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하듯 페인트 칠 하다 보면 나만의 새로운 공간이 탄생
최고요의 생활의 발견
페인팅의 즐거움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최고요 작가의 현관 신발장. 원목 재질의 신발장(왼쪽)이 밝은 회색페인트 칠을 통해 세련되게 재탄생 했다. 최고요 제공 |
셀프인테리어가 취미이자 놀이였던 시절이 있습니다. 지금은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의뢰 받은 공간 프로젝트들을 이어가느라 제 공간에 예전만큼 시간을 쏟지 못하지만, 회사에 다닐 때는 퇴근 후 혹은 주말 동안 ‘어떻게 하면 내 집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곤 했습니다. 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들을 혼자 야금야금 바꾸어가며 뿌듯함을 즐겼는데 물건을 새로 사거나 가구를 바꾸는 일 외에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일은 페인팅이었습니다.
약속도 없고 할 일도 없는 주말에는 문짝이나 찬장을 칠했습니다. 한 번 칠했던 곳을 다른 색으로 칠하기도 했습니다. 페인팅이 묻지 않아야 하는 곳에는 꼼꼼하게 커버링 비닐을 씌우고 마스킹 테이프를 붙입니다. 페인트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작업을 건너뛰거나 대충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트레이에 페인트를 붓고 칠하는 부분에 맞는 적당한 크기의 롤러와 붓을 준비합니다. 찬장이나 문짝을 칠할 때는 주로 4~6인치 정도의 작은 롤러를 사용했습니다. 빨리 칠하고 싶다고 페인트를 잔뜩 묻혀서 바르면 흘러내려서 좋은 모양이 나오지 않습니다. 적당히 흐르지 않을 정도의 양을 묻혀서 W나 M 자를 그리고 가로나 세로 방향으로 펴준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한 번 칠을 하고는 충분히 말려야 하기 때문에 잠깐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처음과 같이 칠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보통은 두 번, 페인트나 칠하는 표면에 따라 세 번을 칠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중간에 사포질을 하거나 롤러가 닿지 않는 귀퉁이에 붓질을 해야 할 때도 있고요. 꼼꼼하고 섬세한 작업이어서 평소 성격이 급하고 덤벙대는 저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수행이나 수련 비슷하게 느껴지곤 하지만, 작업을 마치고 나서 떼어 두었던 손잡이를 돌려 끼우며 찬장을 바라보던 그 뿌듯함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클라이언트를 위해 테이블 상판을 페인트로 칠했습니다. 비록 주문한 테이블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일이었지만 셀프인테리어가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던 예전, 다른 일들도 모두 잘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게 해주었던 페인팅 작업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공간디렉터 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