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렁출렁~ 울렁울렁~ 산 전체가 절경 품은 놀이공원
원주 소금산 그랜드밸리와 뮤지엄산
탐방객이 100m 허공에 뜬 소금산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다. 길은 소금산 잔도와 계곡 상류의 울렁다리로 이어진다. '작은 금강산'이 거대한 놀이공원이다. |
날씨 변화가 널뛰기다. ‘서울이 116년 만에 11월 최고기온을 찍었다’고 호들갑을 떨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번 주는 한겨울이다. 아침 기온이 0도 가까이 떨어진 지난 10일 강원 원주 소금산을 찾았다. 이렇게 차가운 날씨에 산행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넓은 주차장은 아침부터 절반 이상 채워져 있었다. 소금산은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이다. 해발 343m로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를 섬강에 합류하는 삼산천이 끼고 돌며 아기자기한 풍경을 빚어 놓았다. 기암과 맑은 물이 어우러진 절경을 보고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한수(漢水)를 돌아드니 섬강이 어디메뇨, 치악은 여기로다’라고 읊었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해 원주를 오가며 쉬어 갔을 곳이다.
출렁출렁 울렁울렁… 놀이공원 같은 산
깎아지른 바위와 맑은 강물, 백사장이 어우러진 원주 시민들의 나들이 장소로 알려졌던 간현유원지에 2018년 출렁다리가 설치되면서 소금산은 단박에 원주의 소금 같은 존재로 변신했다. 지난해 추가로 잔도와 울렁다리가 개설된 데 이어 내년에는 케이블카와 에스컬레이터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산봉우리와 강줄기를 낀 놀이공원이나 마찬가지다.
편의시설을 두루 갖췄다 해도 산은 산이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발을 들였다가 중도 포기하고 돌아서는 이들이 제법 많다. 일방통행으로 돌아오는 탐방코스는 약 6㎞, 보통 2시간 30분을 잡는다.
소금산 아래 삼산천으로 왜가리 한 마리가 날고 있다. |
소금산 탐방로는 맨땅을 밟을 일이 없을 정도로 잘 정비돼 있지만 출렁다리까지는 578계단을 올라야 한다. |
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 약 1㎞는 평지나 마찬가지다. 섬강과 삼산천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다리를 차례로 건넌다. 산은 이미 겨울빛인데 발아래 흐르는 옥색 물빛은 맑고 시리다. 매표소(입장료 9,000원)를 통과하면 바로 578계단이 이어진다. 숫자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수직으로 연속되는 가파른 길이 아니라, 10여 계단을 오르고 평평한 길을 걷다 다시 계단이 나타나는 구조여서 쉬엄쉬엄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그마저도 숨이 차면 중간중간에 놓인 벤치에 앉아 쉬어 가도 좋다.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온 섬강 줄기가 아련하게 내려다보이면 출렁다리에 다다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100m 허공에 매달린 소금산 출렁다리 아래로 삼산천 옥색 물빛이 시리다. |
출렁다리와 잔도, 전망대와 울렁다리로 이어지는 소금산은 거대한 놀이공원이나 마찬가지다. |
소금산 출렁다리는 놀이기구를 타는 듯 아찔하다. |
다리를 건너기 전 솔숲 쉼터가 아늑한데 주변으로 눈길을 돌리면 산자락 한 부분이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내년에 개통할 케이블카 공사가 한창이다. 주차장에서 출렁다리 초입까지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산행이 한결 쉬워지겠지만, 걷는 즐거움은 그만큼 줄고 입장료도 더 들 테니 케이블카가 달갑지 않은 이들도 많을 듯하다.
드디어 소금산의 명물 출렁다리를 건넌다. 높이 100m 허공을 가로지르는 길이 200m 다리다. 이름대로 중간지점으로 갈수록 출렁거림이 심해진다. 호기롭게 내디딘 발걸음에 힘이 들어가고, 오금이 저려 온다. 계곡 상류에서 산줄기를 휘감은 하천이 절경을 빚으며 흘러내리는데, 발아래는 아찔해서 제대로 보기가 힘들다.
출렁다리를 지나면 다시 덱 탐방로로 완만하게 오른다. 주변의 나무는 이미 잎을 훌훌 털어내고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길은 산정상이 아니라 산허리 벼랑으로 연결된다. 이른바 소금산 잔도를 걷는다. 바위틈에 소나무 몇 그루만 겨우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암벽이다. 흔들림이 없어 다행이지 아찔함은 출렁다리 못지않다.
소금산 출렁다리 부근의 솔숲 쉼터. |
소금산 출렁다리 부근의 솔숲 쉼터. |
소금산 잔도로 가는 길의 나무는 이미 잎이 모두 떨어져 겨울로 접어들었다. |
출렁다리와 잔도가 개설되기 전 ‘한국의산하(koreasanha.net)’에 등록된 정상으로 오르는 산행기를 보면 소금산이 작지만 얼마나 험한 산인지 실감이 난다. ‘원주에서 군생활할 때 유격훈련을 받으러 들어오던 당시에는 공포의 계곡이요 고통의 계곡이었다.’ 간현유원지 일대는 한때 군부대 유격장이었다. ‘여섯 곳의 철계단은 모두 404계단으로 가장 긴 곳은 150계단이다’ ‘고소공포증이나 어지럼증이 있는 사람들은 아예 들어서지 말아야 한다.’ 이런 산을 이제 산책하듯 걷는다.
험한 만큼 경관은 빼어나 두몽폭포, 문연동천, 병암, 오형제봉, 은주암, 욕바위, 옥선동대, 베틀굴 등을 간현팔경으로 꼽기도 했다. 간현(艮峴)은 조선 선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이희가 낙향하던 길에 산세의 아름다움에 반해 머물렀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3경 병암은 그가 이곳에 머물 당시 '토정비결'을 쓴 이지함이 찾아와 병풍처럼 생긴 바위라 이름 붙였다고 전해진다.
잔도가 끝나면 깎아지른 암벽 귀퉁이에 스카이타워가 설치돼 있다. 5층 구조의 전망대 겸 하산 계단인데, 특이하게도 잔도보다 낮은 위치다. 정상에 서면 바로 앞에 울렁다리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이고, 계단을 내려가노라면 철제 발판 구멍을 통과한 바람소리에 공포심이 배가된다.
소금산 잔도는 아찔한 높이의 암반 벼랑으로 연결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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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산 탐방로는 잔도에서 스카이타워 상부로 연결된다. |
소금산 잔도에서 스카이타워와 울렁다리가 내려다보인다. |
스카이타워 하단에서 연결된 울렁다리는 길이 404m, 폭 2m의 현수교로 출렁다리보다 훨씬 길다. 흔들림은 덜하지만 진폭이 길어 다리를 다 건널 즈음이면 살짝 멀미 증세가 느껴진다. 울렁다리라 이름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다리 아래 옥빛 하천에는 또 하나의 철교가 가로지르고 있다. 옛 중앙선 열차가 다니던 길이다. 터널과 교량이 연속되는 이 구간 폐선로는 레일바이크 시설로 이용되다 현재는 운영이 중지된 상태다. 바로 위쪽에 새로 놓은 교량 위로 서울에서 강릉과 안동을 오가는 열차가 수시로 굉음을 내며 내달리고 있다.
소금산 울렁다리 아래로 옥빛 삼산천이 흐르고 있다. |
출렁다리와 잔도, 전망대와 울렁다리로 이어지는 소금산은 거대한 놀이공원이나 마찬가지다. |
울렁다리 건너 하산로는 지그재그로 다듬은 흙길이다. 일부러 낸 길이라 자연의 운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현재 바로 내려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 시설이 공사 중에 있다. 내년에 케이블카까지 완공되면 일대는 시작부터 끝까지 거대한 놀이공원이 될 모양이다. ‘작은 금강산’인데 공식 명칭은 ‘소금산 그랜드밸리’다.
아트를 입은 산, 낙엽 푹신한 숲길
인근 뮤지엄산(Museum SAN)은 소금산 못지않은 원주의 명소다. 2005년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처음 방문했을 때 ‘도시의 번잡함으로부터 벗어난 아름다운 산과 자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인상에 반해 설계한 건축물이다. 노출콘크리트로 지은 거대한 구조물이지만 외부에서는 실체를 알기 어렵다. 전시관을 연결한 관람 통로가 미로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건물의 반은 땅 밑으로 숨은 구조지만 자연채광이 관람객을 안내한다. 빛에 천착한 건축가의 의도가 돋보인다. 빛과 물을 끌어들인 자연주의 작품, 소통과 단절의 공간 연출 등으로 찬사를 받은 그는 상업적으로도 영리한 건축가임이 분명하다.
웰컴센터를 지나면 산상에 플라워가든과 워터가든이 이어진다. 플라워가든에는 현재 새하얀 자작나무만 돋보인다. 본관 앞 ‘ㅅ’ 모양의 붉은 철 조각품이 단연 눈길을 잡는다. 워터가든에 반영돼 주변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작품이다.
뮤지엄산 웰컴센터에서 본관으로 가는 길에 자작나무 숲길이 조성돼 있다. |
본관(전시관) 앞의 붉은 조각은 뮤지엄산의 상징적 작품이다. |
뮤지엄산의 스톤가든. 아래에는 공간 체험 전시장인 제임스터렐관이 위치한다. |
전시관에는 현재 ‘안도 타다오-청춘’전이 열리고 있다. 그의 손을 거친 세계적인 건축물뿐만 아니라, 설계에 응모했다 떨어져 끝내 현실화되지 못했거나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뒤늦게 빛을 보게 된 건축물 등을 사진과 영상, 미니어처 등으로 볼 수 있다.
전시관을 통과하면 산정에 고대 무덤처럼 둥그스름한 돌무더기 구조물이 여럿 보인다. 신라 고분군에 영감을 받아 조성한 스톤가든이다. 땅 밑에는 제임스터렐관이 있다. 빛을 이용한 공간 체험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구사하는 미국 현대예술가의 이름을 딴 전시관이다. 원형의 천장이나 마름모꼴 창, 착시를 일으키는 사각의 거대한 공간은 작품이자 명상관이고,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체험관이다. 관람객을 제한해 30분 단위로 입장하며 도슨트의 안내로 작품을 감상한다. 작가의 요청으로 사진과 영상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된다. 뮤지엄산의 산책로와 전시관 동선을 모두 합하면 700m에 이른다. 꼼꼼히 둘러보고 카페에서 차라도 한잔 하자면 2~3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뮤지엄산 주변은 국내 최대 규모의 골프장 오크밸리가 감싸고 있다. 온전한 자연을 즐기고 싶다면 골프장을 외곽으로 감싸는 다둔길을 걸어볼 것을 권한다. 이곳은 원주 서북 끝자락으로 북쪽은 횡성, 서쪽은 경기 양평과 접해 있다. 산에 둘러싸인 지형이어서 불룩하게 언덕진 둔덕이 많다고 이름 지은 숲길이다.
오크밸리 리조트를 감싸고 있는 다둔길 2코스 초입의 언덕 풍경. |
해발 400m 언저리의 다둔길은 이미 완연한 겨울 풍경이다. |
다둔길 2코스 산책로가 낙엽에 덮여 있다. |
오크밸리 체크인센터에서 다둔길 안내 책자를 받아 스탬프 미션을 완료하면 코스 끝에 있는 카페에서 무료로 음료를 받을 수 있다. |
8개 코스를 다 걷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한 곳만 고르자면 접근성이 뛰어난 상다둔2코스를 추천한다. 골프장 조각공원에서 연결되는 자작나무, 참나무, 낙엽송 등이 어우러진 숲길이다. 해발 400m 언저리여서 숲은 이미 겨울 풍경이다. 노랗게 물든 낙엽송 잎이 일부 남아 있지만 주종을 이루는 참나무 잎은 낙엽이 돼 길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수북이 쌓였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에 어김없는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오크밸리 체크인센터에서 다둔길 안내를 받을 수 있다. 2코스 안내책자의 스탬프 미션을 완료하면 코스 끝자락의 카페에서 무료 음료를 제공한다.
원주 소금산 그랜드밸리 주변 여행 지도. 그래픽=김문중 선임기자 |
소금산 그랜드밸리, 뮤지엄산, 다둔길(오크밸리)은 모두 원주 외곽에 위치하지만 자가용이 없어도 여행에 크게 불편하지 않다. 원주투어버스가 하루 6회 원주역에서 출발해 원주시외버스터미널, 만종역, 서원주역을 거쳐 이들 관광지까지 운행하기 때문이다. 성인 1일권 5,000원이다.
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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