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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철녀, 세상을 바꾸다

맨몸으로 실천하는 공정경쟁

Z세대가 여자배구·'골때녀'·'스우파'에 열광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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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전한 8개 댄스팀 리더들. 영화 '매드맥스' 속 여전사인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8명을 모아 둔 것 같다. 맏언니인 모니카(오른쪽 첫 번째)는 경연에 앞서 절대 지지 않아, 얘들아라고 선전 포고를 한다. Mnet 제공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여자배구가 올여름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궜다면, 올가을엔 Mnet 스트리트 댄스 서바이벌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가 인기다.


화제의 공통적 땔감은 실력 있는 '철녀'들의 멋진 승부. 때론 '악녀'란 철 지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이들의 승부에 음모는 없다. 오로지 정면 승부다. '스우파'에선 무대 위 여성 댄서들이 나이 등 모든 계급장을 떼고 비트에 맞춰 춤 실력으로만 존재를 증명한다. 몸으로 실천하는 공정경쟁에서 '깡마른 몸매'는 금기다. 대신 탄탄한 복근과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배틀'로 조명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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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전한 댄서 허니제이. Mnet 방송 캡처

그렇게 코트와 무대의 철녀들은 남성 혹은 스타에 밀려 오랫동안 붙이고 다녔던 '백업(대비용)'의 꼬리표를 싹둑 잘라낸다.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배구선수 김연경)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스우파' 허니제이) 철녀들의 깃발 같은 말에 누리꾼은 뜨겁게 반응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여성 리더가 같은 여성 크루들에게 시합을 앞두고 하는 말들이 내 안에도 뿌리를 내리고 커간다'(@sinry****)는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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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열린 2020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코트를 빠져나가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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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선수가 지난달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일본전에서 득점을 한 뒤 팀 선수를 격려하고 있다. 김 선수의 결연한 표정은 일본에서 '밈(meme)'으로 퍼졌다. 온라인엔 이 이미지를 활용해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됐나 등의 패러디가 쏟아졌다. KBS 방송캡처

"보여주기에서 성취로"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 변화

여자배구 선수부터 '골 때리는 그녀들'(SBS) 그리고 '스우파'까지. 철녀들이 대중문화를 넘어 사회 전반에서 주목받고 있다. 29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방송콘텐츠 가치정보분석시스템에서 확인해보니, '스우파'는 '펜트하우스'와 대권 유력 주자들이 출연해 관심을 끈 '집사부일체' 등을 모두 제치고 이달 1~3째주 연속 드라마와 예능 통틀어 온라인 화제성 1위를 차지했다. 유명 여성들이 팀을 이뤄 축구 경기를 하는 '골때녀' 시즌1의 예상치 못한 인기에 박정훈 SBS 사장은 "여러분이 이렇게 목숨 걸고 할 줄 몰랐다"며 최근 시즌2 제작을 깜짝 발표했다.


'언프리티 랩스타' 등 '기 센' 여성들을 내세운 서바이벌 예능이 그간 없었던 건 아니다. '스우파' 등 2세대 여성 서바이벌 예능이 2010년대 인기를 끈 1세대 여성 서바이벌 예능과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다. ① 팀워크를 통한 성취를 강조하고 ②여성들의 감정싸움을 부각하지 않는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철녀들은 육체를 통한 성취를 보여줘 시청자에 카타르시스를 준다"며 "보여지는 몸에서 행위하는 몸의 가치를 부각해, 이 과정에서 여성의 몸이 사회적으로 다른 식으로 가시화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줘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몸에 대한 신뢰 그리고 협업을 통한 힘의 발산은 그간 남성의 유산처럼 여겨졌다. 이 편견을 대중문화 속 철녀들이 부수면서 여성의 새로운 서사를 원하는 시대적 요구와 맞물려 더욱 공감대를 쌓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운동이 남에게 보여주는 몸매를 만들기 위한 목적보다는 자신의 성취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흐름이 그 시너지의 배경이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자신을 위한 여성의 운동이 주목받으면서 시청자도 자신을 위해 몸을 단련한 사람들의 기록이나 삶을 보는 것에 더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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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의 FC불나방과 FC국대패밀리가 경기를 하고 있다. SBS 제공

생명력 없는 가상 인간 반작용... 혐오 넘어 실천 강조

철녀에 대한 환호는 로지 등 생명력 없는 가상 인간(여성) 등장에 대한 반작용과 무관하지 않다. 공희정 대중문화평론가는 "남성이 '쿡방(요리하는 방송)'의 중심에 서고, 여성이 운동과 댄스 등 근력 운동의 주인공이 될 때 젠더의 서사는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봤다. 철녀의 세상에선 혐오를 넘어 실천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메시지가 강조된다. 폭력배도 맨손으로 때려 잡는 중앙지검 형사 3부 여검사가 주인공(이하늬)인 SBS 인기 드라마 '원 더 우먼'에선 이런 대사가 나온다. "누구를 싫어하는 건 힘이 없어요. 투표할 때 보세요. 좋아하는 사람 찍잖아요,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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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 3종이 취미인 송미경씨. 사이클로 길을 질주하고 있다. 송씨 제공

철인 3종 하며 운동하는 몸 전시... "내 몸에 대한 신뢰 쌓여"

TV와 코트에서만 철녀들이 사는 게 아니다.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후반 출생) 여성들은 SNS에 운동하는 몸을 전시한다. 올여름 무역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취업을 준비했던 송미경(25)씨는 수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철녀' 인플루언서다. 그의 취미는 철인 3종. 7시간 동안 수영과 사이클, 달리기를 번갈아 하며 바다와 육지를 정복했다. 수영 선생님 소개로 2019년 철인 3종 클럽에 들어가면서 도전을 시작했다. 송씨는 "2018년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성훈이 철인 3종에 도전하고, 비슷한 시기 읽고 있던 부동산 책의 저자의 버킷리스트가 철인 3종이라고 해 입문했다"며 "철인 3종을 하면서 내 몸에 대한 신뢰뿐 아니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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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이 취미인 이정윤씨. 이씨 제공

남성보다 앞선 여성의 운동 참여율

이정윤(24)씨의 SNS에는 팔 힘 센 남성들이 주로 하는 클라이밍(암벽등반) 운동 사진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이씨는 "전혀 닿을 것 같지 않은 홀드에 손이 닿고 한 단계씩 올라가면서 실시간으로 내가 성장하는 느낌이 느껴져 이 운동에 빠졌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이렇게 운동하는 여성들을 다룬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란 책도 나왔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여성보다 운동을 많이할 것이란 생각은 편견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통계청이 올해 발표한 '2020 국민생활체육조사'와 '생활체육참여율'에 따르면, 여성 비중이 50.8%로 남성 43.2%보다 약 8%p 높다. 주 참여 운동은 걷기, 등산, 보디빌딩 순으로 나타났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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