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문과생이 IT기업에 살아남는 방법? "코딩은 몰라도 되는데, 잡스병은 안돼요"

<8> '랜선사수 도그냥' 이미준 지그재그 프로덕트 매니저 ①

한국일보

12년 차 이커머스 서비스 기획자 이미준씨. 쇼핑플랫폼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카카오스타일에서 프로덕트 오너(PO)로 일하고 있다. 사학과 출신의 전형적인 문과생이었지만,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IT 문화를 모두 경험한 시니어 기획자가 됐다. 기획자의 일터 이야기를 담은 글을 '도그냥'이라는 필명으로 연재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IT업계 취업을 꿈꾸는 문과생 취준생들의 '랜선 사수'로 불린다. 2020년에 펴낸 자신의 첫 번째 저서 '현업 기획자 도그냥이 알려주는 서비스 기획 스쿨'을 들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어린 시절, 우리는 이런 질문을 자주 듣곤 했죠. “용의 꼬리가 될래? 뱀의 머리가 될래?” 리더를 꿈꾸는 아이라면 뱀이든 용이든 스스로 ‘머리’가 되는 편을 택할 거예요. 무리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아이라면 안전한 ‘꼬리’가 되길 원할 거고요.


그런데 이 사람은, 빈곤한 선택지 안에서 양자택일을 하는 대신 ‘제3의 답’을 만들었어요. 잘려 나가도 상관없는 꼬리는 싫다, 허황된 비전에 쉽게 사로잡히는 머리도 마음에 들지 않으니 “어디에서든 살아남는 ‘심장’이 되겠다”고요. 심장은 이 몸에서 저 몸으로 이식해도 그 기능을 다하는 장기이자, 몸 전체에 피를 전달하는 핵심 기관이잖아요? 어떤 환경에 갖다 놓든 대체 불가능한 전문가가 되어 살아남겠다는 당찬 꿈이었죠.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이상한 IT 나라에 떨어진 문과생 앨리스’로 12년째 살아남은 그는 머리가 바뀌어도, 꼬리가 잘려 나가도 굳건히 제 쓸모를 지켜내는 이커머스 업계의 ‘심장형’ 실무 전문가로 거듭났답니다. 12년 차 서비스 기획자이자 ‘도그냥’이라는 부캐로 IT업계를 꿈꾸는 이들의 랜선 사수가 되어 주고 있는 이미준(36)씨의 이야기입니다.

Prologue. 나는야 이 구역의 ‘잡스병 퇴치자’… 뜬구름을 걷어 내고 넥스트 레벨을 만들다

미준씨는 이커머스 서비스를 만드는 ‘프로덕트 오너(PO)’입니다. 카카오스타일이 운영하는 패션플랫폼 지그재그에서 주문, 클레임 영역의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죠. 개발자, 디자이너와 짝꿍을 이루어 ‘한 팀’으로 일하는 그의 업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지휘자’예요. 주된 선율을 연주하는 건 개발자와 디자이너지만, 그들의 퍼포먼스가 같은 템포 위에 어우러지게끔 조율하는 건 어디까지나 지휘자인 ‘기획자’의 일이죠.


때로는 ' 통역사'가 되기도 합니다. 색과 조형의 세상에 사는 디자이너와 '코드'의 세계에 사는 개발자들은 화성인과 금성인처럼 다른 언어로 말하고 다른 사고방식으로 생각하거든요. 암호 같은 이들의 말을 해석하고 조각을 맞추듯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것 역시 그의 몫입니다.


매일 새로운 변수가 총알처럼 쏟아지는 그의 일터는 전쟁터가 따로 없어요. 그 전쟁터 위에서 기획자의 역할은 ‘OO으로 돌진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장수와도 같아요. 그의 일이 ‘장인’이 아닌 ‘장수’와 비슷한 이유는 안 되는 건 안 되는 대로 빠르게 인정 하고 주어져 있는 조건 안에서 ‘차선’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래요. 현업 기획자의 소명은 ‘이상향’을 향해 무모하게 내달리는 게 아니라, 현실에 발붙인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실현 가능성이 확실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어때요. ‘셔터가 터지는 무대 위를 화려하게 지배하며 혁신을 말하는 스티브 잡스’ 같은 모습과는 거리가 한참 멀죠?

한국일보

'삶 속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모두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미준씨가 가진 일상의 좌우명이다. 사학과 출신다운 '역사학자' 본능으로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일터 이야기를 집대성하기 시작했다. 김하겸 인턴기자

“기획자가 왜 필요합니까? UX(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하고 코드는 개발자가 짜는데?”

미준씨가 이 업계에 몸담은 12년 동안 가장 많이 들은 질문입니다. ‘기획자 무용론’은 잊을 만하면 고개를 들어요. 그도 그럴 것이 기획자가 가진 전문성의 뿌리는 뚜렷한 기술을 가진 다른 실무자들보다 약할 수밖에 없거든요. 미준씨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도대체 어디까지가 기획자의 일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사수가 없었죠.


‘공채 기획자 1세대’로서 맨땅 위에 몸을 던져가며 일을 배워 온 그는 울분의 에너지를 응축해 ‘랜선사수 도그냥’이라는 부캐를 만들었어요. 보고 배울 선례가 없다면, ‘내가 스스로 선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요. '서비스 기획자'라는 직무의 정의를 스스로 만들고, 기획자가 갖추어야 할 업무능력과 자질을 집대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치열하게 일한 만큼 훈장처럼 쌓인 실전팁과 노하우를 글로 정리해 올리며, IT 꿈나무들에게 실전 업무 지식을 가르치는 강사로도 나섰죠.


미준씨의 하루는 유독 길어요. 본캐 ‘기획자 이미준’으로서의 일과가 끝나면 ‘랜선사수 도그냥’으로서의 새로운 출근이 매일 저녁 이뤄지죠. 두 가지 자아로 ‘이중 출근’하는 이 정신없는 삶을 6년째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한 가지라고 해요. “ 내 후배는 저처럼 어렵게 배우지 않았으면 해서요. 저는 따라갈 사람 없이 무척 외롭게 배웠거든요. 혼자 혹독하게 겪었던 시행착오들이 저만의 것이 아니길 바랐던 거 같아요.”

한국일보

미준씨는 지난해 브런치에 연재한 '이커머스 기획자의 사고여행' 시리즈를 엮어 두 번째 저서 '코딩 몰라도 됩니다'를 펴냈다. 'IT기업에서 비개발자로 살아남는 방법'을 담았다. 김하겸 인턴기자

누구보다 후배들을 사랑하는 미준씨지만, 그 와중에 유심히 경계하는 건 일명 ‘잡스병’에 걸린 친구들이래요. 번뜩이는 창의력을 발휘해 세상을 뒤집어 놓을 혁신을 만들겠다는 ‘이미지’ 환상에 사로잡힌 꿈나무들이죠.


“실제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환경은 화려하지 않아요. 부탁하고, 또 부탁하는 것이 일상이죠. 아니다 싶을 때는 제대로 맞설 줄도 알아야 하지만 필요할 땐 누구보다 먼저 굽히고 사과해야 돼요. ‘ 감정노동자’가 따로 없죠. 이런 우여곡절을 수없이 반복하며 훈련한 기획자만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세상에 터뜨릴 수 있고요.”


미준씨가 세상에 내놓은 ‘IT업계 고해상도 현실 이야기’는 어느덧 두 권의 책으로 엮였습니다. 성공보단 실패가 더 자주 난무하고, 환희보단 눈물과 한숨의 비중이 더 큰 현장의 쓴맛이 담겨 있죠. 대학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빌려 간 책 순위권에도 자주 든다 하니, ‘잡스병’ 퇴치에는 확실히 기여한 셈입니다. '랜선 사수'로서 그의 소명은 IT업계의 이미지에 거품처럼 낀 뜬구름을 걷어내고, 후세대 기획자들에게 현실에 발붙인 꿈을 꾸게 하고 싶다는 것. 그래야 이 업계에도 제대로 된 ‘넥스트 레벨’이 열릴 테니까요.


낮에는 ‘기획자 이미준’으로서, 밤에는 ‘랜선 사수 도그냥’으로서 회사 안과 밖에 모두 뿌리내린 실무형 전문가로 동반 성장해 온 그를 지난달 28일 만났습니다.

Chapter1. 야생에서 혼자 컸다, 그만큼 강해졌다

미준의 독백


막내 방송 작가, 드라마 작가 어시스턴트, 뮤직비디오 연출, 공연 기획, 무역회사 사무보조, 마케팅 대외활동까지… 고작 스물셋에 이 일들을 다 해봤다면 믿어져? 어려서부터 욕망 에너지가 넘쳤거든. 덕질 유전자가 있어서 한번 꽂혔다 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파는 ‘집요함’은 덤. 다만 그 에너지와 유전자가 어디에 쓰여야 할지를 몰랐지. 의욕은 콸콸 흘러넘치는데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할 수 있는지 몰라 오래 해멨어. 그래서 닥치는 대로 다 봤어. 홈페이지 만들기부터 포토샵, 영상 편집, 기획안 쓰기까지... 그렇게 ‘이것저것 다 할 줄 아는 애’가 되긴 했는데, 어쩐지 다 내 길은 아닌 것 같은 거야. 그러다 만났지. UX라는 세계를. 마치 첫눈에 반하듯이. UX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들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참 꿀꿀한 날이었어. 포털 회사 면접을 보고 아주 시원하게 말아 먹었거든. 망연자실하게 회사 로비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는데, 나랑 비슷한 차림새의 누군가가 내 옆에 털썩 앉는 거야. 누가 봐도 면접 보러 온 사람이었지. “그쪽은 어디에 지원하셨어요?” 그랬더니 UX에 지원했대. “UX요? 그게 뭐예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단어였거든. 물어보니까 ‘UX기획자는 인문학적인 배경을 가지고 온라인 웹서비스를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거야. 사용자의 필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서비스가 잘 굴러갈 수 있게끔 지휘하고 조율하는 직무. 순간 후광이 비치듯 ‘이거다’ 싶었어. 하나의 세계가 새롭게 열리던 순간이었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가 뜨거워질 때까지 UX에 대해 검색했어. 그 벅참, 설렘, 흥분이 아직도 기억나. 면접 망치고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신났던 건 아마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걸.

UX(사용자 경험, User Experience)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한번 꽂히면 미친 듯이 파는 미준씨의 ‘덕질 유전자’는 오랜만에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미준씨는 중학생 때부터 컴퓨터를 끼고 살았던 ‘인터넷 지박령’이었거든요. HTML 프로그래밍 언어로 직접 만든 홈페이지에 반 친구들을 초대해 인터넷 커뮤니티를 꾸렸을 정도였다니 말 다했죠. 이미준이라는 본캐보다 닉네임 ‘도그냥’으로 활동하는 온라인상의 ‘부캐’가 더 익숙했던 그에게 UX라는 새로운 세계란 그야말로 번쩍번쩍 빛이 나는 꿈동산이었다고 해요.


막상 그 세계로 걸어 들어가니 모르는 게 너무 많았죠. ‘웹 네이티브 세대’였던 미준씨였지만, UX의 세계에선 생전 처음 알게 된 것투성이였습니다. “그래서 소중한 적금 60만 원을 깼어요. 집안의 생활비를 대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무렵, 커피값 아껴가며 1,000원씩 모은 적금이었는데…! 그 돈으로 국내 UX 스터디에 모조리 가입하고 교육 프로그램도 신청했죠.”

한국일보

롯데에 막 입사했던 신입사원 시절, 프로젝트의 새벽 오픈을 앞두고 책상 밑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미준씨의 모습(왼쪽). 오픈이 닥쳐오면 회사에서 밤을 새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른쪽 사진은 입사 동기가 직접 만들어준 'UX기획자' 명패. 이미준 제공

열망을 불태우는 사람에겐 원하는 것을 끌어 당겨 올 수 있는 ‘자력’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미준씨는 마침내 2011년 이커머스 회사 롯데닷컴에 입사, 인턴으로서는 이례적으로 ‘UX팀’에 발령받게 됩니다. 경영진은 미준씨의 ‘무한열정’에 탄복해 파격 인사를 냈는데 막상 그를 받은 팀장님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죠. 예로부터 경력직만 뽑는 직무에 신입사원도 아니고 대뜸 인턴을 보냈으니 얼마나 난감했겠어요. 미준씨 역시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수는커녕, 일을 제대로 알려줄 만한 선배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냥 대뜸 야생에다 풀어놨어요. 업무 하나 달랑 던져주고 ‘알아서 해봐라’라는 식이었죠. 모든 걸 혼자서 배우고 깨쳐야 했어요. 홈페이지에 배너 하나만 붙이려 해도, ‘모조리 틀렸다’며 혼내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기획서를 이렇게 쓰면 안 된다’며 개발자한테 욕먹고, 어설픈 그림 가져갔다가 디자이너에게 혼나고. 그래서 신입사원 시절엔 패밀리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처럼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자리를 하나하나 다 찾아다녔어요. 무릎 꿇고 붙어 앉아서 머리 조아리며 피드백을 들은 적도 많았죠. 하나부터 열까지 다 혼나가며 배우는 게 얼마나 서러웠던지, 화장실 끝 칸에서 숨을 죽여가며 혼자 울었던 기억이 선명해요.”


미준씨는 사수 없이 맨몸으로 커야 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퇴사와 이직이 잦은 이 직무 특성상, ‘찐’으로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 선배가 드물었거든요. 윗세대 선배들은 ‘어쩌다 보니’ 기획자 일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데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른 직무로 자리를 옮기기 일쑤였죠. 업무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고연차 기획자는 일찌감치 퇴사해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고요.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줄줄이 나가고, 새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마다 꾸역꾸역 새 사람으로 메꿔지는 주기가 끊임없이 반복된 탓이었죠. 영화 '정글북’의 야생 소년 모글리처럼, 미준씨는 피바람 부는 광야에서 맨몸으로 제 운명을 개척하며 성장해야 했습니다.

한국일보

'롯데온(on)' 프로젝트 추진 당시, 미준씨가 화이트 보드 위에 구조도를 그리며 기획 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이미준 제공

“프로젝트가 고될수록 퇴사자가 많아져요. 롯데백화점의 온라인 쇼핑몰 ‘엘롯데’를 론칭할 때가 딱 그랬죠. 서비스가 오픈하자마자 경력직 선배들이 줄퇴사를 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회사에선 ‘앞으로는 무조건 신입만 뽑겠다’고 선언을 해버렸죠. 이제 막 들어와서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들에게 시니어 경력직이 하던 일을 시킬 수는 없고, 퇴사한 선배들의 일을 제가 고스란히 다 물려받았어요. 고작 2년 차였을 땐데, 팀장님이 이렇게 말했죠. ‘미준아, 네가 사원인 거 아는데, 지금은 사고 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절대로 실수하면 안 돼’. 당시엔 불행이었지만 나중엔 행운이었던 게, 그토록 어려운 시기를 거치고 나니까, 모든 파트의 일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커다란 시야’를 갖추게 된 거예요.”


이커머스 서비스는 고도로 분업화돼 있어요. ‘입점’만 담당하는 사람은 입점만, ‘주문’만 담당하는 사람은 주문만, ‘클레임’만 담당하는 사람은 클레임만 담당하죠. 보통은 자신의 전문 담당 분야를 쉽게 바꾸지 않아요. 레스토랑 주방에 비유한다면, 파스타 만드는 요리사는 줄곧 파스타만 만들고, 스테이크 굽는 요리사는 내내 스테이크만 굽는 식으로요. 당시 미준씨에게 주어졌던 미션을 빗대 설명하자면, 이제 겨우 재료 손질하는 방법을 깨친 주방보조에게 ‘코스 요리 개발’을 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었어요. 선배 요리사들이 줄퇴사하는 바람에 에피타이저부터 메인요리, 디저트까지 모두 자기 손으로 다 만들어야 했던 거죠.


발등 위에 불이 활활 타오르는 채로 여러 일을 한꺼번에 처리해야 했을 땐, 마냥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해내고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 ‘올 라운더(All-rounder)’가 되어 있더래요.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이커머스 서비스의 ‘전체 흐름’을 볼 수 있는 눈까지 갖추게 됐습니다. 주문과 결제가 어떤 과정을 따라 처리되는지, 상품이 고객의 집 앞에 다다르기까지 어떤 여정을 거치는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됐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새의 시야, 일명 ‘버드아이뷰(Bird’s eye view)’로 일의 큰 그림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거예요.

Chapter2.'빡쳐서' 쓰기 시작한 눈물의 업무 일지, 기획자들의 교과서가 되다

미준의 독백


사원 시절엔 오전 7시까지 출근을 했었어. 모르는 게 너무 많았으니까. ‘UX’를 키워드로 내건 자료들은 닥치는 대로 빨아들였지. 근데 열심히 공부할수록 자꾸 힘이 빠져. 머리에 구겨 넣은 지식이 막상 실무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거든. 해외에서 만든 이론이 아무리 번지르르해도 국내 기업의 현실은 완전히 딴판이었어. 그래서 저연차 시절엔 가슴에 항상 물음표가 설움처럼 맺혀 있었지. 우리 회사에선 왜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한다는 방법론을 쓰지 않는 걸까? 이렇게 일하는 게 맞는 건가?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깨닫게 됐어. 기획자를 성장시키는 건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경험’이라는 걸. 하나의 서비스가 제대로 나오려면, 회사의 비즈니스 방향을 이해하고, 이용자를 분석해 전략을 짜야 해.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어떤 데이터가 필요한지, 우리가 가진 시스템은 과연 그걸 해낼 수 있는지, 실무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일들을 해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해야 했지. 여러 가지 변수가 거미줄처럼 뒤엉킨 문제상황을 내 손으로 직접 풀어봐야만 보이는 거야. 이 과정을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면, 기획자라 자부할 수 없더라고. 그때 생각했어. 1인분의 몫을 다하는 제대로 된 기획자를 만드는 게 이론이 아닌 ‘경험’이라면, 적어도 내가 겪은 것만큼은 있는 힘껏 세상과 나눠야겠다. 왜냐, 내 후배들은 나보다 좀 더 쉽게 배우게 하고 싶었거든.​

미준씨의 대학 시절 전공은 ‘사학’이었는데요. 그래서였을까요. 그에게는 ‘역사학자 DNA’가 다분했습니다. 무엇이든 꼼꼼하게 기록하고 집대성하려는 본능, 그것은 예로부터 방송작가, 드라마작가 어시스턴트, 블로거 등 글로 하는 것이라면 안 해본 게 없었던 전력에서 비롯됐죠. ‘내가 배운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조용한 결심을 품은 건 2016년, 미준씨가 ‘허리급’ 연차가 됐을 때였습니다.

한국일보

미준씨는 2017년 패스트캠퍼스에서 처음으로 서비스 기획 관련 강의를 시작했다. 지금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이커머스에 관한 글과 강의를 만들며, 주니어 기획자들의 '랜선 사수'를 자처하고 있다. 김하겸 인턴기자

“상사 중 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지나가는 중학생도 붙잡아 놓고 3일만 가르치면 서비스 구조도를 그리게 할 수 있다’고요. 맞아요. 누구나 이 일을 대충 흉내 낼 순 있어요. 근데 그건 그림에 불과해요. 그림 속의 구조도를 진짜 굴러가게 하고, 오류 없이 유지하고, 비즈니스로서 기능할 수 있게 하는 게 우리의 역량이죠. 그게 진짜 어려운 거고요. 암만 이런 이야길 해도 혹자는 말해요. ‘그거 꼭 필요한 일입니까?’라고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후려침’을 당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억울하고 화가 났죠. 그런 울분, 빡침, 분노의 힘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나라도 이 일에 대해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학창 시절 쓰던 닉네임 ‘도그냥’을 내걸고 개설한 카카오 브런치에서 미준씨는 ‘ 보통의 UX 기획자’라는 타이틀로 매주 자신의 ‘업무 일상’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서러운 일을 당해도 눈물만 닦아내면 글감’이라는 생각으로 에피소드를 모았죠. ‘기획자는 개발과 디자인을 어느 정도로 알아야 하는가’부터 ‘나만의 상식으로 UX를 기획하면 안 되는 이유’에 이르기까지, 혼자 넘어지고 깨지고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배운 것들을 집대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일보

미준씨가 2016년 브런치에 연재한 '보통의 UX 기획자' 시리즈. 꾸준히 쌓아 올린 콘텐츠들은 다양한 기회를 열어줬다. 이미준 제공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콘텐츠는 미준씨에게 ‘진짜 사수’가 될 기회를 열어줬어요. 예비 후배들을 직접 가르치고 육성할 수 있는 장이 열린 거죠. ‘현역 기획자 도그냥이 알려주는 서비스 기획 스쿨’이란 이름으로 개설된 12주 과정의 강의는 기획자 지망생들이 한 번쯤 거쳐가는 ‘실무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고 해요. 미준씨가 직접 만든 강의안과 업무일지가 한 권의 교본으로 묶여 출간됐을 정도로요.


뭔가를 완벽에 가깝게 이해하는 방법엔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그것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남에게 가르치는 것이죠. 미준씨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글과 가르침을 양 축 삼아 쭉쭉 뻗어나갈수록 본업에서의 역량 역시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책을 쓸 때는요. 업계에서 당연하게 쓰던 용어의 정의부터 가다듬었어요. ‘이건 불문율의 상식이야!’라고 여겼던 케이스들 역시 ‘왜 그렇지?’ 하고 그 이유를 따져 물었고요. 더 잘 설명하기 위해 더 깊이 공부하다 보면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착각했을 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 역시 찾게 돼요. 그래서 책을 쓰면서 저도 많이 성장했죠.”


글감을 찾기 위해 호기심의 레이더를 쫑긋 세우고 있다 보면 벌써 12년 차임에도 새록새록 처음 알게 되는 사실들이 많다고 해요. 쓰고 가르치는 일을 꾸준히 멈추지 않으니 남들은 일찌감치 닫아버린 업(業)에서의 성장판이 아직도 활짝 열려 있죠.

한국일보

미준씨는 '이커머스'라는 한 우물을 12년째 파며, 그 안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을 글과 강연의 형태로 기록해왔다. 차곡차곡 쌓인 콘텐츠는 회사 밖에서도 '서비스 기획 전문가'로 바로 설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이미준 제공

꾸준히 쓰는 사람, 말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도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자아의 견고함’이 생긴다고 합니다. 미준씨 역시 마찬가지였죠. 그가 자신의 브런치에 5년 동안 쌓아 올린 글들은 약 500건. 업의 본질에 가 닿기 위해 정확한 단어를 고르던 시간들은 흐물흐물한 점토를 뭉치고 구워 단단한 벽돌로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집요하게 질문을 던지며 쓰고 가르치다 보니, 그것이 곧 전문성의 견고한 토대가 된 겁니다. 그래서 본캐 이미준과 부캐 도그냥은 등을 대고 기댄 짝꿍이에요. 업히고 업어주며 서로를 키워주는 동반자 같은 개념이죠.


동전의 양면 같은 본캐와 부캐의 관계를 잘 보존하기 위해 미준씨는 본업과 사이드잡 사이에 ‘단호한 원칙’을 세웠습니다. 삶의 우선순위 중 불변의 1순위는 ‘본업’, 자신이 가진 가장 강한 힘은 ‘회사에서 일할 때’ 쓰고, 남는 힘을 쪼개 사이드 프로젝트에 나누어 쓴다는 것이죠.

한국일보

미준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찍어 올린 '이커머스 서비스 기획' 강의. '도그냥TV' 갈무리

저는 어떤 경우에도 일터를 떠날 생각을 절대 하지 않아요. 강의나 책 출간으로 돈을 많이 번 직업인 중엔 아예 퇴사를 해버리고 ‘전업 강사’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실무를 떠나는 순간 그 사람이 가진 모든 지식은 순식간에 낡은 것이 돼요. 특히 제가 하는 일은 현장에서의 경험이 역량의 8할을 만들죠.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라떼는 말이야’의 늪에 빠지는 거예요. 살아있는 실무 지식을 가르치기 위해서 가능한 한 오래 현업에 머무르는 게 제 목표랍니다.

Chapter3. 해도 해도 일이 도무지 쉬워지지 않는다고? 삐빅, 그거 정상이야!

미준의 독백


이 일을 하면서 나는 매일 부족한 나를 발견해. 벌써 12년 차지만 아직도 내 일이 너무 어려워. 해도 해도 능숙해지지 않는 종류의 일이 있다면 아마 이런 일이 아닐까라는 싶을 정도로. 하루에도 변수와 오류가 수십 개씩 터지는 환경에서 ‘완벽한 통제권’을 갖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거든.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문제가 쉬운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어느 순간부턴 인정하게 된 거 같아.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를. 세상의 그 어떤 기획자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한 서비스를 만들 수는 없거든. 그래서 이 일을 하며 중요한 건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혹은 ‘모를 수도 있다’는 전제를 기본으로 갖는 거야.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제일 위험하거든. 연차가 쌓이며 딱 하나 능숙해진 게 있다면 돌발 상황을 대하는 마음가짐 정도인 것 같아. 스스로를 과하게 자책하지 않고, ‘다음’만을 생각하는 것.​

‘가슴 뛰는 일을 하라.’ 진로를 선택할 때 우리가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죠. 그런데 미준씨의 조언은 좀 다르다고 해요.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기보단 ‘남들보다 잘 견뎌낼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말하죠.


일은 원래 힘든 겁니다. 어떤 일이든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고통스럽고 어려운 게 당연해요. ‘연차도 찰 만큼 찼는데 왜 아직도 일이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삐빅! 정상입니다’라고 이야기해줘요. IT업계에서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도 그래요. 단순한 재미로는 절대 오래 못할 일이죠. 매번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일이니까요. 근데 저는 이 일을 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다른 종류의 일을 하면서 감내해야 할 고통보다 견디기 쉬웠어요. 남들은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버티냐’고 하는데, 저에겐 잠깐 힘들었다가도 금방 털어내고 이겨낼 수 있는 고통인 거예요. 그래서 전 대학생 강연을 나갈 때마다 항상 이야기해요. ‘나는 뭘 잘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은 이미 많이 했을 테니까, 좀 다른 질문을 해야 한다고. ‘나는 뭘 잘 참는 사람이지?’

한국일보

'업(業)'이란 곧 '견디는 것'이기도 하다. 김하겸 인턴기자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본 적 있는 사람들은 알 거예요. 그 일의 환상이 얼마나 순식간에 깨어지는지. 어떤 직업이 내 가슴을 펄떡펄떡 뛰게 했어도, 막상 해보니 못 견디게 힘들어서 하루도 못 버티겠다면 그건 내 일이 될 수 없어요. 본디 꿈은 짧고 현실은 긴 법이지요. 번드르르하게 멋져 보이는 이미지는 ‘15초짜리 트레일러’에 불과하거든요. 실제로 그 일이 지배할 내 일상은 지겹고 고통스러운 ‘무편집본’이고요.


그래서 미준씨는 ‘좋아하는 것보다 싫은 것’을 먼저 찾아보라고 말해요. 너무너무 싫은 것, 도무지 견디기 힘든 것을 하나씩 지워 나가다 보면, 선택지가 좁혀진다는 거죠. 사람마다 회복 탄력성이 좋은 분야가 다르잖아요? 나는 어떤 고통에 맷집이 센가, 어떤 스트레스를 덜 싫어하나를 생각하다 보면 ‘매일 하면서도 버틸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다고 해요. 미준씨 역시 ‘기획자’라는 일을 그렇게 찾았다네요. 매일 숫자의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영업이나 마케팅의 스트레스는 자신의 특성상 도저히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거든요.

한국일보

벌써 12년 차 직업인이지만 그의 성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김하겸 인턴기자

대기업에서 10년, 스타트업에서 2년. 그렇게 총 12년. ‘대퇴사’의 시대에 쉬지 않고 꾸준히 일을 해온 미준씨를 지탱한 것은 ‘비전은 셀프’라는 좌우명이었다고 합니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자주 내뱉는 하소연이 “회사가 나에게 비전을 주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그럴 때마다 미준씨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성장은 내 몫이야! 회사는 나의 비전을 책임져 주지 않아!’


회사에 불만을 가질 수는 있어요. 욕할 수도 있어요. 근데 거기서 끝나면 내 성장은 딱 거기까지죠. 어떤 환경에서든 내게 주어진 일을 잘 살피다 보면,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지점이 한두 개쯤은 꼭 있거든요. 저는 그런 포인트를 찾아 자꾸자꾸 파고 들었어요. 떨어지는 일들을 쳐내는 데 급급해하기보단, 힘 닿는 대로 고민했죠.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까?’ 새롭게 배운 게 있으면 바로바로 적용해봤고요. 생각해보세요. 제가 회사원이 아니었다면 개발자가 500~600명 단위로 붙는 큰 규모프로젝트를 어디 가서 해볼 수 있겠어요. 대기업의 기획자였으니까 가능했던 거죠. 규모가 컸던 만큼 일은 힘들었지만, 치열하게 고민하고 안간힘 쓴 시간들이 다 내 성장의 거름으로 쓰인다고 생각하면, 그리 억울하지 않았던 거 같아요.”


여기서 주의! ‘꼰대 부장님’이 매일같이 하는 말, 노예처럼 야근하면서도 ‘주인의식 가져라!’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일’에서 기회의 가능성을 창출하는 건 ‘각자의 몫’이라는 이야기죠. 어차피 천년만년 다닐 회사가 아니라면, 내게 주어진 일을 지렛대 삼아 성장하는 것이 ‘남는 장사’일 테니까요.

한국일보

비전공자의 IT 업계 PM 취업에 대해 컨설팅하고 있는 미준씨.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IT기업 취업준비생들의 포트폴리오를 봐 주거나 고민을 상담해주기도 한다. '도그냥TV' 캡처

사람들은 미준씨에게 자주 묻습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하는데 슬럼프나 매너리즘이 올 때는 없나요?’ 그러면 그는 의외의 답을 내놔요. ‘ 저처럼 슬럼프 자주 오는 사람 또 없을걸요? 태생적으로 뭔가에 잘 질리고 실망하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와요!’ 그럼 혹자는 의아해하죠. ‘슬럼프가 그렇게 자주 오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도 끊임없이 일을 벌이나요?’


“저는 남들보다 실망하는 게 빠른 사람이거든요? 실패했을 때 무지 쉽게 우울에 빠지는 사람이기도 해요. 그래서 가볍게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을 훈련했어요. 실패를 안 하거나 실망을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주어진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에잉? 이거밖에 안 됐어?’ 이런 생각이 들면, 입으로는 ‘아니야, 그거라도 해냈으니까 엄청난 성공이야. 되게 좋은 경험이 쌓인 거야!’라고 고쳐 말해요. 또 하나는 투두(to do) 리스트 대신에 던(done) 리스트를 쓰는 건데요. 캘린더에 내가 해낸 일들을 빼곡하게 써넣는 거죠. 미처 해내지 못한 일들에 대해선 생각도 하지 않아요. 일단 이뤄낸 성취만 보는 거죠.”


유도에서는 ‘제대로 넘어지는 방법’을 배우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해요. 이걸 ‘낙법’이라고 부르는데요. 공격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넘어지는 기술이래요. 미준씨가 슬럼프에 대처하는 방법 역시 낙법과 비슷해요. 실패하지 않기, 실망하지 않기, 슬럼프에 빠지지 않기란 불가능하니까 기왕 넘어지는 게 ‘덜 다치게’ 잘 넘어져 보자는 거죠. 잠깐 주저앉아 있다가도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게요.

한국일보

미준씨는 '먼저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직업의 세계에서 따라가고 싶은 선배를 발견하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후배들에게 계속 성장하고 계속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김하겸 인턴기자

Epilogue. 내 성장은 현재진행형... 부지런히 업데이트하는 '슈퍼노멀'이 되겠다

롯데에 10년 동안 몸담으며 엘롯데, 롯데온 등의 다양한 이커머스 서비스를 론칭했던 미준씨는 2년 전 스타트업인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소규모 팀을 이뤄 민첩하게 일하는 스타트업의 업무 문화를 새롭게 배우기 위해서라네요.


“대기업에서 일하는 서비스 기획자와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프로덕트 매니저는 팀 구성부터 일하는 방식까지 천지 차이에요. 그래서 대기업 출신 기획자들은 스타트업으로 이직할 수 없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는데요. 뭐가 그렇게 다른지, 제가 직접 경험해보고 배우고 싶었어요. 공채 기획자 중엔 제가 가장 연차 높은 선배이니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겨주고 싶기도 했고요. ‘얘들아, 나를 봐라! 스타트업으로 이직해서도 이만큼 잘할 수 있단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 후배들은 이것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게 하겠다는 피눈물 묻은 결의, 미준씨는 그 다짐으로 오늘에 닿았습니다.

한국일보

'서비스 기획 전문가'로 자신을 퍼스널 브랜딩한 미준씨, 그는 '브랜딩'에 지름길이란 없다고 말한다.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아도 계속 밀고 나가는 꾸준함,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김하겸 인턴기자

마지막으로 그에게 12년을 쉬지 않고 계속해 온 이 일의 재미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어제보다 오늘 무조건 1g 정도는 더 똑똑해져 있어요. 오늘보단 내일이 더 똑똑할 거고요. 그만큼 계속해서 몰랐던 사실을 깨달아 가는 직업인 거 같아요. IT 업계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을 누구보다 빠르게 따라가는 업종이거든요. 그러니 계속 배워야 해요. 지겨울 틈이 없는 직업이죠.


인터뷰 말미, 미준씨는 2년 전 출간한 첫 책을 한장 한장 넘겨보며 이렇게 말했어요. “고작 2년이 지났을 뿐인데, 어떤 대목들은 벌써 낡은 것 같아요.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제 생각이 다른 부분들도 있고요. 신기하네요.” 빠르게 크는 사람에겐 옷이 금방금방 작아지잖아요. 그래서 미준씨는 지금 이 순간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기록하지만, 그것을 ‘불변의 원칙’이라는 이름에 가두지 않는다고 해요. 관점이 한 뼘 더 성장해 생각이 변했다면, 변한 걸 또 쓰자는 게 그의 노선이죠. 소프트웨어가 끊임없이 ‘버전 업데이트’를 하듯 말입니다.


“실제로 저는 대단한 창업가도 아니고, 세계적인 일류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스스로를 ‘슈퍼 노멀(Super Normal)’ 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도 글을 쓸 때 누군가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으로 쓰지 않아요. ‘어디까지나 제 경험입니다’ 하는 태도가 디폴트죠. 어떤 경우에도 제가 경험한 것을 절대의 진리로 넘겨짚어 확정하지 않는 것, 그 선을 잘 지키려고 노력해요.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 생각은 또 다를 거니까요.


▶ '도그냥' 이미준의 일잼포인트 '문과생, 비개발자로 IT회사 살아남기' 읽으러 가기 (관련기사 ②)


▶ ‘커리업’ 뉴스레터를 구독하면, 레터에만 담기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그래픽_박길우 디자이너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오늘의 실시간
BEST
hankookilbo
채널명
한국일보
소개글
60년 전통의 종합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