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수ㆍ배우→화가 백현진 “온몸으로 그려요”
PKM갤러리서 회화ㆍ공연 전시
백현진이 14일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 꾸려진 '노동요: 흙과 매트리스와 물결' 개인전 전시장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신지후 기자 |
툭툭툭, 손에 쥔 브러시로 물통의 모서리를 쳐 리듬을 만든다. 그 붓에 초록색 물감을 묻혀 흰 벽을 채운다. 으으음, 콧소리를 낸다. “무심히 던져진 영원한 봄… 엎드려 펑펑 우는 영원한 봄.” 웅얼거림은 노래로 이어진다. 이번엔 조금 진한 녹색으로 벽에 선을 그린다. 노래는 계속 된다. “스르륵 잠이 드는 영원한 봄… 으으음.” 전시장의 하얀 벽면을 ‘영원한 봄’이라는 작품으로 채워가는 백현진(47)의 ‘노동요’다.
화가에서 가수, 배우로, 그리고 다시 화가로. 백현진은 무대와 드라마, 영화, 미술계를 넘나드는 다재다능 예술가다.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로 활약하며 영화 ‘북촌방향’과 ‘변산’, ‘경주’, 드라마 ‘내일 그대와’, ‘붉은달 푸른해’ 등에 출연했고, 2017년엔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상 후원작가로 선정됐다. 어쩌다 이 많은 걸 하게 됐을까. “말로 안 되니까 노래도 부르고, 또 노래로 안 되니까 그림도 그리고요. 그림으로 안 되는 건 영화로도 만들어보죠.”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 열리고 있는 ‘노동요: 흙과 매트리스와 물결’전은 백현진의 이러한 표현 욕구를 십분 살렸다. 회화 60여점 전시와 함께 노래와 몸짓으로 꾸려진 퍼포먼스도 곁들어진다.
회화 중에선 반복되는 무늬를 그려낸 패턴 시리즈가 눈에 띈다. 60여점 중 12점이 ‘패턴 같은 패턴’이란 이름으로 한 데 전시돼 있는데, 비슷한 듯 모두 다른 무늬가 그려져 있다. 캔버스를 360도로 돌리며 그려 상하좌우가 따로 없다. 특정 조합과 배열을 정해놓지도 않았다. 일부러 규격을 가로 93㎝, 세로 93㎝로 일원화한 것도 작품을 무작위, 혹은 의도적으로 자유롭게 조합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백현진 작가 작품 '패턴 같은 패턴' 시리즈 중 하나. PKM갤러리 제공 |
회화 60점은 모두 베이지색 린넨 캔버스로 제작됐다. 언뜻 봐선 흰 캔버스가 아니어서 색감 표현 등에 제한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의도는 명확했다. “20대 땐 비장하게 캔버스를 꽉 채우기도 했는데, 요새 들어선 최대한 ‘덜’ 그리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흰 캔버스를 보면 자꾸 뭔가를 채워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베이지색 린넨을 쓰게 된 겁니다.”
작품 ‘영원한 봄’은 퍼포먼스로 꾸려진다. 별도의 음향 장비나 인물이 개입하지 않고 백현진 혼자의 행위와 목소리로 작품을 채운다. 그림을 그리면서 동시에 노래와 몸짓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이다. 작가의 신체와 붓의 움직임, 노랫소리, 가사가 뭉쳐지며 오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말로 설명할 수 없어서 만든 작품을 굳이 설명하려 들면, 일종의 작품 ‘해상도’를 엄청 떨어뜨리는 거 같아요. 굉장히 조심스럽죠. 대신 헐렁하게 나열된 작품들이 저를 통해 이어질 수 있도록 퍼포먼스를 하려고요.”
PKM갤러리는 백현진의 즉흥적이고 직관적인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전시장 속 작품을 유기적이면서도 불균형하게 배치했다. 전시는 3월 31일까지 이어지며, 퍼포먼스는 매주 수ㆍ토요일 오후(3월20일 제외)에 펼쳐진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