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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정치 스타트업 옥소폴리틱스

유호현 대표 “다양한 목소리로 정치에 변화 주는 스타트업 만들 것”


과연 정치가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을까. 근본적인 질문에 도전장을 던진 신생기업(스타트업)이 있다. 국내 최초의 정치 스타트업을 표방한 옥소폴리틱스다. 이들은 세상에 얼마나 다양하고 기발한 스타트업들이 존재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옥소폴리틱스를 만든 주인공은 회사 만큼이나 특이한 이력을 가진 유호현(41) 대표다. 유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살며 한국의 옥소폴리틱스를 원격 경영한다. 이것도 흔치 않은 경우다. 행사 참석차 잠시 귀국한 유 대표를 만나 독특한 스타트업 창업기를 들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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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현 옥소폴리틱스 대표가 국내 최초의 정치 스타트업인 옥소폴리틱스의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왕나경 인턴기자.

미국 트위터와 에어비앤비에서 수억원 연봉받던 개발자

원래 유 대표는 교수를 꿈꾼 영문학도였다. 연세대에서 영문학과 문헌정보학을 복수전공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나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정보학으로 위스콘신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고 텍사스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계획대로라면 교수가 됐을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2012년에 우연히 본 채용 공고였다.


미국 유명 사회관계형서비스(SNS) 업체 트위터에서 정보학을 전공한 프로그램 개발자를 뽑는데 중요 조건 중 하나가 영어와 우리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미국에서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죠. 특히 영어와 우리말을 잘하는 정보학 전공자가 개발을 하는 경우는 없거든요.”


유 대표는 어려서부터 게임을 좋아해서 독학으로 프로그램을 공부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줄 알았다. “트위터의 채용 공고는 마치 저를 위해 낸 것 같았어요. 공고를 보자마자 흥미가 생겨 지원했죠.” 2년 동안 적임자를 찾지 못했던 트위터는 바로 유 대표를 뽑았다.


그가 첫 직장인 트위터에서 1억5,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고 한 일은 우리말 처리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었다. “트위터의 정보검색팀에서 우리말 자연어처리팀을 총괄했습니다.” 그렇게 4년간 우리말 처리팀을 이끈 그에게 또다른 기회가 왔다.


이번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공유숙박 스타트업 에어비앤비였다. 에어비앤비도 한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영어와 우리말을 잘하는 개발자를 찾고 있었다. 유 대표는 2016년 에어비앤비의 제의를 받고 수송 연구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봉도 약 5억원으로 세 배 이상 뛰었다. “이용자가 공항에서 예약한 숙소까지 어떻게 이동하면 좋을지 연구하는 팀이었어요. 이미 에어비앤비는 그때부터 숙박과 수송을 연계한 사업을 염두에 뒀죠.”


개발자로 잘 나가던 유 대표에게 전세계로 퍼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또다른 전환점이 됐다.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에어비앤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다. 결국 유 대표는 몸 담았던 연구팀이 사라지면서 2020년에 퇴사했다.


그러나 유 대표에게 에어비앤비의 해고는 반가운 일이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해고가 좋은 일이에요. 어느 정도 검증된 개발자는 해고 당하는 순간 이직 제의가 밀려들어요. 그래서 개발자들은 2,3년마다 실력에 맞는 회사를 찾아 옮기죠.”


해고는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됐다. “미국의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퇴직금이 없어요. 그러나 해고당하면 위로금 명목으로 2~4개월치 월급을 회사에서 주죠."


유 대표에게도 구인 사이트를 통해 메일함이 꽉 찰 정도로 이직 제의가 쏟아졌다. 연봉도 훨씬 더 많이 주겠다는 제안들이었다. “에어비앤비는 이미 갖춘 기능을 개선하는데 주력했어요.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을 찾던 저의 성향하고 맞지 않아 여러 가지 고민 중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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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스타트업 옥소폴리틱스는 이용자의 성향에 따라 진보부터 보수까지 5가지 동물 부족으로 표현한다. 옥소폴리틱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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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정치적 질문에 OX로 응답하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옥소폴리틱스의 스마트폰 이용 화면. 옥소폴리틱스 제공

“정치도 다양성이 인정돼야 혁신할 수 있다”

유 대표는 내로라하는 유명 기업들의 이직 제안을 모두 뿌리치고 창업을 선택했다.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에서 느낀 의사결정 구조 때문이었어요.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권위에 의존하거나 서로 다투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의사 결정을 합니다. 아주 합리적이죠.”


그런데 최고 의사결정 시스템인 정치, 특히 한국의 정치는 “그렇지 않다”고 느꼈다. “다양하지 못하고 너무 양극화 돼 있습니다. 진보, 보수의 진영 논리와 정파적 이해 관계에 따라 상대의 좋은 의견도 무조건 반대하는 식이죠. 그래서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다양성을 수용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든 산업이든 다양성이 인정돼야 혁신이 일어난다는 의견이다. “산업 발전 시대에는 장남에게 몰아주듯 한가지 방향성이 필요한데 혁신의 시대에는 무슨 아이디어가 성공할 지 모르니 다양한 의견과 개체가 있어야 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등장해 잘되는 곳만 살아남아 혁신을 주도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치가 큰 정당 위주로 돌아갔다면 앞으로는 스타트업 격인 소수의견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다양성을 인정해야 혁신이 이뤄집니다.”


이를 위해 방법론을 고민하던 유 대표는 2020년 7월 창업한 옥소폴리틱스를 통해 정치의 다양성 실험을 시작했다. 사람들의 정치 성향을 호랑이(강경 진보), 하마(중도 진보), 코끼리(중도), 공룡(중도 보수), 사자(강경 보수) 등 5가지 동물 부족으로 나눈 것이다. “우리 사회에 진보와 보수 두 가지가 아닌 여러 의견이 있다는 것을 5가지 동물 부족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12간지에 따라 12가지 동물을 생각했으나 너무 복잡해 보여 줄였죠.”


굳이 동물로 표현한 것은 각자의 정치 성향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다. “제일 심각하고 위험한 것이 말로 딱지를 붙이는 것입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이해관계가 갈리죠. 어떤 사람의 정치 성향을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그림이 낫다고 봤습니다.” 이를 위해 옥소폴리틱스는 성별, 연령 등 개인 데이터를 받지 않는다. 나이나 성별이 아닌 생각을 묶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동물 부족으로 나뉜 사람들은 각자의 게시판에만 의견을 올릴 수 있다. 다른 부족의 게시판을 볼 수는 있지만 글을 쓸 수는 없다. “상대에 대한 지나친 인신공격과 가짜 뉴스는 다른 커뮤니티를 넘나들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일부러 남의 게시판에 가서 자극하는 글을 쓰지 않으면 싸움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유 대표가 지향하는 것은 다양한 의견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을 시각적인 데이터로 보여주고 싶어요. 여러가지 데이터를 모아서 그래픽과 숫자로 표현하는 거죠.”


사람들에게 정치적 데이터를 가장 쉽게 모을 수 있는 방법은 O와 X로 의견을 묻는 것이다. 즉 정치 지형도를 2차원으로 풀어내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명인 옥소(OXO)폴리틱스가 유래했다.


그래서 유 대표는 게시판을 통해 다양한 정치적 질문을 던진다. ‘검찰 개혁이 필요한가’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사면해야 하나’ ‘유승준 방지법 필요한가’ 등 각종 의견을 묻는 게시판에 사람들이 찬성과 반대 의견을 내놓는 식이다. 아울러 각각의 질문에는 찬성, 반대를 초록색과 빨간색 점으로 표시해 한 눈에 의견 분포를 알 수 있는 그래프를 제공한다.


또 ‘이 주의 한국정치’라는 코너를 통해 매주 대통령의 행적을 나열하고 OX로 의견을 묻는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주 대통령 지지율이 집계된다. 이밖에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소수 정당 분석 등 각종 정치적 데이터를 분석하는 일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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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소폴리틱스의 직원 5명은 한국과 미국에 흩어져 인터넷으로 원격 근무를 한다. 유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 공동 창업자는 미국 뉴욕, 다른 직원들은 서울과 대전에서 일한다. 왕나경 인턴기자.

유료 구독 모델로 2년 뒤 미국에서도 사업할 것

매출은 매달 구독료를 받는 유료회원을 모집해 올릴 계획이다. “올해 안에 유료 회원을 모아서 고급 데이터를 제공할 예정입니다. 특히 이들에게 지역구 현황이나 정책 관심사를 모아서 제공할 생각입니다. 정치인들은 이들을 대상으로 온라인에서 지지 광고를 할 수도 있죠.”


정치인들을 위한 사업 관련 기능도 별도 개발 중이다. 국회의원이나 당직자,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는 기능이다. “일반인들은 비실명으로 표시되지만 정치인들은 원하면 실명을 드러내도록 할 계획이에요. 이렇게 되면 정치인들은 따로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지 않아도 이름 자체가 홈페이지 역할을 하게 되죠. 이 안에서 온라인 정치 활동을 하고 지지 기반을 만들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유 대표는 2년 뒤 영문 서비스도 내놓을 예정이다. “미국은 사람들의 정치 참여도가 높아요. 온라인에서 의견을 드러내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죠. 사람들의 참여도가 높으면 정치 뿐 아니라 기업이나 사회 문제 등으로 주제를 확대할 수 있습니다.”


유 대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다양한 목소리를 보여줘 한국의 정치가 변하도록 일조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자아실현 욕구가 강한 밀레니얼 세대들이 사회에 나오면서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과거 한국은 경제 성장, 국가와 민족, 가족 등을 내세우며 소속을 강조했어요. 그러나 밀레니얼 세대들은 그런 것보다 개인의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어느 회사에 다니고 얼마나 돈을 버는지 보다 각자 좋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일에 가치를 두죠. 그런 밀레니얼 세대들의 생각을 제대로 알려면 관련 데이터를 투명하게 시각화해서 보여줘야 합니다.”


그는 밀레니얼 세대의 다른 생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조국 사태를 들었다. “20대들에게 검찰 개혁은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경쟁에서 이겨야만 자아실현이 가능한 우리 사회에서 공정하지 않은 행동을 한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면 따로 놀 수 밖에 없죠. 옥소폴리틱스는 다양한 목소리를 정치공학적으로 분석해 보여줘 제일 변하지 않는 정치를 바꿔보는 회사가 될 겁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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