고 보니 나를 이곳으로 부른 얼굴 사진은 사진을 시작한 해에 찍어둔 작가 본인의 자화상이다. 책을 한 장씩 찬찬히 넘겼다. 닉슨 부부와 자녀들, 오랜 이웃들의 초상. 사진 안에는 그들의 40년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아프고 화난 모습도 버리지 않고 담아낸 닉슨 가족의 모습이 뭉클했다. 사진 위로 어려 있는 작가의 애정과 진심이, 책장을 넘기는 손끝으로 묻어난다. 그동안 모르는 사람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프레임 속으로 들이려 했던 나의 오만이 부끄러웠다. D가 맞았다. 사랑이 필요했던 것을. 마지막 장을 덮자, 한결 지긋한 눈빛을 지닌 노인이 된 작가가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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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오가던 사람들도 떠나고 나도 마저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주인장에게 소장할만한 사진집 추천을 조심스레 부탁했다. 세 번째로 소개한 책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엄마, 라는 이름의 사진집이었다.

 

담담한 척 계산하고 나왔지만, 등골이 휘는 듯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배낭이 무거울 뿐이지 마음은 가볍다고, 자기 위안을 하며 전화를 걸었다. 사랑의 눈으로 나를 기꺼이 바라봐 줄 가장 가까운 그 사람에게.

 

“웬일로 먼저 전화야? 무슨 일 있니?”

 

“일은. 그냥. 있잖아, 설에 가면 우리 사진 많이 찍자.”

 

뭘 잘못 먹었느냔 엄마 말에 우리는 함께 웃었다. 기와지붕 아래로 어스름한 저녁이 들고 있었다.

비밀스러운 서재에서 답을 찾다 –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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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선

  1. 서울 종로구 통의동 7-13 / 매일 12-늦은 8시. 월요일 휴무.
  2. 공간이 좁다. 느긋하게 즐기려면 붐비는 주말보다 평일을 추천. 한 달에 한번 열리는 북 토크 일정도 확인하자.

에디터 정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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