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사라진’ 곤 전 닛산회장 뒷북 수사 돌입한 일본
곤 전 회장, 8일 레바논서 기자회견
카를로스 곤 전 닛산 르노 회장이 도쿄지검 특수부에 의해 구속된 뒤 지난해 4월 보석 허가를 받아 풀려나오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
일본 검찰과 경찰이 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 회장의 도주와 관련해 국내에 조력자가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2018년 11월 보수 축소 신고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가 지난해 4월 보석으로 풀려났던 곤 전 회장이 사법당국의 감시망을 헐리우드 영화와 같은 주도면밀한 방법으로 빠져나간 것에 대한 대응에 나선 것이다.
NHK는 2일 일본 검ㆍ경은 곤 전 회장의 무단 출국과 관련해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경찰은 곤 전 회장의 도주를 도운 복수의 조력자들이 있었다고 보고, 그들이 들렀을 가능성이 있는 장소에 대한 방범카메라 영상 분석을 추진하기로 했다.
일본 출입국관리청의 데이터베이스에는 곤 전 회장의 출국 기록도 없으며, 곤 전 회장의 변호인인 히로나카 준이치로(弘中惇一郎) 변호사도 “여권은 변호사가 맡아 왔으며 이를 전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곤 전 회장은 보석 당시 자신의 프랑스ㆍ레바논ㆍ브라질 여권을 변호인단에 맡긴 바 있다. 그러나 레바논 정부는 “곤 전 회장이 합법적으로 입국했으며 본인의 이름이 적힌 프랑스 여권을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도쿄지방검찰청과 경찰은 곤 전 회장이 불법적인 수단으로 출국했다고 판단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또 곤 전 회장 도주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찾기 위해 보석 후에 머물렀던 도쿄 미나토(港)구의 거주지와 그 주변의 방범카메라 영상을 분석하기로 했다. 또 언론 보도대로 지난달 29일 오후 11시쯤 일본 간사이(關西) 공항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향한 개인 전용기에 곤 전 회장이 탑승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편 로이터통신 등은 곤 전 회장의 변호인을 인용해, 곤 전 회장이 오는 8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현재까지의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곤 전 회장의 도주에는 부인 캐럴과 민간 경비업체 또는 민병조직대원들의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곤 전 회장이 베일에 싸인 도주 과정에 대해 입을 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현지시간)는 이번 사안을 잘 알고 있는 소식통을 인용해 곤 전 회장의 도주 전 레바논이 일본 정부에 레바논으로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FT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0일 스즈키 게이스케(鈴木馨祐) 부(副)외무상이 레바논을 방문했을 당시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이 곤 전 회장의 문제를 제기했다. 레바논 정부는 1년 전에도 같은 요구를 한 바 있다. 앞서 레바논 외교부는 지난달 31일 성명에서 “곤 전 회장이 30일 새벽 레바논에 합법적으로 입국했다”며 “그의 일본 출국과 베이루트에 도착한 상황에 대해서는 모른다. 모두 그의 개인적인 문제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이브라힘 나자르 전 법무장관도 AFP에 “일본 정부가 곤 전 회장의 송환을 요청하더라도 레바논 정부가 그의 신병을 넘기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는 곤 전 회장이 레바논에서 재판을 희망하는 것에 대해선 “레바논 법에 비춰 처벌할 혐의가 있다면 그것도 가능하다”면서도 “외국에서의 죄로 기소하는 것은 레바논에서 무리”라고 말했다. 일본과 레바논 간에는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다. 일본 정부가 곤 회장의 신병 인도 요청에 레바논 정부가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양국 간 외교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