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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한국일보

100년간 3대가 대를 이어 1000년의 소리를 복원하다

<49> 전북 정읍 전승명가

<49> 정읍 전승명가

국내 유일 장구·북 수공제작자 서인석씨

100년 3대째 이어 전통악기 제작

100년 가게서 1000년 소리 복원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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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샘고을시장 내 전승명가 전경.

전북 정읍 샘고을시장에 들어서면 여느 전통시장과 달리 장구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덩~기덕 덩더러러, 궁~기덕 궁떠떠떡.' 보통은 남도 굿거리장단이다.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 악기전으로 닿는다. 장구와 북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있는 '전승명가'를 놓칠 리 없다. 무형문화재 제12호 악기장 서인석(62)씨가 대를 이어 3대째 운영하고 있는 가게다. 10평 남짓한 가게 안으로 들면 50여종의 장구와 북이 빼곡하게 쌓여 있다. 한 손에 잡히는 액세서리 북과 장구부터 어른 몸통만 한 장구까지 다양하다. 대금과 피리, 퉁소, 가야금은 물론 농악놀이에 필요한 상모와 고깔 등 150여종의 악기와 소품, 풍물제품 수천 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런 시골 시장통에서 과연 장사가 될까’ 싶지만, 전국에서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인구 10만의 작은 마을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지만, 정읍이 남도 서부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발달한 농악, 우도농악의 발상지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읍내 시장에 악기전이 있는 것도, 이곳의 장구와 북이 전국구 명성을 얻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전승명가가 유명한 것은 수작업으로만 장구와 북을 만들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씨는 “이곳 악기전을 50년째 지키고 있다”며 “100% 수작업으로 제작할 수 있는 곳은 전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인데, 우리가 그중 하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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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명가 서인석 명인이 장구 외부 표면을 다듬고 있다.

똑같은 장구는 없다 ‘100% 수제작’

이 공간은 국악기 판매점인 동시에 서씨의 작업장이다. 장구와 북을 제작하거나 수리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그가 만지는 장구와 북들은 더러 그림을 입고 있다. 흰색 오동나무에 뜨거운 인두를 이용하거나 물감을 사용해 각종 그림을 그려 넣은 것들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도료를 칠하지 않은,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난 흰색 몸통의 장구들이 눈에 띈다. 서씨는 “장구는 농악뿐만 아니라 각종 제례와 굿 등에 사용돼 용도에 따라 크기와 그림 색감이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장구와 북을 만드는 손이 붓글과 그림에도 능해야 했던 이유인지도 모른다. 용, 연꽃, 무궁화, 단청무늬 등 제례나 굿 등 그 용도에 어울릴법한 그림이 장구 몸에 문신처럼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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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샘고을시장 내 전승명가에서 서인석 명인 부부가 장구 줄매기를 하고 있다.

전승명가에서 판매하는 장구는 크게 세 가지. 학생들이나 일반인들의 교육용으로 사용되는 보급형은 반(半)수작업으로 제작된다. 수작업 비율이 더 올라가는 중급형은 전문 농악단이나 풍물패들이 사용하는 장구다. 매년 100여점이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고급형은 악기장 서씨가 전 공정을 손으로 만든다. 주로 박물관이나 국제전시회에 출품하거나 장구명인, 유명 무속인의 주문을 받아 제작한다. 연간 5~10점에 불과하다.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보급형은 수십만원대, 중급형은 수백만원, 고급형은 수천만원에 달한다. 고려청자와 조선시대 도자기로 만들어진 장구는 억대를 호가한다.

조립도 없다… ‘원피스’ 장구

장구 제작은 오동나무를 선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30년 이상 된 나무를 가져와 적당한 크기로 잘라 2~3년 동안 그늘에서 말린다. 잘 건조된 오동나무를 수천 번의 망치질과 수만 번의 대패질로 파고 깎아서 장구 모양을 만든다. 이 작업은 최소 6개월, 길게는 2~3년이 걸린다. 서씨는 “기계를 이용해 만든 장구는 나무를 가로로 깎아 세 토막에서 다섯 토막으로 조립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전승명가 장구 몸통은 하나의 통나무를 깎아 만든다”며 “이게 가장 큰 차이”라고 말했다. 수작업 장구는 나뭇결에 따라 세로로 깎아서 만든다. 깊게 깎아 만든 장구통이 정읍 장구의 특징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한 통으로 만든 전승명가의 장구는 울림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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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전승명가 전수관에 서 건조 중인 장구 제작용 목재들..

서씨는 “오동나무는 가볍고 단단해도 통기성이 있다”며 “오래 말릴수록 단단해져 청명한 소리를 낸다”고 설명했다. 오동나무 장구통에 가죽을 씌워 제작한 장구는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오동나무로 만든 몸통으로 공기가 통하기 때문이다. 장구에는 황소가죽만 쓴다. 서씨는 전국 도축장에서 황소가죽을 직접 가져와 직접 가공한다.


장터 안에 자리 잡은 가게에서도 제작 작업은 하지만 오동나무를 다듬는 거친 작업은 이곳에서 3㎞ 떨어진 ‘재인청’에서 이뤄진다. 정읍시 상평동 칠정마을에 자리 잡은 공간으로, 전승명가의 악기 제조공장이다. 악기 제작에 필요한 오동나무와 소가죽 등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모습을 밖에서 볼 수 있고, 작업장으로 들면 서씨의 조부가 사용하던 대패와 끌, 톱 등 도구 50여명이 정리돼 있다.


이곳은 장구만 만드는 작업장에 그치지 않는다. 전수, 후학 양성 공간이기도 하다. 100㎡ 남짓한 작업장에는 조부가 제작한 장구 모형부터 현재 학생들이 만든 장구와 북 등이 전시돼 있는 이유다. 서씨는 “매년 전국에서 모여든 호남 우도농악과 악기 제조법을 배우러 온다”며 “그들이 숙식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전수생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객이 아니더라도 일반인들도 일주일가량 머물면서 농악과 풍물을 배우고 직접 악기를 제작해 볼 수 있다.

3대 '정읍장구', 4대 계승 순조로워

전국에서 장구 좀 친다는 이들이 전승명가를 찾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서씨가 정부 공인 악기장인 것이 첫째 이유겠지만, 한 세기를 걸친 장인의 숨결이 전승명가의 장구와 북을 통해 흐르는 덕분이다. 100년 전통의 전승명가 국악기 제조기술은 1대 서영관(1884~1973) 명장으로부터 시작했다. 정읍에서 서당을 운영하며 마을의 대소사를 직접 챙기던 그는 손재주가 좋은 소목장으로 각종 건축은 물론 악기 제작과 풍물 연주자로 명성을 얻었다. 정읍농악을 이끌면서 장구와 북 등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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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샘고을시장 내 전승명가에 걸린 선대 명인들 사진

2대 서남규(1925~2005) 명장은 선대에서 물려받은 기술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상업화를 나섰다. 1970년에 샘고을시장(당시 제일시장)에 터를 잡고 악기 제작과 기술 개발, 악기 보급에 힘썼다. 그 덕에 정읍 장구는 전국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한때 큰 부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군부독재 정권이 장기화 하면서 어려움이 시작됐다. 서씨는 “ 80년대 군부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40~50명이 한데 어울리는 농악이 힘을 잃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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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샘고을시장 내 전승명가에서 4대째 물려내려온 장구 제작용 도구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것을 꺼린 정권 영향으로 농악 놀이가 사라지고 4명이서 하는 사물놀이가 번성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산업화로 이농이 심화하면서 농악단이 급감했고 장구와 북 등 국악기 판매도 줄었다. 서씨는 “90년대 들어선 중국산 장구 등이 수입되면서 국악기 제조업체는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남 창호(35)씨가 가업을 잇겠다고 나서 큰 걱정은 없다. 서씨는 “‘문화가 이대로 가면 우리 대에 끊긴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시던 아버지 말씀에 지금까지 달려왔다”며 “아들이 정읍장구를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악기가 될 수 있도록 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악기 세계화에도 구슬땀

선친의 유지에 이어 아들 어깨 위로 부린 짐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을 터, 서씨는 지난 2015년 전북 무형문화재 제12-2호, 악기장 칭호를 얻은 뒤 ‘후대로 이어지는 전통’ 만들기에도 속도를 붙이고 있다. 한번 즐기고 마는, 어릴 때 한번 배우고 마는 전통이 아니라 대대손손 지속 가능한 문화로 만드는 일이다. 관련 전통문화 자료 수집과 정리는 물론 정읍재인청, 토속공예체험장, 전통문화센터 운영으로 국악기 제작과 우도굿 전승에 힘을 쏟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 등의 전통악기 제조사들과 고유제작 기법을 교류하면 국악기 세계화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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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샘고을시장 내 전승명가 내부에 각종 악기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다.

서씨는 국악기의 세계화에도 그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다. 최근 프랑스 한 음악가로부터 브라질 전통악기인 꾸이까(Cuica) 제작을 의뢰 받아 만들었는데, 평가가 나쁘지 않고 본인 스스로도 ‘느낌’이 괜찮아서다. 꾸이까는 드럼 모양의 작은 북에 대나무 관을 대고 가죽으로 문질러 원숭이 울음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내는 악기다. 서씨는 “보통의 꾸이까는 쇠와 고장력 비닐 소재로 만들어지는데, 오동나무와 쇠가죽, 국산 대나무로 만들어 자연을 닮은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 호평받았다”고 말했다. 여세를 몰아 그는 내년 광주비엔날레에 한국의 악기 제조기술로 탄생한 브라질 전통악기 꾸이까를 출품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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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샘고을시장 내 전승명가 서인석 장인인 만든 장구

밖에서 인정받으면 받을수록 그의 관심이 쏠리는 곳은 ‘과거’다. 서씨는 요즘 천년 전 고려시대 만들어진 장구를 보며 당시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려청자로 만든 장구는 중간에 목이 없다. 장구 중간에 둥근 띠 모양의 목이 있으면 장구 소리가 멀리가지 못하고 웅웅거리지만 목이 없으면 궁채(왼쪽)에서 열채(오른쪽)로 소리가 이어져 울림이 깊고 큰 장구 소리를 낼 수 있다. 서씨가 목이 없는 장구를 만든 이유다.


서씨의 꿈은 중국의 악기창처럼 국악기 제작 기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교가 설립되는 것. 국내 대학에 국악학과는 있어도 제작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은 없다. 서 명인은 "국악기제작학교가 설립되면 전통 악기 제작법 전수는 물론, 국악의 세계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읍= 김종구 기자 sor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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