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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날릴 자연의 바람, 여기는 바람개비가 돈다

해발 1000m급 백두대간 풍력발전단지 5

폭염 날릴 자연의 바람, 여기는 바람

바람의 길목,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고지대에선 잠시나마 폭염에서 벗어날 수 있다. 평창과 강릉의 경계인 선자령(1,157m) 바로 아래 하늘목장 풍경. 평창=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공기 흐름마저 녹여버린 폭염 시절, 시원한 바람 한 점이 아쉽다. 그래서 골랐다. 바람맞기 좋은 곳, 풍력발전단지가 있는 산꼭대기다. 해발 1,000m 이상 고지대라 기온이 주변보다 3~4도 이상 낮다. 정중동(靜中動), 멈춰있는 것 같아도 움직임이 감지된다. 끈적거리지 않고 보송보송한 바람이다. 바람의 길목엔 날씨 변화가 심하다. 비가 오거나 흐린 경우를 대비해 바람막이 점퍼는 필수다.

하늘 아래 첫 동네, 태기산 풍력발전단지

태기산(1,258m)은 횡성 둔내면과 평창 봉평면을 가르는 산줄기다. 삼한시대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산성을 쌓고 신라와 최후 항전을 벌였다는 전설을 간직한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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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기산 능선의 풍력발전기가 빠르게 이동하는 구름에 싸여 있다. 횡성=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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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기산에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개설돼 있다.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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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기산 정상 부근에서 본 풍력발전단지. 최흥수기자

태기산에 오르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양구두미재(980m)까지 차로 이동하는 것이다. 둔내와 면온 사이 고갯길 정상인 이곳에만 올라도 바람이 다르다.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바로 아래에 터널이 뚫려 차량 통행이 뜸했던 도로는 더욱 한산해졌다. 바짝 붙어 재촉하는 차도 없어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여유롭게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그만이다. 양구두미재에서 태기산 정상까지는 약 4km. 표고 차가 크지 않아 걸어도 크게 힘들지 않은데, 고맙게도 차로 오를 수도 있다. 꼭대기에 군부대가 있고 능선을 따라 20여기의 풍력발전기가 들어선 까닭이다. 도로는 시멘트 포장과 비포장이 반반이다. 비포장 구간에는 배수로를 깊게 파놓아 일반 승용차는 턱을 넘기 어렵다. 차체가 높은 SUV 차량만 가능하다. 그것도 조심스럽게.


도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풍력발전기가 설치된 능선이다. 좌우로 펼쳐지는 전망도 그만이지만, 높이 80m, 길이 40m에 달하는 대형 바람개비가 돌아가며 내는 ‘쉬익쉬익’ 바람소리가 온몸으로 전달된다. 가슴속이 뻥 뚫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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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기산 정상 부근 양치식물길. 사슴과 호랑이가 평화롭게(?) 놀고 있는 모습이라니.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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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아래 첫 학교, 태기분교는 당시 학생과 교사를 추억하는 작은 전시실로 꾸며졌다.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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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기분교 터에 남아 있는 재래식 물 펌프. 최흥수기자

도로에서 횡성 방향 숲으로는 24km 구간에 국가생태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낙수대계곡길, 태기왕전설길, 청정체험길로 이름 붙인 탐방로에 야생화를 심고, 산림욕장과 생태공원을 조성했다. 태기왕전설길 초입에는 ‘하늘 아래 첫 학교’였던 태기분교 터가 남아 있다. 1968년 개교해 1976년 문을 닫은 학교 자리엔 화전민촌 아이들의 꿈과, 이들을 위해 학교를 열었던 이명순(당시 26세) 교사의 노고를 기리는 작은 전시관이 세워졌다. 106명 산골 아이의 배움터였던 교실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원추리가 곱게 피었고, 이제 곧 화려한 꽃을 피울 벌개미취 화단도 만들었다. 태기산 정상 부근에도 조릿대길, 야생화화원, 양치식물길이 조성돼 있다. 짧은 구간이지만 숲 속 그늘이어서 햇볕을 피하기에 더 없이 좋다.


태기산 자락 ‘휘닉스평창’의 슬로프 정상에서는 4일까지 ‘마운틴 시네마’가 열린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야외 영화관으로 ‘리틀포레스트’와 ‘라라랜드’를 상영한다. 맞은편 횡성 둔내면에서는 8월 10~12일 ‘둔내고랭지토마토 축제’가 열린다. 토마토 풀장에서 보물찾기와 댄스파티가 열리고, 방울토마토 따기, 메기 잡기 등의 체험도 즐길 수 있다.

트랙터 마차 타고 신선놀음, 백두대간 선자령

강릉 성산면과 평창 대관령면의 경계인 선자령(1,157m)은 백두대간 중심부에 있는 봉우리다. 대관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아름다워 선녀들이 아들을 데리고 목욕을 하며 놀았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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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령에서 보는 대관령 풍력발전단지. 평창=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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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더울 때는 하늘목장에서 운영하는 트랙터 마차를 이용하면 선자령 바로 아래까지 올라갈 수 있다. 서울랜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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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목장 초지도 무더위를 식혀준다.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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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일반적인 접근법은 영동고속도로 옛 대관령휴게소(820m)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를 이용하는 것이다. 봄에는 야생화가 만발하고 겨울에는 환상적인 눈꽃이 펼쳐져 등산객에게 사시사철 사랑받는 길이다. 거리는 왕복 10km, 대략 4시간을 잡는다.


요즘같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무리하게 산행을 하는 것보다 선자령 자락 ‘하늘목장’에서 운행하는 트랙터 마차를 타는 편이 낫다. 목장 길 따라 하늘마루 전망대까지 올라 초원과 하늘이 맞닿은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하며 시원하게 산바람을 쐴 수 있다. 전망대에서 선자령까지는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는 거리다. 전망대에서는 15분간 쉬는데, 아쉽다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쉬다가 걸어서 하산해도 무방하다. 원시림이 터널을 이루는 울창한 숲과 계곡으로 연결된 트레킹 코스를 걸으면 목장 입구까지 약 30분이 걸린다. 방목지를 볼 수 있는 ‘앞등목장’이나 양떼 체험장과 가까운 ‘목우원’에서 내려 하산해도 된다. 트랙터 마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행하며 요금은 6,000원(고등학생 이하는 5,000원)이다.

고랭지 채소밭과 바람개비가 어우러진 풍경

강릉 왕산면 안반데기 마을과 평창 미탄면 청옥산, 태백 매봉 풍력발전단지는 대규모 고랭지 채소밭과 풍력발전단지가 어우러진 곳이다. 안반데기 마을은 떡을 칠 때 사용하는 두껍고 넓은 안반처럼 지형이 우묵하면서도 널찍해 붙은 이름이다. 풍력발전기가 세워진 능선에서 흘러내린 구릉 전체가 배추밭이다. 1965년부터 화전민들이 삽과 곡괭이로 일군 산밭이 국내 최대 규모의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로 변모하기까지, 그 수고로움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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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무렵의 안반데기마을 풍경. 강릉=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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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반데기마을의 멍에전망대. 산꼭대기에 밭을 일군 화전민들의 고단함을 상징하는 듯하다. 최흥수기자

안반데기 자체도 높지만 사방으로 백두대간 능선이 겹쳐져 일출과 일몰 풍경도 장엄하다. 툭 트인 풍광에 몸을 맡기노라면 무더위뿐만 아니라 답답한 마음까지 시원하게 뚫린다. 안반데기는 평창 대관령면 수하리(피골)와 강릉 왕산면 대기리(닭목령)에서 도로가 나 있다. 포장은 돼 있지만 어느 방향이든 도로가 좁고 굴곡이 심하다. 농작물을 실은 트럭과 마주칠 경우 때로 후진도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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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언덕’이라는 별칭이 붙은 매봉 고랭지 채소밭. 태백=최흥수기자

태백의 매봉 풍력발전단지도 안반데기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해발 1,303m 매봉(천의봉) 동북쪽 비탈에 고랭지 배추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하늘 봉우리란 뜻의 천의봉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분기점이자 낙동강과 남한강이 갈라지는 산이다.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도로도 세 갈래로 물길(서해로 흐르는 골지천, 남해로 흐르는 황지천, 동해로 흐르는 오십천)이 갈라지는 삼수령에서 시작된다. 이곳 역시 포장도로지만 트럭과 교행이 어려워 조심해야 한다. 태백 시내에서는 5일까지 ‘한강ㆍ낙동강 발원지 축제’가 열리고 있다. 여행객과 시민이 어우러져 ‘얼水절水 물놀이 난장’으로 무더위를 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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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옥산 정상부근 풍력발전단지. 고랭지 농사는 일부만 남아 있다. 평창=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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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옥산 풍력발전단지 뒤편으로 태백준령의 능선이 겹겹이 펼쳐진다. 최흥수기자

평창 청옥산(1,256m) 정상도 한때 ‘육백마지기’라 불릴 정도로 고랭지 채소 재배단지가 조성돼 있었지만, 현재 비닐하우스 몇 동이 남았을 뿐 농사는 유명무실해졌다. 피서지마다 북적대는 이 여름에도 스산함이 느껴질 정도다. 정말 사람 없는 곳, 바람만 가득한 곳을 찾는다면 바로 여기다. 미탄면 소재지에서 산 정상까지 연결된 도로도 다른 곳에 비해 순탄한 편이다.


강릉ㆍ평창ㆍ횡성ㆍ태백=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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