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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집콕생활] 정원과 모래 놀이터가 있는 아파트 1층에 살아봤니

한국일보

슬콕/1층

아파트 1층이 확 달라졌다. 예전에는 사생활 침해와 방범 우려, 채광 부족, 소음 등으로 기피했지만 최근에는 층간 소음 문제를 해결해주고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신 로열층’으로 각광받고 있다. 1층에 정원이 있는 일부 아파트의 경우 1층 매매 가격이 단지 내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박정환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파트에서의 삶의 질을 따지는 사람들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며 “층간 소음이나 동선 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1층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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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1층은 베란다 앞 정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장미와 수국, 단풍나무 등이 있는 화단에 간이 테이블만 두면 '나만의 정원'이 된다. 박선영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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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집 앞 정원 풍경을 담기 위해 가구는 최소화하고 테이블과 의자, 대형 화분 등만 간결하게 두었다. 박선영씨 제공

베란다 앞 정원과 놀이터

서울 오금동의 10년 된 아파트 1층에 사는 박선영(35)씨 부부는 둘만의 정원이 따로 있다. 집은 주방을 통해 베란다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로, 베란다 앞에는 장미, 수국, 철쭉, 단풍나무 등 갖가지 꽃과 나무가 있다. 이곳은 도로에서 들어올 수 없게 울타리가 둘러져 있어 사실상 부부만이 쓸 수 있다. 부부는 화단 앞 작은 땅에 파라솔이 있는 간이 테이블을 두고 피크닉을 즐긴다. 지난해 초 이곳으로 이사한 박씨는 “집을 구할 때 매물이 없어 하는 수 없이 1층을 봤는데, 베란다 앞 풍경을 보자마자 ‘여기에 꼭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1층이지만 사람들이 다니지 않고, 꽃과 나무들이 시선을 차단해줘 우려했던 사생활 침해가 없다”고 말했다.


아파트지만 단독 주택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이 1층의 가장 큰 장점이다. 박씨는 “날씨나 계절이 변하는 걸 잘 느낄 수 있고, 언제든지 바깥에 나가서 햇빛을 쬐고 바람을 쐬는 즐거움이 커졌다”며 “마치 단독 주택에 사는 기분이 들 정도”라고 만족해했다. 그는 창 밖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창가에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실내에 대형 화분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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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1층에 사는 박찬미씨의 베란다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외부로 문이 열린다. 박찬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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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와 이어진 계단을 내려오면 아이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모래 놀이터가 있다. 박찬미씨 제공

지난해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로 이사한 박찬미(36)씨도 1층을 선택했다. 5세 쌍둥이를 키우는 워킹맘 박씨는 “아파트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기엔 한계가 있지만 단독 주택으로 옮기긴 쉽지 않았다”며 “대신 1층에 살면 소음이나 답답함 등의 문제를 보완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앞 베란다에는 문을 열고 나가면 바깥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다. 서너 칸만 내려가면 바로 흙을 밟을 수 있다. 베란다 앞으로 산책로가 있지만 유동인구가 많진 않다. 촘촘하게 심은 정원수도 사생활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됐다. 박씨 가족은 사생활 침해나 방범의 우려보다 1층이어서 누리는 게 더 많다. 그는 계단 아래에 모래를 깔아 쌍둥이의 전용 모래 놀이터를 만들었다. 방울토마토와 블루베리 등을 심은 작은 텃밭도 있다. 박씨는 “고층에 살 때는 하늘밖에 안 보였는데, 1층에 살아보니 꽃봉오리가 언제 올라오는지, 낙엽이 어떻게 떨어지는지도 보인다”ㄹ며 “이사하고 자연이 왜 아이들의 최고의 놀이터인가를 깨닫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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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1층의 경우 외부의 시선이 부담스럽다면 베란다 창을 줄이고 벽을 올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인스타그램 101mansi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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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보조 베란다를 확장하고 창을 살려 1층 공원 풍경을 담았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101mansio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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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막혀 있는 화장실도 확장해 창을 내면 외국 휴양시설 못지않다. 블라인드를 활용하면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101mansion

전망은 담고 시선은 차단하고

20년 된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 1층으로 최근 이사한 30대 주부 김모씨는 베란다 창 절반을 벽으로 막았다. 베란다 앞 지상 주차장에서 들어오는 오가는 이들의 시선과 자동차 소음을 막기 위해서였다. 김씨는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24시간 치고 살 바엔 벽을 쌓아 시선을 가리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며 “다만 시선이 닿지 않는 높이에는 창을 남겨 채광과 풍경을 확보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m 가까이 올린 창은 불편한 시선은 차단하고 아른거리는 나뭇가지들만 담아낸다. 창을 반으로 줄였어도 집이 정남향이어서 채광은 넉넉하다.


반대로 북향인 주방 베란다는 벽을 허물었다. 내력벽이 아니라 가능했다. 주방 베란다를 확장해 창을 살렸다. 집 앞 공원 풍경이 액자처럼 걸린다. 김씨는 “꽃과 나무가 적당히 가려주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어서 살렸다”며 “바깥이 공원이어서 전망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사방이 벽으로 막혀 있던 화장실도 확장해 창을 냈다. 김씨는 “아파트 화장실은 천편일률적으로 막혀 있는데, 개방적인 느낌이 들었으면 해서 과감하게 창을 냈다. 원할 때는 블라인드를 걷어놓고 전망을 보고, 쓸 때는 블라인드를 내려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같은 아파트라도 층수나 구조에 따라 비슷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같다”며 “1층은 단독 주택 같은 자유로움과 아파트의 편리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고 추천했다.


1층을 특화한 아파트도 늘어나고 있다. DL이앤씨(옛 대림산업) 상품개발팀 관계자는 “요즘에는 1층이어도 동간 간격이나 향을 조정해 채광이나 소음 등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고 있다”며 “1층만이 누릴 수 있는 텃밭이나 전용 테라스를 갖춘 곳들이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인테리어업체 ‘아파트멘터리’의 윤소연 대표는 “아이들이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른들이 있는 가구의 경우 1층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며 “고층과 달리 1층은 전망과 정원 등 외부 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평가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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