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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많은 전방 산골? 알고 보니 조선 대학자의 이상향

<165> 화천 사내면 화음동정사지와 곡운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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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화악산 자락 삼일계곡의 화음동정사지. 송시열과 함께 노론의 대표 인물인 김수증이 자신만의 이상향으로 꾸몄던 곳이다.

화천에서 군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사창리라는 지명이 낯설지 않다. 27사단 본부가 위치한 곳으로 인근 부대에서 휴가 나온 군인과 면회객의 편의를 위해 동서울까지 수시로 버스가 운행된다. 산골이지만 이들을 위한 식당 카페 편의점 등도 부족함이 없다. 사창리는 행정구역상 사내면에 속한다. 사병들로 붐비고 무기고가 많은 곳이라 해석할 법한데, 지명의 유래는 좀 더 심오하다. 사내면은 사탄내면(史呑內面)을 줄인 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역사를 감추고 있는 고을’이다. 사창리(史倉里) 역시 ‘역사의 창고’라는 뜻이다. 사창리에서 모이고 갈라지는 두 개의 물줄기에 숨겨진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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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사내면·하남면 여행 지도. 그래픽=성시환 기자

유학자 김수증의 이상향 화음동정사지

화악산(1,468m)은 화천과 가평을 가르는 산줄기다. 가평을 기준으로 보면 경기도에서 가장 높고 험한 산이다. 한국전쟁 때는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고, 요즘도 겨울이면 혹한의 전방 부대를 상징하는 곳으로 자주 언급된다.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의 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산이다.


화악산 동쪽 기슭에서 사내면으로 이어지는 골짜기에 삼일계곡이 있다. 깊은 산속에서 발원해 얼음장처럼 차고 깨끗한 물이 언제나 풍부하게 흐르는 계곡이다. 오랜 세월 군사지역으로 묶여 있어 원시림을 연상시키는 울창한 수림이 계곡을 덮고 있다. 어둑한 그늘 밑에 숨어 있는 너럭바위 쉼터가 일반에 개방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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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증의 화음동정사 터에 초가 정자 두 채가 세워져 있다. 바위에 새긴 글자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일반인의 출입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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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동정사지 일대는 삼일계곡에서도 풍광이 가장 빼어난 곳이다.

삼일계곡에서도 경치가 가장 빼어난 지점에 ‘화음동정사지(華陰洞精舍址)’라는 팻말이 보인다. 버려진 절터가 아니라 조선 중기 문인이자 송시열과 함께 서인 노론의 대표적 인물인 김수증(1624~1701)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정사 터다. 서울에서 벼슬살이하던 김수증은 기사환국을 계기로 이곳으로 내려와 자신만의 이상 세계를 가꿨다. 기사환국은 조선 숙종 15년(1689) 소의 장씨 소생의 아들을 원자로 정하는 문제로 정권이 서인에서 남인으로 바뀐 일이다. 이에 반대한 서인이 지지 세력인 남인에 패배했고, 송시열은 제주도로 유배된 후 사사됐다. 김수증의 동생 수항도 이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여러 드라마에서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이의 갈등으로 묘사된 사건이다.


현재 화음동정사 터에는 당시 건물은 사라지고 근래에 지은 초가 정자 두 채가 바위에 덜렁 얹혀 있다. 집은 사라졌지만 바위에 새겨진 글자와 그림만은 그대로 남았다. 김수증이 지은 ‘화음동지(華陰洞誌)’를 통해 과거의 모습을 유추해볼 수 있는데, 함청문을 출입구로 하는 울타리 안에 정자인 요엄류정을 비롯해 부지암과 자연실 등 작은 집들이 있었다. 울타리 밖에는 불가부지포라는 채소밭과 우물인 한청정이 있고, 그 아래에는 못을 만들어 청여허당이라 했다.


요엄류정과 마주 보고 있는 바위에는 삼일정이라는 정자를 하나 더 세웠는데, 들보 밑에 태극도와 팔괘를 그렸다. 삼일정 위에는 무명와라는 집을 짓고 제갈량과 김시습의 초상을 걸었다고 한다.


김수증이 말년을 보낼 곳으로 이곳을 택한 것도 김시습의 영향이 컸다. 철원 위쪽 지금은 북한 땅이 된 평강 현감으로 부임하며 김수증은 일부러 이곳에서 묵어 갔다고 한다. 그가 흠모하던 김시습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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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동정사지 아래 계곡에서 피서객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풍덩 뛰어들기 힘들 정도로 물이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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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화음동정사지 일대는 화악산 삼일계곡에서도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으로 꼽힌다. 주위 너럭바위에서 더위를 식힐 수 있다.

현재 화음동정사 터는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도록 철재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바위에 새긴 문구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서다. 대신 바로 아래 암반 주변엔 무더위를 식히려는 길손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삼복더위가 기승이지만 풍덩 뛰어들기가 주저될 정도로 계곡물은 차갑다. 대개는 잠시 발을 담갔다 빼기를 반복한다. 주변에 차를 댈 공간이 마땅치 않다는 점은 아쉽다. 길가에 대고 잠시 계곡에 내려갔다 오거나, 도로변에 터를 잡은 펜션을 이용해야 한다.

김수증과 홍눌 스님의 인연, 법장사

화음동정사 터에서 계곡 맞은편 산자락으로 직선거리 약 400m 지점에 법장사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역시 김수증과 인연이 깊은 절이다. 구전에 의하면 신라 시대에 미륵사가 있던 절터에 김수증과 홍눌 스님이 반수암을 세웠고, 근래에 법장사로 개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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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동정사지 인근의 법장사. 김수증이 금강산에서 홍눌 스님을 데려와 '반수암'이라는 암자를 세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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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석을 처마로 활용한 법장사 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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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사 입구 불상 뒤에 신도들이 세운 돌탑.

김수증은 평강 현감으로 재직 중 금강산을 유람할 때 홍눌 스님을 만나 인연을 쌓았다. 이후 관직을 그만두고 홍눌 스님과 동행해 정사 인근에 암자를 짓게 하고 평생을 가까이 사귀었다고 한다.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내세운 조선은 강력한 숭유억불정책을 시행해 오고 있었다. 사대부와 승려와의 교유는 성리학의 교리를 어지럽히는 행동, 즉 사문난적으로 비난받을 행위였지만 둘의 인연은 누구보다 각별했다.


"홍눌은 반수암에, 김수증은 화음동정사에 기거하며 수시로 왕래했다는 기록이 ‘화음동지’와 ‘곡운집’ 등 여러 문헌에 남아 있습니다." 곽도영 법장사 주지 스님의 주장이다. "김수증이 반수암을 찾아 차를 마시거나 선담을 나누고, 밤이 늦으면 사찰에서 자고 가기도 했습니다. 함께 화악산을 오르기도 했으니 요즘으로 치면 둘은 종교 화합을 몸소 실천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반수암의 ‘반수(半睡)’는 절반은 졸고 있다는 뜻이다. 이름부터 어눌한 홍눌이 말까지 더듬어 염불을 할 때면 잠꼬대인지 술주정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화악산 깊은 산자락에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만 청량하니 불경을 외다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스님의 모습을 상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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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사 아래 계곡 암반 위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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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사 아래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발을 담그고 1분을 버티기 힘들다.

현재의 법장사 전각은 대부분 50년이 안 된 건물이라 딱히 멋스럽다고 하기 어렵다. 단지 대웅전 뒤편 절벽에 매달린 산신각만은 오래전 모습 그대로다. 인공적으로 지은 게 아니라 챙 넓은 모자처럼 얇고 길쭉한 바위를 지붕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두꺼비 같고 세 번 절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삼족섬(三足蟾) 갓바위’라고 부른다. 바위 앞으로는 웅장한 화악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보다 더 좋은 건 화음동정사 터에서 사찰에 이르는 계곡이다. 삼일계곡의 지류라 할 수 있는데 가성비는 오히려 한 수 위다. 곳곳에 넓은 암반이 흩어져 있고, 그 위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이 얇게 퍼진다.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서늘한 기운이 온몸에 번진다. 법장사는 해발 600m 언저리라 밤 기온이 한여름에도 20도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절에 이르는 길이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이고, 차 댈 공간이 많지 않다는 게 역시 단점이다.


눈으로 보는 곡운구곡 끝에 화천 인생사진 명소

김수증의 성리학적 이상향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곡운구곡까지 이어진다. 삼일계곡이 합류하는 지촌천 하류부터 상류까지 1~9곡이 이어진다. 별도로 용담계곡이라고도 부르고, 송시열이 경영한 괴산의 화양구곡과 비견된다.


김수증은 비경을 이루는 물굽이에 차례로 방화계(꽃이 만발한 계곡), 청옥협(옥색같이 맑은 협곡), 신녀협(신녀의 협곡), 백운담(흰 구름 같은 못), 명옥뢰(천둥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맑은 여울), 와룡담(용이 누워 있는 못), 명월계(달 밝은 계곡), 융의연(의지를 기리는 깊은 물), 첩석대(층층이 바위가 쌓인 절경)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더불어 아들 창국, 조카 창집, 외손 홍유인 등과 함께 구곡의 풍경을 시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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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증이 자신의 호를 따서 붙인 곡운구곡 중 제3곡 신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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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운구곡 제9곡 첩석대 표석. 사설 캠핑장 안에 있어서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형편이다.

구곡마다 명칭과 시를 풀이한 표석이 세워져 있지만, 안타깝게도 한군데도 마음 놓고 들어갈 수 없는 형편이다. 1~6곡은 도로변이지만 가드레일과 철조망에 막혀 아예 발을 들일 수 없고, 7~9곡은 캠핑장이 선점했다. 다만 제3곡 신녀협 입구에는 주차장이 조성돼 있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도 놓였다. 그래도 계곡에는 들어갈 수 없고 웅장한 모습을 눈으로만 감상할 뿐이다.


대신 지촌천이 합류하는 북한강으로 이동하면 화천의 인생사진 명소가 있다. 하남면 서오지리 연꽃단지가 대표적이다. 연꽃단지를 조성하기 전 이곳은 건넌들이라고 불리던 늪지대였다. 장마철이면 쓰레기가 떠내려와 강과 물고기가 몸살을 앓았는데, 10여 년의 노력 끝에 400여 종의 연꽃이 만발한 마을로 변신했다. 제방과 연결된 산책로가 연못 안까지 이어져 한여름 연꽃 향에 흠뻑 취할 수 있다. 진흙 속에서 아름다운 자태로 피어나는 연꽃을 보기 위해 사진작가와 여행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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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촌천이 북한강과 합류하는 지점의 서오지리 연꽃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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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지리 연꽃단지는 여름철 사진작가와 여행객이 꾸준히 찾는 화천의 사진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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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면 북한강변의 거례리 사랑나무. 최근 화천의 인증사진 명소로 뜨고 있다.

상류로 조금 더 올라가면 거례리 북한강변에 수목공원이 있다. 강변 공원의 풍경은 어느 지역이나 비슷한데 이곳이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홀로 우뚝 선 느티나무 한 그루 때문이다. 주변이 골프장으로 조성돼 있어서 더욱 돋보인다. 나무 그늘 아래서 바라보는 북한강 풍광은 한없이 평화롭다. KBS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에 등장하며 ‘거례리 사랑나무’라는 이름을 얻었고,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을 꾸준히 불러 모으고 있다. 이달 30일까지 매주 금·토요일 오후 3시부터는 버스킹 대회가 열린다.


화천=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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