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부터 1박 2일 캠핑까지… 결혼식이 즐거워졌다
형식 자유로워지는 추세
하객과 즐기고 소통하기에 방점
올해 10월 20일 세종시의 한 펜션에서 류정은ㆍ이태구 부부는 '1박2일 결혼식'을 치렀다. 결혼식에서 어린 조카가 주례자를 대신해 성혼선언문을 낭독하는 모습. 류정은씨 제공 |
이태구ㆍ류정은(앞줄 맨 오른쪽) 부부 결혼식을 찾은 가까운 가족, 친구들은 펜션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며 축하 파티를 이어갔다. 류정은씨 제공 |
올해 10월 부부의 연을 맺은 류정은(33)ㆍ이태구(34)씨는 펜션을 빌려 1박2일 결혼식을 했다. 결혼식 하객 수는 일반적인 결혼식과 다르지 않은 300여명이었지만 그 중 4분의1이 넘는 사람들이 일명 ‘1박 결혼파티’를 함께 했다. 식은 간단히 진행하고 캠핑을 나온 듯 하객들이 식사를 즐겁게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늦은 시간까지 술 한잔 하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모닥불까지 피우니, 가족여행과 대학MT를 섞어 놓은 듯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어린이 하객들을 위한 보물찾기도 신랑신부가 직접 준비했다. 양가 친척이나 결혼한 친구들이 데려 온 조카들만 30여명. 아이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어 ‘진짜’ 가족 행사로 결혼식을 만들겠다는 생각에서다.
참가한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주례를 없앴고 성혼선언문은 어린 조카가 낭독했다. 직접 쓴 혼인서약서에서는 “(신부가 신랑에게) 1년에 3번씩은 스키장을 보내주겠다” “(신랑이 신부에게) H.O.T.에 대한 사랑을 질투하지 않고 콘서트에는 무조건 보내주겠다” 등 부부의 취미가 담긴 현실적인 내용이 담겼다. 부부가 서약서를 읽는 내내 하객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1박2일 결혼식, 장소 물색에만 6개월 걸렸어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익숙한 결혼식 모습에 반기를 든 이들이 늘고 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부부가 탄생하는 전형적인 결혼식 대신 이들처럼 주인공인 부부와 하객이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예식을 만들기 위해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은 부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류씨는 1박2일 결혼식을 기획한 결정적 계기로 “일반적인 결혼식은 식이 끝나면 밥값 등을 계산하고 식장을 빠져나가기 바쁘고 이후 남은 가족들은 허무함과 쓸쓸함을 느끼게 되더라”며 “부모님들에게 자식이 결혼해서 떠나는 게 아니라 가족이 더 많아진 것이라고 보여 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평범하지 않은 결혼식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데는 그 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적당한 장소를 찾는 데만 6개월이 넘게 걸렸다. 대전에 신혼살림을 꾸리는 이들이 선택한 곳은 세종시의 한 펜션. 대전 근교 펜션은 샅샅이 찾아 다녔고 식장을 꾸미기 위한 각종 소품도 서울 동묘 등에서 직접 샀다. 70명 넘는 하객들이 편안하게 숙박할 수 있게 방 배정표도 짜고 쌀쌀한 날씨에 춥지 않도록 난방과 적절한 침구류까지 신경 썼다. 식사 한끼 하고 돌아가는 결혼식이 아니기에 다음날 아침식사 메뉴까지 고민했다. 신랑신부가 주인공인 결혼식 대신 ‘일꾼’이 된 결혼식이었지만 류정은씨는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러 온 손님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에 라면박스 등을 나르면서도 행복했다”며 “이색적인 결혼식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1박2일 펜션 결혼식을 200%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결혼식, ‘스몰웨딩’과 달라… 주례 대신 토크쇼 진행도
올해 4월21일 서울 연세동문회관에서 결혼한 남지현ㆍ김용건 부부는 주례자 대신 사회자로 가까운 후배를 초대해 '토크쇼' 형식으로 예식을 진행했다. 남지현씨 제공 |
주례 대신 토크쇼를 진행한 부부도 있다. 올해 4월에 결혼한 남지현(29)ㆍ김용건(34)씨는 친한 후배를 사회자로 섭외해 ‘결혼식 토크쇼’를 기획했다. 하객들이 증인이 되는 결혼식에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두 사람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 끝에 나온 아이디어였다. 약 300명의 하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짧은 시간 안에 토크쇼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참고할 만한 대본도 없었다. 여러 차례 회의(예비 신혼부부간)를 거쳐 서로에 대해 묻는 스피드 퀴즈와 상대방의 장단점과 10년 뒤의 모습 등을 진행자가 묻고 답하는 식으로 대본을 정리하고 직접 쓴 혼인서약서를 읽기로 했다.
스피드 퀴즈는 ‘난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를 안하고도 상대방에게 모닝 뽀뽀를 할 수 있다’ ‘여행 도중 드디어 벼르고 벼른 맛집에 갔는데 무려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린다’ ‘막상 결혼을 앞두고 화려한 싱글을 더 즐길까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와 같은 질문에 신랑신부가 3초 안에 ‘네ㆍ아니오’로 답하는 식이다. 서로 같은 대답이 나와도 또 다른 답을 말해도 하객들에게는 큰 웃음을 선사했다. 결혼식을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다 보니 앞으로 살아가는 데도 서로가 좋은 반려자가 되겠다는 확신도 갖게 됐다. 남지현씨는 “우리의 길을 갈 때 손 잡아줄 파트너가 생겼다는 것을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확실히 느꼈고, 재미있게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올해 4월28일 서울 종로구 핸더스 한옥 식장에서 정혜진씨와 결혼한 이용훈씨(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예식 이후에 하객들과 함께 식사자리에서 대화하는 모습. 정혜진씨 제공 |
서울 종로구 핸더스 한옥 식장에서 올해 4월28일 결혼한 정혜진ㆍ이용훈 부부. 정혜진씨 제공 |
토크쇼까지는 아니더라도 정형화되지 않은 결혼식을 원한 부부들은 ‘하객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결혼을 축하하러 온 분들과 가능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색다른 결혼식을 고민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올해 4월 결혼식을 올린 정혜진(30)ㆍ이용훈(31)씨도 마찬가지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의 한 한옥 식장에서 하객 수 70여명의 소규모 결혼식을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하객이었다. 실제 4시간가량을 신랑신부가 하객들과 같이 식사도 하고 대화도 하며 보냈다. 정혜진씨는 “결혼식을 다녀간 분들이 따뜻한 분위기가 좋았다고 하더라”며 “하객 전부가 식을 보며 울고 웃는 결혼식은 처음이라는 분도 계셨다”고 전했다.
하객이 공감하는 결혼식을 만들기 위해 이용훈ㆍ정혜진 부부도 주례 없는 결혼식을 선택했다. 주례사 대신 양가 아버님과 친한 친구들의 축사를 들었다. 특히 같은 대학 선후배로 만나 11년 넘게 연애를 한 신랑신부를 처음부터 지켜본 친구의 축사에 신부는 물론 부모님과 하객들까지도 눈시울을 붉혔다. 신부의 17년지기이자 신랑신부 모두와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는 축사를 통해 “대학 새내기 때 저와 혜진이에게 밥을 사준다고 불렀던 선배가 바로 여기 있는 신랑”이라며 “시간이 지나서 오늘 두 분이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니 그 자리에 있었던 저로서는 정말 감격스럽다”고 당시 추억을 하객들에게 소개했다. 이어 “너(신부)와 오빠(신랑)는 이제 따로 있는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꼭 잊지 말고 지금처럼 앞으로도 서로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길 바란다”는 진심 어린 축하로 하객들의 공감도 얻었다.
경제력 있는 신랑신부가 ‘우리만의 결혼식’ 목소리 내
특별한 결혼 예식에 대한 설문조사. 그래픽=김민호 기자 |
이처럼 특색 있는 결혼식은 단순히 비용이 적게 드는 ‘스몰웨딩’과는 다르다. 경우에 따라 비용은 오히려 더 들 수도 있다. 남들과 다르게, 시공간 제약 없이 하객을 맞고 함께 즐기는 시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취지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결혼식 유형을 주로 컨설팅 하는 유경민 웨딩디렉터는 “전문 웨딩홀에서 진행하는 일반적인 결혼식이 아직은 더 많지만 갈수록 ‘남들과 같은 식순과 음악은 싫다’ ‘뻔한 주례사는 안 하겠다’ 등의 의견을 내는 신랑신부들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1박2일 결혼식만큼 큰 변화가 아니어도 보통의 결혼식 안에서도 자기만의 개성을 조금씩 담고 싶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주례사 대신 양가 부모님의 덕담이나 지인의 축사를 듣고, 어린 조카들이 성혼선언문을 낭독하고 혼인서약서를 부부가 직접 쓰는 방식은 특히 선호도가 높다. 양가 어머니를 대신해 하객들이 촛불을 이어가며 화촉 점화에 참여하거나 반려견이 결혼 반지를 전달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는 사례들도 있다.
지난해 11월11일 서울 삼원가든에서 결혼을 한 김지연ㆍ김형석 부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장식과 음악 등을 연출해 하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지연씨 제공 |
물론 신랑신부가 ‘우리만의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뜻을 모아도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결혼식은 부모님과 가족이 함께 하는 행사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결혼식을 올린 부부들도 첫 번째 난관은 양가 부모님의 동의 내지 허락을 받는 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지연(33)ㆍ김형석(41)씨도 자신들만의 결혼식을 계획하던 중 부모님과 의견충돌을 겪었다. 하객 수 50명도 채 안 되는 소규모 결혼식을 어른들이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부모님 의견을 존중해 300여명의 하객을 모시기로 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예식을 특별하게 만들어보는 것으로 절충안을 만들었다. 김씨는 “야외 공간에서 3~4시간 정도 여유 있게 식사하면서 결혼을 축하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정원이 있는 식당을 결혼식장으로 선택했다”며 “주례를 따로 두지 않고 하객들과 함께 성혼선언문을 낭독하는 등 식순도 자유롭게 변경했다”고 말했다. 신혼여행도 미국 디즈니랜드로 갈 만큼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캐릭터를 좋아하는 신부를 위해 입ㆍ퇴장 등 결혼식 전 과정에 쓰는 배경음악은 모두 디즈니 OST를 사용했고, 각종 장식도 디즈니를 연상케 꾸몄다.
예식 유형에 대한 설문조사. 그래픽=김민호 기자 |
예식 유형에 대한 설문조사. 그래픽=김민호 기자 |
그래도 점차 혼인 연령이 높아지면서 신랑신부들이 결혼비용의 상당부분을 직접 부담할 정도로 경제력을 갖추게 된 상황은 부모와의 타협 과정에서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게 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혼식 컨설팅 전문업체인 세인트조르디플라워의 정채원 디렉터는 “결혼식 준비를 예전에는 혼주인 부모님을 중심으로 했지만 최근에는 신랑신부를 중심으로 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한, 경제력 있는 신랑신부들이 전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결혼식에 대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또 사회문화 변화가 한국보다 한 발 빠른 일본의 결혼식 문화가 20년 전부터 정형화 된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추세를 감안하면 우리 사회도 결혼식의 모습이 갈수록 다양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결혼하는 당사자가 바라는 방식으로 예식을 진행하거나 그마저도 생략하고 사진을 찍거나 부부 둘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로 예식을 대신하는 사례 역시 더 늘어날 것이란 설명이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