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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쏙 빼닮은' 이해인 "경기할 때 긴장하지 않느냐고요? 긴장하지 않은 척해요"

한국일보

'포스트 김연아'로 불리는 이해인이 1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소담스퀘어에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카메라 앞에 서니 어색하다며 웃고 있다. 홍인기 기자

"긴장했어도 긴장하지 않은 척하면 떨리지 않더라고요. 대회에 나설 때마다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에요. 하지만 선수로서 긴장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속이 꽉 들어찼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10대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차분하게 자기 생각을 조곤조곤 얘기하며 여유로운 미소까지 지을 줄 아는 소녀. 절제하려 해도 새어 나오는 빛나는 자신감은 숨길 수 없다. 김연아 이후 14년 만에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싱글 금메달을 차지한 이해인(18·세화여고)이 그 주인공이다. 그를 16일 서울 상암동 소담스퀘어에서 만났다.


김연아 이후 여자 피겨의 새 역사를 쓴 소감을 물었다. "점수가 잘 나오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시즌 최고점을 받아 놀랐어요. 그런 점수를 받게 돼 스스로 잘했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해인은 이번 4대륙대회에서 대역전 드라마를 썼다. 쇼트프로그램에서 69.13점을 받아 6위에 머물렀고, 당연히 1위(72.84점)에 오른 김예림(20·단국대)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이해인은 프리스케이팅을 완벽한 '클린' 연기로 마무리했다.


한국일보

이해인이 10일 미국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프링스 브로드무어 월드 아레나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펼치고 있다. 이해인은 기술점수(TES) 74.96점, 예술점수(PCS) 66.75점, 합계 141.71점으로 전날 쇼트 점수를 합한 총점 210.84점으로 우승해 김연아 이후 14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AP 뉴시스

말 그대로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74.96점, 구성점수(PCS) 66.75점으로 합계 141.71점을 받아 시즌 최고점을 경신했다. 쇼트프로그램 점수까지 더해 총점 210.84점으로 종합 1위. 2009년 김연아가 우승한 이후 오랫동안 기다려온 금빛 메달이었다.


6위에서 1위로 올라서는 드라마를 썼지만 정작 이해인은 담담했다. 그는 "숫자가 6위였을 뿐 아쉬움은 크지 않았다. (실수하며) 넘어지지 않아 나름대로 잘 해냈다고 생각했다"며 "프리스케이팅 때 만회하면 된다는 생각만 했다"고 했다. 쇼트 때 조금씩 감점 요인이 있었던 부분을 체크하며 결전의 날을 기다렸다고 한다. 1위가 확정된 순간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번 대회가 월드챔피언십 다음으로 큰 대회였기 때문에 출전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이해인은 주니어 시절부터 강한 정신력이 장점인 선수였다.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을뿐더러 실수하더라도 금세 만회하는 여유를 보이며 나이답지 않은 '노련함'을 지녔다고 평가받았다. '강심장'이란 별명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정신력이 강하다는 말을 들어보긴 했어요. 하지만 강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떨리고 긴장되겠지만, 거기서 자기 자신이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일보

'포스트 김연아'로 불리는 이해인이 1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소담스퀘어에서 김연아 이후 14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한 올해 '4대륙선수권대회'에서의 프리스케이팅 오프닝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홍인기 기자

이번 우승은 김연아의 조언도 한몫했다. 김연아는 이해인에게 강약 조절, 시선 처리 등을 짚어 줬다고 한다. "(김연아) 언니가 경기를 풀어갈 때 시선을 정확히 처리하라는 조언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심판 쪽을 보면서 연기를 해야 어필할 수 있는 부분도 있거든요. 깨알 팁이었던 셈이죠."


우승의 기쁨을 만끽한 것도 잠시, 당장 18일부터 '제104회 전국동계체육대회'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 다음 달에는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리는 '2023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대회'에 줄줄이 출전한다. 특히 세계선수권대회는 김연아 이후 메달이 없어 이해인에게 기대가 높다. 2019년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김연아 이후 최초로 2연속 우승했고, 이번 4대륙대회에서도 김연아의 뒤를 이었으니 당연한 기대감이다. 팬들은 세계선수권에서도 김연아의 기록을 깨주길 바라고 있다.


'포스트 김연아' 이해인이 이제는 김연아를 뛰어넘을 차례다. "김연아 언니를 뛰어넘는 게 가능할까요? (웃음) 언니는 선수 시절 대회가 다가와도 스피드가 준다거나 자신감이 떨어지는 걸 보이지 않았잖아요. 항상 똑같은 컨디션으로 대회에 나선다는 건 대단한 일이에요. 저는 못 할 것 같거든요."


말은 그렇게 해도 이해인은 김연아를 쏙 빼닮았다. 실력은 물론이고 강한 정신력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녔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대회에 출전하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말로 긍정 에너지를 내뿜었다. '세계선수권에서 경쟁자가 누구냐'는 질문에도 그는 당당한 10대, Z세대의 면모를 보였다. "잘하는 선수들이 정말 많죠. 하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요. '너는 너, 나는 나!'"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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