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도록 푸른 마을 쉐프샤우엔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서 담은 사진. |
두툼한 젤레바 한 벌
비 오는 날, 짙어진 도시의 빛깔. |
리프 산에 숨겨진 작고 조용한 도시, 쉐프샤우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가방부터 뒤적거렸다. 두툼한 옷이 절실했다. 크리스마스 무렵 도착한 그곳은 상상보다 훨씬 으슬으슬하고 추웠다. 시리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필 하늘에 구멍 난 듯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옅은 하늘색을 띠던 마을이 빗물에 적셔져 짙은 파란색을 띠었다. 가방 속에 있는 옷을 몽땅 꺼내 침대 위에 늘어놓았는데도 마땅한 옷을 발견하지 못했다. 옷부터 사 입기로 하고 호텔을 나섰다. 숙소 주인은 곧 해가 저물 테고 지금 나가면 비에 옷이 다 젖을 거라며 말렸지만 두꺼운 옷 없이 잠이 들었다가는 입이 저만치 돌아가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냅다 뿌리치고 외출을 감행했다.
골목길에 즐비한 상점 |
모로코의 전통 의상, 젤레바. |
골목길에 늘어선 상점에서는 손으로 만든 공예품, 보습력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아르간 오일, 직접 짠 담요와 카펫, 모로코 사람들이 주식으로 삼는 빵 홉즈 따위를 팔았다. 골목길을 한참 헤집고 다니다 옷 가게도 겨우 찾아냈다. 옷이 몇 벌 없는 조그만 가게였다. 콧수염을 풍성하게 기른 아저씨가 나와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어투로 젤레바(긴 외투에 뾰족한 고깔모자가 달린 모로코의 전통 의상)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걸쳐 보았다. 기장이 길어서 다소 거추장스러운 느낌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잘 어울렸다. 모자를 뒤집어써 보니 꼭 마법사 같아서 신비로움이 일었다. 게다가 잘 먹고 다닌 덕에 두둑이 붙은 살집도 적당히 가려져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추위를 피하려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호텔 주인의 예상대로 신발이며 옷자락이며 흠뻑 젖고 말았지만, 옷 한 벌은 제대로 건졌다.
마을이 푸른빛을 띠는 이유는?
쉐프샤우엔 구시가지 메디나 안은 파랗지 않은 곳이 없다. |
다음 날 아침, 젤레바를 입고 길을 나섰다. 비가 한바탕 쓸고 간 쉐프샤우엔은 평화로웠다. 간밤엔 계단을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지더니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구시가지인 메디나 안은 발 닿는 곳곳이 푸른빛이었다.
거리의 벽은 지중해를 닮은 하늘색, 독특한 정취를 풍기는 문은 선명한 청색, 비탈진 계단은 퍼런 색.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이 파랬다.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푸른색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을이 푸른색으로 덮인 데는 다양한 설이 있다. 다소 엉뚱하게 느껴지지만 곤충을 쫓기 위한 채색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좀 더 유력한 건 유대인과 관련된 것, 가장 그럴듯하게 들린다.
도시가 파랗게 물든 이유, 유대인 때문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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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슬림이 차지하고 있던 스페인 땅을 되찾기 위해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이 합세해 전쟁을 벌였다. 종교 박해를 받은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모로코로 이주해 터를 잡으면서 산간마을이었던 쉐프샤우엔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이슬람 전통의 색인 초록색을 덮고 그들이 신성시하는 파란색으로 집을 채색했는데 그것이 번져 도시 전체가 푸르게 변했다고. 이스라엘 건국 이후 유대인은 이 땅을 떠나고 없지만 파란 집들은 그대로 남아 여행자들의 발길을 끈다. 쉐프샤우엔에는 황톳빛 성벽 카스바, 전통 목욕탕인 함맘, 오래된 모스크 말고는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지만 마을 그 자체가 굉장한 구경거리다. 지도는 잠시 내려두고 정처 없이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쉐프샤우엔은 고양이 천국
모로코는 고양이 천국 |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 |
여유로움이 한껏 묻어나는 눈부신 마을이 더욱 사랑스러웠던 이유는 고양이 때문이다. 모로코 여행 중에는 언제 어디서나 길고양이를 만날 수 있을 만큼 자유로운 고양이들이 많은데 쉐프샤우엔은 특히 유난했다. 상점의 판매용 카펫 위에 똬리 틀고 앉은 고양이, '스읍 스읍' 모로코 사람들이 고양이 부르는 소리를 내면 강아지처럼 도톰한 발을 내디디며 달려오는 올망졸망한 고양이. 끼니 때가 되어 식당에 앉으면, 같이 먹자는 듯 곁에 웅크리고 앉아 음식 나눠주길 기다렸다. 슈렉에 등장하는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눈빛을 하고서. 간혹 용기 있는 녀석은 뒷발에 힘을 한껏 주어 벌떡 일어선 다음 앞발로 톡톡 치기도 했다. 모른 채 하면 더 세게 툭툭 치거나 식탁에 고개를 쑥 내밀었다.
(왼쪽) 추위를 이기려 옹기종기 모인 고양이들. (오른쪽) 식당에서 만난 고양이. 같이 먹을래? |
모로코 여행을 떠나기 전 <나고 고양이와 함께 동네 한 바퀴>라는 책을 읽었다. 책 속에는 나고라는 가상의 세계가 등장한다. 마을 소개와 함께 그곳에 사는 고양이들의 모습이 세세하게 담겼다. 나고라는 마을이 실제 존재하는지 찾아봤을 정도로 풍경이 세밀하고 생생하게 그려진다.
나고 같은 고양이 마을이 있다면 기꺼이 모로코 여행을 제쳐두고 떠날 마음이 있었는데 쉐프샤우엔이 꿈꾸던 고양이 세상, 나고였다. 여기가 바로 고양이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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