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 닿은 곳 없어요" 부부가 4년간 지은 친환경 집
경기 용인의 단독주택 '행복한 산호'는 건축주 부부가 4년간 직접 지은 친환경 집이다. 설계를 맡은 아내는 한옥에서 영감을 얻어 남향의 마당을 품은 '기역(ㄱ)'자 구조로 집을 배치했다. 송옥진 기자 |
집 짓기의 벽은 일반인에게 높기만 하다. 집 짓기란 설계부터 준공까지 끝없는 선택과 정답 없는 타협의 연속이다. 집 한 번 짓고 나면 10년은 늙는다는 세간의 말을 굳이 상기하지 않아도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됨을 짐작할 수 있다. 자재, 공법, 건축법 등 전문적인 지식도 뒷받침돼야 한다. 대다수 건축주가 건축사사무소에 결정을 상당 부분 일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 용인 단독주택 '행복한 산호(대지면적 800.00㎡, 연면적 153.10㎡)'의 건축주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백승기(39) 이지원(36)씨 부부는 비전문가지만 자신들이 오롯이 중심에 선, 건축주 주도의 집 짓기를 하고 싶었다. 부부는 그래서 설계부터 준공까지 4년간 차근차근 집을 지었다. 집은 둘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쓱 둘러 보면 벽 안의 철근 모양, 바닥 내부의 보일러 배관 위치가 투시되듯 훤하다. 부부와 여섯 살 아들, 반려견 겨울이가 사는 행복한 산호는 '우리 집'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집이다.
ALC 블록으로 지은 친환경 집
집은 단층이지만 층고가 높아 단조롭지 않다. 천장은 석고 마감을 따로 하지 않아서 지붕의 경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송옥진 기자 |
가족은 이전에 수원 광교의 상가주택에서 살았다. 신도시 택지지구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었지만 마음이 불편할 때가 많았다. 상가주택 주차장은 무단 주차가 빈번해 주차가 어려웠고, 자동차 소음도 컸다. 무엇보다 집 앞에 차가 많이 다녀 아이에게 친화적인 환경이 아니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남편은 집을 짓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반려견 용품 사업을 하는 남편은 이미 회사 물류 창고를 직접 지은 경험이 있었다. 반대하던 아내도 '원하는 대로 지어주겠다'는 남편의 장담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부부는 설계와 시공을 모두 직접 하기로 했다. 부부가 온전히 원하는 대로, 하자 없이 제대로 짓기 위해서다.
이들은 남편의 물류 창고와 5분 거리에 있는 땅에 터를 잡기로 했다. 아이 이름인 산호처럼 주변의 산과 하늘(호·昊)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 "'여기가 산호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집 이름을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서 '행복한 산호'라고 지은 것도 있지만 산과 하늘이 잘 보이는 집이라는 의미도 담았어요."
사진에서 오른쪽 문이 집의 현관이다. 현관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사적 공간, 왼쪽에 공용 공간을 배치했다. 입구 천장은 오동나무 원목 루버로 마감해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흰색 단층집에 리듬감을 주고자 했다. 송옥진 기자 |
행복한 산호는 요즘 건축 시장에서 콘크리트의 친환경 대체재로 주목받는 ALC 블록을 하나씩 쌓아 올려 지은 100% ALC 주택이다. 지붕도 ALC 패널을 사용했다. 건축주 제공 |
부부는 아토피, 비염이 있는 아이를 위해서 친환경 자재로 집을 지었다. 이 집의 골조를 이루는 건축 자재는 콘크리트의 친환경 대체재로 주목받고 있는 ALC 블록(경량기포콘크리트)이다. ALC 블록은 유해 물질을 방출하지 않고, 투습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조적도 비교적 쉬워 초보자에게 적합한 재료라고 판단했다. 부부는 ALC 블록을 하나씩 쌓아 올려 벽체를 만들고 지붕에는 ALC 패널을 올렸다.
천장 곳곳은 편백나무, 오동나무 같은 원목 루버로 마감했다. 루버는 흰색이 주축인 집에 리듬감을 주는 인테리어 효과도 있다. 친환경 페인트로 마감했고, 가구도 등급을 따져 들였다. 이씨는 "막 지었을 때도 새 집 냄새가 안 날 정도로 자재에 신경 썼다"며 "우리가 직접 시공해서 아낀 인건비로 자재 등급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기다란 복도, 갤러리가 되다
공동주택에서 공간을 낭비한다고 기피하는 복도는 이 집에서 공간을 구획하고, 갤러리 같은 느낌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송옥진 기자 |
집은 '기역(ㄱ)'자 구조로 남쪽을 향해 있는 너른 마당을 품고 있다. 디자인을 전공한 아내가 설계를 맡았는데, 한옥에서 영감을 받았다. 실내와 실외를 잇는 마당의 덱도 당초 한옥의 툇마루처럼 ㄱ자 실내를 따라 이어졌던 공간이 수정을 거치며 넓어진 것이다.
ㄱ자 구조상 불가피하게 발생한 복도는 보통 공간을 낭비하는 애물단지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 집에서 기다란 복도는 공용 공간과 사적 공간을 구획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북쪽에 만들어진 현관으로 들어서면 긴 복도를 따라 왼쪽(남서향)은 주방과 거실이, 오른쪽(남동향)은 가족 구성원의 방 3개가 배치돼 있다.
복도는 내부가 미술관 같기를 바랐던 아내의 바람도 실현시킨다. 복도 벽면에 중간 중간 세로로 길게 창을 냈고 그 사이 벽마다 그림을 걸었다. 아내는 "이 공간이 아주 마음에 든다"며 "아이가 자라서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되면 아이의 그림을 바꿔가며 걸어 둘 예정"이라고 말했다.
천장을 석고로 마감하지 않아 실내에서 지붕의 경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싱크대는 이케아에서 구입한 가구에 세라믹 상판을 따로 구입해 조합한 것이다. 송옥진 기자 |
주방의 창 높이를 일반 표준 주택보다 낮게 설계해 식탁에 앉아서도 창 너머 풍경이 잘 보이도록 했다. 송옥진 기자 |
집은 흰색 벽체에 검은색 지붕을 올린 단층집이다. 평범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높은 층고, 경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천장, 다락 등으로 단조롭지 않다. 집의 최대 층고는 약 6m로, 아파트 표준 층고의 3배 가까이 된다. 석고로 마감하지 않아 지붕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는 천장은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또 아이 방 위로 10평 규모의 다락을 두어, 이층집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계단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아이의 어린 시절 추억이 될 집
아이의 놀이방으로 쓰고 있는 10평 규모의 다락. 실외 활동을 할 수 없을 때 유용하게 쓰인다. 송옥진 기자 |
복도에서 다락으로 올라오는 계단. 송옥진 기자 |
부부는 집 짓기의 전 과정에 적극 참여했다. 관공서에 수시로 전화했고, 온라인을 샅샅이 뒤져 정보를 찾았다. 건축박람회도 틈틈이 다녔다. 설계부터 준공까지 4년가량 걸리다 보니 건축법이 중간에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지붕 각도, 동선 등 도면을 수정하거나 타일이나 조적 작업 등을 하는 경우에만 건축사와 같은 전문가들의 손을 빌렸다. "공사 기간 6개월 내내 해 뜨기 전에 와서 해가 질 때까지 현장에 머물렀어요. 터 파기, 기초 철근 공사부터 지붕의 방수 작업, 미장, 보일러 배관, 마당에 수전을 묻는 일까지 손을 안 댄 부분이 없어요. 저희가 100% 했냐, 아니면 일부만 했냐, 그 차이만 있을 뿐이죠."
사는 사람에 맞게 설계한 작은 차이가 삶의 질을 높인다. 부부는 주방 식탁에 앉았을 때 바깥 풍경이 잘 보이도록 창을 일반 표준 주택보다 30㎝가량 낮게 설치했다. 손님이 많이 올 것을 고려해 화장실도 세면대를 밖으로 빼고 욕조, 변기를 각기 분리했다. 세탁실도 따로 넓게 만들었다. 기성품이 아닌 나만의 집을 계획할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여섯 살 아이의 방은 내부 공간 중 가장 알록달록한 장소다. 계단 밑 공간에 침대를 배치해 아늑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송옥진 기자 |
특히 마당은 공동주택에선 상상하지 못한 삶을 가능하게 한다. 이 집은 마당이 유독 넓다. 마당이 실내 면적의 5배 정도다. 세 식구가 살기에 실내가 그리 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아이가 마당에서 신나게 뛰어 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여름 마당은 수영장이, 겨울 마당은 캠핑장이 된다. 아이는 마당에서 야구도 하고, 축구도 하고, RC 카를 가지고 논다. 마당 한쪽엔 디딤석을 둘러, 킥보드나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했다.
구석구석 부부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만큼, 집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이 집은 가족에게 사고파는 부동산이 아니다. "지나가던 주민 분들이 가끔 들어와서 이 집, 파는 집이냐고 물어요.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이 집은 못 팔 거 같아요. 이 집은 아이에게 어린 시절 추억이 될 집이에요. 아이가 나중에 이 집에 살지 않더라도, 엄마 아빠의 선물로 물려주고 싶어요."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