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짐한 시장 뷔페, 아늑한 마을 호텔... 황오동을 아시나요
[이런 여행]
마을여행사 ‘경주두가’ 투어 프로그램
경주 성동시장의 푸짐한 '시장 뷔페'. 일대 황오동은 신라의 터전 위에 근대 도시가 형성된 곳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 인근이지만 관광객의 발길이 많지 않은 곳이다. |
“지금 우리가 걸어온 길 주변을 한 번 둘러보십시오. 다른 지역에 다 있는 딱 한 가지가 없습니다. 뭘까요?” 마을여행사 ‘경주두가’ 해설사 박선영씨가 의도한 답은 지하주차장이다. 원도심, 그러니까 철도가 놓이고 근대적인 도시의 면모를 갖춘 경주 옛 도심에는 지하주차장이 없다. 관련법이 까다로워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땅을 파면 뭐가 나와도 나오게 돼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함부로 파헤치지 못한다. 그 ‘무엇’은 바로 신라시대부터 중첩된 유물. 기와 조각이나 그릇 파편 하나만 나와도 공사는 중단될 수밖에 없다. 경주 황오동 주민들은 그렇게 신라의 터전 위에서 오늘을 살아간다.
하루 평균 5만 명이 이용했다는 옛 경주역. 지금은 작은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
옛 경주역 맞은편 성동시장은 경주의 대표적 제수시장이다. |
경주두가는 2,000년 고도 경주의 역사와 현재 주민들의 삶, 두 가치를 중시하는 마을여행사다. 지난달 30일 ‘여행 가는 달’ 시범 사업으로 진행된 ‘아임 황오동’ 도보 투어에 동행했다.
출발점은 옛 경주역. 1918년 대구를 오가던 협궤열차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경주역은 2021년 12월 시 외곽 건천읍에 KTX역이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오랜 세월 수학여행과 신혼여행객을 실어 나르던 추억의 기차역이다. 하루 평균 5만여 명이 이용하던 역사에는 ‘(구)경주역’과 함께 개통 시기를 담은 ‘경주문화관1918’ 팻말이 붙어 있다. 내부는 작은 갤러리로 이용되고 있다.
옛 경주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성동시장이다. 경주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경주읍성의 동쪽에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다. 1971년 인근 염매시장(염가 판매 시장)을 확장 이전했으니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일대에서 알아주는 제수시장이다. 시장 골목 곳곳에서 경주의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문어와 상어두치를 흔히 볼 수 있다. 도톰한 상어 살을 이용하는 돔베기와 달리 두치는 상어 대가리와 껍질을 쪄서 만든 경주 고유의 음식이다. 여기에 물가자미까지 세 가지는 성동시장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으로 꼽힌다.
경주 성동시장의 푸짐한 '시장뷔페'. 입맛대로 담아 8,000원이다. |
성동시장 문어가게에서 삶은 문어를 손질하고 있다. |
전통시장의 미덕은 누가 뭐래도 푸짐한 인심이다. 성동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시장뷔페’다. 말 그대로 기다란 탁자에 제철 나물무침이며 두부와 생선조림, 소시지볶음과 계란말이, 갖가지 장아찌 등이 가득 차려져 있고, 청국장과 보리밥, 매일 재료를 달리하는 국이 따로 준비돼 있다. 큰 접시에 입맛에 맞게 푸짐하게 담아 1인 8,000원. 맛도 가격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다.
투어는 시장을 빠져나와 경주역과 함께 번성했다 쇠락한 골목을 걸어 ‘최영화빵’ 가게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경주에는 특허를 낸 빵 종류만 40여 가지나 된다. 경주빵 찰보리빵 주령구빵 부처빵에서 최근 논란이 된 십원빵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중에서도 황남빵이 대표적인데, 바로 최영화씨가 일제강점기 대릉원 돌담길에서 가게도 없이 팔던 빵이다. 물론 빵 이름도 없었는데,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며 ‘황남동에서 파는 빵’이라고 황남빵이라 불렸다. 얇은 피에 팥고물이 꽉 찬 황남빵은 하루 묵혀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한다. 원조 경주 찰보리빵 가게도 부근에 있다.
황오동 골목의 '최영화빵'. 최영화씨는 경주의 수많은 빵 브랜드의 원조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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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빵의 원조 '황남빵'. 얇은 껍질에 팥고물이 꽉 차 있다. |
경주찰보리빵을 처음 개발한 단석가 찰보리빵. |
‘경주두가’에서 운영 예정인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 노서동고분군(또는 월성) 잔디밭에서 진행하는 ‘힐링명상테라피’다. 잔디밭에 넓은 수건을 깔고 요가와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다음 단소 라이브 연주에 맞춰 명상을 하는 방식이다. 둥그런 고분 능선을 배경으로 진행하는 것만으로 2,000년 전 신라의 고요함 속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황오동의 매력에 그윽하게 빠져볼 요량이면 도시민박에 묵어보길 추천한다. 황오동에는 현재 황오연가, 황오여관, 스테이황촌 등 옛 경주역 관사를 개조한 7개 도시민박이 운영되고 있다. 명칭은 ‘민박’이지만 내부 시설이나 가격은 호텔에 가깝다. 마당에 풀장을 갖춘 집도 있고, 영화감상실이나 작은 도서관 수준의 휴게 시설을 갖춘 업체도 있다. 조식은 마을식당 '황촌정지간'에서 준비한다. 주민들 삶의 체취가 밴 골목을 거닐다 청년창업점포 경주식회사(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맛볼 수도 있다.
노서동고분군 나무그늘에서 진행된 힐링명상테라피. 시범 운영을 거쳐 7월 중 공식 상품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
옛 철도청 관사를 개조한 마을호텔 '황오연가'. |
황오동 한 마을호텔 다락에 조성된 독서실. |
철도청 관사가 밀집한 황도동 골목.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온 서울 쌍문동 골목이 연상된다. |
코레일관광개발에서 ‘6월 여행 가는 달’ 기획으로 경주두가의 도보투어와 마을호텔이 포함된 ‘일상이 여행이 되는 마을 경주 황촌 체류 여행’ 3박 4일 상품(20, 23일 출발)을 판매 중이다. 경주두가는 마을투어와 힐링명상 프로그램을 7월 정식 출시할 예정이다.
경주=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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