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에 오점 남긴 ‘하이재킹 완전범죄’
세계의 콜드케이스
<7> 노스웨스트305편 공중납치 미스터리
여객기 납치한 의문의 사내, 20만달러 챙겨 비행 중 뛰어내려
FBI, 헬기까지 동원 수색했지만 생사 확인도 못하고 수사 미궁에
2016년 45년 수사 마침표 찍고 최장 기간 미해결 사건 불명예로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미국 노스웨스트항공 305편 공중납치 용의자의 몽타주. 의문의 남성은 범행 당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오른쪽 그림은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해 작성된 몽타주. FBI 제공 |
1971년 11월 24일, 미국 오리건주(州) 포틀랜드 공항을 출발해 워싱턴주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노스웨스트항공 305편(보잉 727기)은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들뜬 분위기였다. 좌석 맨 마지막 줄에 앉은 의문의 사내만 빼고. 항공기가 순항 고도에 진입하자 그는 승무원 플로렌스 새프너를 불러 쪽지를 건넸다. 자신이 폭탄을 가지고 있으니 지시를 따르라는 협박이었다. 사내는 새프너를 옆자리에 앉힌 뒤 가방을 열어 다이너마이트 막대도 직접 보여줬다. 그러고는 작은 배낭에 20달러 지폐 20만달러를 담고 낙하산 4개를 준비하라고 요구했다. 장거리 도주를 위한 항공기 급유도 요청했다. 새프너는 기장에게 비행기가 납치됐다고 바로 보고했고 기장은 즉시 관제탑에 하이재킹 사실을 알렸다.
오후 6시 항공기는 시애틀 공항에 착륙했다. 납치범이 승객 35명 전원과 스튜어디스 2명을 풀어 주자 경찰은 그의 요구대로 낙하산과 현금 가방을 전달했다. 기름을 가득 채운 항공기는 다시 이륙했고, 범인은 승무원 전원을 조종실에 감금한 뒤 멕시코로 항로를 돌리라고 명령했다. 비행 고도를 최대한 낮추고 최저 속도로 운항하라는 지시도 곁들여졌다. 항공기가 네바다주 리노 인근을 비행하고 있을 때 기장은 기체 뒤쪽이 갑자기 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의문의 사내가 문을 열고 뛰어 내린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그의 낙하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美 사상 최대 수색 작전
1980년 워싱턴주 컬럼비아강 인근에서 8세 소년 브라이언 잉그램이 발견한 지폐 조각. FBI 제공 |
그날 오후 10시15분, 노스웨스트 305편은 리노 공항에 도착했다. 연락을 받은 수사팀이 기체를 물샐 틈 없이 수색했지만 범인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내의 것으로 보이는 넥타이와 담배꽁초만 남아 있었다.
경찰은 승무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낙하지점을 추정했다. 유력한 장소는 포틀랜드 북동부 ‘기퍼드 핀쇼 국유림’. 예상 동선 주요 도로에 검문소가 설치됐고 헬리콥터를 동원한 공중 수색도 뒤따랐다. 그러나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다급해진 미 연방수사국(FBI)은 범인에게 지급된 지폐의 일련번호를 공개했다. 항공사 측도 돈이 발견될 경우 15%를 신고자에게 사례금으로 지급하겠다고 공언했다.
사건 발생 9년이 흐른 1980년, 여덟 살 소년 브라이언 잉그램이 사내의 흔적을 찾아냈다. 수사기관이 예상한 낙하지점으로부터 60㎞ 떨어진 워싱턴주 컬럼비아강 인근에서 20달러 현찰 뭉치 5,800달러를 발견한 것. 어두운 밤 낙하산 강하를 시도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터. 하지만 용의자의 시신도, 낙하산 잔해도 수거되지 않았다.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노스웨스트항공 305편 공중납치 용의자가 범행 당시 착용했던 넥타이. 미국 백화점 JC페니가 판매한 것으로 용의자는 낙하 직전 넥타이를 벗었다. FBI는 넥타이에서 용의자의 DNA를 발견했으나 쓸모가 없었다. FBI 제공 |
스모킹건은 없었다
당초 범인은 금방 잡힐 줄 알았다. 범행 4개월 뒤 사내와 같은 수법으로 유나이티드항공 소속 보잉 727기를 납치해 50만달러를 챙겨 달아난 사건이 일어났다. 용의자 리처드 맥코이는 금세 경찰에 체포됐고, 45년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미 언론은 동일한 범행 방식, 필적이 노스웨스트 305편 납치범과 유사한 점 등을 근거로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맥코이가 노스웨스트 305 납치 수사에 참여한 주방위군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모방 범죄’로 결론이 났다.
현상금을 노린 제보와 증언도 난무했다. 1998년 플로리다주에 살던 조 웨버는 남편 두에인 웨버가 1995년 숨지기 직전 자신이 납치범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조는 남편 사망 후 그의 다른 신분증을 발견했고, 지역 도서관에 비치된 사건 관련 도서에 남편의 메모가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조는 “남편이 종종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악몽을 꿨다”고도 했다. 하지만 FBI는 두에인의 지문이 사고 항공기에서 발견된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범인이 두고 내린 넥타이에서 발견된 DNA 샘플과도 달랐다.
공중납치 이후 노스웨스트 305편의 비행 경로 및 낙하 예상 지점. 빨간색 점선이 305편의 비행 경로이며 파란 원이 용의자 낙하지점으로 추정된다. 9년 뒤 컬럼비아강 주변에서 5,800달러 지폐 뭉터기가 발견됐다. |
2011년 8월엔 오클라호마주에 거주하는 마를라 쿠퍼가 ABC방송 토크쇼에 출연해 “8세 때 일어난 사건이라 기억은 흐릿하지만 최근 부모님과의 대화를 통해 삼촌 린 도일 쿠퍼가 범인임을 확신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마를라의 설명은 이랬다. 그는 항공기 납치 범행 당일 삼촌이 다른 삼촌과 함께 칠면조 사냥을 간다며 나갔다가 이튿날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피 묻은 티셔츠를 입은 채 돌아왔다고 증언했다. 당시 삼촌들이 “우리가 해냈다. 돈 문제는 모두 해결됐다. 우리가 공중 납치에 성공했다”고 소리치며 기뻐하는 장면도 봤다고 했다. 하지만 마를라의 주장 역시 허점투성이였다. 당시 항공기에는 납치범 한 명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승객도 탑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앞서 사내에게 지급된 지폐 일부가 발견된 정황을 감안하면 그의 주장은 더더욱 믿기 힘들어진다.
FBI가 작성한 수배 전단. 40대 중반의 백인 남성을 찾고 있다. FBI 제공 |
결국 두 손 든 FBI
수사당국은 범인을 공중 낙하에 익숙한, 공수부대 출신의 스카이다이버라고 추측했다. 그 뿐이었다. 2016년 7월 12일 FBI 시애틀 지부는 “FBI는 좀 더 우선순위에 있는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자 노스웨스트 305편 사건 수사에 배속된 인력을 조정했다”고 발표했다. 지지부진한 수사에 결국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장장 45년 동안 이어진 사건 수사는 FBI 사상 가장 오랜 시간을 들이고도 해결되지 않은 불명예 기록으로 남게 됐다. FBI 요원들은 납치 항공기 안에서 미확인 지문 66개를 수집했고 모든 목격자를 상대로 조사를 마쳤지만 인상착의 외에는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항공권에 적힌 범인의 이름은 댄 쿠퍼(Dan Cooper). 이 역시 모두 위조된 것으로 수사 결과 밝혀졌다. 한 매체는 사내의 정체를 D B 쿠퍼라고 특정했으나 FBI는 “D B라는 이니셜을 가진 인물을 수사하기는 했지만 사건과 관련이 없었다”고 일축했다. 미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인 ‘하이재킹 완전범죄’는 공식적으론 이렇게 막을 내렸다.
물론 민간 조사팀에 의한 비공식 수사의 명맥은 이어지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제작자 토머스 콜버트가 주축이 된 사설탐정팀은 2018년 육군 참전용사 출신 조종사 로버트 랙스트로가 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랙스트로가 FBI와 지역 언론에 보낸 서한에 암호문이 숨겨져 있었으며 이를 해독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지금까지 FBI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신빙성이 적다는 의미다.
이름도, 낙하산도, 돈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범행 동기도 미궁이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의문의 사내가 노스웨스트 305편을 탑승할 때 사용했던 항공권. 손으로 직접 쓴 ‘댄 쿠퍼’라는 이름이 보인다. FBI 제공 |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