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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한국일보

'모나리자'가 동서양 합작품? 산수풍경에 담긴 미스테리

<8>풍경화의 비밀(2): '모나리자' 속 풍경

성큼 다가온 휴가철을 맞아 풍경화를 주제로 미술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아름다운 자연이 담긴 풍경화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곳곳에 비밀스러운 문화 코드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일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부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풍경화 속엔 읽을 것이 넘쳐난다. 미술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해 줄 풍경화 명작을 골라 10회에 걸쳐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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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 1503~1506년경, 77cmx53cm, 루브르 박물관. 배경에 보이는 풍경도 이 그림의 신비감을 높여 준다. 위키피디아

한 여인이 우리를 보고 살짝 미소 짓고 있다. 배경엔 웅장한 대자연이 펼쳐져 있는데, 이 여인은 실제로 이 장엄한 풍경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화가가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상상의 풍경을 그려 넣은 걸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라고 하는 ‘모나리자’의 신비감을 얘기할 때 배경에 펼쳐진 풍경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간단하게 손으로 인물을 가려 보자. 이렇게 하면, 모나리자는 완벽히 한 폭의 풍경화로 변신한다.


일반적으로 미술사학자들은 모나리자의 배경에 자리 잡은 풍경이 실제가 아니라 이상화된 자연, 즉 상상으로 재구성된 자연이라고 생각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마틴 켐프 미술사학과 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실제 사물을 놀라울 만큼 몰입해서 관찰한 후 그것을 다시 재구성해 그리곤 했다. 그가 굳이 여기서 특정 지역의 풍경을 그려 넣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모나리자 속 배경은 이탈리아 코모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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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코모 호수. 석회암으로 된 그리냐산(Grigna Mountains)이 펼쳐져 있다. 위키피디아

이 풍경이 실제 풍경이라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먼저 여기가 다빈치의 고향 토스카나 지역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아르노강이 배경이라고 자주 언급되었는데 여기서도 아레초 근처의 부리아노 다리(Ponte Buriano)의 주변이라는 설이 구체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한편 2015년에는 여기가 우르비노 지역의 풍경이라는 설이 제기되었고, 올 5월에는 이탈리아 알프스의 코모 호수(lake Como) 근처라는 설까지 나왔다.


모나리자의 배경이 코모 호수라는 최근 주장이 신선했던 이유는 이 주장을 편 연구자 앤 피조루소가 지질학자이자 르네상스 학자로 독창적인 학제간 연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 속 산의 형태와 실제 풍경이 유사할 뿐만 아니라 문헌적으로 다빈치가 이 지역을 실제 여행했고, 나아가 모나리자 배경에 등장하는 연한 회색의 톱니 같은 암석이 석회암 지대인 이 지역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동양의 산수화를 품은 모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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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희의 '조춘도(早春圖)', 158.3×108.1㎝, 북송시대, 1072년, 대북 고궁박물관. 위키피디아

이렇게 모나리자 배경의 풍경이 진짜냐 아니냐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제3의 관점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동양의 산수화, 특히 중국 북송대 완성되는 소위 곽희파의 산수화의 영향이 보인다는 주장이 마이클 설리번 같은 동양미술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실제로 모나리자의 배경을 보면 왼쪽과 오른쪽 배경에 각각 웅장하고 심오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왼쪽에는 굽이치는 길을 배경으로 거대한 산이 호수와 함께 이어지고, 오른쪽에는 강이 우리를 향해 흘러오고 그 위에 아치형 다리가 가로지른다. 그리고 여기서도 거대한 산이 호수와 함께 수직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개에 싸인 고산준령과 굽이굽이 흐르는 강과 길로 구성된 좌우 측 풍경은 흥미롭게도 서로 수평선이 맞지 않아 독립적인 풍경처럼 보일 정도이다.


특히 아래위로 긴 수직적 구조는 동양의 족자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여기서 풍경이 크게 세 가지 시점으로 그려져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흥미롭게도 소위 동양의 산수화에서 보이는 삼원법 형식을 대입해 충분히 읽어 낼 수도 있다. 기암괴석이 강조된 맨 위 상단의 풍경은 올려다보는 고원(高遠), 중간의 풍경은 수평적 시선인 평원(平遠), 맨 아래는 산과 산을 넘겨다보는 심원(深遠)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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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속 배경(왼쪽 사진)은 곽희의 '조춘도(早春圖)'의 일부와 유사성을 보인다.

이 삼단 구조가 안개와 호수로 이어진다는 점도 동양의 산수화의 영향을 강하게 암시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설리번 교수의 경우 모나리자 속에 동양 산수화의 영향은 보이지만 16세기 중엽까지 이런 그림이 유럽에 전해졌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다빈치가 이런 경이로운 풍경을 독자적으로 연구해 개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일본 도호쿠 대학의 다나카 히데미치 교수의 경우는 당시 그림에 중국 청화백자가 들어간 그림이 여럿 있다는 점을 근거로 중국의 산수화가 유럽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하면서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경우 중국 북송대 산수화의 영향이 확실시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기서 나의 입장은 사실 이중적이다. 기암괴석과 고산준령, 흘러내리는 듯한 물감 효과, 흐릿한 경계, 무엇보다 이질적인 시선의 자연을 수직적으로 배치한 점은 분명 북송대 산수화를 보지 않고 그렸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서로 유사하다. 특히 삼원법의 시선 구조는 다빈치가 그린 다른 풍경 그림과 너무나 다르다. 그는 종교화나 인물화의 배경에 웅장한 자연을 자주 펼쳐 놓았는데, 대부분 원근법에 기초해 수평적으로 바라본 풍경이었다.

다빈치의 천재성, 대기 원근법과 스푸마토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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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산타 마리아 델라 나베의 풍경 드로잉, 1473년, 우피 미술관. 다빈치가 21세 때 그린 고향 풍경. 그가 일찍부터 실제 풍경을 그렸다는 중요한 증거다. 구글 캡처

다빈치의 천재성을 고려했을 때 그가 이런 시선의 분산적 배치와 풍부한 대기 효과를 스스로 개발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는 일찍부터 원근법을 연구하면서 이를 더 사실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공기의 흐름과 연결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작업 노트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색채가 흐려지거나 상실되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거리에 비례한다. 그러나 이는 동일한 고도에서 색채를 보는 경우에 한한다. 고도가 다를 경우, 이러한 규칙은 적용되지 않는데, 이는 공기의 밀도가 다르면 공기가 색채를 흡수하는 정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빈치는 자연을 다른 고도에서 바라보면 공기의 밀도에 따라 색채의 선명도까지 달라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그의 발언을 고려하면서 모나리자 배경을 다시 보면 고도에 변화를 주어 풍경을 연구한 결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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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마토 기법은 회화에서 색과 색 사이 경계선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고 부드럽게 처리하는 기술적 방법이다. 다빈치는 이 기법을 처음 사용했다.

특히 그는 모나리자의 얼굴 표현에 스푸마토(sfumato)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연기처럼 사라지다'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스푸마레(sfumare)에서 온 이 용어는 형태가 마치 안개에 싸인 듯 윤곽의 명암을 부드럽게 처리하는 유화기법이다. 크게 보면 바로 이 기법 때문에 모나리자의 미소가 신비롭게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 스푸마토 기법을 염두에 두고 배경을 보게 되면 다빈치가 문자 그대로 이 기법을 자연에 적용하려는 듯 적극적으로 산과 호수의 형태를 모호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형태와 공기에 대한 실험적인 태도를 이 그림에 적극적으로 보여줬고, 그 결과가 북송대의 중국 산수화와 유사한 형식으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모나리자에 등장하는 환상적인 풍경은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자연에 바탕을 두고 대기 효과를 적극적으로 실험한 결과인지 아니면 동양의 산수화를 보고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인지는 여전히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같은 논쟁이 모나리자의 신화적 지위를 더 강화해 준다는 것이다. 모나리자는 이처럼 배경조차도 쟁점으로 가득해야 비로소 명작의 반열에 오른다고 명확히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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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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