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정원, 지베르니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클로드 모네의 그림 『수련』을 보다가 문득 지베르니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늑한 시골 마을에 있는 모네의 집이 궁금해졌다. 그림 속에 드러나지 않은 장면들을 어렴풋이 그려보았다. 드넓은 정원과 일본식 다리가 놓인 연못. 그리고 그 위에 동실동실 떠있는 수련들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림을 보다 보면 그림 속 풍경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일 때가 있다. 그림 한 점이 나를 지베르니까지 데려다 놓았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 |
생 라자르 역에서 지베르니로
생 라자르 역에 섰다. 전광판을 살피며 베르농으로 향하는 열차의 플랫폼이 정해지길 기다렸다. 역 안은 수시로 드나드는 기차들과 교외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플랫폼에 서있는 기차를 보며 모네의 그림 『생 라자르 역』을 떠올렸다. 140년 전에는 그가 이 역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겠지. 연신 수증기를 내뿜어 자욱한 연기로 뒤덮인 오래전의 역사가 오버랩 되었다. 잠시 딴청 부리는 사이 플랫폼이 정해졌다. 19번. 멀찌감치 떨어진 플랫폼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열차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8시 20분에 출발했다. 어기적어기적 움직이다가 역을 벗어나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따듯한 볕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다가 허둥지둥 내렸다.
(왼쪽) 역과 모네의 집 근처를 오가는 열차. (오른쪽) 모네의 집과 정원의 이정표 |
셔틀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역 앞 카페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준다는 푯말을 보고 잠시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괜한 모험은 하지 않기로 했다. 셔틀버스는 모네의 집 근방의 공터에 여행자들을 내려놓고 유유히 사라졌다.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한 방향으로 향했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초행길에는 지도를 펼치는 것보다 대세에 따르는 게 훨씬 빠를 때도 있다. 그들을 따라갔더니 역시나, 모네의 집 앞이었다.
(왼쪽) 모네의 집 (오른쪽) 1840년부터 1926년까지 모네가 이곳에 살았다. |
모네가 살던 집과 정원
클로드 모네는 43세부터 죽을 때까지 이곳에 살았다. 쉼 없이 그림을 그렸고 널찍한 정원을 돌보며 생을 아름답게 가꾸었다. 집안은 여전히 그의 온기로 가득했다. 잠시 동네 마실 나간 듯, 금방이라도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방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화가의 집답게 그림이 빼곡하게 걸렸다. 가느다란 눈매의 일본 여인을 그린 그림이 침대 머리맡을 차지했다. 일본의 풍속화가 꽤 여러 점이었다. 당시 유럽의 화가들은 일본 문화에 단단히 심취해 있었다. 모네뿐 아니라 고흐와 고갱, 마네, 드가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멈춘 액자 속에 반가운 얼굴도 보였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모네의 모습.
아늑한 침실. 곳곳에 모네의 그림이 걸려 있다. |
(왼쪽) 동양화가 걸린 집 내부 (오른쪽)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듯 생생한 모습 |
야생화가 만발한 초록빛 정원을 거닐었다.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계절이어서 한걸음 한걸음 떼는 게 곤욕이었다. 꽃의 정원 뒤편으로 돌아나가면 물의 정원. 냇물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가니 커다란 연못이 나왔다. 모네의 그림 속 거기였다. 수련 잎이 모네의 그림처럼 무리 지어 떠있었는데, 연못 위엔 한 사내가 한결같은 풍경을 유지하느라 고군분투 중이었다. 커다란 뜰채를 들고 잡풀을 한 움큼 건져냈다. 안타깝게도 수련이 피는 계절은 아니었다. 꽃 구경은 못했지만 모네가 이 연못을 왜 그토록 아꼈는지 알 것 같았다.
(왼쪽) 모네의 집과 정원 (오른쪽) 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네의 정원 |
(왼쪽) 모네가 잘 했던 것 두 가지, 정원 가꾸기와 그림 그리는 일. (오른쪽) 수련 연작 속 그 연못, 제철이 아니라 수련은 없었다. |
마음이 가는 묘한 그림, 수련
차분한 시골 마을 지베르니에 머물며 그림에 몰두했던 그는 수련만 무려 250여 점을 그렸다.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수련 연작은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것을 뜻깊게 생각해 친구이자 정치인이었던 클레망소를 통해 수련을 나라에 기증하기로 했다. 단, 작품을 시민에게 공개하고 하얀 공간에 전시해야 하며 자연광 속에서 감상하도록 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의 뜻에 따라 만든 전시 공간이 오랑주리 미술관의 모네 전시실이다. 하지만 애석하게 오랑주리 미술관의 개관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 |
가까이 담은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 일부 |
수련 연작은 여덟 폭의 그림이다. 새하얀 홀에 네 점씩 걸렸다. 그림 한 점이 벽 하나를 오롯이 차지한다. 참 신기한 그림이다.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보면 물감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수련이며 연못이며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큼직하고 두터운 붓질로 표현한 그의 연못은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보인다. 『수련』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베르니의 평화로움이, 모네의 평온한 마음이 묻어난 것일까.
(왼쪽) 간단한 점심, 키쉬와 그린 샐러드 (오른쪽) 화창한 날씨에는 야외 좌석이 진리 |
마침표를 찍어 버리면 다시 못 올 것 같아서
모네의 집에서 멀지 않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공기가 산뜻해 볕이 잘 드는 야외 테이블에 궁둥이를 붙였다. 뽀송뽀송한 볕을 만끽하며 느긋하게 누리는 점심은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고 즐거웠다. 지베르니를 찾는 사람은 많았지만 달랑 집 구경만 하고 자리를 뜨는 이가 대부분이어서 마을 곳곳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클로드 모네 길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걸어 인적이 드문드문 뜸해질 때쯤 오래된 교회가 나왔다. 교회 뒷마당이 공동묘지인데, 모네도 여기 잠들어 있다. 정든 마을, 좋아했던 꽃들에 둘러싸여 영원히 잠들었다. 아주 먼 데서 일부러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면 어딘가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
(왼쪽) 마을 사람들이 드나드는 성당 (오른쪽) 꽃들에 둘러싸인 클로드 모네의 가족 무덤 |
(왼쪽) 모네의 얼굴 (오른쪽)다음엔 지베르니에서 꼭 하룻밤 묵어야지! |
집과 사랑해 마지않던 정원, 그의 마지막 모습까지 보고 나니 어느덧 해가 기울고 있었다. 버스를 타러 돌아가는 길, 아담한 호텔들이 어른어른 밟혔다. ‘푸근한 시골 아주머니가 내주는 요리로 두둑하게 배를 채우고 하룻밤 푹 쉬어갈까?’ 잠시 고민하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마침표를 찍어 버리면 다시 못 올 것 같아서, 아쉬움을 남겨둬야 그리워지는 법이니까. 서운함을 덮어두고 다시 역으로 향했다.
(왼쪽) 지베르니 마을 풍경 (오른쪽) 동네 산책길에 만난 풍경 |
Maison et jardins de Claude Monet 클로드 모네의 집과 정원
84 Rue Claude Monet, 27620 Giverny
02 32 51 28 21
09:30-18:00 (4~10월, 입장료 9,50 €)
Musée de l'Orangerie 오랑주리 미술관
Jardin Tuileries, 75001 Paris
01 44 77 80 07
09:00-18:00 (화요일 휴관, 입장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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