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기둥 하나하나가 작품…경주바다 핫 플레이스 ‘주상절리길’
감은사지ㆍ이견대ㆍ문무대왕릉엔 동해 바다 지키는 3각 편대 전설이…
국내 단 하나뿐인 경주 양남면 부채꼴 주상절리. 파도가 드나들 때면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 넘친다. 경주=최흥수기자 |
동해구(東海口), 동해로 들어가는 입구라니 지명 한번 거창하다. 경주 감포읍과 양북면 사이 대종천이 동해 바다와 만나는 곳이다. 동해구를 중심으로 하천 상류에는 감은사 옛터가 있고, 언덕 위에는 이견대( 見臺), 바로 앞바다에는 문무대왕릉이 삼각형으로 터를 잡고 있다. 동해구는 왜구를 물리치고자 한 신라의 의지가 역사와 설화로 단단히 맞물려 흥미를 더한다.
대종천(아래)이 바다와 만나는 경주 감포읍과 양북면 사이 동해구. 바다의 암석이 문무대왕 수증 능이다. |
야간 조명이 불을 밝힌 감은사지. 2기의 3층 석탑만으로도 절터를 가득 채운다. |
문무대왕암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이견대. 신문왕이 만파식적을 얻은 곳으로도 알려졌다. |
감은사는 신라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려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공사를 시작해, 아들인 신문왕이 682년에 완공했다. 문무대왕릉은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죽으면 화장해 동해에 장사 지내라’라고 한 그의 유언을 받들어 장사한 수중 능이다. 감은사(感恩寺)라는 절 이름은 나라를 지키는 그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감은사 금당 지하에는 다른 사찰에는 없는 배수 시설이 남아 있는데,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한 곳이라 전해진다. 현재 남아 있는 2기의 삼층석탑은 경주의 삼층석탑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탑 몸돌에서 청동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ㆍ보물 제366호)가 발견돼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감은사지는 다른 폐사지(廢寺址)처럼 쓸쓸하지 않다. 특히 해질 무렵이면 은은하게 조명을 밝힌 쌍탑이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처럼 굳건한 모습으로 절터를 가득 채운다.
이견대는 문무대왕릉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운 이견정 초석을 근거로 1979년 건립한 전망대다.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이 힘을 합해 신문왕에게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내렸다는 곳이기도 하다. 적을 물리치고, 병을 낫게 하는 등 나라의 걱정을 물리치는 ‘마술피리’를 얻은 곳이니, 이로움만 가득한 장소인 셈이다.
봉길대왕암 해변으로 파도가 밀려들고 있다. 왼쪽 언덕의 한옥 건물이 이견대다. |
봉길대왕암해변에서 관광객이 새우과자를 던지자 갈매기가 몰려들고 있다. |
문무대왕의 기운을 받으려는 무속인들이 해변에서 의식을 치르고 있다. |
이견대에 오르면 동해구에서 봉길해변(2011년 봉길대왕암해변으로 명칭을 바꿨다)으로 이어지는 모래사장과 바다가 드넓게 펼쳐진다. 문무대왕암을 통과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도 왠지 더 힘차게 느껴진다. 그러나 해변으로 내려서면 분위기가 다소 묘하다. 한산한 해변에 갈매기가 유난히 많다. 이따금씩 난데없는 징 소리가 파도소리 가득한 겨울 바다의 정취를 방해한다. 문무대왕의 기운을 얻으려는 무속인들이 해변 곳곳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제물 맛에 길들여진 갈매기가 해변을 떠나지 않는 이유다. 징 소리가 잦을수록 여행객의 미간도 찡그려진다.
지질 박물관, 양남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요즘 경주 바다에서 가장 ‘핫’한 곳은 양남면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다. 문무대왕암에서 남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으로, 국내에 하나 밖에 없는 부채꼴 주상절리가 여행객들을 불러 모은다. 주상절리는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1,000도 이상의 용암이 급격히 굳어지면서 형성된다. 용암이 굳을 때 표면부터 생긴 다각형의 균열이 기둥 모양으로 형성된 것이 주상절리다. 모양과 크기는 용암이 식는 속도와 방향에 따라 결정된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이 시작되는 양남면 읍천항 조형물. |
짧은 출렁다리를 지나면 곧바로 부채꼴 주상절리가 나타난다. |
전망타워에서 내려다 본 부채꼴 주상절리. 바다도 바위도 살아 있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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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타워 내부에선 파도소리가 제거되기 때문에 생동감이 덜하다.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감상해야 현장의 감동이 느껴진다. |
읍천항에서 하서항까지 약 1.7km 해안을 걸으면 온갖 종류의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부채꼴 이미지가 워낙 강해 대개 이곳에만 집중하지만, 바다에 흩뿌려진 기기묘묘한 자연의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주상절리 박물관’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양남 주상절리가 일반에 알려진 것은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어 주민들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9년 인근 월성원전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사진을 찍어 올리며 외부에 알려진 후 군부대를 옮기고 2011년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2017년에는 포항 영덕 울진과 함께 경북동해안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나무 기둥을 다듬어 쟁여 놓은 듯한 누워 있는 주상절리. |
검은 암석이 떠 있는 바다는 자체로 지질 박물관이다. |
주상절리길에선 다양한 모양의 주상절리와 화산 암석을 볼 수 있다. |
일부 구간에선 바닷가로 내려갈 수 있다. |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에서 여행객들이 기암괴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읍천항에서 좁은 언덕길을 걷다가 짧은 출렁다리를 건너면, 부채꼴 주상절리가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언덕에 세운 전망타워에 오르면 수직으로 내려다보인다. 주변을 일렁이던 검푸른 파도가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주상절리 가운데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이때면 바위도 바다도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강한 생명력으로 꿈틀거린다. 단 전망타워는 두꺼운 유리로 막혀 있어 파도소리가 전달되지 않는다. 시각적 효과는 떨어지더라도 타워 아래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바라볼 때 훨씬 생동감이 넘친다.
이곳에서 남측으로 조금만 걸으면 위로 솟은 주상절리, 누워 있는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를 차례로 관찰할 수 있다. 제재소에 통나무를 부려 놓은 것처럼 쌓이고 널브러진 바위 기둥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네 가지 주상절리를 모두 볼 수 있는 곳은 국내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경주 바다 여행 메모
서울에서 경주 동해바다까지는 대략 370km, 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4시간 넘게 걸린다. 동해고속도로(울산~포항) 동경주IC에서 봉길대왕암해변까지 약 8km, 이곳에서 양남 주상절리와 감포항까지는 남북으로 각각 10분 정도 거리다. 경주고속버스터미널과 경주역에서 감포항까지는 100번 시내버스가 2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1시간 이상 걸린다. 봉길대왕암해변과 양남 주상절리까지는 150번 좌석버스가 7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감포항 남측에 회식당이 밀집해 있다. 읍내 도로에 억지로 주차하기 보다 인근 해상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면 편리하다. 주차료는 없다.
봉길대왕암해변에서 감포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면 나정고운모래해변, 전촌솔밭해변, 오류고아라해변 등 한적하고 작은 해변이 이어진다. ‘주상절리 파도소리길’ 시작점인 읍천항의 아기자기한 벽화 길을 걸어도 좋다.
경주=글ㆍ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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