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안 가르치면 200년 명맥 끊길라" 여전히 탈 쓰는 85세 문화재
유일한 국가무형문화재 봉산탈춤 보유자 김애선
국가무형문화재 봉산탈춤 보유자 김애선(85)씨가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봉산탈춤에 등장하는 '소무'의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씨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30분 가까이 춤사위 자세를 자유롭게 취하며 촬영에 응했다. 김영원 인턴기자 |
김애선 보유자가 소무의 춤사위를 보이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
아버지가 남한으로 내려와 사리원 사람들을 모아서 봉산탈춤을 추기 시작할 때는요. 탈춤 추는 사람들 모두가 해골 바가지였어요. 먹지를 못해서 다 말라비틀어졌는데도 탈춤이 좋아서 온 거예요. 지금 봉산탈춤을 배운다고 생활할 수가 없으니까 전통이 자꾸 사라지고 있거든요. 봉산탈춤은 우리나라의 역사이고 전통이고 가락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걸 좀 배워서 좀 했으면 좋겠어요.
국가무형문화재 봉산탈춤 보유자 김애선(85) 선생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는 11월 30일(현지시간)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회의에서 봉산탈춤 등 탈춤 18종으로 구성된 '한국의 탈춤'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평가기구가 11월초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려 등재 결정이 확실시됐다.
하지만 국가무형문화재 봉산탈춤 보유자 김애선(85)씨는 희소식을 반기면서도 앞날을 걱정했다. 아직까지 전수 교육을 직접 하고 있지만, 국민이 탈춤과 멀어지는 현실을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봉산탈춤 보유자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면서 유일한 봉산탈춤 보유자가 된 그를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났다.
문화재계에 따르면 봉산탈춤은 여러 탈춤 중에서도 그나마 전수 기반이 탄탄한 편이다. 현재 보유자는 한 명이지만 전수 자격을 가진 전승 교육사가 6명이다. 그래도 김 보유자는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탈춤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 못하고 당장 교육을 받는 이수자들도 생계와 코로나19 탓에 줄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 예정된 수업에서도 어려운 동작을 직접 가르쳐야 한다”면서 “이수자들은 ‘그 나이에 어떻게 허리와 다리가 그렇게 돌아갑니까’ 이야기하지만 내가 지금 안 가르치면 이 춤은 없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9일에도 한독이 ‘인간문화재 지킴이 나눔공연’의 일환으로 주최한 어린이 대상 봉산탈춤 교육 행사에 참가했다.
김애선 보유자가 소무의 춤사위를 보이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
김애선 보유자가 소무의 춤사위를 보이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
김 보유자가 봉산탈춤의 명맥이 끊길까 노심초사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에게 봉산탈춤을 전수해 준 이가 다름 아닌 부친 김진옥씨다. 부친은 가족과 함께 월남하기 이전 황해도 사리원에서 봉산탈춤을 췄다. 봉산탈춤 자체가 황해도 봉산 지방에서 유래했다. 1967년 봉산탈춤이 국가무형문화재 17호로 지정되면서 김진옥씨도 4명의 예능보유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부친에게 봉산탈춤을 배워 월남 후 본격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 김 보유자는 1989년에 보유자로 공식 인정됐다. 그는 “봉산탈춤 배우는 사람들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보니까 마음이 아프다”고 거듭 아쉬워했다.
봉산탈춤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김 보유자는 아들 셋이 35년 전 미국으로 떠났지만 봉산탈춤에 사로잡혀서 지금껏 홀로 한국에서 전수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그는 “봉산탈춤은 흥이 많다. 신 장수의 등짐에서 신발 대신 원숭이가 나오면 어린이들이 그렇게 좋아한다. 또 봉산탈춤 장단이 나오면 관객들 어깨가 안 움직일 수가 없고 얼쑤 소리가 절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김 보유자는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봉산탈춤의 옛 모습을 가르칠 작정이다. 그는 “내가 아직도 가르쳐줄 수 있을 때 가르쳐야지. 그렇지 못하면 이 동작은 없어지는 거야”라면서 “후세가 200년이 넘는 봉산탈춤의 역사를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15일 봉산탈춤 예능보유자 김애선 명인이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인터뷰에 앞서 봉산탈춤 '소무' 의상을 입고 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다. 김영원 인턴기자 |
김애선 보유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가 탈춤을 추고 탈 30종을 직접 만드는 작업을 봤다고 설명했다. 그는 진흙을 뒤판에 붙여서 탈을 만들던 시절부터 탈에 둘러싸여 살아왔다고 덧붙였다. 김영원 인턴기자 |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