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사사건건 한국을 ‘악담 소재’로 삼을까
‘혐한’ 악플의 문화적 기원
“그들이 악플로 갈 때, 우리는 무플로 대응하자”
일본 인터넷에서 악담의 단골 소재가 되는 한국
일본 인터넷 공간에서 한국을 공격하는 악성 댓글이 늘고 있지만 같이 맞서기보다는 차라리 대응하지 않는 이른바 ‘무플’ 전략이 우리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일 수도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
일본의 인터넷에서 ‘한국’은 독설의 소재이다. 한국 정부의 선제적 코로나 방역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동안, 일본에서는 콕 집어 “한국처럼 과도한 진단은 의료 붕괴를 부추긴다”는 주장이 대세였다. 일본의 매스미디어가 왜곡된 정보를 퍼뜨린 측면도 있고, 커지고 있는 ‘혐한’ 담론도 영향을 미쳤을 터이지만, 악담의 논리적 근거를 찾으려고 애쓴 흔적도 보인다. 예를 들어 “일본의 사망자 수가 한국보다 적은 것이 방역이 성공적이었다는 증거”라는 의견이 소셜 미디어에서 한동안 지지를 받곤 했다.
인터넷에 오르는 이런 글 하나하나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에는 소질도 없고 취미도 없다. 그보다 필자에게 궁금한 것은, 일본에서 왜 사사건건 ‘한국’이 소재가 되는가 라는 점이다. 한일 간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나, 뒤엉킨 외교 사안 등이 일본에서도 ‘핫 이슈’임에는 틀림없다. K팝이나 한국 음식 등 일본 젊은이들이 최근 한국 관련 주제에 관심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굳이 이웃나라를 언급할 일이 없는 사안에서도 부정적인 뉘앙스의 댓글에까지 난데없이 ‘한국’이 등장하는 일이 적지 않다. 한국 관련 뉴스에 악플이 몰려드는 것은 기본이다.
사실 한국의 인터넷에서도 일본 관련 뉴스에 대해서는 고운 말이 잘 안 나온다. 일본 정부의 소극적인 방역 대책을 우려하는 뉴스에 “도쿄에서 곧 코로나로 인한 지옥문이 열릴 것”이라는 불길한 악담이 따라붙는다. “올림픽 연기로 경제가 폭삭 망할 것”이라는, 저주 같기도 하고 예측 같기도 한 댓글도 적지 않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댓글이 잔뜩 찌푸려진 배경에는 악화일로를 달리는 한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삐걱대지 않는 분야가 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양국 교류는 침체되었고 서로에 대한 호감도 식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할지언정 직접적 관련이 없는 사안에까지 굳이 이웃 나라를 우겨 넣어 독설을 토하는 심리는 무엇일까. 한국과 일본의 인터넷 문화를 죽 관찰해 온 필자의 눈에는, 이런 세태가 단순한 비호감을 넘어 비이성적인 ‘집착’처럼 보이기도 한다.
국경을 넘나드는 ‘번역조’, 관심도 정보량도 높지만 왜곡도 발생
인터넷의 정보 교류를 가로막는 제일 큰 장벽은 언어다. 자발적인 ‘번역조’들의 활약은 이 장벽을 순식간에 허물어뜨린다. 한국의 따끈따끈한 뉴스가 어느새 일본어로 번역되어 소셜 네트워크를 탄다. 아침에 전파를 탄 일본의 TV프로그램이, 저녁에는 자막이 얹혀진 화면 캡처로 변신해 한국의 인터넷 게시판에 오른다. 뉴스에 달린 댓글까지 한 줄 한 줄 친절하게 번역되어 올라오는 일도 있다. 일본의 소셜 미디어에 한국 관련 정보를 좇는 트위터리안이 눈에 불을 켜고 대기 중이라면, 한국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언제라도 일본의 콘텐츠를 퍼 갈 준비가 되어 있는 유저가 활약 중이다. 의도가 어떻든 간에 국경을 넘어 신속하게 콘텐츠를 실어나르는 유저들의 기동성과 열정은 부인할 수 없다.
모든 자발적인 번역 노동이 이웃나라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특히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는 상대방의 허점을 드러내거나 사태를 삐딱하게 꼬아보는 의도가 다분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전형적인데, 딱히 한일 양국의 직접적 이해가 걸려 있는 사안이 아닌데도 험한 말이 오가는 것이다.
한국의 일부 신문사들은 오래 전부터 일본어 기사를 일본의 포털에 제공해 왔다. 한국 관련 기사는 조회수가 높고 댓글도 빠르게 늘어나는 만큼, 일본의 포털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들 신문사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인터넷 번역조에 가담했다고 하겠다. 실제로 이들의 시각이 일본의 인터넷 여론을 넘어서, 일본 정부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포털 사이트, 소셜 미디어 혹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활약하는 번역조들 덕분에 일본에서 유통되는 한국에 대한 정보는 양적인 면에서는 수준급이다. ‘댓글러’들은 이웃나라의 여론을 의외로 정확하게 알고 있고, 때로는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보다 상대국의 사안을 심도 있게 꿰뚫고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002년 “인조이 재팬-인조이 코리아” 실패한 한일 교류 프로젝트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네이버가 시작한 한국어-일본어 자동 번역 게시판이 한일 인터넷 문화가 서로를 맞상대로 의식하게 된 계기였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역사적인 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두고 개설된 이 게시판은 한국에서는 “인조이 재팬”, 일본에서는 “인조이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유저들이 모국어로 게시글을 쓰면, 자동으로 번역되어 각각의 언어로 표시되는 방식이었다. 자동 번역의 퀄리티가 썩 훌륭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럭저럭 의사 소통이 될 수준은 되어서, 실시간 토론과 유사한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한일의 문화적 접점을 넓히겠다는 서비스의 취지가 무색하게 경과가 좋지 않았다. 토론이 계속될 수록 한일 인터넷 유저 사이에는 타협할 수 없는 관점의 차이만 두드러져 소모적인 논쟁만 계속되었다. 서로에 대한 지식이 쌓일수록 호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해만 깊어졌다. 언어의 장벽을 허물면 한일의 인터넷 유저 사이에 우정이 싹트리라는 기대감은 허무하게 스러졌다. 유저들 한 명 한 명의 다양한 취향과 입장을 무시한 채, 나라의 이름으로 친목을 도모하자는 콘셉트 자체가 무모했을지도 모른다.
실패한 이 프로젝트는 특히 일본에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 게시판에서 시작된 한일 역사 문제에 대한 관심이 다른 익명 게시판으로 옮겨가, 한국을 상대로 역사 문제를 둘러싼 ‘사이버 전쟁’을 준비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진 것이다. 결국 이렇게 증폭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관심은, 현재진행형인 일본의 ‘혐한’ 풍조와도 접점이 있다. 한일 번역 게시판이라는 의도는 좋았지만, 결국 인터넷 게시판에서 ‘혐한’의 옹호 세력을 양산하는 초라한 결과가 된 것이었다.
때로는 “악플보다 무플”이 더 건강하다
“무플보다 악플”이라는 말이 있다. 오해가 있을지언정 지속적으로 의사 소통이 무지나 무관심보다는 낫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일 양국의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있자면, 과도한 정보와 섣부른 의사 소통이 혐오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건강할 때도 있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한일 간 정보 교류의 긍정적인 효과를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경을 오가는 정보량의 증가가 오히려 오해와 왜곡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극단적 사견에 불과한 악플이 여론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악플로 표출되는 혐오가 현실 정치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자꾸 눈에 띄어 걱정스럽다.
돌이켜 보면 악플은 단지 한일 인터넷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적 의견이 다른 이에게 근거 없는 악담을 퍼붓고, 전염병 공포에 질린 나머지 외국인에게 독설을 쏟아내기도 한다. 악플의 문화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미셸 오바마는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위 있게 행동하자”라는 명언을 남겼다. 요즘 같은 때에는 “그들이 악플을 달 때, 우리는 무플로 대응하자”라는 행동 강령을 마음에 새겨야 하지 않을까.
김경화ㆍ칸다외국어대 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