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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 5만호 첫삽 막은 ‘님비 바리케이드’

집값 하락 우려한 반대 민원 탓… 지자체도 주민들 반발 거들어

임대주택 덕에 집값 오른 곳 많아… 입주 기다리는 취약계층 피해

임대주택 5만호 첫삽 막은 ‘님비 바

임대주택 건설 지연 현황. 그래픽=김경진기자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는 2017년 9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협력해 학교 내 국유지에 150호 규모의 ‘대학협력형 행복주택’을 짓기로 했다. 기숙사와 유사한 대학협력형 행복주택은 주변 임대료의 60∼80 수준으로 공급돼 대학생 사이에선 ‘로또’로 불린다. 학교 측은 애초 과기대 학생과 인근 대학생을 절반씩 입주시킬 계획이었지만 이 사업은 1년6개월이 지나도록 아직 착공도 못하고 있다. 인근 주민들이 “임대료가 하락하고 집값까지 떨어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학생들의 처지는 이해하지만 우리의 생존권도 위기에 처해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거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정부의 각종 공공임대주택 사업이 이른바 ‘님비(NIMBYㆍ’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지역 이기주의)’ 심리에 발목이 잡혀 곳곳에서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 사업은 주민 반대를 넘지 못하고 끝내 좌초했다.


주민들은 공공임대주택 건립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왜 하필 우리 동네냐”며 사업 추진에 결사 반대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런 주민 반대와 복지예산 증가 우려 등을 이유로 임대주택을 반기지 않는다. 때문에 정부가 약속한 영구ㆍ국민임대주택 중 7만호 가량이 지금도 착공ㆍ준공에 차질을 빚고 있다.

"빈민아파트로 집값 떨어진다"

4일 국회 예산정책처와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해 7월말 현재 착공이 지연 중인 영구임대주택(극빈층 대상 50년 이상 임대)은 전국에 2,804호, 국민임대주택(서민층 대상 30년 이상 임대)은 4만7,996호로 집계됐다. 5만호 넘는 임대주택이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도 첫 삽조차 뜨지 못한 것이다. 착공 후 2년 넘도록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해 준공이 지연된 영구ㆍ국민임대주택 물량도 1만8,806호에 이른다.


임대주택 건설 지연의 가장 큰 이유는 지역 주민의 반대 민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집값 하락’을 우려한다. 임대주택이 들어오면 이른바 ‘못사는 사람’들이 유입되고, 주변 환경이 나빠지면서 집값이 하락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4월 서울시가 영등포구에 청년임대주택을 건립하려 했을 때,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빈민아파트 신축으로 아파트값 폭락 피해가 우려된다”는 유인물 등을 돌리며 반대했다.


주민 반대로 아예 사업이 좌초되는 경우도 있다. 정부가 서울 양천구 목동에 지으려던 1,300호 규모 행복주택 시범지구 사업은 85차례의 주민 소통 자리를 거치며 당초 2,800호에서 1,300호로 호수도 줄이기로 했지만, 계속된 반대에 결국 2015년 7월 지구지정을 해제했다. 비슷한 시기 추진됐던 강남구 수서동과 노원구 공릉동 등의 행복주택 시범단지도 주민 반대에 끝내 무산됐다.

"복지예산 더 든다" 지자체도 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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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 대기 인원 및 기간. 그래픽=신동준 기자

임대주택 건립에 대한 ‘님비’ 현상은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과기대 대학협력형 행복주택과 목동 행복주택은 이 지역 지자체도 건립에 난색을 보였다. 특히 양천구는 국토부를 상대로 지구지정 취소 소송까지 제기했다.


일부 구청의 강력 거부에 서울시 차원의 임대주택 사업이 차질을 빚기도 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매년 기존ㆍ신규 주택을 사들여 서민, 청년, 신혼부부, 대학생 등에게 시세의 70% 수준 임대료로 빌려주는 매입 임대주택 공급 사업에서 지난해 10월 서울지역 25개 구 중 6곳이 제외됐다. 6개 구 선출직 구청장들은 저소득층 유입을 반대하는 주민 의견을 무시할 수 없고, 저소득층 주민 증가는 한정된 구청 복지예산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실제 정부가 지난해 9월 강동구 고덕강일지구 신혼희망타운 공급 계획을 발표하자 주민과 강동구청이 합세해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신혼부부의 주거안정을 위한 신혼희망타운 조성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고덕ㆍ강일동 일대에는 이미 사회적 약자를 위한 주택이 1만세대 이상 충분히 공급돼 있어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고덕강일지구 지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반대는 애타게 입주를 기다리는 주거 취약계층에게 직격탄으로 돌아간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국 영구임대주택 입주 대기자 수는 2만4,455명(수도권 1만2,831명, 비수도권 1만1,624명), 이들의 평균 대기기간은 409일(수도권 559일, 비수도권 375일)이었다. 극빈층 2만5,000가구가 1년 넘게 보금자리를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국민임대주택도 대기자가 5만3,224명, 평균 대기기간은 249일에 달하고 있다.

"임대주택이 집값 올린 경우도 많아"

하지만 부동산 업계에선 임대주택이 들어온 이후 주변 집값이 오른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고 지적한다. 학술지 ‘주택연구’가 2017년 서울지역 행복주택 4곳(삼전, 내곡, 천왕7, 강일11)의 주변 아파트 실거래가격(2012년 1월~2016년 7월)을 분석한 결과, 행복주택 반경 250m 이내의 인근 아파트는 사업 이후 250~1,500m 떨어진 다른 아파트보다 약 6.5% 가격이 더 상승했다.


SH공사 도시연구원이 2006년부터 10년 동안 서울에 공급된 임대주택 주변 아파트의 실거래가격(2015년 7월~2016년 6월)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임대주택 반경 500m 이내 아파트 매매가는 평균 7.3%, 임대주택 반경 250m 이내는 평균 8.8%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적정 규모의 임대주택이 공급되면 기존 노후 주택가가 개선되고 버스노선 신설 같은 기반시설 및 공공서비스가 확대돼 주택 가격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분석하고 있다.


때문에 임대주택 입지 선정 때부터 주민들과 환경개선 협의를 진행하고, 지자체의 복지예산 부담 가중을 줄여주는 장치가 현실적인 갈등을 줄일 대안으로 거론된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임대주택 주민과 주변 주민들의 관계를 복원하는 데 행정의 역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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