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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가구 ‘최후의 동굴 부락’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구이저우 ②서남부 - 안순ㆍ쯔윈ㆍ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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먀오족 ‘최후의 동굴 부락’ 중동묘채 주민이 소를 몰고 나오고 있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귀주 이야기(1994년 한국 개봉)’가 있다. 여주인공 ‘추쥐(秋菊)’가 억울한 일로 소송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를 비판한다. 국내에 개봉하면서 ‘추국’이 ‘귀주’로 돌변했다. ‘구이저우(贵州)’와 아무 상관이 없다. 서기 974년 이족(彝族) 수령 보귀(普贵)가 북송에 귀순한다. 태조 조광윤이 내린 칙서에 처음 ‘귀주’가 등장한다. ‘보귀의 땅’이란 뜻이다. 명나라 건국 후 변경 방어를 위해 군대가 주둔한다. 군대가 주둔한 마을을 둔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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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둔보 중학교 대문의 가면 그림.

구이양 서남쪽 안순(安顺)에 천룡둔보(天龙屯堡)가 있다. 명 태조 주원장이 대규모 병력을 주둔시겼다. 장쑤성 난징 등에 살던 한족이 대거 이주했다. 600년 역사를 지닌 고진이다. 중원문화가 소수민족 근거지로 들어오게 됐다. 중학교 대문에 가면이 그려져 있다. 가면 쓴 장수가 서로 싸우는 담벼락도 보인다. 깃발을 등에 지고 칼과 창으로 싸우는 장면이다. 구이저우 서남부 둔보에만 전래하는 가면극으로, 지희(地戏)라 부른다. 거창한 무대도 없고 그냥 땅바닥에서 공연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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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둔보 지희 공연이 열리는 연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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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둔보의 지희 공연 장면.

전투병으로 온 군인과 식솔이 관객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다. 재앙을 피하고 악귀를 몰아내려는 뜻이 담긴 공연이었다. 사기 진작을 위해 고안됐다. 영웅이 등장하고 권선징악이 주제다. 연무당에 가면 공연을 볼 수 있다. 15분가량 하루에 몇 번 공연한다. 가면이 그려진 마을은 종종 봤지만 공연은 천룡둔보에서만 두 번 봤다. 반주는 북 하나, 담백한 박자에 맞춰 가면의 주인공이 다양한 동작을 선보인다. 경극처럼 화려하지 않고 대사도 많지 않다. 오히려 우리 마당극과 비슷한 느낌도 있다. 캐릭터에 어울리는 옷차림에 가면을 썼다. 이야기 원작은 소설이나 전설, 신화다. 지희문화에 담은 ‘이야기 마당’은 300가지에 이른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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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둔보에서 지희 공연을 하는 배우의 가면과 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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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 가면. 왼쪽부터 주창ㆍ장비ㆍ맹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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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 가면. 왼쪽부터 비간ㆍ달기ㆍ악비.

연무당 벽에 가면이 진열돼 있다. 대충 봐도 100개에 가깝다. 위ㆍ촉ㆍ오의 영웅담 ‘삼국연의(三国演义)’, 상나라 멸망과 주나라 건국을 다룬 ‘봉신연의(封神演义)’, 금나라에 대항한 ‘설악(说岳)’은 한국인도 알만한 원작이다. 관우의 오른팔 주창, 도원결의의 장비, 제갈량이 칠종칠금한 이족 장수 맹획도 있다. 상나라 주왕에 간언한 충신 비간과 경국지색 달기, 항금 장군 악비도 있다. 이름이 익숙한 가면도 있지만 처음 보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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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둔보의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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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둔보 삼교사의 미륵보살과 위태보살.

돌담 집이 많다.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한 골목을 한가로이 걷는다. 주민이 많이 살던 마을에 가면 유교 사당, 불교 사원, 도교 도관이 하나씩 있다. 어느 날 뚝딱하고 한꺼번에 건축하지 않았다. 천룡둔보에는 유불선을 다 모은 삼교사(三教寺)가 있다. 명나라 이후 중국 종교는 통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아치형 대문을 바라보니 미륵보살이 앉아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등을 맞대고 있는 위태보살(韦驮菩萨)도 있다. 중국 사원에는 대부분 등장한다. 도둑이 훔쳐 간 부처 사리를 되찾아온 수호보살이다. 대웅보전 안에는 공자ㆍ부처ㆍ노자 형상이 나란히 봉공돼 있다. 잘 살기만 하면 누구를 믿건 대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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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과수폭포군 대폭포 뒤로 들어가는 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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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시에 속한 전닝부이족먀오족자치현에 카르스트 지형이 선물한 황과수폭포(黄果树瀑布)가 있다. 단체 관광객이 많이 찾는 황과수폭포는 ‘동양 최대’라고 자랑하는 대폭포를 말한다. 위아래, 왼쪽 오른쪽, 앞뒤에서 모두 감상하는 폭포다. 황과수폭포 입장권을 사면 대폭포 외에도 개성 강한 폭포를 다 볼 수 있다. 12년 전 갔을 때보다 지금은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 2016년 EBS 세계테마기행에 방영된 이후 한국 단체 여행객이 더 많아졌다. 최근 1년에 한 번은 꼭 갔다. 단체 여행객과 동선이 겹치지 않으면서 멋진 자연을 흠뻑 즐기는 방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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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교의 수생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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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교의 철련교에서 바라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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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교 은련추담.

아침 일찍 천성교(天星桥)를 찾았다. 폭포군 남쪽은 타방하(打帮河)가 흐른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365개 돌다리 수생보(数生步)를 건넌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적혀 있다. 위인이 태어난 돌도 있다. 한적한 분위기를 따라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마신다. 단체 관광객은 쇼핑 시간에 맞추려고 중간에 나가기도 한다. 철련교(铁链桥)를 넘어 숲과 하천을 따라가면 은련추담(银链坠潭)에 이른다. 은빛 구슬이 줄줄이 떨어지는 폭포이자 연못이다. 나지막한 폭포인데 바위를 타고 물이 사르르 추락한다. 한 방향으로 집중하는 힘이 느껴지는 폭포다. 우기에 가면 포말로 부서지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은련추담 옆 계단을 오르면 드론으로 보는 시선도 느껴진다. 오전 3시간을 촉촉하게 적시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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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과수폭포군의 두파당폭포.

오후에는 대폭포가 있는 북쪽 백수하(白水河)로 간다. 대폭포를 백수하폭포라고도 부른다. 단체 관광객은 대폭포 정문으로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온다. 동선을 그렇게 잡으면 대폭포를 위에서 보는 관람을 놓친다. 상류 쪽 두파당폭포(陡坡塘瀑布) 입구로 들어가면 다르다. 높이는 낮지만 대폭포보다 조금 넓다. 옆으로 100m 넘는 폭포가 쏟아져 ‘우르르 쾅쾅’ 소리가 들린다고 ‘후폭(吼瀑)’이다. 의성어 ‘쾅쾅’은 훙룽(轰隆)으로 표기한다. ‘우렁찬 울림’은 곧바로 대폭포로 이어진다. 두파당에서 쏟아진 물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웅장한 대폭포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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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본 황과수폭포군의 대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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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과수폭포군의 대폭포 앞에서 부이족 공연을 하고 있다.

너비 101m, 높이 77.8m인 대폭포가 눈 밑에 있다. 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폭포는 많지 않다. 멀리서도 굉음이 전달될 정도로 거대하다. 길을 따라 내려가도 폭포는 언제나 그 자리다.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마음껏 관람한다. 아래로 내려가면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 전통 복장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부이족 공연을 본다면 행운이다. 수직으로 떨어진 폭포수는 멀리까지 옷을 적신다. 비가 오지 않아도 비옷을 입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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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과수폭포군의 대폭포 수렴동.

왼쪽으로 올라가 폭포 뒤를 통과해 오른쪽으로 내려온다. 폭포 안쪽으로 활처럼 둥근 동굴이 있다. 밖으로 뚫린 창이 여섯이다. 폭포 창문에 서면 초강력 속도의 물줄기와 굉음이 눈과 귀를 마비시킨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온몸이 다 젖는다. 상상불허, 명불허전이다. 햇볕이 화창하면 대폭포 아래 무지개도 뜬다. 몸에 남은 물방울이 입구이자 출구에 이를 때까지 계속 속삭인다. ‘이런 멋진 폭포 봤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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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시야에 들어오는 동굴 부락 ‘중동묘채’.

전닝부이족먀오족자치현에서 쯔윈먀오족부이족자치현까지 1시간 30분이 걸린다. 소수민족이 포함된 지명을 정할 때는 인구가 더 많은 민족을 앞에 쓴다. 쯔읜에는 ‘최후에 남은 동굴 부락’ 중동묘채(中洞苗寨)가 있다. 상중하 동굴 셋이 있다. 중동에만 사람이 산다. 쯔읜에서 1시간 거리인 패채촌(坝寨村)에 도착해 다시 산길을 달려 고채(高寨)에 내리면 시야에 등장한다. 오솔길을 걸어 40분이면 마을에 도착한다. 높이 50m, 넓이 115m, 동굴 안쪽으로 230m나 되는 공간이다. 대략 17가구 80여 명이 거주한다. 150년 전 하동으로 숨은 먀오족은 1940년대 도둑 떼를 피해 중동으로 피난했다. 전기도 없는 암흑에서 살아왔다. 겨우 밭을 일구며 자급자족했다. 구이저우 깊은 산골 소수민족에 정부의 손길은 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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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부락 ‘중동묘채’의 모습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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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내부의 객잔.

2003년 가을 미국인 노인 한 명이 찾았다. 힘겹게 살아가는 모습에 측은지심을 느꼈다. 마을에 전기가 공급되도록 2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후에도 세 번이나 찾아온 그는 동굴 속 초등학교 교사에게 급여도 후원했다. 크리스마스에 이르러 가구당 800위안을 제공했다. 이 돈으로 소, 양, 닭을 장만해 가축을 길러 생활 기반을 넓혀나갔다. 동굴에 사는 소수민족이 세상에 알려지자 외국인도 많이 찾는다. 객잔도 두 군데 있다. 대학생 봉사활동이나 체험 여행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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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묘채의 아이가 폐교 담장을 발로 차며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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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부락 ‘중동묘채’의 옛 학교 운동장.

중동묘채에서 하루를 묵었다. 대부분 아이와 노인만 산다. 학교도 산 아래로 이전했다. 왕복 4시간이 걸리니 학교 부근에 살고 주말에 동굴로 온다. 어른은 도시로 많이 나갔다. 동네 꼬마들과 옛 학교에서 함께 논다. 폐교된 운동장에는 농구 골대만 쓸쓸하다. 뛰어다니는 아이는 셋뿐이다. 외국인이 왔으니 신이 났다. 말도 조금 통하니 종알종알, 온몸으로 까분다. 대문이 다 열렸고 들어가면 눈인사로 환영한다. 옥수수를 재료로 증류한 술을 준다. 가난한 시절 1년에 10달은 옥수수밥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그때도 옥수수 술은 떨어지지 않았다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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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묘채에서 하산해 하동을 통과하는 길.

밤새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고요한 동굴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천둥이었다. 동굴에서 하룻밤, 잊지 못할 추억이다. 아침부터 소와 산양도 줄줄이 외출한다. 산길 따라 내려간다. 어제 왔던 길 대신 하동을 통과하는 길로 내려간다. 원시림에 겨우 한 사람 통과할 길이다. 약 1시간 30분 걸린다. 이런 길을 오른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중동묘채, 그 오랜 고난이 다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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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봉림 마을에 솟은 봉우리.

이곳에서 남쪽으로 2시간 30분 이동하면 싱이(兴义)다. 검남부이족먀오족자치주 중심이다. 윈난과 붙은 도시로 구이저우 서남쪽 끝이다. ‘이게 진짜 카르스트구나’ 감탄이 나오는 만봉림(万峰林)이 있다. 봉우리가 ‘1만개’로 딱 떨어질 리 없다. 2만개 넘는다는 말도 있다. 봉우리가 ‘만개(滿開)’했다고 표현하면 어울린다. 병풍처럼 다닥다닥 붙은 봉우리도 환상이지만, 피와 땀으로 일군 논밭과 소담스러운 민가도 이국적이다. 관광차로 언덕을 달린다. 관망대는 모두 아홉, 내렸다가 관람하고 다시 달리며 이동을 반복한다. 보통 네 번 정차한다. 관망대 9개를 다 보려면 걸어가는 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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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와 운무가 어우러진 만봉림의 팔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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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밭 위에 맑은 하늘을 드러낸 만봉림 팔괘전. 이곳 유채는 2월이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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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가 지고 붉은 맨땅을 드러낸 팔괘전.

만봉림은 팔괘전만 봐도 본전을 뽑는다. 만봉림 갈 때마다 풍광이 다르다. 팔괘처럼 변화무쌍하다. 유채가 서서히 질 무렵 운무가 봉우리를 살짝 가둔다. 유채가 초록으로 물들 때 파란 하늘 덕분에 방긋 봉우리가 드러난다. 유채가 사라지면 맨땅이 붉게 드러난다. 농사를 짓는 밭이기도 하다. 층층이 가라앉고 동그란 밭은 재미있는 부이족 전설도 만들었다.


마을에 괴수가 출몰해 공포 도가니였다. 어느 날 마을을 지나던 도사가 사정을 듣고 괴수와 한바탕 붙었다. 일진일퇴 공방 끝에 도사는 마지막 필살 무기인 팔괘 나침반을 우레처럼 던졌다. 괴수는 즉사했다. 괴수를 명중시킨 나침반은 공중에서 멋진 포물선을 그리더니 천지창조 신화를 남겼다. 팔괘는 차례로 변신술을 부렸다. 건(乾)은 말, 곤(坤)은 소, 진(震)은 용, 손(巽)은 닭, 감(坎)은 돼지, 이(离)는 봉황, 간(艮)은 개, 태(兑)는 양으로 변해 대지로 떨어졌다. 음양은 천안(天眼)이 되어 해와 달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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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봉림 마을에서 본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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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가 노랗게 뒤덮을 무렵의 만봉림 마을.

관광차는 마을을 통과해 다시 입구로 되돌아간다. 마을 아무 곳에서나 내려 달라고 부탁해 4km 정도 걸으면 딱 좋다. 유채가 핀 길은 포근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끔 운무가 갑자기 사라지고 원래 하늘이 등장하기도 한다. 밭과 집이 바로 붙은 마을은 여유롭다. 유유자적, 터덜터덜 걷다 보면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하나가 된다. 여행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유채가 가장 풍성할 때는 2월이다. 만봉림이 곧 유채는 아니니 1년 내내 어느 계절에 가더라도 좋다. 변화무쌍한 날씨보다 변함없는 ‘언제나 행복’으로 가는 길이 있으니 말이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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