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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가 소설로 되살려낸 제주 해녀들의 신산한 삶

한국일보

전통 해녀복인 '물소중이'와 '물적삼'을 입고 웃음 짓고 있는 두 해녀. 국가기록원 제공

해녀(海女). 잠수를 통해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들을 이르는 말로,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전통 직업이다. 제주 방언으로는 ‘잠녀’라고 부른다. 해외로 원정 물질을 가기도 했고, 이렇게 번 돈으로 가족을 부양했다. 2016년에는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2017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도 등재됐다.


살아 있는 역사이자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유산인 해녀들의 삶이 미국 작가의 손끝에서 소설로 재탄생했다. 리사 시의 장편소설 ‘해녀들의 섬’은 평생 바다를 어머니로 여기고, 바다 곁에서 태어나 바다 곁에서 살아간 해녀들의 삶을 그려낸다. 올해 3월 미국에서 출간될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며 화제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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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물질을 나가고 있는 제주 해녀들. 국가기록원 제공

소설은 1938년부터 2008년까지 70년간 제주 해녀의 삶을 관통한다. 해녀 대장이었던 어머니의 딸로 태어난 영숙, 친일협력자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미자. 서로 다른 배경의 두 소녀는 마을의 해녀공동체에 들어가 함께 물질을 배우며 우정을 쌓는다. 처음 물질을 배우는 열 다섯살, 블라디보스토크로 원정 물질을 나가 가족을 부양한 젊은 시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물질을 그만두었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기까지 해녀들의 우정과 일대기가 제주 바다 위에 펼쳐진다.


외국인이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소설은 제주의 풍경과 언어, 생활과 정서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여기에 씻김굿, 혼례식, 장례 절차와 같은 제주도 전통 풍속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해녀들이 바다에서 돌아와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지폈던 공간이자 해녀들의 보금자리가 됐던 ‘불턱(둥그렇게 용암을 쌓아 만든 지붕 없는 구조물)’처럼,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배경들 역시 제주도 자연을 십분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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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렇게 용암을 쌓아 만든 구조물인 '불턱'은 해녀들의 안식처이자 희노애락이 펼쳐지는 공간이었다. 공공누리 제주학연구센터 제공

제주 해녀의 역사는 단순히 해녀라는 독특한 직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4ㆍ3사건과 한국전쟁, 분단과 군부 독재정치 등 제주도를 할퀴고 지나간 근현대사의 격변과도 맞물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소설은 해녀의 삶을 다룬 기록물이기도 하지만, 제주라는 섬의 처참한 역사를 담은 기록물이기도 하다. 외국인 작가가 “4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8만명의 중산간 사람들이 피난민이 되었으며, 많은 마을이 불에 타 사라졌다. 50년 동안 제주 사람들은 이때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고 적은 문장 앞에서 한국인 독자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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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위해 하도 해녀의 집을 찾은 리사 시. 리사 시 제공

한국과는 아무런 연이 없던 미국 작가가 이처럼 생생하게 제주 해녀들의 삶을 소설로 쓰게 된 계기는 10년 전 병원 진료실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짧은 기사였다. 젖은 잠수복을 입고 수확물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는 해녀의 사진을 보고 매료된 작가는 언젠가 그들에 대한 책을 쓰리라 다짐했고, 결국 제주 해녀들의 삶을 소설로 복원해내는 데 성공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제주 4ㆍ3사건 보고서’ 등 무수한 자료와 전문가 고증을 거쳤다. 2016년에는 제주도를 방문해 직접 해녀들을 만나 해녀라는 직업에 대한 것뿐 아니라 개인적인 이야기와 생생한 증언들을 채취했다.


한때 2만명이 넘었던 제주 해녀는 이제 4,000여 명 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에 현직 해녀 중 절반 이상이 70대 이상이다. 명맥이 끊겨 가는 문화유산으로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사연을 품고 있는 해녀들의 이야기가 가능한 다양한 방식으로 남겨져야만 하는 이유다. 책을 덮고 나면, 호오이-하고 해녀의 숨비소리와 함께, 해녀들이 부르는 노래가 오랫동안 귓가에 맴돈다. “내가 바다에 들어가면 저승이 왔다 간다네. 우리는 밥 대신 바람을 먹지. 나는 파도를 내 집으로 받아들인다네. 유령처럼 물속에 들어갔다 물 밖으로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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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들의 섬

 

리사 시 지음ㆍ이미선 옮김
북레시피 발행ㆍ540쪽ㆍ1만 7,000원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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