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아찔한 구름다리ㆍ정겨운 양떼목장…걷기 딱 좋은 작은 마을

자박자박 소읍탐방

내륙에서 가장 작은 충북 증평군

한국일보

증평읍 남쪽 끝자락 좌구산 자연휴양림 입구에 설치된 ‘명상구름다리’. 휴양림과 율리마을, 삼기저수지를 연결하는 여러 개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증평=최흥수 기자

1읍 1면, 충북 증평은 울릉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군이다. 읍내에서 남북으로 끝까지 가도 10km 남짓해 20분이면 어디든 닿는다. 2003년 괴산군에서 분리된 이후 면적은 줄었지만 인구(10월 현재 3만7,447명)는 꾸준히 늘어 괴산군과 엇비슷해졌다.

미루나무 숲 지나 장뜰시장에 정겨운 가위 소리

증평 읍내로 들어서면 보강천변 미루나무 숲이 반긴다. 아름드리 미루나무 수십 그루가 열을 지어 하늘로 솟아 있다. 한때 강변이나 도로 가에 심어 은은하고 이국적인 정취를 풍겼지만 요즘은 흔치 않은 풍경이다. 이곳은 37사단 각계전투 훈련장이었다. 훈련장을 괴산 청안면으로 옮긴 후 1997년 공원으로 조성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시설물은 모두 철거됐지만 미루나무만은 그 자리에 남았다. 증평에는 37사단과 제13공수특전여단 등 2개의 군부대가 있다. 특전사는 가수 겸 배우 이승기가 복무했던 곳이다. 미루나무는 일찌감치 잎이 떨어져 현재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렸던 숲은 겨울 초입에도 여전히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다.

한국일보

증평읍 한가운데를 흐르는 보강천과 미루나무 숲.

한국일보

군부대 훈련장이 공원으로 변신한 후에도 아름드리 미루나무는 그대로 남았다.

증평 읍내는 장뜰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상설시장과 5일장(1ㆍ6일)이 동시에 열리는 시장이다. 시장 골목 초입에 증평의 명물 증평대장간이 있다. 대장장이 최용진씨가 이곳에서만 30년 넘게 무쇠를 달구고 두드려 농기구를 만들고 있다. 입구에는 대장간이라는 간판 대신 ‘증평군 향토유적 제9호 대장장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받은 ‘숙련기술전수자’ ‘기능전승자의 집’ 현판이 자랑스럽게 걸려 있다. 온갖 농기구로 꽉 찬 대장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물건은 선물용 ‘대장간 세트’다. 곡식 티끌을 걸러내는 조그만 키에 장난감 크기의 호미ㆍ도끼ㆍ곡괭이ㆍ낫ㆍ경첩과 돌쩌귀 등이 담겨 있다. 시대 변화를 숨가쁘게 따라가려는 고민이 담겨 있는 듯하다.

한국일보

증평대장간 대장장이 최용진씨가 온갖 농기구가 가득 들어찬 좁은 대장간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작업하고 있다.

한국일보

최용진 대장장이가 요금 가장 신나게 만드는 작품은 ‘엿장수 가위’다. 경쾌한 소리가 나게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란다.

그중에서도 엿장수가 사용하는 가위는 대장장이가 요즘 정성을 들이는 작품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경쾌한 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결코 만들기 쉽지 않은 물건이다. 가윗날의 두께와 휨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즉석에서 호미 만드는 시범도 보여 준다. “잘 찍어야 햐, 1분도 안 걸리니께.” 미리 잘라 놓은 쇠를 발갛게 달군 후 모루에 얹어 탕탕 몇 번 두드린 후 자루를 끼우니 작은 선물용 호미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정확히 44초가 걸렸다. 대장간은 허름해도 대장장이의 손놀림은 엿장수 가위처럼 경쾌하고, 표정은 밝아 보였다.

한국일보

삼순이 식당은 외모는 초라해도 증평의 맛집이다. 외곽에 들어선 아파트단지 주변으로 번듯한 식당이 많지만 시장 주변에서 오랫동안 장사해 온 식당들이 여전히 주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한국일보

삼순이 식당의 ‘짜글이’. 두루치기와 비슷한데 사용하는 재료와 맛은 식당마다 다르다.

한국일보

함지박소머리국밥 식당의 인기 비결은 푸짐함이다.

진천ㆍ음성ㆍ괴산의 장꾼들까지 모인다는 증평장뜰시장에선 인삼과 돼지고기가 많이 거래된다. 시장 안에 순대와 ‘짜글이’ 식당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짜글이는 넓은 냄비(불판)에 돼지고기를 자글자글 끓여내는 음식이다. 두루치기와 비슷한데 김치와 양파, 고추장과 고춧가루 등 어떤 채소와 양념을 많이 쓰느냐에 따라 집집마다 맛과 빛깔이 달라진다. 허름한 간판의 ‘삼순이’ 식당 짜글이(8,000원)는 양파와 고추장을 주로 쓴다. 건더기를 먹고 남은 자작한 국물에 밥을 볶아 먹는다. ‘함지박소머리국밥’은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식당으로 점심시간이면 구내식당처럼 붐빈다. 비결은 푸짐함이다. 뚝배기에 고기가 듬뿍 들어 ‘특(1만3,000원)’ 사이즈를 시키면 공기밥이 없어도 될 정도다. ‘장뜰순대’ 역시 소문난 순대 식당이다.

좌구산 출렁다리 vs 에듀팜 양떼목장

증평이 자랑하는 두 여행지는 좌구산 자연휴양림과 에듀팜 관광단지다. 각각 증평 남북 끝자락에 위치한다.

한국일보

좌구산 자연휴양림 초입 계곡을 가로지르는 ‘명상구름다리’. 높이가 아찔해 명상하며 걷기는 힘들다.

한국일보

여행객들이 좌구산 자연휴양림의 사과 조형물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Tip!

이 쯤에서, 여행지가 더 궁금해졌다면?!

호텔 예약은 호텔스컴바인에서! 

한국일보

좌구산 주변에는 마을과 호수를 연결하는 여러 갈래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거북이 앉아 있는 형상이라는 좌구산(657m)은 증평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다. 읍내에서 남쪽으로 난 540번 지방도로로 끝까지 달리면 좌구산 기슭에서 길이 끝난다. 최근 자연휴양림 초입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대형 출렁다리가 생겼다. 이름하여 ‘좌구산 명상구름다리’인데 명상하며 걷기엔 50m라는 높이가 아찔하다. 흔들림이 심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옮기면 붉게 퇴색해가는 키 큰 잎갈나무 가지가 발 아래로 지나간다. 구름다리를 건너면 자작나무가 숲을 이룬 가파른 산등성이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좌구산에는 이 길 외에도 산꼭대기의 천문대와 자연휴양림 숙박시설을 연결한 여러 갈래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좌구산 휴양시설은 산 아래 율리마을까지 한 묶음이다. 증평이 자랑하는 인물 김득신(1604~1684)의 묘소가 있는 마을이다. 큰 길에서 마을 뒷산 언덕의 묘소까지 약 400m 구간을 ‘김득신 문학길’이라 이름 붙였다. 특별히 경치가 빼어나다고 하기 어렵고, 꼭 봐야 할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권할 정도는 아니다. 대신 김득신이라는 인물만은 기억해도 좋겠다.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에서 전사한 김시민의 손자이자, 효종이 ‘이 시대의 으뜸’이라고 칭찬한 조선시대 문인이다.

한국일보

좌구산 아래 율리마을. 마을 오른쪽 뒤편 언덕에 김득신 묘소가 있다.

한국일보

율리마을 앞 공원의 늦가을 풍경.

한국일보

증평 읍내 미루나무 숲의 ‘김득신 책방’. 김득신은 증평이 가장 자랑으로 내세우는 노력형이자 대기만성형 인재다.

한국일보

율리마을 앞 삼기저수지 둘레를 따라 산책로가 나 있다.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마을 앞 담장과 공원에 그의 일생을 기리는 조형물이 몇 개 설치돼 있다. 보통 위인이라면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나다고 자랑하기 마련인데, 김득신은 그 반대다. 그의 묘비에는 ‘재주가 남만 못하다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라고 적혀 있다. 스스로 금방 배운 것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둔재라 한 것이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읽고 또 읽은 것이었다. 책 한 권을 잡으면 수만 번을 읽었다 하니 그 노력이 어떠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부디 공부를 하려거든 김득신처럼…. 마을 인근 삼기저수지 둘레에 ‘등잔길’이라는 목재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자극적인 눈요깃거리는 없다. 진득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 김득신을 떠올리는 길이다.


도안면 두타산 자락의 에듀팜관광단지는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중부지역 명소로 추천하는 곳이다. 수도권에서 가까워 올 8월 개장한 이래 이미 10만여명이 다녀갔다. 골프장과 콘도 시설 외에 이색적인 즐길 거리와 볼거리를 갖췄다.

한국일보

도안면 에듀팜관광단지의 양떼목장에서 진행하는 양몰이 시범공연. 미국에서 온 2마리의 양몰이 개가 번갈아 출연한다.

한국일보

목동의 지시에 따라 양몰이 개가 다리 위로 양떼를 몰고 있다.

한국일보

양몰이 공연이 끝나면 먹이주기 시간이다.

한국일보

에듀팜관광단지는 벨포레리조트로도 불린다. 리조트 안에서는 고풍스런 셔틀버스로만 이동할 수 있다.

관광단지 내 최고 인기 시설은 루지다. 리프트를 타고 산중턱까지 올라 무동력 카트로 산길을 지그재그로 내려온다. 난도가 높은 A코스(1.38km)와 무난한 B코스(1.47km)가 있다. 원남저수지에서는 제트보트와 요트 등 수상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리조트 중앙 언덕 꼭대기에 양떼목장이 있다. 아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곳이다. 이곳에선 미국에서 이사 온 양몰이 개 ‘캘리’와 ‘코니’의 양몰이 공연이 열린다. 목동의 지시에 따라 양떼를 울타리로 몰아넣기도 하고, 아치형 다리로 이동시키기도 한다. 공연이 끝나면 양들에게 먹이를 주고, 양몰이 개와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다. 에듀팜관광단지는 2021년까지 워터파크, 식물원, 숲 체험장, 귀촌 센터 등을 차례로 개장할 예정이다.

인생사진 명소 정북동토성과 초평호 한반도전망대

증평은 청주ㆍ진천과 지척이다. 청원구 미호천변 정북동토성은 인생사진 명소로 주목받는 곳이다. 증평 읍내에서 20km 떨어져 있다. 정북동토성은 평지에 사각형으로 쌓은 성이다. 높이 3.5m 안팎의 낮은 성이 675m 둘러져 있다. 시대를 특정할 수 없지만 발견된 목책은 1세기, 토성은 3세기 무렵 쌓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일보

청주 미호천변 정북동토성은 노을 사진 명소다. 낮은 토성 능선과 하늘이 간결한 장면을 연출한다.

한국일보

얼굴보다 실루엣 사진을 찍기 적합하기 때문에 몸 연기에 자신이 없다면 의상을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해가 질 무렵이면 들판 끝자락 강가에 자리 잡은 토성 주위로 하나둘 차량이 몰린다. 낮은 둔덕 위에 소나무 몇 그루 서 있는 게 전부인데, 어둠이 내린 능선과 검붉게 물들어 가는 하늘의 경계가 간결하고 선명하다. 노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얼굴보다 실루엣 사진에 적합하다. 몸 동작 연기에 자신이 없다면 모자나 코트 등으로 멋을 내면 더욱 좋다. 진짜 사진 찍기 좋은 시간은 해가 떨어진 후부터 약 20분간이다. 파랗던 하늘이 노랗게 물들었다가 붉은 기운을 토해 낸 후 검붉게 사그라진다. 삼각대가 없으면 독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다. 둘이 다정한 포즈로 찍고 싶으면 셋 이상이 꼭 함께 가야 한다.

한국일보

천년의 세월을 품은 진천 농다리. 돌이 맞물리도록 쌓아 자연미가 살아 있다.

한국일보

두타산 자락의 ‘초평호 한반도전망대’. 풍경은 시원하지만 한반도 모양이 선명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한국일보

진천 ‘초평호 한반도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호수에 낚시용 좌대가 고깃배처럼 둥둥 떠 있다.

진천 농다리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다. 증평 읍내에서 약 15km 떨어져 있다. 돌부리가 맞물리도록 쌓아 견고하고 자연미가 살아 있다. 그 멋을 아는 사람들만의 사진 명소다. 농다리에서 산책로를 따라 고개 하나 넘으면 초평저수지다. 애초 인근 들판에 농업용수를 대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낚시터로 더 유명하다. 최근 증평과 경계를 이루는 두타산 산중턱에 ‘초평호 한반도전망대’가 세워졌다. 호수 뒤로 진천 읍내까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데 한반도 모형은 조금 아쉽다. 초평호에 두둥실 떠 있는 낚시용 좌대가 오히려 볼거리다.


증평=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Tip!

여행 계획의 시작! 호텔스컴바인에서

전 세계 최저가 숙소를 비교해보세요. 

오늘의 실시간
BEST
hankookilbo
채널명
한국일보
소개글
60년 전통의 종합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