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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엔 ‘베이지 면바지’ 많았고 현대차에선 ‘반바지’가 보였다

‘자율복장제’ 뿌리내리는 4대그룹


청바지, 면바지에 운동화, 샌들

직원들 출근 복장으로 자리 잡아

뒤늦게 합류한 현대차 변화 ‘화끈’

남성 열에 두셋은 반바지 패션


“복장 편해지니 분위기도 유연해져

소통 쉬워지고 업무 효율도 쑥”

젊은 ‘3·4세 경영’ 영향 해석도

한겨레

반바지와 청바지부터 흰 티셔츠, 운동화까지 자율복장제를 시행하고 있는 4대 그룹 주요 계열사 직원들의 출근 옷차림을 모아봤다. 왼쪽부터 삼성전자 집단지성사무국 강민구 프로, 엘지(LG)전자 에이치앤에이(H&A)사업본부 세탁기중남미영업팀 하민수 선임,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에이치아르(HR)전략실 안은수 사원, 현대차 아이티(IT)인프라기술팀 임현수 사원. 강창광 송경화 기자, 삼성전자 현대차 제공 chang@hani.co.kr

지난 13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엘지(LG)트윈타워 1층 로비. 점심 식사를 마친 엘지전자·엘지화학 등의 본사 직원들이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 30대 남성은 발목이 드러나는 슬림핏 검정 바지에 가로 줄무늬 흰색 면티를 입었다. 양말은 스니커즈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페이크 삭스’(덧신형 양말)를 신었다. 다른 남성은 베이지색 면바지에 카키색 ‘폴로티’를 입었다. 신발은 끈없는 검은색 슬립온이었다. 한 30대 여성 직원은 청바지에 꽃무늬 티셔츠를 입고 흰색 샌들을 신었다. 다른 직원은 웨지힐 샌들에 분홍색 면티, 청바지였다. 옷차림만 봐서는 대학 캠퍼스와 구분하기 어려웠다. 눈에 가장 많이 띄는 것은 베이지색 면바지와 흰색 운동화였다.


지난 3월 현대차까지 합류하면서 삼성·현대차·에스케이(SK)·엘지 등 4대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모두 자율복장제를 시행하게 됐다. 옷 차림의 변화는 확연했다. 조직 문화의 변화도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딱 1년이 된 엘지에서는 따끈한 체감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엘지전자는 ‘노타이 정장’이 대표적인 비즈니스 캐주얼을 허용하다 지난해 9월부터 ‘청바지에 흰 티’로 상징되는 완전 캐주얼을 전면 도입했다. 엘지전자 한민수(31) 선임은 “처음엔 ‘진짜로 편하게 입어도 되나’, ‘괜히 나만 티를 입고 가는 것 아닌가’ 눈치를 봤는데 윗분들이 바로 청바지를 입고 오는 걸 보고 금방 적응하게 됐다”며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는 것만으로도 출근길이 좀더 가벼워졌고 사무실 분위기도 유연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엘지 계열사의 허아무개(36)씨는 “만날 정장 스타일만 보다가 각자 개성이 점점 드러나니까 자유로운 분위기가 생기고 회의를 하더라도 전보다 편하게 발언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은 직원들의 ‘격공’(격하게 공감) 포인트 중 하나는 상사 대면에 미묘한 차이가 생겼다는 점이다. 엘지의 다른 직원은 “상사가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으니 전보다 딱딱함이 줄어든 느낌이 있다”며 “상사를 대할 때 더 친숙해진 면이 있다”고 했다. “와이셔츠를 다리지 않아도 되는 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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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지(LG)전자 에이치앤에이(H&A)사업본부 세탁기중남미영업팀 하민수 선임.

20~30대 직원들과 달리 10년 이상 양복을 입어온 40~50대들은 아직 다소 어색해 보였다. 이날 엘지 본사에서 목격한 40~50대 남성 중에는 반팔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를 입고 신발만 색색깔 운동화를 신은 이들이 적잖았다. 파란 줄무늬 폴로티에 어두운 재킷을 걸친 애매한 패션도 눈에 띄었다. 한 팀장급 인사는 “집에 캐주얼한 옷이 없어 이번에 왕창 샀다”고 했다. 대부분 구두를 신지 않게 되면서 사무실에서 갈색·검정색 슬리퍼로 갈아 신고 다니는 풍경도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다만 엘지 본사에서 반바지 차림은 보기 어려웠다.


엘지가 단계적 변화를 거쳤다면 현대차 본사는 지난 3월 말 그대로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 ‘어두운 양복에 넥타이’가 전형이었는데 완전한 캐주얼로 180도 바뀐 것이다. 4대 그룹 대표 기업 중 가장 늦게 합류했지만 5개월 사이 변화는 확실했다. 14일 퇴근 시간대 찾은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에선 남성 열에 두셋 정도는 반바지 패션이었다. 한 30대 직원은 무릎 살짝 위 길이의 흰색 반바지에 클러치를 들고 퇴근 중이었고 베이지색 반바지에 에코백을 한 쪽 어깨에 메고 가는 남성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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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아이티(IT)인프라기술팀 임현수 사원.

한 차장급 인사는 “자율복장 도입 뒤 첫 여름을 맞아 반바지를 먼저 입는 ‘용자’가 있을지 다들 궁금해 했는데 7월 한두명 입기 시작하더니 확 늘어났다”며 “현대차가 원래 뭘 한 번 하기로 하면 확 바뀌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건물에 입주한 구둣방에선 월 2만원의 회원제를 운영해왔는데 최근 고객이 크게 줄었다고 그는 귀띔했다. 6년차 박지현(34) 대리는 이날 처음 반바지를 시도했다. 무릎 길이의 밝은 청반바지였다. 그는 “눈치를 좀 보다가 젊은 사원들 중심으로 입는 사람이 늘었길래 입어봤는데 시원하고 업무 효율도 올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관 등 외부 접촉이 많은 직원은 물론 전처럼 정장 스타일로 입는다. ‘티피오(TPO, Time·Place·Occasion)’에 맞춰 각자 판단하면 된다.


현대차는 오는 9월부터 기존 6개 직급을 4개로 줄이고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거나 과장을 기점으로 2개 정도로 축약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일각에선 최근 1년 사이 엘지와 현대차에 생긴 이 같은 변화를 두고 구광모 엘지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등 비교적 젊은 ‘3·4세 경영’의 영향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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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케이(SK)이노베이션 에이치아르(HR)전략실 안은수 사원.

에스케이에서는 자율복장제가 자리잡은 지 오래다. 특히 최근엔 공간 활용의 변화와 맞물려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에스케이에너지 등의 본사가 입주한 서울 서린동 에스케이빌딩은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 3월 ‘공유형 오피스’로 재탄생했다. 지난 14일 방문해보니 도서관과 카페 등 층마다 다양한 스타일로 만든 공간에 청바지와 반바지, 원피스 등 알록달록한 차림의 직원들이 곳곳에 앉아 업무 중이었다. 김준 에스케이이노베이션 총괄사장도 외부 일정이 없을 땐 청바지 차림으로 출근하곤 한다.


이곳 직원들은 매일 출근하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앉을 자리를 새롭게 선택한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한 과장은 “처음에 다들 어색하니까 전처럼 담당 상무님 주위로 모여 앉는 경향이 있어서 이틀 연속 같은 층을 선택할 수 없게 바뀌었다”며 “다른 팀, 다른 계열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니까 ‘다르게 생각하기’가 자극된다”고 말했다.


수원에 위치한 삼성전자 본사에서도 정장 스타일이 외려 눈에 띌 정도로 직원들의 옷차림이 자유롭다. 2016년 6월 여름철 반바지가 처음 허용된 뒤 2017년 5월엔 시기에 상관 없이 반바지를 착용할 수 있게 됐다고 삼성전자는 설명했다. ‘반바지 입는 직원들’은 이제 흔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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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집단지성사무국 강민구 프로.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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