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겨서 좋아했을 거야” 체육학 교수들마저 스스럼 없이 미투 2차 가해
피해자 고백 흥미거리로 여기며
교수들 거리낌 없이 주고받아
“왜곡된 사실 유포도 2차 가해
인식 개선과 지속적 교육 절실”
게티이미지뱅크 |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A씨는 최근 사석에서 만난 일부 체육학 교수들 사이 대화를 듣고 기겁했다. 체육계에서 폭행과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가 잇따르고 있던 시기에 피해를 주장한 여성선수 B와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지도자 C를 거론하며 “C가 잘 생겨서 원래 인기가 많았다”거나 “B가 C를 좋아했을 것”이라는 얘기를 서슴없이 나누는 걸 목격하면서다. A씨는 16일 본보와 통화에서 “체육계 미투 폭로 심각성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피해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체육학자들부터 피해자에 대한 배려는커녕 2차 가해 발언을 거리낌없이 주고 받는 모습은 충격이었다”며 “체육계 간부나 지도자들도 여전히 피해자들의 고백을 흥미요소쯤으로 여긴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 암담하다”고 했다.
스포츠 미투 폭로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체육계 자체가 2차 가해에 지나치게 둔감하단 지적이다. 지난 8일 조재범(38)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당했다는 심석희(22)의 폭로 이후 전직 유도선수 신유용(24)씨의 성폭력 피해 폭로 등이 속속 터져 나오며 사회적 파장이 일고 있음에도, 체육계 지도자나 간부들은 물론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점을 논의해야 할 체육학 교수들마저 2차 가해를 저지르는 행위가 반복되면서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되레 ‘연인설’을 퍼뜨려 피해 당사자들이 곤란을 겪기도 한다. 지난해 3월 체조계 간부 D씨로부터 지속적으로 강제추행과 폭행 피해를 당했다고 폭로한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코치 이경희씨는 “D씨가 지속적으로 나와 ‘연인이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는 주장을 폈는데, 체조계에선 권력자인 D씨 말에 동조하는 이들이 많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고교시절부터 코치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최근 폭로한 신유용씨 가해자로 지목된 코치 역시 신씨과 자신이 연인관계였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폭로를 지지하거나 존중하기보다 이를 치부로 여겨 감추려는 체육계 고위관계자들의 언행도 피해 고발을 위축시키거나 ‘위드유(with youㆍ당신과 함께한다)’ 확산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신씨는 15일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SNS에 공개한 성폭력 피해 글을 공유한 동료에게 유도계 한 인사가 ‘왜 그걸 공유 하느냐, 유도계 이미지를 훼손시키는 일’ 이라고 질책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경렬 체육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체육계 특유의 남성우월주위와 성(性)”인권 감수성 결여가 고스란히 들어나는 대목”이라며 “왜곡된 사실을 공공연히 유포하는 행위도 2차 가해란 사실을 인지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 인식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교육 또한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체육계 (성)폭력 비위 근절 대책 후속조치를 발표하고, 국가대표선수촌(진천ㆍ태릉) 운영 및 대표선수 관리 실태 전반에 대해 지난 11일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고 밝혔다. 문체부 측은 “감사에 성실하게 임하고 문제점이 지적되면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문체부는 또 체육계 비리 업무를 전담하는 ‘스포츠윤리센터’ 설립을 적극 추진하고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