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도시남의 시골집... "주말 나만의 힐링 명소죠"
충남 보령에 위치한 '멀리'는 작은 마을의 오래된 농가 주택을 고친 집이다. 집주인 김용성씨는 주중에는 대전에서, 주말엔 이 집에서 보내는 5도 2촌 생활자다. 송옥진 기자 |
대전에 사는 직장인 김용성(44)씨는 매주 금요일 퇴근길, 150㎞ 떨어진 먼 곳으로 차를 몬다. 목적지는 멀리. '멀리(대지면적 1,057.9㎡ 연면적 79.3㎡)'는 충남 보령에 있는 김씨의 시골집이다. 주중에는 직장과 차로 10~1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주말에는 멀리에서 생활한다. 흔히 말하는 '5도 2촌'(닷새는 도시, 이틀은 농촌) 생활이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보령호, 6㎞가량 펼쳐진 벚나무 터널을 지나 코너를 돌면 눈앞에 짠 하고 등장하는 그림 같은 집. 파란 하늘, 초록 산을 배경으로 빨간 지붕을 얹은 흰색 집이 단정하면서도 화사하다.
카페? 스테이? 집 같지 않은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왼쪽에 위치한 이 집의 주방. 일주일에 평균 이틀만 생활하는 집이라 꼭 필요한 가전 제품만 두었다. 송옥진 기자 |
멀리의 첫인상은 폐가에 가까웠다. 서류상 주인만 있을 뿐 오랜 기간 방치돼 있던 농가 주택이었다. 하지만 오래된 시골집만 찾던 그에게는 원석이었다. 이 집을 본 아버지는 '저런 집을 도대체 왜 사냐'고 극구 말렸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그는 "돈으로 사기 힘든, 시간이 키우는 것들이 있다"며 "오래된 것에서 느껴지는 울림이나 감동을 좋아해서 5도 2촌 생활을 할 집으로 애초부터 새 집이 아닌 헌 집만 찾아 다녔다"고 했다.
곧 무너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집, 그게 '멀리'의 첫인상이었다. 김용성씨 제공 |
대공사 끝에 지난해 6월, 그는 멀리에 첫 짐을 풀었다. 분리돼 있던 본채와 별채는 하나로 합쳤다. 뼈대만 제외하고 싹 뜯어 고쳤지만 곳곳에 옛집의 흔적이 남아 있다. 본채와 별채가 합쳐지며 별채의 한쪽 서까래가 실내로 들어왔다. 다른 공간보다 30㎝ 정도 높은 별채 아궁이 방도 굳이 낮추지 않고,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도록 그대로 두었다. 기존 집 창호 살도 망가진 부분만 수리해 사용했다.
리모델링을 맡은 시공사 피아그림 유원석 대표는 "서까래가 많이 부식돼 있어서 외부로 돌출된 서까래를 다 제거한 뒤, 지붕을 들어올리고 외부 처마 마감을 다시 한 사례"라며 "시골집을 고를 때, 서까래 상태만 양호해도 공사비를 상당 부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길이 12, 13㎝ 이상의 곧은 나무로 돼 있는 서까래가 좋다"고 덧붙였다.
주방에서 바라본 본채. 입구에서 들어와 오른쪽에 위치한 가림벽을 돌면 본채의 유일한 방이 나온다. 김용성씨 제공 |
본채와 별채 사이 공간. 두 건물을 합치며 과거 외부 공간이 실내로 들어왔다. 오른쪽 위, 별채의 서까래가 집 안으로 들어온 모습이 이색적이다. 송옥진 기자 |
마당 쪽에서 바라본 본채와 별채 사이 공간. 뒷산의 대나무가 잘 보이도록 큰 고정 창을 냈다. 송옥진 기자 |
멀리에는 생활의 냄새가 희미하다. 인테리어 덕분이다. 현관문부터 묵직한 보안문이나 철문 대신 가운데 유리를 낀 원목 문을 설치했다. 주말 주택이다 보니 더 과감해진 것도 있다. 바닥재는 컬러 에폭시다. 시골집의 아늑함과 모던한 바닥재가 오묘하게 잘 어울린다. 본채와 별채를 오가는 통로에는 폴리카보네이트로 된 천창을 냈다. 비오는 날, 이 창으로 "더 격렬한 빗소리를 듣기 원해서"다. 빗방울이 지붕골마다 가닥가닥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물받이도 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평균 이틀만 머무르는 집이라, 살림을 최소화한 것도 '집 같지 않은 집'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이 집에는 세탁기, 가스레인지, 밥솥이 없다. 요리할 때는 휴대용 인덕션을 이용한다. 가정집이라기보다는 카페나 휴양스테이처럼 느껴진다.
5도 2촌? 3.5도 3.5촌!
주방과 가림벽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본채의 방. 컬러 에폭시 바닥재가 한옥의 아늑함과 조화를 이룬다. 송옥진 기자 |
두 집 살림은 아무래도 바쁘다. 보통의 5도 2촌 생활인처럼 마당에 농작물을 심지 않았지만 신경 쓸 게 많다. 풀은 뽑아도 뽑아도 무섭게 자란다. 빈 집에도 먼지는 쌓인다. 요즘 같은 장마철엔 돌담이나 배수로도 수시로 살펴야 한다. 손그림·손글씨 작가이기도 한 그는 마당이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쓴다. 영화도 보고 산책도 나간다. 얼핏 보면 도시의 휴일과 다를 바 없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 취향대로 꾸민 집에서 쉬는 것은 밀도가 다르다. 요즘은 야생화 씨앗 2㎏을 뿌려 마당에 조성한 보랏빛 수레국화밭을 구경하는 게 최고의 호사다.
그는 "이틀이 5일을 끌고 가는 느낌이 들 만큼, 이 집 생활이 주는 에너지가 크다"고 했다. 멀리에서 보내는 시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전에는 일요일 저녁에 대전으로 돌아갔다면, 이제는 종종 월요일 오전에 직장으로 바로 출근한다. 그는 "실은 5도 2촌이 아니라 3.5도 3.5촌쯤의 생활"이라고 했다.
본채의 방에서 미닫이 문을 열면 만나는 공간. 마당과 접해 있는 창가에 탁자를 두어,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쓸 수 있도록 했다. 송옥진 기자 |
별채의 방. 옛 아궁이방이라 다른 공간보다 30㎝ 더 높다. 송옥진 기자 |
이 집에 온 지 1년쯤 지나면서 반가운 이웃도 생겼다. 윗집 할머니다. 마침 집 앞을 지나가던 할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목요일쯤 되면 보고 싶고, 토요일인데 안 보이면 걱정되고, 얼굴 보면 반갑고 그러죠." 김씨는 "어느 날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누군가가 이 마을에서 나를 기다린다는 생각에 마음이 뭉클했다"고 했다.
20, 30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에 외지인이 들어왔으니, 벌써 동네 유명 인사가 다 됐다. 처음에는 갑자기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여기는 뭐하는 데냐?"고 묻는 시골동네 분들이었다. 불편할 법도 한데 "텃세라고 하면 텃세고, 관심이라고 하면 관심"이라며 덤덤히 웃어 넘긴다. 그는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마음가짐에 달렸다"며 "혼자 조용히 살 테니까 건드리지 마, 이런 태도로는 시골 생활이 어려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있나요?
김용성씨는 시간이 지나 '멀리'에서의 생활이 좀 더 익숙해지면, 대전 생활을 접고 보령으로 아예 귀촌할 계획이다. 김용성씨 제공 |
김씨는 보령에 연고가 없다. 대전에서 학교를 다녔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다시 대전으로 왔다. 보령에 새 거처를 잡은 이유도 특별하지 않다. 지금 살고 싶은 곳이 마침 여기여서다. "마흔 넘어 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는 왜 여기(대전)에 살고 있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거든요. 태어나 보니 여기여서, 아니면 학교 근처라서, 직장 때문에, 이런 이유가 전부였어요. 내가 살고 싶은 곳이 아니라 그냥 살고 있던 곳이더라고요."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집 뒤에 산이 있을 것, 집에서 차로 20, 30분 거리에 바다가 있을 것, 앞집이나 옆집과 붙어 있지 않을 것. 그리고 주중 생활을 하는 집과 적당한 거리가 있을 것. "대전과 너무 가까우면 왔다 갔다 하면서 머무르지 않을 것 같았고, 또 너무 멀면 자주 안 가게 될 것 같았다"며 "대전과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의 집들만 찾아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5도 2촌을 위한 시골집을 선택할 때는 집 외관만 보지 말고, 거리 등 여러 조건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 멀리의 생활이 좀 더 익숙해지면 보령으로 아예 귀촌할 계획이다.
"저는 도시가 싫어서 떠나온 것도 아니고, 시골이 좋아서 여기로 온 것도 아니에요. 아마 제가 살고 싶은 곳이 마트, 영화관과 가까운 곳이었다면 지금 도시에 살고 있었겠죠. 그냥 제가 살고 싶은 곳을 찾다 보니, 멀리에 와 있는 거예요." 그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은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모두에게 유효하다. "당신은 지금 살고 싶은 곳에 살고 있나요?"
보령=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