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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모의 '사도세자 누나'가 쓴 '개미 화장품' 정체는...

화협옹주가 썼던 화장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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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남양주시 화협옹주묘에서 발굴된 화장 도구들. 거울과 빗, 화장품 용기 등 종류도 다양하다. 화장 용기 중 다수엔 화협옹주가 실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장품들도 담겨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기품은 침착하고 맑았으며(氣品從容淸秀ㆍ기품종용청수)

정성으로 부모를 모시고 시아버지에게도 한결같이 하였다(事親以誠, 事舅若一ㆍ사친이성 사구약일)

어려서부터 장성할 때 까지(自幼至長 자유지장)

담박하고도 고요하여 조금도 간여하는 바가 없었으니(湛然靜然 無少間焉ㆍ담연정연 무소간언)

마치 듣지 못한 듯이 보지 못한 듯이 한 것이(若不聞焉, 若不睹焉ㆍ약불문언 약부도언)

곧 화협의 성품이었다(卽和協之性品也ㆍ즉화협지성품야)

화협옹주(1733-1752)의 죽음을 애도하며 아버지 영조가 직접 지은 글을 새긴 묘지석 일부다. 화협옹주는 영조와 영빈이씨의 딸이자 사도세자의 친 누나로 어머니를 닮아 미색이 뛰어나고 효심이 깊었지만 사도세자와 함께 아버지에게 미움을 받았다고 혜경궁 홍씨가 지은 책 한중록에 기록돼있다. 그러나 묘지석에는 사랑하는 자식을 본인보다 앞서 보내는 슬픈 아버지의 마음만 전해질 뿐이다. 화협옹주는 열한 살에 사대부가에 시집가서 스무 살에 홍역으로 죽기까지 남아있는 기록이 많지 않지만, “침착하고 맑은 기품, 고요하고 깨끗한 성격,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화협옹주묘는 1970년대 이장되었지만,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초장지인 경기 남양주시 삼패동에서 옹주가 생전에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화장품 도구들이 발굴됐다. 여러 화장품 내용물이 고스란히 담겨진 작은 청화백자 세트,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울, 길운을 상징하는 무늬가 자수된 거울집, 머리를 빗을 때 사용했을 빗과 눈썹을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눈썹먹들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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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협옹주의 죽음을 애도하며 아버지 영조가 직접 지은 글을 새긴 묘지석.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화협옹주묘에서 출토된 열두 개의 작은 도자기에는 하얀색 가루, 빨간색 가루, 투명한 액체와 알갱이가 가득 섞인 액체 각 한 개씩과 다섯 개의 갈색 고체, 총 아홉 건의 화장품 내용물이 확인됐다. 과학 분석기기로 화장품들의 성분을 확인해 조선시대에는 어떤 재료로 화장을 했는지 밝힐 수 있었다.


하얀색 가루는 탄산납(cerussite)과 활석(talc)을 같은 비율로 섞어서 피부를 하얗게 만들었던 파운데이션이었다. 빨간색 가루는 진사(cinnabar)로 입술이나 볼을 빨갛게 물들였을 립스틱이나 볼터치였으며, 갈색 고체는 분석의 한계로 밀랍 성분 외에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크림으로 분석되었다. 액체 중 하나는 특정 이온이 많은 중성의 물이었고, 또 다른 액체를 가득 채운 알갱이는 머리, 가슴, 배, 다리 등이 분리된 개미 수 천 마리였다.


조선시대는 사회 전반에 유교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여인들은 과장되고 인위적인 화장보다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위해 깨끗하고 매끄러운 피부를 만드는데 중점을 뒀다. 왕의 딸로서 사대부가에 시집갔던 조용하고 단정한 성격의 화협옹주는 화려하기 보다는 수수한 화장을 즐겼을 것이다. 화협옹주묘 출토 화장품 내용물 중 다섯 종류가 크림이었기 때문에 피부를 위한 기초화장에 비중을 뒀다고 이해된다. 그렇다면 개미가 가득 들어있던 액체는 어떤 용도로 사용된 화장품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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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협옹주묘에서 발굴된 화장도구 속에 남겨진 액체 분석 결과 포착된 개미들.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개미 화장품은 육안으로 보기에 알알이 떨어져 있던 형태로 처음에는 곡물이나 식물의 씨앗으로 오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미경으로 확대 관찰해 보니, 톱니 모양 입이 그대로 남아있는 개미의 머리, 가로무늬가 확실히 보이는 개미의 가슴, 마디마디가 분명한 개미의 더듬이들이 확인됐다.


개미의 종류는 불개미아과 털개미속 황개미(Lasius flavus)로 전체적으로 황갈색을 띠고 있는 2~4mm 크기의 개체들이다. 왜 화장품 용기 안의 개미는 으깨지거나 갈리지 않고 머리, 가슴, 배, 다리들이 분리된 상태로 들어있었을까? 용기 안에 개미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 줄지어 들어 왔다가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가설도 있지만, 이 유물은 회곽함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즉 암반층을 파내어 유물을 넣고 그 위에 회를 부어 뚜껑을 덮었던 매장방식이어서 그 가설은 성립되지 못한다. 어떤 목적에 의해 온전한 개미 그대로 용기 안에 넣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장 얇고 약한 연결 마디들이 분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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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협옹주묘에서 발굴된 화장도구 속에 남겨진 액체 분석 결과 포착된 개미의 몸통.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개미가 들어있던 액체는 수소 이온 농도 지수가 약 pH2~3으로 강한 산성이었다. 또한 이온크로마토그래피로 액체의 성분을 분석해본 결과, 식초의 주성분인 아세트산염(Acetate)이 108.0ppm으로, 개미에서 나오는 포름산염(Foramate) 13.9ppm 보다 약 여덟 배 높았다. 이 용액은 강한 산성을 가지고 있는 개미 수 천 마리를 통째로 강한 산성인 아세트산에 넣어 만든 것이다.


또 개미 화장품은 화협옹주묘 출토 화장품 도자기 중 유일하게 국내에서 제작된 ‘청화백자 칠보무늬 팔각 호’에 담겨 있었다. 이 용기는 함께 발굴된 다른 도자기들과는 달리 높이가 길고 입구가 좁아 액체를 담았을 것으로 보이며, 내부의 부피는 45㎖로 개미 화장품은 20㎖ 정도 담겨 있었다. 화협옹주묘 출토 화장품 도자기는 중국 경덕진과 일본 아리타에서 용기만 수입해 화장품은 국내에서 만들어 담았을 것이라 추정하기도 하지만, 조선 분원산 청화백자 칠보무늬 팔각 호에 담겨 있던 개미 화장품은 분명히 국내에서 제조된 화장품이다.


한편 포름산과 아세트산은 강한 산성으로 현재 화장품에 전혀 사용되지 않는 성분이다. 개미는 과거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연지벌레와 함께 으깨어 립스틱으로 썼다는 이야기만 전해질 뿐이다. 황개미를 직접 아세트산에 담가 출토된 화장품과 같은 비율로 만들어 분석해 봤지만, 화장품으로서 기능이 있는 성분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실험을 위한 적은 수의 개미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화장품을 제조할 당시에도 분명 같은 종의 개미 수 천 마리를 구해 화장품을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고 오래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개미 화장품의 제조가 가능하였던 이유는 화협옹주가 왕실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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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협옹주묘에서 출토된 청화백자 칠보무늬 팔각 호.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개미는 약용으로써 대부분 개미집이나 개미의 알을 이용한다는 내용이 의학과 관련 문헌들에 실려 있다. 중국 명대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악성 종기나 부스럼과 같은 피부병에 개미를 찧어 바르거나 갈아서 다른 약에 섞어 바른다고 했다. 청대의 본초강목습유(本草綱目拾遺)에는 “산개미의 새끼가 사람의 기력을 더하고 안색을 윤택하게 한다.”라고 전하고 있다. 근면과 성실함의 대명사인 개미는 한자로 蟻(의)인데 곤충 虫(충)과 옳을 義(의)가 합쳐져 군주와 신하의 의리가 있다는 의미도 있으며, 또한 본인 몸무게의 3~40배를 들어올리며 5,000배까지 견디는 초능력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개미 화장품은 이 같은 미신적인 의미도 더해져 화협옹주의 피부미용을 위한 치료제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조선시대 영조의 딸로서 일찍 세상을 떠난 미색이 뛰어나고 기품이 있던 화협옹주묘에서 발굴된 개미 화장품은 현재 전 세계 유일하게 남아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이를 통해 조선왕실의 미용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것이 뿌리가 되어 현재의 “K-beauty”까지 이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김효윤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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