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꺼낼 필요 없는 스마트패스, 왜 늦어지나
지문ㆍ얼굴 인식으로 공항 이용
시범사업 내년 하반기로 연기
생체정보 이용 위한 법 개정 시급
국토부ㆍ공항 등 업무 조정도 필요
스마트패스 개념도. 그래픽=박구원 기자 |
요즘 전세계 주요 공항들의 최대 고민은 늘어나는 여행객 처리다. 여행객의 증가로 항공권 발급 및 보안검사와 출입국 심사, 짐을 붙이는 시간 등이 1시간 이상 걸린다.
세계 각국 정부와 공항들은 이를 줄이려고 정보기술(IT) 업계와 협의해 ‘원 아이디’(one ID) 도입 적극 추진하고 있다. 원 아이디란 지문, 얼굴, 정맥 등 생체 정보를 이용해 항공권 발급부터 보안 검색, 출입국 심사 및 수화물 처리까지 한 번에 끝내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면 매번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번거롭게 여권과 항공권을 꺼낼 필요가 없어 공항 이용이 편해지고 수속 시간도 크게 단축된다. 또 여행객의 여유 시간이 늘어나 면세점 수입도 증가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여행객이 공항에 도착해 출국 심사까지 걸리는 시간을 60분 이내로 줄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도 같은 이유로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제75회 연차총회에서 원 아이디 사업을 서두르기로 결의했다.
늦어지는 스마트패스 시범사업
인천국제공항도 마찬가지다. 인천공항공사는 똑똑한 공항 만들기의 일환으로 ‘스마트 패스’라는 이름의 원 아이디 계획을 지난해 6월에 발표했다. 당시 공사 측은 2019년 초부터 스마트 패스 시범사업을 시작해 2020년에 본격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공사의 계획은 여행객의 얼굴 사진과 지문 정보를 이용해 출국장 입장, 보안 검색, 출입국 심사, 항공기 탑승 등 각 단계별로 여권과 항공권을 매번 제시하는 불편함을 없애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현재 인천공항은 스마트 패스 시범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29일 국토교통부, 법무부와 인천공항,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인천공항의 스마트 패스 시범 사업이 내년 하반기 이후로 늦춰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스마트 패스 시범 사업은 관련 법 개정과 시스템 구축에 시간이 필요해 내년 하반기나 내년 말쯤 할 것”이라며 “본격 시행은 2021년에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공항도 올해 시범 사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스마트패스는 국경 관리 시스템이 바뀌는 것이어서 법무부, 국토부 등과 협의가 필요하다”며 “계획대로 진행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내년에 시범사업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범 사업이 늦어지는 이유는 우선 법 개정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김용원 국토부 항공보안과장은 “법무부와 경찰청이 보유한 생체 정보를 공항 등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 주체를 항공보안법에 규정해야 한다”며 “올해나 내년에 의원 입법이나 부처 발의로 항공보안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도 “관련 법 개정에 대해 국토부와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또 내,외국인의 출입국 관리는 법무부, 보안검사는 공항, 항공보안법 관련 업무는 국토부가 관할하는 등 공항 관련 업무가 여러 군데 흩어져 있어서 부처간 협의가 필요하다. 그렇다 보니 정부는 어느 한군데서 주도적으로 스마트 패스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워 국토부 법무부 경찰청 등이 참여하는 전담팀(TFT)을 만들어 업무 조정을 논의하고 있다.
법무부는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는 출입국 무인 자동심사라도 늘리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이마저도 올해는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힘들다. 법무부 관계자는 “출입국 심사대의 70%를 단계적으로 자동 무인화하려 한다”며 “내년에 노후 기기 교체 및 신규 증설에 필요한 자동 무인화기기 97대를 도입하려고 관련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신청해 놓았다”고 밝혔다.
스마트 패스 시범사업, 항공권 발권에 적용
스마트 패스가 본격 도입되면 항공권을 살 때 얼굴과 지문 정보를 입력해 이 정보를 토대로 출국장 입장, 보안 검색, 항공기 탑승을 얼굴과 지문 정보만으로 대신할 수 있다. 단 출입국 심사는 지금처럼 무인 자동화기기를 거칠 때 여권을 접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법무부는 국민들의 지문과 얼굴 사진 등 생체 정보를 공항에 제공해야 한다. 국토부는 시범 사업 때 공항의 항공사 창구에서 얼굴과 지문을 입력하면 법무부에 보관된 생체정보와 대조해 본인 여부를 확인한 뒤 스마트패스용 원 아이디(토큰)를 생성하도록 할 방침이다. 다만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현재 인천공항의 항공사별 발권 창구만 700개여서 시범 사업 때 모두 적용하기 어렵고 셀프 체크인 기기에 우선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IT업계에 따르면 관련 기술과 장비는 국내 중소업체들이 이미 개발을 완료했고 무인 자동화심사 등에 적용하고 있다. 국토부와 법무부는 스마트패스에 국내 중소업체들의 기술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내 중소업체들의 기술이 몽골에도 수출되는 등 앞선 만큼 이를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자연스럽게 걸어가면 자동으로 출입국심사가 가능한 무인 장비(사진)도 국내 중소업체에서 개발한 만큼 이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금은 장비 앞에서 여권 접촉 후 지문과 얼굴 인식을 거쳐야 하지만 이 장비가 도입되면 자연스럽게 걸어가며 출입국 심사를 마칠 수 있다.
인력 줄여야 하나
스마트 패스 사업에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장벽은 인력 문제다. 로봇 등 자동화 기기는 그만큼 사람 손이 덜 필요하다. 따라서 스마트 패스가 도입되면 관련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무인 자동화 기기가 도입돼도 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기기에 이상이 생기면 여권이나 생체 정보가 제대로 인식 되지 않을 수 있고 자동화 기기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이나 장애인, 어린이 등을 위해 사람이 필요하다”며 “출입국 심사의 경우 무인 자동화 기기 3대당 심사관이 앉아 있는 심사대를 1개씩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인 심사대 1개 공간에 자동화 기기 3,4대를 놓을 수 있어 국민들의 공항 이용 시간이 크게 단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공항 간에 생체 정보 교류도 가능
미국 애틀랜타의 하츠필드잭슨공항, 영국 런던의 히드로공항, 호주의 시드니공항,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공항, 싱가포르의 창이공항,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공항 등이 원 아이디 사업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원 아이디를 도입하는 공항들이 늘어날수록 여행객들은 편해진다.
자국에서 출발할 때 생성한 원 아이디 정보를 해외 공항에서 그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세계 각국 공항들이 원 아이디 이용 협정을 맺어야 한다.
다만 나라에 따라 약간씩 입장차이가 있다. 허브 공항이 많아 여행객이 몰리고 관련 처리에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유럽에서는 원 아이디 도입에 적극적이다. 반면 미국은 테러 등 보안 위협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원 아이디 도입을 서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국내 스마트 패스 사업도 어디와 제휴를 맺느냐에 따라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해외 공항과 원 아이디용 생체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은 국가간 협의가 필요해서 1,2년 사이에 힘들 것”이라며 “하지만 궁극적으로 공항간 정보 교환이 가능해야 원 아이디가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