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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소읍탐방] 공룡이 노닐던 그 바다...켜켜이 비밀 품은 풍경 밥상

<96> 경남 고성군 하일∙하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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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위치를 기준점으로 사고하기 마련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주민에게 고성군은 동해 최북단 북한과 접한 행정 지명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로 시간 거리마저 좁혀졌으니 마음의 거리도 한결 가까워졌다. 반면 부산을 비롯한 영남권에서 고성군은 남해와 접한 한적한 바닷가 고을이다. 동서남북으로 창원 사천 통영 진주에 둘러싸여 있으니 지명도나 인구 규모에서도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스쳐가는 곳이지만 한때는 한반도에서 생명 활동이 가장 왕성한 곳이었다. 그 ‘한때’라는 것이 정확한 연대를 특정하기 힘들 정도로 아주 오래된 과거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그만큼 신비스럽고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곳이다. 하이면 바닷가 상족암에서 고성 여행을 시작한다.


상족암, 지질의 역사 켜켜이 쌓인 옹골찬 밥상

1982년 고성 하이면과 하일면 바닷가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됐다. 한두 개가 아니다. 약 6km 해안 암반에서 발견된 발자국이 무려 2,000여개다. 걸음걸이로 구분하면 이족 보행과 사족 보행 공룡, 식성으로 나누면 초식과 육식 공룡, 골반뼈의 구조로 보면 도마뱀 모양의 용각류와 새와 비슷한 조각류 등 지금까지 알려진 거의 모든 공룡이 포함된다. 말 그대로 공룡의 천국이었다. 일대를 포괄하는 상족암 군립공원은 세계3대 공룡 발자국 화석지이자 천연기념물 제411호로 지정돼 있다.


이곳에 공룡이 살았던 시기는 중생대 쥐라기와 백악기, 대략 2억3,000만년에서 1억년 전으로 추정된다. 인류의 기원을 길게 잡아도 400만년이고, 현생 인류가 출현한 건 30만~40만년 전이다. 기껏 100세를 사는 인간이 가늠하기 힘든 시간이다. 상족암 위 언덕에 자리한 고성공룡박물관 야외에 20여종의 실물 크기 공룡 모형이 전시돼 있다. 실내 전시실은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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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탐방은 박물관 아래 제전마을에서 시작한다. 맥전포항과 상족암까지 조성된 탐방로 전체 길이는 약 3.5㎞지만 대개 중간지점인 제전마을에서 상족암까지 왕복한다. 해안을 따라 설치한 목재 덱으로 걷는 순탄한 길이다. 일부 구간에 계단이 있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 마을 주차장 이용료는 2,000원이다.


해안 탐방로로 발을 들이자마자 먼 과거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오른편 바위 절벽의 모습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담한 규모로 켜켜이 쌓이고 다져진 퇴적암층이 무지개떡처럼 섬세하다. 나무 뿌리가 바위틈을 벌리는 한편, 송악을 비롯한 덩굴식물이 얼기설기 기어오르며 추락을 막는다. 그 사이를 헤집고 먹이를 찾아 다니는 청설모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듯하다.


해안으로 내려가면 평평한 바위 위에 물웅덩이를 이룬 공룡 발자국이 선명하다. 육지에서 바다로 사선을 그리던 커다란 발자국이 바위가 끊어지며 종적을 감춘다. 거북 등껍질 모양으로 갈라진 바위에 새 발가락처럼 끝이 갈라진 발자국도 보인다. 초록의 습지를 어슬렁거리는 대형 초식공룡, 무성한 아열대 숲을 날아다니는 익룡의 모습이 그려진다. 흔적이 남은 건 공룡 발자국만이 아니다. 해안으로 밀려든 잔물결도 그대로 박제됐다. 바닷물이 들고나면서 넓은 갯벌이나 모래사장에 그려진 물결 무늬가 퇴적암에 고스란히 포획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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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를 돌면 아담한 해변이 나타난다. 다소 투박한 자갈로 덮인 몽돌해변이다. 파란 수면에 물비늘이 반짝이고 바닷물이 해안으로 밀려들 때마다 갯돌 구르는 소리가 청아하다. 탐방객이 층층이 쌓아 올린 돌탑이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해안 퇴적층이 섬세한 자연의 작품이라면 앙증맞은 돌탑엔 그런 자연을 닮고 싶은 인간의 본능이 투영돼 있다.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층층마다 각양각색의 소망이 축적된 듯하다. 몽돌해변 건너편으로 보이는 하얀 절벽은 병풍바위다. 길게 펼쳐진 모양을 본뜬 작명이다. 다소 거리가 있어 육안으로 확인이 어렵지만, 용암이 빠르게 식으면서 생긴 4~6각형의 돌기둥인 주상절리다.


몽돌해변에서 낮은 언덕을 하나 넘으면 드디어 최고의 절경으로 꼽는 상족암(床足巖)이다. 켜켜이 쌓인 퇴적암이 바람과 바닷물에 갈라져 거대한 바위기둥을 이루고 있는데, 그 모양이 마치 밥상다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잘 차린 밥상을 받아 보고 싶은 배고픈 민초들의 소망이 투영된 작명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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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바위 절벽과 시리도록 파란 바다가 대조를 이룬다. 갈라진 바위틈으로 들어가면 자연 조각작품의 매력이 제대로 보인다. 층층의 결을 더듬으며 상다리 사이로 발을 들이면 10여명은 족히 수용할 만한 제법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세로로 길게 갈라진 틈새로 바닷물이 찰랑거리고, 바닥에 남은 물기에 햇빛이 반사되면 거대한 바위 기둥에 물그림자가 일렁거린다. 해가 들지 않은 바위 표면에는 푸르스름하게 이끼가 묻어 신비스러움을 더한다. 풍화작용으로 떨어져나간 표면은 도깨비방망이처럼 우둘투둘하다. 상족암은 물때와 시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탐방객은 주로 굴 안에서 바깥으로 인증 사진을 찍는데 그 사이로 보이는 바다색과 주변 풍광이 시시각각 달라진다.


상족암 주변 암반에도 크고 작은 공룡 발자국이 여럿 보인다. 바닥뿐 아니라 판석이 떨어져 나간 절벽에서도 발견된다. 층층마다 무구한 지구의 역사가 응축돼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한 꺼풀 벗겨질 때마다 또 다른 비밀이 드러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족암은 허세로 차린 밥상이 아니라, 영양가 가득한 옹골찬 밥상이다. 저절로 사진을 찍고 싶게 하는 풍경 밥상이자, 다 알 수 없는 지구의 역사가 응축된 호기심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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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산 약사불은 왜 바다를 등지고 앉았나

퇴적암층은 상족암뿐만 아니라 고성 해안에서 두루 발견된다. 널빤지 같이 얇은 바위는 담장을 쌓는 재료로 그만이다. 상족암에서 멀지 않은 학동마을은 판석과 황토를 이용해 쌓은 돌담이 예쁜 곳이다. 돌담은 보통 돌이 생긴 모양대로 쌓거나 귀퉁이를 다듬어 아귀를 맞춘다. 그래도 불안하면 진흙으로 빈 공간을 메운다. 자연스러움이 강점이지만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학동마을의 담장은 주변에 흔한 퇴적암을 해체해 새로 쌓은 형식이다. 그래서 가지런하게 정돈된 느낌을 받는다. 수많은 풍파에도 한결같은 모습을 지켜 국가등록문화재 제258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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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동마을은 전주 최씨 가문이 300년간 터를 일구고 살아 온 마을이다. 순조 9년(1809)에 지은 최영덕 고가를 비롯해 여러 채의 고택과 돌담이 어우러져 고즈넉한 정취를 풍긴다. 마을 안길이 대부분 시멘트 포장인 점은 못내 아쉽다.


무이산(549m) 정상 부근에 자리 잡은 문수암에 오르면 상족암을 포함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바다와 섬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무이산은 중국 송나라 주희의 유교적 이상향이 짙게 밴 이름이다. 그곳에 불가의 문수보살이 기거하고 있으니 그 조합이 조금은 기묘하다. 문수암은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자랑하지만 명확한 근거는 부족하다. 가파른 바위 절벽에 들어선 전각도 콘크리트 외벽이어서 고찰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대신 사찰 자체가 훌륭한 전망대다. 부도탑 부근에 아예 널찍한 전망 시설을 갖췄다. 산자락이 끝나는 곳부터 쪽빛 바다에 작은 섬들이 파노라마로 이어지고, 정면으로는 통영 사량도의 우람한 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도로가 암자 바로 앞까지 나 있어 편리하지만, 산문에서 절간까지 걸으며 느끼는 산사 특유의 푸근함은 맛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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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아래 산 능선에 우뚝 선 황금빛 불상이다. 약 20년 전 건립한 보현암 약사불로 3층 전각 위에 세웠다. 바닷가 사찰의 불상은 대체로 망망대해를 향하는데 이 불상은 바다를 등지고 앉았다. 이 땅에 살아가는 아픈 중생을 구제하려는 마음으로 좋게 해석하면 그만이지만, 내막은 좀 다르다. 불상 아래는 가파른 산자락이어서 공간을 확보하기 힘든 지형이다. 부처의 등에 대고 기도를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이 바다를 등지고 세웠다고 한다.


물길 깊숙한 곳에 소흘비포성과 당항포관광지

상족암 입구 제전마을에서 약 6㎞ 떨어진 곳에 지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아담한 성터가 있다. 이름도 생소한 소을비포성지다. 소을비포성은 조선시대 수군이 왜군을 막기 위해 쌓은 해안 방어 진지다. 세종실록에는 군함 제작에 쓸 소나무 재배지였다는 기록이 있고, 세조 때 사량진이던 지명을 소을비포로 바꾸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인근 자란도와 가룡포에 임시로 고성현 관아를 옮기면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했던 곳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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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영은 육지 깊숙이 바닷물이 파고 든 곳에 자리 잡아 외해에서는 존재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가야시대부터 인근 포구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진지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현재 둘레 330m의 석축과 문루 하나를 복원해 놓았다. 성 내부는 깔끔하게 잔디밭으로 단장했다. 있는 듯 없는 듯 작은 포구가 정겹게 내려다보인다. 호젓하게 소풍하기 딱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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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좀 멀지만 고성에서 임진왜란 최대 격전지를 꼽으라면 당항포다. 충무공 이순신이 1592년과 1594년 두 차례에 거쳐 왜선 57척을 전멸시킨 곳이다. 창원(마산) 진동 앞바다에서 바닷물이 고성읍 동쪽까지 깊숙이 들어온 지형에 위치하는데,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바다는 강처럼 폭이 좁아 닭목이라고도 불렸다. 현재는 당항포관광지로 조성돼 있다. 절반은 충무공과 의병을 기리는 이순신 테마공원, 절반은 공룡 테마공원이다. 두 공원을 잇는 해안 산책로까지 있어서 가족 나들이에 적합한 곳이다. 한국관광공사가 경남의 안심나들이 장소로 선정한 곳으로, 실내 관람 시설은 휴관 중이다.



고성=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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