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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아이들이 좋은 삶을 욕망하도록 돕는 일, 그게 진짜 교정이죠"

소년원 아이들과의 독서 수업을 책으로 펴낸

'소년을 읽다' 저자 서현숙 교사

한국일보

소년원 아이들의 독서 수업 경험을 담은 '소년을 읽다' 저자인 서현숙 교사는 소년원의 도서관 설립은 특별한 시혜가 아닌 모두에게 허용돼야 할 인권이라고 강조했다. 사계절 제공

25년 넘게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쳐온 서현숙(49) 교사는 2019년 일년 동안 특별한 곳에서 수업을 했다. 철컹철컹, 무거운 철창을 대여섯 번 통과해서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교실, 바로 소년원이었다. 의무교육(초등학교, 중학교)을 마치지 못한 소년원 학생들이 졸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부 시범사업에 동참한 서 교사는 금요일마다 2시간씩 소년원의 아이들을 만났다.


‘10년 넘게 해온 독서교육인데 다를 거 없어’라고 호기롭게 큰 소리쳤지만, 마음 속 편견은 어쩌질 못했다. 처음 수업하러 가기 전날엔 무서운 꿈까지 꿨다. 덩치가 산만한 아이들이 마뜩잖은 표정으로, “책 읽기 싫은데요.”라고 쏘아보는 꿈. 하지만 막상 만나본 아이들은 그가 생각한 만큼 덩치가 크지도 않았고, 소설을 읽고 시를 외울 때의 눈빛은 어떤 평범한 학생들보다 생기 넘치고 다정했다.


“세상 사람들은 소년원의 아이들을 범죄자, 쓰레기, 인간말종이라고 추상적 존재로 퉁 쳐 버리잖아요. 그건 그 아이들의 구체적인 얼굴을 알지 못해서에요.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니까요.”


18일 전화 인터뷰로 만난 서 교사는 “타인에게 고통을 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삶의 맥락을 지닌 존재”로써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소년을 읽다’(사계절)를 냈다고 말했다.


알퐁스 도데 '별', 박찬일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등 서 교사가 1년 간 건넨 다양한 책은 아이들이 소년원 너머 바깥 세상과 연결되는 기회이자, 과거의 어리석은 아픔을 극복케 하는 치유 그 자체였다. 아이들은 책을 읽으며 난생 처음 ‘독자’가 된 자신의 모습에 뿌듯해 하고, 자신이 읽은 책의 작가를 만나는 자리에선 궁금한 것을 쏟아내는 수다쟁이가 됐다. 숨겨 놓았던 ‘마음의 맨살’도 책을 읽으며 드러낸다. “자동차는 고장 나면 고칠 수 있잖아. 나도 내 인생을 고쳐보고 싶어.” 아이들은 누구보다 소년원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고, 소년원에 갇힌 시간을 반복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서 교사는 그 소중한 마음을 ‘환대’하지 못하는 세상의 뿌리 깊은 편견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가 방문했던 소년원엔 ‘온전한’ 도서관이 없었다. 몇 권의 책이 꽂혀 있는 복도의 책꽂이가 전부였다. ‘왜 도서관이 없냐’는 질문에, 소년원 측은 ‘아이들이 그런 자유를 누릴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땐 그 말을 듣고도 저 역시 그냥 지나쳤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자유를 누릴 시간을 주지 않는 게 문제였는데 말이죠. 책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바꿔보겠다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정과 교화 아닐까요." 서 교사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좋은 어른들과의 소규모 만남’도 필요한 일이다. “아이들을 체육관에 모아놓고 유명인의 강의를 진행하는 건 만나는 게 아니라 구경하는 거에요.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참여시키는 게 중요하죠.” 좋은 어른을 통해, 좋은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좋은 삶을 욕망하게 되는 것. 서 교사는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소년원의 소년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바로 그들의 욕망이 가는 길을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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