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코트인 줄... 옥상은 왜 죄다 녹색일까
22일 드론으로 촬영한 수도권의 한 주택가 옥상 풍경. 풍화작용에 의해 각기 농도만 달라졌을 뿐, 대부분 녹색 일색이다. |
주택가 옥상 풍경. 풍화작용에 의해 약간의 농도만 다를 뿐, 대부분 녹색으로 덮혀 있다. |
얼마 전 비행기에서 무심코 주택가를 내려다보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익숙함 속에 숨어 있는 신기함이랄까요? 마치 '옥상은 무조건 녹색으로 칠해야 한다'라고 법으로 정해놓은 것처럼, 온통 녹색으로 뒤덮인 주택가 옥상 풍경이 눈에 들어온 겁니다.
지난 2012년 방한한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윌 스미스도 비행기에서 이와 같은 풍경을 발견하고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습니다. 그러자 ”한국 사람들은 옥상에 테니스 코트를 가지고 있다”며 '감탄(?)' 댓글이 이어졌다는 후문도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 옥상은 이처럼 녹색으로 '통일'돼 있을까요? 그 첫 번째 이유는, 옥상에 칠하는 방수페인트에 '산화크롬'이라는 물질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방수 기능을 가진 이 물질은 원래 짙은 녹색을 띠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 보니, 기온 차에 따른 수축과 팽창이 심하고 건축물의 균열, 누수, 결로가 빈번합니다. 여름에 한꺼번에 많은 비가 내리는 편이니 옥상에 방수페인트 칠은 필수죠.
두 번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녹색을 선호하기 때문인데요, 녹색에 큰 거부감이 없다 보니 다양한 컬러의 방수페인트 개발이 늦어졌다고 합니다. 신영규 삼화페인트공업 마켓이노베이션팀 과장은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소비자들이 특별한 거부감을 갖지 않고, 방수페인트의 색을 변경할 경우 추가비용 문제도 있어 녹색 그대로 칠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주택가 옥상 풍경. 풍화작용에 의해 약간의 농도만 다를 뿐, 대부분 녹색으로 덮혀 있다. |
확인되지 않은 '설'도 있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외국인 관광객들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비행기에서 내려다봤을 때 회색 콘크리트 옥상이 삭막해 보이니 숲 같은 느낌이 들게끔 녹색으로 칠하도록 정부가 주도했다는 겁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국토교통부 건축정책과를 비롯해 서울시청, 종로구청 등 지자체 3곳과 다수의 페인트 시공업체에 문의해 봤으나 이 같은 내용의 법이 제정됐거나 행정명령이 있었다는 그 어떤 기록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22일 수도권 내 주택과 빌라가 밀집한 구도심 지역 몇 군데를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드론을 띄워 살펴보니, 진하냐 연하냐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의 옥상이 녹색이었습니다. 간혹 흰색이나 옅은 회색으로 칠해진 옥상도 눈에 띄었습니다. 여기에 건물과 건물의 작은 틈이 어우러져 얼핏 '테니스 코트'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신축 건물이 많은 신도시 쪽으로 이동해 보니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녹색 대신 흰색과 회색 옥상이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최근엔 냉방비 절감을 위해 흰색 방수페인트를 칠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빛을 그대로 흡수하는 초록색과 달리, 흰색은 빛 반사율이 높아 열을 차단하기 때문에 효율을 높일 수 있죠. 신 과장은 "흰색 방수페인트에는 반사율이 높은 특수 안료가 들어가 80% 이상의 열을 반사함으로써 냉방비를 절감,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축 건물이 많은 지역의 옥상을 내려다보니 녹색 계열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 흰색이나 회색 계열의 방수페인트로 칠돼 있다. |
신축 중인 주택 옥상에 흰색 계열의 방수페인트가 칠돼 있다. |
정리하자면, '옥상 방수는 녹색 페인트로만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단지 방수페인트 원료 때문에 자연스럽게 '녹색 옥상'이 많아졌습니다. 최근에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해 흰색 계열의 페인트 사용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건물 옥상이 도시 면적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옥상 색깔이 도시의 전체 분위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셈이죠. 어찌 됐든, 최근 들어 녹색이 줄고 밝은 회색 옥상이 느는 건 사실입니다. 건물의 개성과 효율성을 살리면서 비용은 최소화하려는, 합리적인 고민이 이 같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신축 중인 주택 옥상에 흰색 계열의 방수페인트가 칠돼 있다. |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