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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한국일보

꽂혔다, 미쳤다... 스니커즈 수집

꽂혔다, 미쳤다... 스니커즈 수집

[저작권 한국일보]스니커헤드들을 인터뷰하는 유튜브 채널 '슈덕후' 진행자 김용훈(활동명 수파사이즈)씨가 에어조던10을 신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여기 운동화 2,000켤레가 있다. 당신은 ‘2,000’이라는 숫자에 무엇을 떠올리는가. 운동화가게에 진열된 신발 개수? 창고 안 상자째 차곡차곡 쌓여있는 운동화? 아니면 운동화공장의 하루치 생산량?


실은 박우진(37)씨가 ‘17년간 사 모아 가지고 있는 운동화’ 숫자다. 50만이 넘는 회원을 거느린 국내 대표 운동화커뮤니티 ‘나이키매니아’ 운영자인 박씨는 나이키 아디다스 등 유명 스포츠브랜드에서 생산한 갖가지 신발을 수집하면서 ‘스니커헤드(Sneaker Head)’라 불린다.


단순히 운동화를 많이 사 모은다고 스니커헤드 반열에 오르는 건 아니다. 당장 집 안 가득 운동화를 쌓아두고 찍은 사진과 함께 ‘저는 스니커헤드입니다’라고 인터넷에 올려보라. 돌아오는 건 아마도 각종 야유와 비아냥, 혹은 욕설일 것이다.


박씨 말을 들어보자. “‘아끼면 똥 된다’는 신념이 있어요. 운동화를 사면 일단 신어보는 거죠. 가끔은 닳고닳은 운동화들과 지방 농장 창고에 보관하다가 쥐가 똥을 싸고 파먹고 해서 훼손된 운동화 70켤레 정도를 한데 모아 불 태워 버린 적도 있어요.” 신주단지 모셔놓듯, 새로 산 신발을 장식품처럼 고이 모셔두진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그런 자신을 두고 “신발이, 운동화가 지배하는 인생”이라고 말했다. 운동화가 지배하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운동화에 미친 사람. 박씨가 생각하는 자신, 바로 스니커헤드다.

스니커헤드의 시작

스니커헤드는 ‘열성 운동화 수집가’쯤 되겠다. 그런데 뭔가 1% 부족하다. 껄렁대는 몸짓으로 영어 섞인 랩만 한다고 힙합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어떤 행동이 있다면, 거기에는 당연히 그 나름의 문화가 덧붙여져야 한다.


컨버스화나 러닝화가 운동화시장을 지배하던 1980년대 중반, 나이키에서 획기적인 운동화를 하나 내놓게 되면서 스니커헤드의 문화는 비로소 시작된다. 그 운동화는 지금도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에어 조던(Air Jordan) 시리즈‘다. 미국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 등에서 뛰던 마이클 조던이 실제 경기에서 신은 농구화이기도 하다.


조던이 누구인가, 전세계 농구팬을 사로잡으면서 ‘신(神)‘의 반열까지 오른 유일무이한 선수. 그의 인기와 함께 에어 조던은 순식간에 전세계 운동화시장을 지배했다. 특히 당시 가난했던 흑인 청소년들이 조던을 보며 꿈을 키웠고, 농구와 흑인 패션이 결합된 독특한 문화가 형성됐다.

꽂혔다, 미쳤다... 스니커즈 수집

[저작권 한국일보]90년대 운동화 수집가 최문규씨의 운동화 갤러리에 전시돼 있는 운동화들과 운동화 박스들 모습. 홍인기 기자

슬램덩크, 농구대잔치, 마지막 승부 그리고 NBA

약 10년이 지나, 국내에서도 농구 붐이 일었다. 싸움 말고는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던 남자 주인공이 연모하던 여학생의 ‘농구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고등학교 농구 선수가 되는 것으로 시작하는 농구만화 ‘슬램덩크’가 기폭제였다. 주인공이 ‘왼손은 거들 뿐’을 중얼거리면서 날린 역전 슛으로 우승 후보 학교를 꺾는 장면에 수많은 중고생이 열광했다. 농구장에는 전에 없던 ‘오빠부대’가 등장했고, 1994년 방영된 MBC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마지막 회 시청률은 48.6%를 기록했다. ‘1994년 키즈’의 등장이었다.


유튜브 채널 ‘슈덕후’ 진행자 김용훈(36ㆍ활동명 수파사이즈)씨는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NBA 선수들이 과연 어떤 신발을 신는지 관심 가지기 시작했죠. 알고 보니 ‘Air Jordan’이라는 이름의 신발을 신는 거예요. 그게 ‘에어 조르단’인 줄 알았어요. 선수들이 신고 있으니 너무 사고 싶어서, 부모님께 ‘에어 조르단’을 조르고 졸라서 샀었죠. 그때는 이미 나이키가 에어 조던 시리즈 7번째 모델을 내놨을 때죠.”

꽂혔다, 미쳤다... 스니커즈 수집

[저작권 한국일보]90년대 나이키 운동화 수집가 최문규씨의 운동화 갤러리 모습. 홍인기 기자

1994년 키즈들 어른이 되다

‘1994년 키즈’들이 성인이 된 2000년대 초ㆍ중반. 드디어 국내에서도 스니커헤드들이 본격 등장했다. 최문규(34)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최씨는 현재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자신이 수집한 운동화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가지고 있는 나이키 운동화만 700켤레다.


최씨는 스스로를 ‘추억을 모으는 사람’이라고 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미쳤다고 할지 모르지만 학창시절인 90년대 운동화 모두 가지고 있어요. 힘들게 아르바이트해서 어떻게든 신고 싶은 운동화를 살 때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요. 힘들게 샀던 운동화를 다시 마주하면 그때의 뭉클한 감정이 올라오죠.”


이달 8일 국내 스니커헤드들이 한바탕 들썩였다. 바로 ‘에어 조던 11’, 일명 ‘콩코드’라는 별명을 가진 모델이 재발매된 것이다. 1995년 출시된 뒤 2011년 단종됐는데, 7년 만에 화려하게 귀환한 것이다. 현장은 뜨거웠다. 매장에는 전날 저녁부터 줄이 이어졌고, 일부 매장에서는 오전 11시부터 ‘스크래치 복권’을 한 명당 한 장씩 총 700장을 배부해 ‘당첨’된 사람에게만 신발을 살 수 있도록 할 만큼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세계에 발매된 11만 켤레 중 국내에 배당된 2만 켤레는 그렇게 한 순간에 동이 났다. 구매에 실패한 이동훈(34)씨는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단 한 번도 신지 않고 운동화가 담겨있던 박스까지 그대로인 ‘새 운동화’가 팔리고 있다. 리셀(ReSellㆍ되팔기)로 불리는데, 앞선 에어 조던 11 Retro버전과 같이 구하기 힘든 신발에 ‘추가금액’이 붙어 개인 간 거래가 이뤄지는 식이다. 실제 에어 조던 11 Retro버전의 매장 판매가는 26만9,000원이지만, 온라인에서는 33만~35만원에 거래된다. 100만원 이상에 거래되는 모델도 상당수다.

꽂혔다, 미쳤다... 스니커즈 수집

[저작권 한국일보]90년대 운동하 수집가 최문규씨 운동화 갤러리에 전시돼 있는 에어 조던1 마이클 조던 친필 사인 버전. 홍인기 기자

스니커헤드도 또 하나의 문화다

스니커헤드들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운동화를 사고파는 행위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그래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운동화를 가지고 나와 다른 스니커헤드들의 운동화와 교환하거나 매매할 수 있는 ‘스니커 하우스’를 따로 연다. 일종의 그들만의 축제다. 지난해 12월 처음 개최했고, 5월에는 1,000여명이 참가했다.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수단으로 운동화를 수집하는 스니커헤드들이 많아요. 저희가 운동화에 미치는 이유인데, 이걸 알아주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앞으로 동참하는 사람들이 더 늘었으면 좋겠어요.” 국내 최초로 국내에서 스니커 하우스를 개최한 스택하우스 공동 대표 허유진(31)씨 얘기다. 운동화를 통해 나를 드러내고 되돌아본다는 말, 한 번에 와 닿지는 않지만 설핏 이해는 간다. 누구나 한번쯤은 지금도 뭔가에 미치길 원하고 소망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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